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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주의자 박동운 교수의 대한민국 가꾸기

[위대한 7인의 정치가 2]박정희,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다

<국가와 세계를 바꾼 위대한 7인의 정치가>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 나라와 국민은 뒷전에 두고 오로지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정치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둘째, ‘거꾸로 가는 정책만 고집하여’ 잘 나가는 한국경제를 침몰시키고 있는 현 정부와 청와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경종이란 바로 7인의 정치가들의 위대한 통치철학이다. 셋째, 언젠가 오게 될 통일을 염두에 두고 통일된 한국의 정치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7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4-09 09:42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 후 이승만의 3선 개헌, 4·19 학생혁명 등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대한민국은 1961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89달러로 320달러의 북한보다 못 살았고,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굶어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육군 소장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1963년에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제5~6대 대통령을 마치고, 3선 개헌으로 제7대 대통령이 되어 재임 중 유신헌법을 도입, 제9대 대통령까지 역임하다가 1979년 10월 26일 시해(弑害)되었다.
 
박정희는 네 차례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여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박정희는 민정이양 직전인 1962년 12월 26일에 헌법을 전부 개정하여 ‘대한민국의 경제체제로서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대외무역을 개방하고, 소작농을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그 후 박정희는 시장경제를 통치철학으로 내세워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었다. 2018년 기준 대한민국은 경제규모 11위, 무역규모 7위, 고도성장 2위인 나라다. 여기서는 박정희가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어떻게 경제대국으로 이끌었는가를, 주로 헌법 개정과 관련하여 이야기한다.
 
이병철을 비롯한 기업인들, 허둥대는 박정희를 돕다
 
박정희는 쿠데타 명분으로 6개 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했는데, 넷째 항은 이러하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박정희는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경제인 11명을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했다. 부정축재자 1호 이병철은 그때 일본 체류 중이었다. 혁명정부는 이병철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고, 이병철이 공항에 도착하기가 바쁘게 박정희는 이병철과의 면담자리를 마련했다.
 
이 때 이병철은 “경제와 거리가 먼 군인인 박정희 의장을 이해·설득시키는 일이 급선무였고, ⋯ 적어도 경제면에서만큼은 재계가 정부를 리드해 나갈 수 있도록 경제인협회의 위상과 신임을 높여야겠다고 작심했다”고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썼다. 박정희의 약력을 보면, 그는 권력을 잡기까지 ‘경제 관련 경력’이 전혀 없다. 이병철을 비롯한 경제인들이 박정희를 도운 것이다. 구속에서 풀려난 부정축재자들은 이병철의 제안에 따라 기간산업공장을 짓고, ‘민생고 해결 방법’을 찾느라 허둥대던 박정희를 돕기로 했다.
 
박정희는 경제인들과 손을 맞잡고 경제인들의 권유에 따라 외자도입을 위해 경제인들을 서독과 미국으로 파견했다. 경제인들은 서독과 협상을 벌인 끝에 차관을 제공받기로 합의했다. 담보를 제공할 수 없었던 한국 정부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에 인력을 수출하고, 이들의 월급을 3년간 독일 커메르츠 방크에 강제 예치하는 방법으로 지불 보증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1차 5개년계획이 실행에 들어갔다. 그 후 1977년까지 독일로 간 광부가 7,932명, 간호사가 1만 226명이었다. 이들은 기본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의 70~90%를 한국의 가족에게 송금했다. 그 돈은 연간 약 5,000만 달러로, 한국 국민총생산의 2% 정도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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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정칠만리> 中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서독 방문 모습. 사진=조선DB

4차에 걸친 5개년계획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하다
 
박정희는 1965년 6월 22일에 한·일간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역대 정부에서 ‘뜨거운 감자’ 신세였던 ‘한일국교 정상화’를 마무리 지었다.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 달러, 10년에 걸쳐 균등 분할되는 유상 재정 차관 2억 달러, 양해 사항으로 민간 차관 3억 달러가 제공되었다. 이 결과 1966년에 12.2%에 이르는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박정희는 베트남 파병도 결정했다. 베트남전 참전으로 한국이 얻게 된 경제적 이익은 미국의 군사 원조 증가분 10억 달러, 미국의 한국군 파월 경비 10억 달러, 베트남 특수 10억 달러, 기술 이전 및 수출 진흥 지원 20억 달러 등 모두 50억 달러였다. 박정희는 1965년 베트남 파병으로 확보한 달러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박정희는 1962~1979년간 4차례에 걸쳐 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여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은 경제대국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헌법 개정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대한민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다
 
관점에 따라 박정희의 업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박정희의 업적 가운데 그가 경제계획을 추진하여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었다는 것 못잖게 헌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체제를 ‘시장경제’로 명시하여 경제발전에 성공했다는 것을 내세운다. 뿐만 아니라 ‘소작농 금지’와 ‘경제 개방’도 그의 업적으로 높게 평가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되어 1987년 10월 29일에 전부 개정된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제·개정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는 민정이양 직전인 1962년 12월 26일에 헌법을 전부 개정하여 “제111조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명시했다. ‘경제질서’는 ‘경제체제’를 뜻하는데,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은 시장경제의 핵심 원리다. ‘박정희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된 ‘전두환 헌법’에서 ‘기업’이 추가되어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로 보완됨으로써 대한민국의 경제체제는 ‘시장경제’로 더욱 강화되었다.
 
시장경제는 왜 중요한가? 시장경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우리를 잘살게 하는 경제체제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경제 비교만으로도 이는 쉽게 입증된다. 1971~2016년 연평균 성장률을 보면 북한은 1.9%, 남한은 7.0%다. 1인당 국민소득은 북한이 1970년에 436달러로 같은 시기 남한의 288달러보다 1.5배 많았다. 그런데 2016년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667달러로, 1970년의 436달러에서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질소득은 엄청나게 감소했을 것이다. 반면 남한은 2018년에 3만 달러대에 진입했다. 그래서 김정은은 2010년에 ‘국민경제를 1960∼70년대 수준으로 회복시켜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는 생활수준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것이다.
 
헌법 개정으로 소작농 금지하여 골고루 잘사는 나라로 이끌다
 
‘박정희 헌법’은 “제113조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금지된다”라고 명시했다. 이에 앞서 이승만은 ‘제헌 헌법’에서, 농지 소유가 부의 상징이던 시대에 ‘농지는 농민만이 소유할 수 있고, 농지 소유는 최대 3정보(약 9천 평)를 초과할 수 없게 한 농지개혁’을 명시했다. 농지개혁은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는데, 박정희가 1969년 4월에 마무리했다. 여기에다 박정희는 헌법을 개정하여 ‘소작농 금지’까지 명시했다. 박정희의 아버지는 처가 위토(位土) 소작농이어서 매우 가난했고, 박정희는 교사 시절 소작농의 비애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의 생가는 매우 가난한 시골 농가였다. 그래서 박정희는 소득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헌법에 ‘소작농 금지’를 명시했을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농지소유를 규제하지 않거나 소작농을 허용하면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가 악화되기 마련이다. 필리핀이 그런 나라다. 필리핀은 한국보다 몇 백 년 앞서 개방되었고, 196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훨씬 더 잘 살았던 나라다. 필리핀은 현재 국민의 31%가 농업에 종사하고, 50% 정도가 소작농이라고 한다. 그러한 필리핀은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가 한국보다 훨씬 심한 나라다. 곧 이어 언급하겠지만 한국은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가 국제비교에서 ‘좋은 나라’로 평가된다. 소득분배는 여러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대한민국의 경우 박정희의 ‘소작농 금지’가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 악화를 막는 데 일조했다고 나는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강조해 왔는데, 이는 그의 소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큰 잘못이다.
 
『UN 인간개발보고서』 2018년판은 세계 154개국의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소득불평등은 지니계수(이는 크기가 작을수록 소득불평등이 심하지 않음)로 나타내는데,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심하지 않기로 154개국 가운데 28위다. 소득양극화는 팔마비율(이는 소득 하위 40%에 대한 상위 10%의 점유율)이나 퀸타일비율(이는 소득 하위 20%에 대한 상위 20%의 점유율)로 나타내는데, 한국은 소득양극화가 심하지 않기로 154개국 가운데 팔마비율은 28위, 퀸타일비율은 40위다. 강조해야 할 것은 한국은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가 룩셈부르크,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 일본, 프랑스 수준으로 심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헌법 개정으로 경제 개방하여 수출주도형 고도성장을 이룩하다
 
‘박정희 헌법’은 “제116조 국가는 대외무역을 육성하며 이를 규제·조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1960년대 초에 후진국들은 ‘수입대체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가 대외무역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박정희 헌법’ 이전에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대외무역 정책을 ‘수입대체’에서 ‘개방’으로 과감하게 전환했다. 당시 개발도상국 가운데 대외무역을 개방한 나라는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 그리고 한국 정도였다. 이들 네 나라는 대외무역 개방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룩한 결과 1970~80년대에 ‘아시아의 4龍’으로 불렸다.
 
박정희는 정권을 잡은 후 ‘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라’며 시해될 때까지 매달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며 수출 확대를 독려했다. 박정희는 초기에는 경공업 중심의 제조 상품 수출에 역점을 두었다가 점차적으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해가면서 ‘수출주도 고도성장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한국은 지금 세계 7위의 무역대국·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해 있다. 특히 한국은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나라가 수출 5천억 달러 이상을 달성한 소위 ‘5천-5천 클럽’에 세계 역사상 여섯 번째로 가입한 나라다.
 
‘박정희의 성장 신화’는 이어져야 한다
 
한국은 연평균 성장률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각각 10.5%와 8.8%에 달했으나 1990년대에는 6.2%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 후 2000~2009년 4.7%로 하락했고, 2012년 이후에는 2.3~3.3%로 더더욱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 2년째에 한국의 성장률은 2%대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 성장률은 3.8% 정도다. 2019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2%대에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처럼 낮은 성장률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고, 소득을 증가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세계는 지금 기술혁신으로 하루가 다르게 일자리가 소멸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고도성장으로, 1인당 국민소득 1만→5만 달러대 진입이 아일랜드는 18년, 싱가포르는 22년 만에 이뤄졌다. 고도성장으로, 1992년까지 굶어죽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았던 중국은 지금 경제대국 2위다. 우리는 박정희의 ‘성장 신화’를 이어가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득이 증가할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거꾸로 가는 경제정책’은 비판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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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 저 | 북앤피플 | 420쪽 | 2만 3,000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1941년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전남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업. 美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 받음.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미국에서 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1979)를 읽고 ‘시장경제’에 빠져들었고, ‘시장경제’ 강의를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적잖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처리즘: 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는 마거릿 대처의 삶과 정치를 연구·정리한 중요한 저작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외에도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는 확신을 갖고, 『좋은 정책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성경과 함께 떠나는 시장경제 여행』, 『노동시장 개혁은 슈뢰더처럼, 대처처럼』 등 자유시장경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책들을 30여 권 집필했으며, 지금도 어느 작업실에서 다음 책 집필에 혼신을 쏟고 있다.

등록일 : 2019-04-09 09:42   |  수정일 : 2019-04-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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