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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교수의 가요 이야기

줄곧 민족혼을 노래했던 가수- 왕수복

글 | 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1-17 14:12

 왕수복(王壽福)이란 가수의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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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왕수복
 
일찍이 1930년대 서울에는 평양기생 출신의 가수 하나가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통통하고 해맑은 얼굴에 다소 커다란 눈망울을 지녔던 그녀의 대표곡은 <고도(孤島)의 정한(情恨)>과 <인생의 봄> 두 곡이었답니다.
 
가수 왕수복은 1917년 평남 강동에서 화전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이름은 성실이었지요. 그런데 할머니가 수명장수하고 다복하라는 뜻에서 수복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의 유년시절이 불우하듯 왕수복의 집안도 무척이나 가난하고 불우했습니다. 수복이는 11살에 평양 기성권번(箕城券番)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성(箕城)은 평양의 옛 이름이지요.
 
이제부터 왕수복의 재주는 날개를 달고 둥실 떠오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가곡과 가사, 시조 등의 소리지도를 받았고, 거문고를 비롯한 각종 악기를 두루 배웠습니다. 드디어 왕수복이가 열일곱 살 되던 해, 1933년은 서울로 가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하는 벅찬 해였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서도소리 가락의 느낌이 살아나는 바탕에 유행가 가락을 얹어서 엮어가는 왕수복만의 독창적 창법을 구사했던 것입니다.
 
1933년 여름 왕수복은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울지 말아요>와 <한탄> 등 2곡이 수록된 유성기 음반을 취입했습니다. 이 음반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락을 애타게 그리워하던 식민지백성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주었고, 이런 왕수복에게는 ‘최초의 민요조 가수’, ‘최초의 기생가수’ 등의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왕수복의 명성이 본격적으로 전 조선에 울려 퍼지게 된 것은 1933년 가을, 포리도루레코드사로 옮긴 뒤 유행소곡이란 이름의 노래 <고도(孤島)의 정한(情恨)>(청해 작사, 전기현 작곡, 포리도루 19086)과 <인생의 봄>(주대명 작사, 박용수 작곡, 포리도루 19086)을 발표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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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복의노래 '고도의 정한'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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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복의 '고도의 정한'가사지

칠석날 떠나던 배 소식 없더니 
바닷가 저쪽에선 돌아오는 배 
뱃사공 노래 소리 가까웁건만 
한번 간 그 옛님은 소식없구나 

어린 맘 머리 풀어 맹세하더니
시악씨 가슴 속에 맺히었건만
잔잔한 파도소리 님의 노랜가
잠들은 바다의 밤 쓸쓸도 하다
-<고도의 정한> 전문 
 
 
유성기 음반 앞뒷면에 실린 이 노래는 당대 최고의 레코드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당시 포리도루레코드회사에서 왕수복이 취입한 음반을 선전하는 광고 문구를 함께 읽어보실까요?
 
양의 명화, 왕수복 입사 제1성, 신유행가의 호화, 금수강산 평양이 나흔 포리도루 전속 예술미성의 가희 왕수복 양의 독창 레코드 <고도의 정한>과 <인생의 봄>은 과연 정적한 가을에 우리를 얼마나 위로하여 줄까! 드르라 이 호평의 소리반을! 왕수복 취입집 반도 제1인기 화형(花形)가수!
 
때 ‘화형가수’란 말은 가장 훌륭한 최고의 가수란 뜻입니다. 왕수복은 1933년부터 1936년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대표적인 여성가수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무렵에 발표한 대표곡들은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여기에 옮겨 적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곡들 가운데서 왕수복의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는 <그리운 강남>이란 노래는 우리의 귀에 아직도 여전히 익은 작품이지요.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하늘이 푸르면 나가 일하고
별 아래 모이면 노래 부르니
이 나라 이름이 강남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 가는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 발목 상한지 오래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그리운 강남> 전문
 
당시 왕수복의 음반은 한 장에 1원 50전이었다고 합니다. 1935년, 당시 최고의 인기잡지였던 <삼천리>에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를 실시했었는데, 총 여덟 차례나 실시했던 이 투표에서 왕수복은 1903표를 얻어서 단연 1위를 기록했습니다. 왕수복이 무대에 오르면 대중들의 함성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만인 절찬’ ‘유행가의 여왕’이란 칭호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가수 왕수복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하지만 그녀의 가슴 속은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생출신’이란 꼬리표가 항상 짙은 그늘로 드리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왕수복은 그동안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추진해오던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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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돌레코드사 전속가수 시절의 왕수복 명함.
 
그것은 첫째로 기생 신분의 소속을 평양권번에 반납하는 일이었고, 둘째로는 서양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일본유학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왕수복의 나이 23살, 그때까지도 서울의 레코드 회사들은 여전히 왕수복에게 끈질긴 취입 제의를 해왔지요. 그러나 왕수복은 모든 제의와 권유를 거절하고, 서구의 성악을 공부하여 조선의 전통과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무용 음악의 밤’ 공연이 열렸을 때 왕수복은 우리 겨레의 민요 <아리랑>을 서양식 창법으로 노래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요를 성악발성으로 부른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1939년 왕수복은 한 일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최승희씨가 조선무용을 살린 것처럼 나는 조선의 민요를 많이 노래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요의 세계화를 위해 왕수복은 자신이 누리던 모든 인기와 보장된 길을 과감하게 버리고 고독한 경로를 선택한 것이지요.
 
이런 왕수복의 삶에 그녀의 포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한 연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李孝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짧고 덧없는 봄눈이었습니다. 왕수복의 단호하고도 엄정한 삶은 일제말 암흑기에서 특히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조선민요도 일본어로 부르라고 강요받던 그 시절, 왕수복은 친일음악인이 되지 않으려고 단호하게 음악예술계를 은퇴합니다. 이런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방 되던 해에 왕수복의 나이는 스물아홉, 그녀의 앞길에 다시 새로운 연인이 나타났습니다. 경제학도 김광진(金光鎭). 그러나 그녀의 연인은 사회주의자였고, 두 사람은 함께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 결혼에 골인합니다. 분단 이후 왕수복은 북한음악계에서 중요한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평양음악대학에서 민요의 현대화와 보급에 애쓰던 왕수복이 회갑을 맞이하게 되자 왕수복의 노래를 좋아하던 김일성이 직접 회갑연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칠순이 되었을 때 김정일이 다시 잔치와 특별공연을 열어주었습니다. 팔순 때에도 제자들과 함께 무대와 올라 노래를 불렀다고 북한의 보도는 전하고 있습니다.
 
가요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살리고 전통적 정서를 꽃피우려 애를 썼던 가수 왕수복의 삶은 분단시대 북한에서도 여전히 그 빛이 퇴색하지 아니합니다.
2003년 6월, 왕수복은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가요해설가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시집 <물의 노래> <발견의 기쁨> <묵호> 등 14권 발간.
가요에세이 <번지없는 주막-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 등 각종 저서 50여권 발간.
신동엽창작상,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경북문화상, 금복문화상 등을 받음.
대구MBC 라디오에서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 프로의 MC로 활동.
현재 미국 워싱턴DC 소재 자유아시아방송(RFA) 라디오에서 <남북이 같이 듣는 노래> 프로를 매주 전화녹음으로 방송 중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 전국회장
현재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등록일 : 2014-01-17 14:12   |  수정일 : 2014-01-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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