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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한국도로공사 배구단 감독 “새 시즌 하이패스로 정상 탈환”

하이패스배구단 수장 데뷔 세 시즌 만에 한국 여자배구를 평정한 김종민 감독이 마침내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느긋하고 어눌한 모습 뒤에 전략과 투혼을 숨기며 반드시 이기는 배구를 구사하는 그는 경쟁 구단 감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승부사다. 선량한 품성과 강인한 근성을 모두 지닌 김종민 감독의 건강한 오늘을 만나본다.

글 | 이일섭 Wellbeing Life 에디터   사진 | 이신영 2019-06-05 09:45

지난해 통합 우승 이어 올해는 준우승 일궈

김종민(45) 감독이 이끄는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배구단의 이번 시즌 최종 성적은 준우승. 디펜딩 챔피언의 위엄을 이어가는 일엔 실패했지만 여자배구의 인기를 사상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며 2018~2019 리그를 마쳤다. 요즘의 그는 V리그를 또 한 번 ‘접수’하는 일에 절치부심 중이다. 감독 생활 7년의 시간 속에서 그가 얻은 깨달음은 과거의 결과는 서둘러 지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할 수 없는 승부의 세계에서 지난 승패에 연연해하는 것은 ‘퇴보’와 ‘슬럼프’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김종민 감독은 늘 짧고 느긋한 말투로 선수들을 대한다. 위치 선정이 잘못된 블로킹과 타점이 부족한 스파이크가 반복돼도 그는 선수를 질책하지는 않는다. 대신 매우 침착한 어조로 선수들의 투혼을 이끄는 조언을 전한다.

“상대 세터와 가위바위보 싸움을 해봐.”
“일대일 싸움에서 밀리면 게임을 이길 수 없어.”

겨우 여섯 살, 일곱 살 터울이 지는, 코치보다 나이가 많은 노장 선수에게 ‘못했다’ ‘부족했다’를 지적하는 것은 적합한 훈련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선수들의 손아귀에 잠재해 있는 배구에 대한 감각과 이해도를 더 끌어올리는 게 효율적 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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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흔 살이 된 세터 이효희도, ‘마마’ 정대영도 그의 배구 철학을 신봉하는 베테랑 조력자가 됐다. 사실 그녀들은 난파선이나 다름없는 팀을 정상화하는 데 이어 V리그 무관의 불명예를 씻어낸 김 감독의 내공이 선량한 인품에서 비롯됐음을 잘 알고 있다. 배구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온갖 전술과 시스템이 가동돼도 종래엔 사람이 관건이 되곤 한다. 김 감독은 이 사람의 문제를 팀 성적보다 더 중시하며 비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선수 개개인이 감내할 상처와 소외를 최소화하며 완전체의 팀을 만들어냈다. 때로는 그 ‘의리’가 발목을 잡으며 팀 전체를 휘청거리게 했지만 그와 선수들은 ‘믿음’이라는 팀워크를 기반으로 일어서며 리그 최강의 팀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됐다.
 
정상급 외국 선수 영입… 국내파들과 조화 과제

변화와 우연으로 채워지는 게 우리 생애지만 김 감독의 배구 인생도 예기치 않은 일에 수없이 갈등하게 했다. 수비력을 갖춘 레프트였지만 대한항공에서의 현역 생활은 길지 않았고 트레이너와 코치로 제2의 배구 인생에 도전해야 했다. 한동안은 김해공항에서 대한항공의 오피스 스태프로 수하물을 담당했으며 그때의 일탈은 배구가 운명이고 천직이라는 걸 되새기게 했다. 그리고 더 큰 파도는 그다음에 밀려왔다. 신영철 감독의 퇴진으로 김종민 감독은 시즌 중에 감독직 바통을 이어받으며 대한항공 우승의 도약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3년 후엔 자신의 재능에 좌절하며 스스로 퇴진을 결정하고 만다. 그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하이패스 여자배구배구단의 수장이 됐으니 선수단에 대한 애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으며, 2017~2018 시즌에 이룬 통합우승의 쾌거는 그의 배구 인생에 지표가 될 빛나는 열주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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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두 시즌의 영광은 이제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그는 이제 새로운 고지 정상을 향해 또 다른 간난신고를 각오하며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출발은 그런대로 가뿐하다. 터키 빅4 갈라타사라이(Galatasaray) 출신의 스파이커 셰리단 앳킨슨(Sherridan Atkinson)을 드래프트로 지명했으며 휴지기를 마친 선수들도 속속 입소를 해서 훈련에 돌입하고 있다. ‘알고도 못 막는 김종민스타일의 패턴 플레이’가높이와 화력을 장착하며 그 위력을 더할 듯싶다.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운명의 향방은 그를 또 어떤 위기의 상황으로 내몰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사람, 얄궂은 운명의 조롱은 다 겪어봤다는 듯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게 아닌가.
 
Q. 3년 전 여기 연습구장에서 있었던 도로공사 선수들과 첫 대면은 어떠했나.
A.
울산이 내 고향인데 김천엘 와본 건 그때가 처음이다. 태생이 무뚝뚝한 데다 ‘남자는 편하고 여자는 어렵고’가 그 무렵의 내 신념이자 고정관념이었다. 아내도 여자팀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내게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며 주변의 우려를 전했다.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도 아닌데 선수들과의 첫 대면은 꽤나 긴장이 됐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저하고 있는데 내 앞으로 모여든 선수들의 눈빛에서 내 얘기에 몹시 주목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갑작스레 찾아온 내게 아무런 경계 없이 다가오는 선수들의 환대가 몹시 고마웠고 그 초롱한 눈빛을 실망으로 흐리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Q. 집에 가도 여자들뿐이라고 들었는데….
A.
키가 190cm나 되지만 집에 형광등 한 번 갈아준 적이 없다. 아내 혼자 두 딸을 키우며 생활해 왔고 가족도 내 부재에 익숙해진 편이다. 주말이면 동탄 집엘 가는 일이 몹시 기대 되지만 막상 가족을 대하면 밥을 먹는 일 외엔 함께할 게 더는 없다. 선수단 숙소의 내 방에 누우면 비로소 내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편안함과 함께 미안함이 들곤 한다. 한번은 아내에게 ‘감독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올까?’ 했더니 더 좋은 성적 내서 돈이나 많이 벌어오라며 극구 사양을 하더라. 처음엔 좀 서운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힘이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힘들고 외로운 감독직을 이어가는 분명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Q. 가을, 겨울 내내 TV를 켜면 등장하는 인물이 됐다. 당연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은 어떤가.
A. 잘생긴 얼굴도 아닌데 승부의 상황 상황에서 굳어지는 표정을 보는 일이 뭐 유쾌하겠나. 새로웠던 점은 작전타임을 불러놓고는 선수들에게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었다. 할 말은 너무 많은데 흥분을 가다듬느라 고투하는 모습이나 경기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추리느라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참 많이 변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속으론 불안해하면서도 선수들에게 확신을 주느라 아무것도 아닌 척, 느긋해 하는 척 하는 게 다 드러나고 만다. 어떻게 하면 흔들리는 모습을 감출 수 있을까? 《배구 교본》에도 나오지 않고 《수호지》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길상사에 올라 독경 소리를 들어도 마음의 동요는 가라앉지 않더라.
 
Q. 이제 마흔다섯 살, 자신의 나이에 어떤 정의를 내릴 수 있나.
A. 아재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때가 아닐까. 갑자기 부피가 커진 숫자에 책임을 지느라 종종 경직이 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 나이가 마흔다섯이라는 사실을 깜빡깜빡할 때가 많다. 선수 시절에 다친 어깨에 불쑥불쑥 통증이 찾아오기도 하고 아내가 마련해 준 비타민과 오메가3 지방산을 더 찾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선수들처럼 높은 점프를 하는 것도 아닌데 몸은 조금씩 긴 경기일정을 부담스러워하게 됐다. 하지만 경기를 보는 눈은 더 맑아져서 공격 루트를 어디로 정하면 승리할지, 상대가 비책으로 삼는 트릭이 무언지 단번에 알 수 있게 됐다. 질풍노도의 스무 살보다 더 불안정한 나이가 아닌가 싶다.
 
Q. 선수들에게 어떤 감독으로 인식되고 싶나.
A.
7년의 감독 생활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은 선수들에게 내가 경험한 일들과 느낌을 다 들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처를 받지 않을까,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싶어 말하지 않는 쪽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회피이자 태업인 셈이다. 나는 선수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자신의 체력과 투혼을 무기 삼아 프로 생활을 하는 선수들의 자존감과 미래를 꼭 지켜주고 싶다. 물론 경기를 이기는 쪽으로 인도하는 유능한 감독이 되고 싶다. 그래야 나도 감독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후배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래야만 선수들의 기억에 존재할 수 있다.
등록일 : 2019-06-05 09:45   |  수정일 : 2019-06-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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