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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낚는 어부 김상수의 바다방랑

醢船罔 어부들의 짭조름한 새우젓 맛이 그립다2

진달이섬 落月島, 젓중선 어부들의 새우잡이

90년대 초까지 영광군 섬마을 낙월도에서 젓새우를 잡아냈던 이들은 醢船罔(해선망), 일명 젓중선 어부들이었다. 먹고 자는 일 말고는 오로지 젓새우를 잡아내 천일염에 버무려 새우젓을 담그느라 선상에서 먹고자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이들. 스스로 움직일 동력조차 없는 배위에서 맛본 어부들의 새우젓도 달았고, 그해 해선망 새우젓으로 담근 김장김치도 뒷맛이 달았다. 2013년 늦가을 그 맛이 그립다.

글·사진 |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3-11-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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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몰, 상낙월도 당산나무 앞에서 올리는 당산제. 당산나무는 35년만에 마을 어부들의 정성을 받았다.
전남 영광군 상낙월도에 새벽부터 징, 장구와 북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잠귀 밝은 섬 노인들은 ‘웬 뜬금없는 소리’냐며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굿물 소리를 들은 게 기억에도 없을 만큼 오래 전이라 했다.
'큰몰' 당산나무 언저리에 모인 섬사람들은 지난 1987년에 불어 닥쳤던 악몽의 셀마태풍을 떠올리며 소곤거렸다. 규모와 진로선회 등 당시 기상대 예보와는 달리 중심기압 970hPa, 최대풍속 40m/s의 기록적인 위력으로 낙월도와 주변 바다를 쑥밭으로 만든 셀마는 '여섯 척의 해선망 어선 침몰, 스물세 명의 승선어부 수장'이라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섬에 남겨놓았다.
뭍에서 무슨 일을 했던, 다른 어선을 탄 경력이 있든 말든 전직과 상관없이 낙월도를 찾아온 어부들 사이에서 '바다막장'이라 불렸던 무동력선 醢船罔. 탄광 일 만큼이나 위험하고 힘든 뱃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선망에 '뱃동서'로 승선했다가 수중고혼이 된 스물세 명 거개가 외지에서 온 남정네들이라 했다. 셀마태풍 이후 23년만의 씻김굿. 창졸간에 이승을 버리고 뒷날 낙월도 자락에 묻힌 이들의 넋을 달래는 씻김굿을 겸한 당산제 자리다. 당시 선주 등등 속가슴 쓸어내리는 섬사람이 적지 않은 듯 했으니 지난 2010년의 일이다.
“워메! 이제 두 다리 쭉 펴고 잠들게 생겼네. 이제 이승미련 버리고 칠산바다 용왕신이 되어 우리 섬 예전처럼 잘 살게 해주씨요.” 마을 어부의 비손인데, 이 섬에서 이렇게 당산제가 다시 열린 것은 35년만이라 덧붙인다. 사고수습에 차일피일 했고, 뒤이어 조기 등 칠산어장 흉어가 이어지면서 섬 살림이 예전만 못하니 내년 후년 하다가 아예 잊은 듯 살아온 세월이라 했다.
셀마태풍이 지나간 뒤, 낙월도 사람들의 삶은 그 이전과 달라졌다. 열여덟 명 해선망 선주 중 8명 구속, 8명 수배라는 개도이후 유래 없던 검거바람이 불었다. '섬살이 징하다'며 아예 뭍으로 떠나는 이웃은 늘었고, 젓새우며 꽃게 등 바다 소출은 예전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줄었다. 정부의 사후 조치는 1996년 5월로 마감된 ‘해선망 어업구조조정’이었다. 1997년 10월 강화도 선수어장에서의 동창호 새우잡이를 끝으로 현역으로의 해선망 어선은 우리바다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강화역사박물관과 목포소재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각 한 척씩 보존, 전시 중인 해선망 어선이 전부인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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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에 사흘간 승선했던 낙월도 해선망 어선. 젓중선이라 불리기도 했고, 둔탁한 모양새며 스스로 움직일 동력조차 없음에 멍텅구리라 낮춰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섬사람들은 젓새우를 잡아낸 즉시 선상에서 소금을 부어넣어 새우젓을 담는다 하여 '젓배'라거나 '젓중선'이라 불렀으되, 밖에서는 둔중한 모양새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 멍텅구리로도 비하되기도 했었다. 이런 해선망은 기록상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참으로 오랜 동안 낙월도와 임자도 등 서남해안 주변바다에서 조기며 젓새우를 잡아냈다.
낙월도에서 이 배에 승선한 어부들은 주변 바다에서 오로지 젓새우잡이에만 몰두했다. 뭍의 막장이라 불리던 탄광생활에 빗대어 '바다의 막장'이라거나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낙월도 선주들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문이 온 바다에 퍼지면서 숙달된 어부는 고사하고 어수룩한 초짜어부 구하기도 어려웠다. 쥐어주는 선금에 혹해 뱃일을 해보려 갯가를 찾아왔던 이들도 젓중선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내뺄 정도였다던가.
사흘 예정으로 낙월도 해선망에 처음 승선했던 것은 지난 87년 한여름. '발생하는 모든 선상사태에 대해 선주는 일말의 책임이 없으며…' 따위의 내용을 위주로 한 서약서까지 작성해 선주에 건네준 뒤였다. 담가놓은 새우젓 통을 거두러 가는 선주의 운반선에 승선, 상낙월도 포구에서 빤히 건너다보이는 배에 다가선 것은 어부들이 '섬'이라 불리는 정조(停潮) 때. 밀물썰물이 교차하는 물때였음에 수면은 호수인 듯 잔잔했으되, 무더위 속 선상의 어부들은 뜨거운 날숨 훅훅 불어대며 잡은 새우의 세척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웃통을 벗어재낀 채, 말 그대로 꾀죄죄한 삼각팬티만 입은 승선어부들의 모습은 험해보였다. 이들은 외모에 신경 쓸 이유도, 여유도 없다는 것을 승선 첫날 알았다. 먹을 물도 시원치 않은데 배에 씻을 물이 넉넉하겠는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은 까치집 천지였고, 온 여름내 햇볕에 바래 염색한 듯 누런빛 일색. 게다가 덩치가 크건 작건 노출된 근육질 상체는 아프리카인을 방불할 정도로 시커맸었으니 '노예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실제 '노예선' 운운하는 보도가 수차례 나왔었고, 그런 일도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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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위한 양념 중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새우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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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선망 새우젓 맛과 그로 담근 김장김치가 생각나 영광 염산 설도항 주변에서 새우젓을 구입, 올 김장김치를 담갔다. 다 익었을 때의 상큼 시원한 맛을 기대하면서다.
새우잡이 어부들에게 있어 젓새우 외에 그물에 혼획된 물고기는 모두 잡어다. 민어도 잡어고, 꽃게도 잡어여서 '화장(어로작업 외에 취사까지 담당하는 막내 어부)'의 손으로 대충 다듬어져 하루 다섯 끼씩 먹던 식사 때면 어김없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그물 안에 새우만 깔끔하게 든 날은 고춧가루에 버무린 생새우가 반찬이요, 새우젓이 안주가 되기도 했다. 선장이 눈물만큼씩 분배해주는 미지근한 소주의 안주. 막 담근 새우젓은 소금처럼 짰으되, 뒷맛은 달았다. 밥맛 나게 하고, 눈치 보며 소주를 청하게 되는 궁극의 짠맛과 단맛이랄까.
승선취재 사흘 뒤, 뭍으로 나가기 위해 다시 운반선으로 건너가려는데 툭툭 내뱉던 말투로 비위를 건드리곤 했던 화장이 불쑥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해선망 새우젓이 든 묵직한 봉투다. 그해 아내가 잡젓 넣지 않고 해선망 새우젓만으로 담근 김장김치는 특별했다. 시원한 맛이 유별나달 정도로.
해선망 어부들이 만든 새우젓 맛이 그립다. 그 새우젓으로 담근 김장김치도.

섬사람들 스스로 '한 해 젓새우가 잘 되어야, 다음 한 해를 보내는 게 수월하다' 할 만큼 조기의 뒤를 이어 낙월도 어부들의 저금통 노릇을 했던 섬 갯것 새우젓. 일찍이 서울 마포나루 젓시장까지 소문났었다던 젓새우를 잡는 어선은 이제 낙월도에 몇 척 남지 않았다. 진달이섬 낙월도에 지는 달처럼 '낙월도새우젓'이 옛말인 듯 되어가는 오늘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가

어촌과 어부들을 주제로 하는 해양수산 전문월간지에서 기자로 출발해 편집장까지 지내며 30여 년간 바다를 다녔다. 사진 낚는 어부라는 닉네임은 월간GEO에 해양다큐멘터리를 연재할 무렵 송수정 편집장이 붙여줬다. 아시아 어부들의 바닷살이와 특유의 민속을 지속적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등록일 : 2013-11-14 20:13   |  수정일 : 2013-11-1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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