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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일개미 천재의사의 허무한 죽음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3-29 10:15

최 박사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70대 신경외과 의사인 그는 소송관계인으로 알게 됐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친구처럼 지낸 의과대학 선배인 외과의사 박일성과 함께 안산에서 병원을 키워왔다. 공장지역에서 ‘최고의 수술솜씨를 가진 외과 전문의들이 24시간 응급실을 지키는 따뜻한 병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었다. 병원은 번성을 해서 지금은 600명이 넘는 의료가족을 거느린 대형병원이 됐다. 그런데 병원을 설립한 의사 박일성이 갑자기 암으로 죽은 것이다. 그는 동료의사 박일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사 박일성은 수술 밖에는 몰랐어요. 환자를 기다리며 수술실 옆에서 꾸겨져 자고 아무 때나 아무거나 먹고 살았죠. 수술복에 슬리퍼를 신은 채 백화점도 가고 공항에도 나갔어요. 그러니까 환자들이 구름같이 몰려온 거죠. 자동차 사고로 걸레같이 찢어진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여덟 시간 열 시간 동안 성형수술하듯 봉합해서 완벽하게 만들어내던 최고의 외과의였죠.”
 
여러 직업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게 변호사의 일이기도 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하여튼 의사 박일성은 돈을 버는 데도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가 감각적으로 찍는 부동산들이 가격이 폭등하는 걸 봤어요. 지금의 병원도 도시 외곽 한산한 지역의 땅을 사서 병원으로 넓게 자리 잡은 겁니다. 그 주변 땅을 넉넉히 사서 주차장 부지도 넓게 잡았죠. 그런데 지하철역이 들어오고 도시개발이 되니까 중심가가 되어 버렸어요. 수술만 하면서도 그가 잡은 땅은 마이더스의 황금같이 되어 버린 겁니다. 보통사람인 제가 옆에서 보면 박일성은 어떤 때는 미친놈 같기도 했어요. 이리저리 말이 튀어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말들이 다 맞아요. 천재성 발언이었죠.”
 
박일성 그는 세상에 나와서 모든 것을 가진 축에 들어간 것 같다. 명문 고등학교와 명문의대를 나와 최고의 수술솜씨를 가진 외과 의사로 또 재산가로도 성공한 케이스였다. 미국에 사 둔 그의 저택은 집 안에 요트 선착장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죽고 법률문제들이 발생해 내가 사건을 맡게 된 것이다. 나는 동료의사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느 날 수술을 하고 나와서 하는 말이 갑자기 수술부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검사해 보니까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에 장애가 온 거예요. 외과 의사로는 그 생명이 끝이난 거죠. 그때 처음으로 메스를 놓고 쉬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매사에 적극적이에요. 쉬는 것도 계획을 세우고 강하게 추진하는 성격이죠. 남해 바닷가 선착장 앞에 있는 건물과 요트를 사들였어요. 나머지 인생은 거기서 바다낚시를 하면서 즐기겠다는 겁니다. 구입한 건물의 일층은 레스토랑으로 하고 윗 층은 모텔로 개조했어요.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비용을 충당하면 된다는 계산이었죠. 나머지 인생은 정말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우아하게 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계속 쿨럭거리면서 기침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폐 엑스레이를 언제 찍어봤느냐고 했더니 몇 년 동안 찍은 일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그래서 내가 강권해서 검사실 가서 폐 사진을 몇 장 찍었어요. 바로 현상한 폐사진을 보니까 주먹덩이만한 암이 보이더라구요. 폐암말기인 거예요. 그리고 몇 달 만에 죽었죠. 자기가 즐기려고 준비해 놓은 요트는 제대로 타 보지도 못했죠. 인생이 그렇게 허망한 겁니다.”
 
그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성경 속의 부자가 떠올랐다. 재물이 너무 많아 창고를 지으면서 흐뭇해하던 인물이었다. 그에게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네 영혼을 오늘밤에 데리고 갈 건데 그 재물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 뒷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갈 때 그 의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행복했을까. 인생이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등록일 : 2019-03-29 10:15   |  수정일 : 2019-03-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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