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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토론사회 영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글 |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2019-07-04 11:03

▲ 지난 5월 29일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에서 메이 총리(왼쪽 서 있는 사람)가 야당 지도부와 토론을 벌이고 있다. / photo by 뉴시스
영국에서 오래 살면서 관찰한 바로는 영국인은 정말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고 조리 있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말한다. 영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소란을 피우는 일(Make a scene)’이다. 영국인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냥 웃고 넘어가는 식으로 아무 장소에서나 소란을 피우거나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말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누구에게라도 당당히 말을 잘한다. 상대가 부모든 선생님이든, 아님 굉장히 높은 사장이든 총리든 하원의원이든 간에 일단 결심이 서면 졸거나 눈치를 보지 않고 발언을 망설이지 않는다. 또 말을 시작하면 주저하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적당한 길이로 말할 줄 안다. 영국인의 이런 태도는 상하 위계질서가 분명한 사회에서 살아온 필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고 문화충격이었다. 얼핏 봤을 땐 버릇없고 당돌한 태도 같기도 했지만 정말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 훈련
   
영국인이 상대가 누구이건 ‘졸지 않고 당당하게’, 동시에 ‘분명하고 조리 있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영국인이 ‘분명하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이유. 영국인의 유전자 속에만 특별하게 언어에 대한 재능이 있지 않다면 결국 이건 영국 사회구조와 교육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듯하다. 
   
우선 교육. 영국인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는다. 글쓰기는 자신의 정확한 논리를 우선 세우고 그 논리를 기승전결의 원칙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영국 학생들은 그런 훈련을 초등학교 때 막 글을 배우면서부터 받기 시작한다. 교사는 저학년 학생들이 써 온 글을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보고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일일이 빨간 펜으로 지적한다. 물론 문법적인 오류뿐만 아니라 소문자, 대문자, 쉼표, 마침표 같은 부호까지 고쳐준다. 최종적으로 글의 논리가 왜 잘못되었는지까지 대화를 통해 논의해가면서 고쳐준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손을 잡고 끝까지 가르쳐준다. 이렇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훈련을 받고 나면 고학년쯤 영국 학생의 작문 실력은 나무랄 데 없는 수준에 달하게 된다.
   
거기다가 기본적인 독서 훈련 역시 쓰기 못지않게 강조된다. 어느 학교 교실이나 기본적인 책이 갖추어져 있어 학생들은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책을 집에 가지고 가서 읽는다. 뿐만 아니라 학교 군데군데에 개가식 간이도서대가 있어 더 많은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글 쓸 때뿐만 아니라 책을 오래 읽다 보면 사고 속에 자신도 모르게 논리정연한 글 체계가 자리 잡기 마련이다. 말을 하려고 할 때 중구난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영국인이 교육을 받는 한 계속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책읽기와 글쓰기 훈련을 기본적으로 받고 공부가 끝나는 날까지 이것이 이어지면 모든 사고가 작문하듯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영국인은 어느 장소에서나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건 이런 교육이 몸에 배어 있어 반듯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의사를 조리 있게 망신 당하지 않고 제대로 밝힐 자신이 있으면 자신의 발언이 필요할 때는 주저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말을 잘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망신 당하지 않고 조리 있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일반적으로 영국인은 별로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오랜 기간 책읽기와 글쓰기 훈련을 잘 받은 덕분에 말을 조리 있게 할 자신이 있어서다.
   
   
토론시합도 벌이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영국인은 토론 교육까지 부단히 받는다. 이런 토론 교육도 저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일정 주제에 관한 의견을 물으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가 지명하기 전에 자진해서 자기 나름의 의견을 서슴없이 말한다. 학생들은 친구의 말을 반박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교사가 말문만 트이게 만들면 아주 열띤 대화가 이어진다. 전체 반이 한꺼번에 하기 힘들면 둘러앉은 그룹 내에서라도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런 토론수업에서는 저학년 학생들이라도 토론의 규칙을 반드시 지킨다. 급우가 말을 시작하면 반드시 끝까지 들은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1순위 규칙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훈련과 함께 남의 말을 듣는 훈련도 같이 한다는 뜻이다.
   
좀 더 학년이 올라가면 토론시합(debate competition)을 가진다. 학교 마다 형식이 다르긴 해도 거의 대부분의 영국 중·고등학교에서 행해진다. 일단 학기 초 학급마다 다른 논제가 주어진다. 학기 동안 학급 학생들이 반반씩 나뉘어 찬반 토론을 이어간다. 토론 시합에서는 반드시 종반에 가서 반전이 있다. 지금까지 진행한 토론의 찬반 그룹을 바꿔버리는 식이다. 즉 주어진 주제에 찬성하던 그룹이 반대를 하게 하고 반대를 하던 그룹이 찬성을 하게 만든다. 이때 상대방이 사용했던 이론을 그대로 쓴다거나 차용하면 안 된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머리를 짜내고 책을 뒤져서라도 새로운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토론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제 행하는지를 많이 배우게 된다.
   
이런 토론시합에서는 상대방을 자극해 화를 내게 만들면 가장 쉽게 이길 수 있다. 화를 내거나 인신공격을 하면 바로 감점이 들어가서 결국 지게 된다. 이때 심판은 대개 상급생이 본다. 토론을 가장 잘하는 학생들을 대표로 뽑아 인근 학교와 토론시합에 내보내기도 한다. 전국적인 학생 토론시합도 있다. 심지어는 사설 토론훈련센터까지 있다. 특히 대학 진학 준비를 시키는 학원에서는 단기간 토론 훈련 코스까지 있다.
   
   
▲ 영국 한 초등학교의 수업 장면. photo 뉴시스

토론 규칙 1순위
   
이런 훈련을 거치면서 영국인은 평생 살아가면서 해야 할 각종 토론에 익숙해진다. 어찌 보면 인생은 끝없는 토론의 연속이다. 비즈니스 상담도 사실은 광의의 협상 토론 아닌가. 회사든 단체든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끝없이 토론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규칙, 즉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이론을 정립해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꼼짝 못하게 해야 하는 규칙이 일상생활에서도 지켜진다.
   
영국인들이 격렬한 논쟁을 하면서도 절대 화를 내지 않고 능글능글하게 토론을 잘 이어가는 이유는 바로 이런 훈련을 받아서다. 토론 훈련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친한 친구들 사이의 술자리에서도 열띤 토론이 자주 있다. 물론 이 경우 인신공격이 자주 들어오지만 영국인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이때 화를 내면 상대하지 못할 수준의 속 좁은 친구로 찍혀서 왕따를 당하게 된다. 전제가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인신공격도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고, 진심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편한 인신공격이라도 참고 넘겨야 한다. 결국은 이런 토론도 일종의 훈련이고 사회생활 연습이다.
   
격렬한 토론은 특히 펍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친한 친구들 사이가 아니라 동네에서 안면을 겨우 튼 정도의 사이에서도 토론이 벌어진다. 별다른 주제도 아닌, 예를 들면 지구상에서 어느 동물이 가장 빠른가 하는 토론이 벌어지면 펍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손님들이 가담하기 일쑤다.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토론이라 예의가 지켜지지만, 재미로 하는 토론이라 토론 규칙이 잘 안 지켜질 때도 있다. 상대방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등 아슬아슬하게 논쟁이 어어지지만 이 경우에도 결코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는다. 물론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없다. 이런 펍 토론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책이 바로 ‘기네스 기록’이다. 누군가가 토론 중에 나온 각종 수치 기록을 증명하기 위해서 기네스 기록을 들이대면 바로 그 자리에서 승부가 끝나버린다. 바로 이런 이유로 기네스 기록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기네스 기록이다.
   
여기다가 더해 영국 사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립학교는 학생들의 연극 경험까지 필수 과정으로 삼는다. 학생 전원이 일 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무대에 서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대중 앞에서의 발표력, 대사 전달 연습, 단원들과의 협동, 조역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희생정신, 단체의 결정에 대한 복종 같은 사회구성원이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배운다. 영국 각 사회단체(자선·취미·정당·재단)의 모임도 사실 이런 토론과 토의를 기본으로 한다. 이런 토론 훈련을 받지 않고 사회로 나가면 결코 제 몫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영국 하원의원의 총회 방송을 보면 여야 지도부도 거의 펍에서의 토론 같은 형식으로 국정을 논의한다. 결국 영국 사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토론의 연장이다.
   
   
상명하복 서열 없는 사회
   
이제 상대가 누구이건 영국인이 ‘졸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영국인은 태어나서 가정이나 학교, 회사에서 무조건의 상명하복식 서열 관계를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다. 영국인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말이 중단되는 경험을 받아본 적도 없다. 우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다. 부모는 아무리 어린 자식이라도 말을 할 때는 ‘반드시’ 경청을 해준다. 부모가 반드시 지켜야 할 미덕이라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어릴 때 자신의 부모로부터 말이 막혀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아예 자식의 말을 막으려는 시도 자체를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영국인의 유전자 안에는 타인의 말을 윽박지르는 DNA가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영국인이 굉장히 소심해서 자식을 윽박질러 말을 막을 때 생기는 긴장 관계와 불편이 겁나서 그런다”는 말도 있지만 이건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이다. 영국인은 자식뿐만 아니라 누구의 말도 중간에 끊으려 하지 않는다. TV에서 정치인들끼리 토론을 해도 상대방의 말을 다 들은 다음에야 자기 말을 시작한다.
   
물론 영국 아이들도 말이 안 통할 만큼 떼를 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영국 부모는 일단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 말을 다 들어준다. 형제자매 사이에도 영국 가정에는 엄격한 선후가 없다. 형이라고 모든 걸 다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든지, 동생이라고 형의 말을 무조건 다 따라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 그런 형이나 언니의 ‘압제’를 허락하지도 않지만 동생들도 그런 관습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기에 고분고분 따르지도 않는다. 유치원에서마저도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원칙이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에 대한 제재이다. 만일 한 아이가 너무 심하게 행동하면 유치원에서는 반드시 제재를 가하고 부모에게 통보한다. 계속 반복되면 퇴원을 시킨다.
   
영국 학교에서도 교사와 학생 사이는 절대 상하의 개념이 아니다. 영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아직도 선생님을 미스터(Mr), 미세스(Mrs), 미쓰(Miss)라는, 일반 사회에서는 이제는 잘 안 쓰는 경칭으로 부른다. 동시에 교사들도 남학생들을 단체로 부를 때는 ‘신사들(gentlemen)’이라고 칭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도 그렇게 부른다. 이런 단적인 예에서도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물론 존중에는 의무나 요구도 따른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고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다. 분명한 원칙과 규칙이 따른다. 동시에 학생들도 할 말은 다한다. 자신이 분명 잘못했음에도 미안해하기는커녕 선생님 앞에서 또박또박 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설명해서 정당화하려고 한다. 물론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나 핑계에 불과하지만 학생으로서는 자신의 심각한 의견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필자가 본 가장 귀여운 장면은 한 학생이 자신이 하교할 때 숙제를 적은 종이를 안 가지고 가서 숙제가 뭔지 몰라 못 했다고 당당히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생각을 왜 안 했느냐”고 반박했다. 학생은 대답은 안 하고 어깨만 들썩하고는 선생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선생님이 재차 대답을 재촉하자 “그런 생각이 나지 않더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대답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앞으로는 반드시 하교할 때 내게 숙제 종이를 가지고 가는지를 확인하고 가라”고 마무리 지었다. 선생님은 끝까지 학생의 말을 들어주었고, 학생은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장면이었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영국 학교에는 학생 간 엄격한 선후배 서열도 없다. 한 학년을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아래 위 선후배로 엮어서 ‘하우스’를 만들어 서로 여러 가지 면에서 경쟁을 시킨다. 이때도 선의의 형, 동생 같은 호의적인 관계의 선후배가 있을 뿐이다. 우리처럼 선배가 후배에게 기합을 주는 것은 있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영국에서는 학교 동창이라고 해서 생면부지의 성인이 금방 형, 동생 하는 일은 절대 없다. 물론 동창회 활동도 별로 없다. 같은 의미의 향우회도 없다. 그래서 영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열이라는 개념을 느껴보지 못한다. 상명하복이라는 상황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회사든 단체든 일을 배우는 선후배 관계는 있을 수 있으나 기수로 인한 선후배 관계는 없다. 심지어 영국 회사에는 상사와 부하의 관계도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영국 TV드라마의 인기 주제 중 하나는 상관을 부하들이 놀리고 골리는 에피소드이다. 가장 유명했던 드라마가 ‘오피스(Office)’였는데 경영층의 요구와 말 안 듣는 부하들 사이에서 곤혹을 겪는 중간관리자인 매니저를 통해 영국 사회를 그린 드라마였다. 영국 사회는 수평사회이지 서열관계가 분명한 수직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영국인은 부당한 강요나 명령에 복종해본 억울한 경험이 없다. 영국 사회에는 갑을관계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 말 하고 불만도 없고
   
살아가면서 참고 넘어갈 수 없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 하소연하고 해결해줄 사회적인 기관이나 제도도 아주 많다. 영국인이 공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목격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내 지역구 하원의원에게 편지를 쓰겠다’이다. 그만큼 영국 하원의원은 유권자의 발언에 귀 기울이며 고충을 해결해준다는 방증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하소연하면 대충이 아니라 끝까지 나서서 해결해주는 제도도 잘 되어 있다. 직장인은 노동조합에 제일 많이 의존하는데 각 지역마다 시민고충센터도 존재하고 관련 자선단체도 많다. 또 고용주와의 관계로 직장인이 법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단계에 가면 변호사 비용을 국가에 신청해서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영국인은 어떤 방법이든 자신이 당한 일로 인해 두고두고 고통받는 경우가 없다. ‘미투 사건’이 세상을 뒤집을 때도 영국은 잠깐 시끄럽다가 마는 정도였다. 결국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지 않고, 이미 해결을 다 하고 지나갔다는 의미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당당하게 말하며 살아온 영국인은 누구 앞에서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평생 살아오면서 말을 중간에 잘려본 적도 없고 윽박지름을 당해본 적도 없으니 그럴 만하다. 자신에게도 누군가가 당당하게 말하면 항상 그런 태도를 보아왔기에 당연하다고 여긴다. 어디서고 누구에게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하면서 살아와서인지 영국인에게는 ‘한(恨)’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사회 체제와 자신의 처지에 대해 큰 불만도 없어 보인다.
등록일 : 2019-07-04 11:03   |  수정일 : 2019-07-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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