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뉴욕 사람들이 요즘 읽는 책의 공통점은?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2019-07-12 22:35

▲ 아마존닷컴 논픽션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두 권의 책을 올린 레이첼 홀리스의 저서 ‘소녀여, 얼굴을 닦아라(Girl, wash your face)’. 이 책은 지난 6월 23일 기준 65주째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30일 일요일, 뉴욕 맨해튼에 나갔다가 혼쭐이 났다. 중심가 도로 대부분이 아예 주차장이다. 인터넷으로 살펴보니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 2019’가 주범이다. 매년 한여름에 들어서기 직전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성소수자(Sexual Minority) 축제다. 관련 기사를 검색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단어 하나가 눈에 띈다. ‘LGBTQ’라는 약어다. 기존의 LGBT를 대신해 LGBTQ라는 단어가 퍼레이드의 주인공이다. LGBT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를 의미한다. Q는 뭘까? ‘Queer’ 또는 ‘Questioning’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이상한, 기묘한, 의문시되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LGBT를 넘어서 여성, 남성, 중성, 성전환자를 초월한 제4, 제5의 성을 지칭한다고나 할까? 본인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성소수자가 ‘Q’의 정체다. LGBTQ란 말이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2015년이라고 한다. 무려 4년 동안 모르고 지낸 셈이다.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려 노력하지만 용량이 한계에 달한 듯하다.
   
   교통지옥을 피해 차를 돌리려는데 책방이 눈에 띄었다. 어떤 책들이 팔리는지 살펴볼 겸 들렀다. 언제부턴가 미국 서점의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커피와 화장실이다. 커피 한잔 마시고, 화장실도 이용할 겸 서점에 들르는 것이 보통 미국인들이다. 공짜로 볼 수 있는 잡지들을 포획해 서점 내 커피 판매소로 향한다. 미국에서 실제 책을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미국이란 나라는 자칫하면 ‘코끼리 다리 더듬기식’으로 가기 십상이다. 땅도 넓지만 인종·이민·성별·세대·출신지에 따라 전부 백인백색이다. “미국인은 말이야…”라는 식의 얘기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각자의 판단, 주변환경에 따라 미국의 모습과 색깔이 전부 다르다.
   
   그러나 비교적 일반적 차원에서 미국이란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서점은 그중 하나다. 팔리는 책을 보면 미국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낼 수 있다. ‘베스트셀러를 통한 세상 읽기’라고나 할까? 당연하지만 책 순위가 결코 세상사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거울은 될 수 있다. 베스트셀러 논픽션 코너는 ‘지금 당장 미국’을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 공간이다. 적어도 ‘코끼리 다리’ 이상의 판단력을 연마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10위권 중 4권의 주제가 ‘여성’
   
   평소 접하는 신문의 북 리뷰 때문이겠지만 베스트셀러 대부분은 눈에 익은 책들이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 전체를 훑는 과정에서 큰 흐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키워드로 하나 뽑아 말하자면 ‘여성’이다. 여성의 삶,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품과 격에 관한 얘기가 수위에 올라서 있다. 공통분모가 여성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서점 바깥에서 벌어지는 뉴욕 LGBTQ 퍼레이드다. 제3의 성, 제4의 성의 목소리가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동안, 서점 안의 키워드는 여성이다. 남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토론이 날마다 벌어지는 곳이 미국이지만 서점에서는 정작 여성 단 하나의 성에 주목하고 있다. 언젠가 LGBTQ가 서점의 주역이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은 여성이 텍스트 출판업계의 중심테마다.
   
   둘째는 트럼프다. 1년 전만 해도 반(反)트럼프 책으로 서점이 넘쳐났지만 베스트셀러 코너를 보면 거의 멸종단계다. 적어도 서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더 이상 이단이 아니다. 아니 거꾸로 미국의 대세로 변한 지 오래다. 결론적으로 2019년 초여름 미국 서점의 키워드는 LGBTQ도 트럼프가 아닌 여성이다.
   
   여성을 키워드로 뽑은 근거는 10위권 안에 든 책 가운데 무려 4권이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글’이기 때문이다. 아마존닷컴 논픽션 분야 판매량 기준 순위로(6월 23일 기준), 1위 ‘에듀케이티드(Educated)’, 2위 ‘비커밍(Becoming)’, 9위 ‘소녀여 사과를 중단하라(Girl Stop Apologizing)’, 10위 ‘소녀여 얼굴을 닦아라(Girl Wash Your Face)’ 등이 모두 여성에 방점을 둔 책들이다. 10위 ‘소녀여 얼굴을 닦아라’는 이미 65주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는 책이다. 최근 출간된 9위 ‘소녀여 사과를 중단하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정상권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사한 책 제목에서 보듯 9위와 10위 책은 저자가 동일하다. 4명의 자식을 둔 레이첼 홀리스(Rachel Hollis)가 저자로, 현재 미국 매체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유명 작가다. 고정독자 10만여명을 가진 유명 블로거이기도 하다. 전국을 돌며 강연도 벌이고 있다. 제목만 본다면 페미니즘 열혈투사의 선언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내용은 정반대다. 남성 대 여성, 혹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등의 구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여성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자기개발 얘기가 주된 내용이다. 성경도 인용하면서 인생의 성공 여부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변화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여성 스스로 마음자세를 가다듬을 경우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의 책이다.
   
   
▲ 보수적인 몰몬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의 힘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개척한 타라 웨스트오버(사진)와 그의 자서전 ‘에듀케이티드’. 60주 이상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photo 뉴시스

   평범한 미국 여성의 인생개발서
   
   캘리포니아 출신인 홀리스는 한때 영화배우를 지망했던 외모가 특출한 편도 아닌 평범한 미국 여성이다. 그녀는 목표를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갖가지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스스로를 강하게 달구면서 자기만의 행복을 하나씩 쟁취해나간다. 대부분 스스로의 경험에 기초한 자서전적 책인 셈이다. 할리우드에서 만난 남성과의 연애 실패기와 뒤이은 극복과정이 특히 인상적이다. 주된 독자는 남부 기독교 벨트의 백인 여성들로, 특히 10대에게 인기가 높다. 당연하지만 남성을 상대로 한 투쟁, 페미니즘에 익숙한 리버럴 여성들에게는 ‘적(敵)’으로 취급될 법하다. 사회적·국가적 나아가 글로벌 차원의 이념과는 무관하게 작고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여성 개발에 주목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미국 교육현장에는 한국식 도덕이나 윤리 과목이 따로 없다. 교회나 부모의 가르침이 전부다. 홀리스의 두 책은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는 스토이시즘(stoicism)에 기초한 인생개발서다. 쉬운 언어와 체험에 기초한 내용이란 점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인텔리 여성이 아니라 도시 밖 평범한 여성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2위에 오른 ‘비커밍(Becoming)’은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적 글이다. 흑인, 시카고, 부모, 하버드, 오바마, 결혼, 법률가, 자식, 퍼스트레이디에 관한 기억들이 총망라돼 있다. 미셸을 통해 흑인 역사와 20세기 미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로, 흑인과 리버럴 민주당 지지 여성들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물론 미셸처럼 사회적 차원의 성공이나 성취를 원하는 여성들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여성인 미셸의 인생사이지만, 굳이 여성에게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남성 독자들의 관심도 끈다. 그렇지만 주로 인텔리 여성들이 호응하는 책으로, 홀리스 책의 독자층과는 서로 상극관계에 있다. 출간 이후 줄곧 40주 정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열기가 점차 떨어질 전망이다. 사회 소수자들에 주목하는 정치성이 강한 데다가 하버드대학 출신에 퍼스트레이디라는 ‘약점’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인물에 관한 ‘특별한’ 스토리라는 점에서 보통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책이다. 유명인에 관한 책이 그러하듯, 구매자는 많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역설적이지만 홀리스처럼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여성의 글이 한층 더 오래간다. 그러나 야심이나 능력이 있는 여성이라면, 흑인 퍼스트레이디의 어제를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듯하다.
   
   
   미국 여성들의 필독서 ‘에듀케이티드’
   
   ‘에듀케이티드(Educated)’는 지난해 초 이래 지금까지 무려 60주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는 미국 여성의 필독서다. 미셸과 홀리스의 책처럼 회고기다. 여성이란 키워드를 공유한 베스트셀러 4권 모두가 회고기인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물론 미국 내 모든 매체들이 쌍수를 들어 절찬한 책이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여러 외국어로도 번역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보수적인 몰몬교도 집안의 딸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가 겪은 ‘흔치 않은 인생’에 대한 자서전이다. 아이다호주 시골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는 기독교 원리주의 가정의 딸이 보여준 분투기 또는 성공기라 보면 된다.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아가는 부모는 자식들의 교육에 무심하다. 허브를 이용한 민간 치료법에 빠진 어머니를 돕는 일이 웨스트오버의 주업이다. 그러나 17살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마침내 케임브리지대학 박사로 성장한다. 이후 하버드와 케임브리지를 오가며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적 기준으로 본다면, 케임브리지와 하버드가 책의 중심에 들어서 있을 듯하다. 전혀 다르다. ‘학벌’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종교라는 창살 속에서의 인간 승리가 주 내용이다.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결국 이겨냈다는 것이 중심 테마다. 꽉 막힌 광신적 부모와의 투쟁이 삶의 대부분이었다고 보면 된다. 케임브리지와 하버드는 종교 제일주의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한 해결책이었을 뿐이다. 미국 정부 자체를 불신하고, 병원치료도 거부하면서 살아가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갈등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극히 일부만 알려진 몰몬교 내부에 관한 얘기들도 흥미롭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교육을 통한 여성 개발이다. 신의 이름을 빙자한 무지가 아니라, 밝은 세상을 상대로 한 교육의 중요성을 ‘체험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 역시 여성이 키워드지만 미셸과 홀리스에 비해 광범위한 독자층을 갖고 있다. 여성만이 아닌 남성도 읽을 수 있고, 연령·인종·국적·정치이념을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여성을 억누르는 유형무형의 차별에 대한 ‘이념적·공격적 주장’도 없다. 크고 넓은 사회적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종교를 매개로 한 가족과 나의 회고기다. 교육은 그같은 갈등 뒤에 얻은 결과이자 보상이다. 책 속에서 웨스트오버는 자신의 부모를 종교적 차원의 보수꼴통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식 가치로 본다면 아무리 그래도 부모를 비난하는 회고기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나라라는 점에서 부모가 아닌 신이라도 부정하고 비난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인 듯하다.
   
   
▲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도 장기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레이첼 홀리스의 신작 베스트셀러 ‘소녀여 사과를 중단하라(Girl stop apologizing)’. photo 유민호

   일본에선 ‘82년생 김지영’ 돌풍
   
   여성에 주목한 베스트셀러를 보면, 현재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또 하나의 여성 관련 책이 떠오른다. ‘페미니즘의 바람’이란 제목으로 6월 21일자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서평이 실린,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한국 서적이다. 6월 중순 기준 출간 후 무려 9판을 인쇄했고 13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한국에 이어 일본까지 ‘82년생’ 열풍이 밀어닥친 것이다. 한국어 번역본 가운데 단기간에 10만부를 넘긴 유일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아마존재팬에 들어가보면 무려 110건의 리뷰와 함께 5점 만점에 4.5점 만족도를 나타낸 화제작이다. 열기를 보면 당분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여성들도 공감하는 책이다. 남성 주도하의 닫힌 사회에서 겪는 구조적 차원의 차별과 불평등 고발이 ‘82년생 김지영’의 핵심 내용이다. 이미 고전적 용어로 변해가고 있지만 투쟁적·이념적 차원의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 미국 내 여성 관련 베스트셀러들과 크게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과 다른 미국 여성 작가들은 나이가 엇비슷하다. 홀리스는 1983년생, 웨스트오버는 1986년생이다. ‘82년생 김지영’과 이들의 책이 여성을 어떻게 다르게 보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위인전 성격의 미셸 저서는 물론, 홀리스와 웨스트오버의 책들은 페미니즘 영역에 포함시키기가 어렵다. 흑인차별, 자기개발, 가족과의 갈등, 종교로부터의 자유가 주된 테마이기 때문이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평등을 통한 사회개조에 관한 얘기가 거의 없다. 깃발을 들고 모두 함께 투쟁하자는 것이 아니라 혼자 조용히 방 안에서 공부하면서 자신을 다지자는 식이다. 남성과 사회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여성을 바라보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개발과 성숙이 관건이라는 논조다. 홀리스의 말처럼 ‘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올여름 출판계의 키워드는 여성이다.
등록일 : 2019-07-12 22:35   |  수정일 : 2019-07-12 22:35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