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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없는 하루, 버틸 수 있을까?

휴대폰 없이 하루를 버티라고 하면 선뜻 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급한 연락이 올 것만 같고, 정보를 찾아볼 수 없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봤다. 깜박깜박하는 기억이 그나마 완전히 꺼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자료 일본 고노임상의학연구소

글 | 장가현 여성조선 기자 2019-06-11 09:52

자꾸 뭔가를 잊어버리고 깜박깜박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이름을 바꿔 불러서 놀림감이 됐다. 동생과 대화를 하는데 잘못된 기억을 맞다고 박박 우기다가 핀잔을 들었다. 자꾸 이런 일이 생기니까 슬슬 걱정이 됐다.

‘요즘 디지털 치매에 걸린 사람이 많다던데 혹시 나도?’

디지털 치매는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서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이다. 다른 말로 ‘영츠하이머’라고도 한다. ‘젊은(young)’과 치매 중 한 병명인 ‘알츠하이머(alzheimer)’를 합친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디지털 치매 자가 진단을 했다. 7개 항목 중 하나라도 내 이야기다 싶으면 디지털 치매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 몇 개나 체크했냐고? 2개다. 그중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는 지적을 받아봤다’는 항목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매일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디지털 치매 증상이라니, 충격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의존해서 생기는 병이니 해결책은 간단하다. 디지털 기기 사용량을 줄이는 것, 디지털 디톡스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요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나 역시 눈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으로 일하고, 쉴 때는 스마트폰으로 소셜미디어를 하거나 영상을 본다. 메신저 대화는 어떻고. 직장 상사, 가족, 친구, 처음 연락하는 취재원까지 모두 메신저로 대화한다.  

모든 걸 딱 하루만 내려놓기로 했다. 평일에는 취재, 섭외 같은 일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일요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이날 하루 24시간 동안 휴대폰, 노트북, 텔레비전 등 모든 전자기기를 차단한다.

정확히 자정부터 시작했다. 저녁에는 인터뷰 일정이 있었다.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11시 30분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텔레비전 전원을 뽑았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11시 55분, 디지털 디톡스 개시까지 5분이 남았다. 아쉬운 마음에 급히 스마트폰을 켰다.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5분 안에 할 수 있는 건 지인들에게 하루 동안 연락이 안 될 거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게 전부였다.

11시 59분에 스마트폰을 비행기 탑승모드로 바꿨다. 전화, 문자, 인터넷, 와이파이가 꺼졌다. 버튼 하나 눌렀을 뿐인데 순식간에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빨리 잠이나 자야겠다 싶어서 누웠다. 버릇처럼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아, 이제 쓰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다시 서랍에 넣고 잠을 청했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뭐라도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 오랜만에 양을 셌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오십 마리까지 세었을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오전 9시 19분이다. 할 것도 없는데 너무 일찍 일어났나 싶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다 마음을 바꿔먹고 일어났다. 이왕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집 안 청소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어서 집 안이 엉망이다. 빈 페트병과 쓰레기를 정리하고 집 안 곳곳에 앉은 먼지를 닦았다. 한동안 존재감이 없던 에어컨 커버를 열고 필터 청소도 했다. 샤워기 헤드가 깨져서 쇼핑도 하고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목적 없이 걷는 건 오랜만이다. 이어폰과 스마트폰 없이 나온 것도 오랜만이다. 어색했다. 귓전에 울리는 노랫소리도, 손바닥 크기만 한 화면이 없는 것도. 늘 손에 쥐고 있던 네모난 기계가 사라지자 자연스레 시선이 사람들을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건지 일행을 격하게 반기는 사람, 약속 시간에 늦은 남자친구에게 화내는 사람, 유명한 맛집 앞에 줄을 선 사람 등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 모습도 보인다. 동네를 구석구석 살피면서 걷기는 오랜만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새로 생긴 가게도 있고 없어진 가게도 있다. 집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골목길의 변화조차 모르고 있었다. 마냥 걷기만 하면 심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즐겁다. 흐릿한 하늘이 보이고,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들렸다. 모처럼 나선 산책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마트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물이 새는 샤워기 헤드를 갈고 에어컨 필터를 끼웠다. 청소하면서 책을 꺼내둔 게 생각났다. 언젠가 재밌어 보여 샀다가 책장에 그대로 봉인된 책이다. 오늘 다 읽어야지 싶어서 꺼냈다.
 

모든 게 불편하지만 견딜 만하다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어느새 오후 7시다. 7시 30분에 친구를 만나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약속 장소로 갔다. 휴대폰이 없으니 실시간 교통상황을 체크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하고 첫 위기가 찾아왔다.

침착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걸을 때는 견딜 만한데 가만히 있으니 스마트폰의 부재가 실감이 났다.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5분 정도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버스에 오르자 라디오에서 뉴스 멘트를 읽는 앵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앵커는 딱딱한 목소리로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사고를 전했다.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후 8시가 돼서야 처음 들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보다 5분이 지났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아느냐”며 투정을 부렸다. 약속 시간을 당겨서 영화를 같이 보고 싶었단다. 영화는 다음에 보기로 하고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친구가 밥을 먹다 말고 스마트폰을 만졌다. 자연스레 대화가 끊겼다. 친구가 휴대폰을 들여다본 순간은 여러 번이다. 친구가 특별히 휴대폰을 자주 쓰는 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한다. 의외의 순간에 휴대폰의 단점을 발견했다. “휴대폰 대신 상대방의 눈을 보라”는 공익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11시 30분이다. 중간중간 고비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친구 휴대폰에 힐끔힐끔 눈이 갔다. 대화를 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친구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아서 검색을 하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그뿐인가. 오늘 하루 동안 포털사이트에 오른 화젯거리를 전혀 알지 못해 답답했다.

친구가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려고 해서 디지털 디톡스에 실패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친구는 내가 디지털 디톡스 중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늘 하던 것처럼 휴대폰을 들이민 것이다. 친구가 ‘아차’ 하며 휴대폰 화면을 가려서 겨우 실패를 면했다.

자정이 되기까지 30분 남았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날이 바뀔 것이다. 하루를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익숙지 않은 순간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휴대폰, 노트북과 멀어지는 동안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일도 멀어졌다. 나를 옭아맨 일상의 고민에서 한 발 물러선 기분이랄까.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디지털 디톡스, 할 만하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휴대폰 없이 지낸다는 건 정말 자신이 없었다. 일상의 모든 즐거움이 그 안에 있는데 과연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할 수 있는 것이 다양했다. 잊고 있었을 뿐, 소소한 즐거움이 많았다.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휴대폰이 없어도 공부하고 친구와 재밌게 놀던. 물론 그 시절처럼 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디지털 기기가 없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꽉 찬 휴지통을 비웠을 때의 개운함이 나쁘지 않다.
 
 


디지털 치매 자가진단법
1  내 번호와 집 번호 말고는 못 외운다.
2 직장 동료가 아닌 친구와 나눈 대화 중 모바일 메신저나 이메일 대화가 80%를 차지한다.
3  전날 먹은 메뉴가 기억나지 않는다.
4  손 글씨를 거의 쓰지 않는다.
5  전에 본 사람을 못 알아본 적이 있다.
6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는 지적을 받아봤다.
7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을 단 뒤 지도를 안 본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디지털 디톡스
1  잠잘 때 스마트폰은 옆에 두지 않는다.
2  스마트폰 알림 기능을 끈다.
3  스마트 기기 사용 규칙을 만든다.
4  이메일 계정을 로그아웃한다.
등록일 : 2019-06-11 09:52   |  수정일 : 2019-06-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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