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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노곡리 ‘아홉 칸 집’의 비밀

글 | 황은순 주간조선 기자 2019-07-23 09:48

▲ 경기도 광주시 노곡리에 있는 ‘아홉 칸 집’. 외부와 내부 모두 노출 콘크리트로 이뤄진 정사각형 집은 똑같은 크기의 아홉 칸으로 이뤄졌다. 최소의 건축으로 만든 여백의 공간을 풍요로운 삶으로 채우고 있는 ‘아홉 칸 집’은 우리에게 집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photo 노경 사진작가
 
집을 짓고 나면 건축가와 건축주가 웃고 헤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심한 경우는 원수가 된다. 건축가들에게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갑질 건축주”들이 대부분이고 건축주에게는 “이런저런 핑계만 대는 못 믿을 건축가”가 대부분이다. 경기도 광주시 노곡리의 산속에 위치한 ‘아홉 칸 집’은 정반대의 경우이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집을 지은 이야기를 함께 책으로 펴내고, 전시까지 열었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 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홉 개의 방, 미완의 집’이라는 전시이다. 전시는 건축적 개념, 화가인 건축주의 그림, 사진작가의 작품, 세 갈래를 통해 아홉 칸 집을 보여준다.
   
노곡리 ‘아홉 칸 집’은 기묘하고 낯설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집의 상식을 완전히 깨부순다. 나지막한 산기슭에 들어앉은 주택은 전시 제목 그대로 짓다 만 것 같다. 대지는 664㎡(약 201평), 연면적은 136.57㎡(약 41평).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단층 건물은 반듯한 정사각형 형태이다.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 벽, 바닥 모두 마감도 되지 않은 거친 콘크리트 그대로이다. 내부 구조는 가로·세로를 3×3, 아홉 칸으로 똑같이 쪼갰다. 일반적으로 큰 거실을 중심으로 작고 큰 방이 배치되는 것과는 달리 이 집은 아홉 칸이 3.6×3.6m 크기로 똑같다.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최소의 공간이다. 한쪽 면에 나란히 위치한 아이 방, 두 개의 변기와 욕조가 있는 화장실, 부부 방에만 나무문을 달고 나머지 6칸은 방문도 없고 용도도 정해놓지 않았다. 각 방의 창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어 어디서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독특하긴 한데 과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삶을 고려하지 않은 건축가의 욕심은 아닐까?” 마치 콘크리트 폐허처럼 보이는 집을 보면 이런 의문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완의 아홉 칸 집’이 품은 이야기는 아파트로 대변되는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콘센트가 있는 곳에 TV를 놓고 반대편 소파에 앉아 오직 한 방향만 바라보는 획일적인 거실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집을 만드는 데 진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최소의 건축’에 담은 가치
   
‘아홉 칸 집’의 이야기는 건축주가 처음 건축가를 찾아왔던 2016년 6월에 시작됐다. 건축가는 나은중·유소래 네임리스건축 공동대표이다. 미국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 보스턴건축가협회상,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수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부부 건축가이다. 건축주는 ‘에이리(Aele) 가족’이다. 반도체 연구원인 이상욱, 화가인 고경애 부부와 일곱 살 준성이, 다섯 살 은솔이, 반려견이 이들 가족이다. ‘에이리’는 부부의 이름 한 자씩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고경애씨는 일본 센다이 총영사관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현장에서 생과 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자원봉사자로 온 남편을 만나고 10년 만에 두 아이와 함께 한국에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호시탐탐 자연 속 삶을 꿈꿨다. 부부는 이천 도자기 축제에 다녀오던 길, 숲을 품은 노곡리를 지나다 “바로 이곳이다” 싶었다. 구글 지도로 채소밭이었던 현재의 땅을 보고 대책 없이 부동산을 찾아가 땅을 구입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꿈꾸는 집을 이해해줄 건축가를 수소문한 끝에 찾은 곳이 네임리스건축이었다.
   
‘아홉 칸 집’은 이들 부부의 첫 단독주택이기도 하지만, 네임리스건축도 주택은 처음이었다. 전시(7월 26일까지)에 맞춰 출간한 책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에는 집을 짓고 책을 내기까지 3년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대화하듯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 이어쓰기를 하면서 집과 삶, 건축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거기에 노경 사진작가가 가족의 일상과 주변의 풍경을 기록해 힘을 보탰다. 책 제목의 ‘코르뷔지에’는 반려견의 이름이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붙일 만큼 부부는 건축을 사랑한다.
   
   
▲ 아홉 칸 중 한가운데 방에 둥근 유리천창이 있다. 천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벽에 시시각각 다른 그림을 그린다. photo 노경 사진작가

‘불편함’ 대가로 풍요로움을 얻다
   
‘아홉 칸 집’은 아파트와 비교하면 아주 불편하다. 교통도 불편하고 편의시설도 없다. 학원도 없다. 학군을 좇아 도시로 달려가는 사람들과는 거꾸로 한창 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찾아들기는 쉽지 않다. 노곡리 부동산 사장도 “젊은 부부가 집을 짓겠다고 찾아온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고 말했다. 에이리 가족은 왜 불편함을 무릅쓰고 노곡리 숲에 찾아들었을까. 네임리스건축은 무슨 생각으로 만들다 만 듯한 아홉 칸 집을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책에 담긴 그들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시골에 땅을 샀냐고 묻는다. 나는 당당히 숲을 산 것이라고 대답한다. 집은 효율적인 삶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곳,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에이리 가족)
   
“집은 물리적 실체인 동시에 물질화될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을 지닌다. 아홉 칸 집은 이러한 집의 근본을 바라보고자 한다.”(네임리스건축)
   
“시골 노곡리로 거처를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우리의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 여러 가지 불편함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비교하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에이리 가족)
   
“완벽한 집보다 덜 만들어진 집을 선호한다. 덩그러니 내던져진 아홉 개의 칸은 마감도 되지 않고 방의 목적도 정해진 바 없는 그저 비워진 구조물이다. 살아갈 사람은 방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가구를 들여 생활의 흔적으로 삶을 채워나간다. 여백은 텅 비워져 있기에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네임리스건축)
   
에이리 가족은 건축가의 뜻대로 여백의 공간을 풍요로운 삶으로 채우고 있다. 가족의 기념일마다 디자이너 의자를 하나씩 사들일 만큼 가구를 좋아하는 부부는 시시때때로 가구를 옮겨가며 방의 용도를 달리한다. 어느 날 화가인 엄마의 아틀리에는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됐다가 또 식당이 되기도 한다. 아홉 칸 중 한가운데 있는 방에는 둥근 유리천창이 있다. 집 안에 누워 하늘, 바람,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다. 한겨울 결로 때문에 천창에서 물방울이 떨어질 때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우산을 쓰고 논다. 장마철 천창을 두드리는 세찬 빗방울 소리는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만큼 황홀하다. 네 면의 지붕 처마가 적당히 걸러낸 햇살은 시시각각 새로운 그림을 그리며 공간을 채워준다. 움직이는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은 부부의 달밤 데이트 장소이다. 집의 네 방향을 따라 만들어진 네 개의 작은 마당은 수시로 가족을 불러낸다. 어느 날은 청솔모가, 어느 날은 꿩이, 하루는 단풍나무가, 하루는 우물을 덮어 만든 식탁이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 특별한 마당이 있다. 집과 주변을 감싸고 있는 뒷산이다.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을 선물하는 숲은 온 가족의 산책로이자 놀이터이다. 넓은 숲을 정원으로 삼기 위해 이들이 들인 비용은 서울 강남구의 전용면적 59㎡(20평대) 평균 아파트값의 절반도 안 된다. 르 코르뷔지에가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지은 ‘작은집’ 같은 집을 꿈꾸었던 이들은 이곳에서 그 꿈을 이뤘다.
등록일 : 2019-07-23 09:48   |  수정일 : 2019-07-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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