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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낚는 어부 김상수의 바다방랑

하늘로 올리는 꽃, 지화(紙花)

화려한 색을 잃고 재가 될지언정 '하늘로 오르는 것이니...'

이 땅에 생화를 낸 하늘의 신비에 견줄 수야 있을까만, 굿당 한 귀퉁이 혹은 마을회관에서 지화를 피워내는 화랭이며 만신들의 손끝 정성은 동해안 풍어굿판을 화려하게 치장하기에도, 망자의 넋을 달래주기에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글·사진 |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3-10-1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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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별신굿 보유자 김장길 양중과 송명희 만신의 지화모음. 두 지화장인의 손끝에서 피워오른 이 열세송이의 지화는 대구 소재 김태연 궁중상화연구소장이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무속에서는 굿당 안팎을 지화와 지등으로 꾸미고, 이를 주인공으로 한 굿거리며 무가와 사설까지 남아있다. 물론, 지역과 굿판에 따라 사정은 다르다.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규격화된 지화에 이어 중국산 '비닐 꽃'까지 등장한 오늘이다. 이를 만물상에서 구입해 굿당 치장에 쓰는 무당들도 많다지만, 동해안 지역에서 별신굿을 이끌어 오는 '화랭이(양중, 악사)'며 만신들은 지금도 여전히 공들여 지화를 피워낸다. 굿날이 잡히면 지화와 지등부터 만들면서 굿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동남해안 어부들의 제의이자 축제이기도 한 별신굿 굿당이나, 뜻하지 않게 바다에서 넋을 잃은 수중고혼(水中孤魂)을 달래주는 오구굿판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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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 영산대재의 지화장엄
 
꽃 싫어라 하는 민족은 없을 터. 한민족 역시 꽃을 곁에 두고 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다. 종이로 만든 꽃 지화(紙花)도 포함해서인데, 이승의 마지막 호사라는 '꽃상여'를 뒤덮듯 장식하는 꽃 역시 대부분 지화다.
 
지화를 만들어내는 장인이 손에 꼽을 정도인 요즘, 불가에서는 생화를 많이 올린다지만, 본래 수륙재․영산재 같은 불교의식을 치를 때는 물론이려니와 평상시 불단을 장식하는 꽃은 장엄물 지화였다. 며칠 가지 않아 제 모양을 잃는 생화와는 달리 오랜 기간 장식을 할 수 있는데다가 만드는 과정부터 정성이 가득 담겨 있으니 의미가 있는 까닭이었을 게고, 불가에서 '삼천년 세월이 지나야 한 번 피어난다는 상상의 꽃 우담바라도 사철 장식할 수 있어서겠다. 불가에서 전해오는 지화장엄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 태고종 총본산 봉원사에서 열리는 영산대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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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를 배경으로 무무를 추는 동해안 별신풍어굿판의 이혜숙 무녀. 지화로 하여 춤사위가 더욱 화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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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별신풍어굿 굿당 정면에 배열된 지화와 지등
 
이 땅에 생화를 낸 하늘의 신비에 견줄 수야 있을까만, 굿당 한 귀퉁이 혹은 마을회관에서 지화를 피워내는 화랭이며 만신들의 손끝 정성은 굿판을 화려하게 치장하기에도, 망자의 넋을 달래주기에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동해안굿판에는 "...천년만년 인연 맺어 행복 사랑 덤불국화 / 청룡 황룡 구불쳐도 원한원에 고동출하 / 효자충성 절개성자 귀불귀법 귀승하니 불문에 생연화… " 하는 헌화무가도 있다. 망자의 넋이 극락으로 들어감을 축하하는 노래라는데 굿판을 치장한 지화의 뜻풀이도 된다. 별신굿이나 오구굿 끝 무렵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꽃노래굿'도 같은 의미일 터다.
 
영혼을 태우고, 극락까지 가는 길에 쓸 노자 등을 함께 실어 하늘로 보낸다는 용선(龍船),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탑등이며, 하늘의 허락을 얻어 넋을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낸다는 의미를 지녔다는 허계등(許界燈)도 넓게 보면 지화에 든다. 무속인에 따라 허개등 혹은 흑애등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지만 의미는 다를 바 없으니 일단 넋을 싣고 가서 무지개 위에 올리면 역할이 끝나는 것이다. 하늘까지는 넋을 태운 무지개가 도맡아 올려 보내기 때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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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를 피워내는 송명희 김장길 보유자 내외. 영해별신굿 보유자 송명희 만신은 이 아까운 솜씨를 이승에 두고 올 초에 타계했다(사진왼쪽 위). 심청굿에 쓸 지화를 갈무리하는 동해안별신굿 김동언 무녀(오른쪽).
 
강원도 고성군에서 부산에 이르는 동남해안의 굿을 도맡는 이들은 알려져 있듯 거개가 세습무(世襲巫) 곧 대(代)를 이어 하는 양중과 무녀들이다. 신병을 앓고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내다가 헐수할수없음에 결국 신내림을 받고 무업에 나서는 강신무(降神巫)들과는 다르다.
 
세습무들이 대를 잇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싫던 좋던 어릴 때부터 무가며 사설에 장단, 춤사위를 자연스럽게 익혀가던 여자들이 굿일에 나설 나이가 차면 본격적인 강습으로 이어진다. 그런 중에 무계어른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으면, 이윽고 한 사람의 무당으로 굿판에 나서 갈고닦은 기량을 축원굿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남자들은 다르다. 지화를 익히는 게 필수기 때문이다. '초일'이라 하여 지화재료가 되는 한지며 습자지 등 종이를 재고 자르고 접는 일부터 배워야 한다. 예전에는 어깨너머로 배웠다던가. 여전히 도제식이기는 하되, 요즘에는 때만 맞으면 배울 수 있단다. 다양한 종이를 염색하고 재고 자르고 접는 일은 굿 없는 평소에 미리 해놓기에 그렇다. 영해별신굿 보유자 김장길 양중과 동해안별신굿의 김용택, 김동열 양중의 손끝이 여물고 날래기로 나라 안에 유명한데, 이들이 초일과 뼈일할 때를 맞춰 젊은 양중들이 찾아가면 풀질과 뼈에 종이 붙이는 일부터 보조하며 배울 수 있다는 얘기니 함께 사는 식구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우린 툭하면 잘라낸 대나무 밑둥치나 징채로 맞아가며 배웠어. 꽃일이나 굿 장단이나… 요즘? 배워보겠다고 옆에 달라붙어 앉는 것만 해도 고맙지 뭐." 김장길 양중의 말인데, 물론 눈치도 봐야할 터이고, 풀 바르는 손이 더디거나 무디면 싫은 말도 들어야 할 터다. 부인인 무녀도 당연히 지화를 피워낼 줄 알아야 한다. 제자무녀들도 풀질 등 초일 정도는 배워야 하고, 굿당에서 꽃을 피워 올리는 일에도 참여해야 한다.
 
한편, 산에서 대나무를 골라 베어오고 쓸모에 맞게 잘라낸 뒤 꺾거나 연결하는 게 이들 말로 뼈일. 대나무를 뼈에 견준 것이라는데, 뼈일을 능숙하게 해야 염색학습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던가. 한지 등 종이 묶음 전체를 담가 염색을 하는가 하면, 끄트머리만 살짝 담갔다가 재빨리 빼내야 한 송이 지화로 피워낼 재료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공장염색의 질이 좋아진 요즘에는 기성품을 구입해 쓰는 경우도 많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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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별신굿 보유자 김석출 양중의 오구굿에 쓸 살잽이꽃을 갈무리하는 영해별신굿 보유자 송동숙 양중의 야무진 손길(위 흑백사진들). 세 송이의 살잽이꽃중 가운데가 송동숙 양중의 솜씨다(아래사진). 살잽이 꽃은 요즘 오구굿판에서는 보기 힘들다.
 
어찌하였든 이런 저런 재료가 완성되고, 굿날이 잡히면 본격적인 지화작업이 시작된다. 대부분 굿을 맡은 '금줄(당주무당)'이 지화와 지등 전체를 도맡아 해야 하는데, 지화 중에는 자연에는 없는 꽃도 많다. 국화도 그냥 국화가 아니라 덤불국화가 있는가 하면 가시개국화가 있다. 칼 대신 가위로만 오려냈으니 가위의 사투리 '가시개'가 붙는다는 설명이다. 상상 속의 꽃 다리화나 출하고동이며 살잽이꽃도 있다.
 
다부살이로도 불리는 살잽이꽃은 무가(巫家)의 웃어른이 별세했을 때 피워 올리는 지화. 꽃 부분마다 제각각 뼈와 힘줄, 살 등을 의미하며 이로써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생명의 꽃이라 여겨지고 있다. 만들고 피워내기가 워낙 까다로워 어부들의 오구굿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데, 필자의 경우 지난 2005년 10월에 있었던 망인 김석출의 오구굿에서 볼 수 있었다. 당시 영해별신굿 보유자였던 망인 송동숙이 피워낸 살잽이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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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고혼이 된 동해안 어부의 넋을 달래주는 오구굿에서 신태집을 들고 춤사위를 펼치는 김영숙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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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노래굿에서 굿당을 치장했던 탑등을 어부에게 씌워 무사와 풍어를 기원해주는 박금천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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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노래굿에서 양손에 지화를 든 무녀들의 화려한 춤사위.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굿당을 치장했던 지화와 지등은 제 모양을 잃는다.
 
짧게는 일박이일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굿당을 치장하고 있던 지화와 지등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색이 바래고 습기를 먹기 마련. 무녀들은 꽃노래굿의 화려하면서도 격렬한 춤사위로 지화를 하늘로 올릴 채비를 한다. 참여 무녀 모두가 굿당 앞에 선 채, 무가에 맞춰 제각기 양손에 지화를 위 아래로 흔들며 오른쪽으로 시작해 왼쪽방향으로 잇달아 돌아가며 추워대는 하려한 회무(回舞)다. 굿당 좌우에 달려있던 탑등과 용선도 마찬가지.
 
등노래를 주무하는 무녀의 춤사위가 화려해질수록 더 많은 꽃술과 치마(탑등 아래를 치장했던 종이)가 떨어져나간다. 이윽고 책임자며 마을원로 등의 머리에 덮어씌우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과정에 이르면 '뼈'까지 망가지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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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과 탑등은 뼈일과 초일이 완벽한 양중에 의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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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당 밖에서 밤낮으로 펄럭이는 허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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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어굿 혹은 오구굿이 끝나면 굿당을 치장했던 지화와 지등은 불에 태워 하늘로 올린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막바지 여러 굿거리를 거치면서 제 색과 모양을 잃은 지화, 지등은 굿이 끝남과 동시에 화산이라 하여 한데 모아 불을 사른다. 마을에 따라 지화 중 몇 개의 화분 혹은 두 개의 연봉은 골맥이당에 안치되기도 한다. 대신 前 풍어제 이후 몇 년씩 안치해 두었던 묵은 지화가 화산대상이 되는 것이다.
 
화려한 색을 잃고 재가 될지언정 '하늘로 오르는 것이니 애달파 할 것도 없다'던가. 지난 10월 13일 포항 이가리에서 만났던 老어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가

어촌과 어부들을 주제로 하는 해양수산 전문월간지에서 기자로 출발해 편집장까지 지내며 30여 년간 바다를 다녔다. 사진 낚는 어부라는 닉네임은 월간GEO에 해양다큐멘터리를 연재할 무렵 송수정 편집장이 붙여줬다. 아시아 어부들의 바닷살이와 특유의 민속을 지속적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등록일 : 2013-10-19 17:34   |  수정일 : 2013-10-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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