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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시대의 난임 불임 대처법

전문의 정재훈 원장의 진료상담기

글 |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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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부서져도…”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여군이었어요. 시험관시술을 하던 분이었는데 배아(수정란)를 자궁 내에 이식받자마자 가버리는 거예요. 보통은 이식 후에 병원에서 몇 시간 안정을 취하거든요. 그분은 훈련을 받아야 해서 빨리 가야 한다는 겁니다. 난자채취를 한 지 며칠밖에 안 되었으니 배가 불편할 법도 한데 아랑곳하지 않더라고요. 정말 씩씩한 여성이었어요. 그분, 그 시술에서 임신했어요.”

정재훈 마리아플러스 원장(51)은 18년 차 불임전문의다. 그가 5평이 채 안 되는 진료실에서 만난 난임여성의 수는 지금까지 10만 명에 달한다. 어쩌면 세월과 시대의 변화를 오로지 환자로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정 원장이 만난 난임여성들은 다양하다. 임신에 대한 절박한 소망을 품고 불임클리닉에 오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겠지만 그녀들은 분명 달라졌다. 똑똑해졌고 도도해졌으며 때론 전투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의학적 지식이 웬만한 의사 저리 가라인 경우도 적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전업주부가 많았어요. ‘어떻게든 임신만 시켜주세요’라며 의사에게 통사정을 하는, 정이 많은 스타일이었어요. 임신에 성공하면 ‘생명의 은인입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진심이 담긴 고마움을 표현했어요. 요즘은 직장여성들이 많아요. 환자들이 인터넷에서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고 의사를 만나러 오더라고요. ‘다른 의사는 어떻게 처방하는데 당신은 왜 이렇게 처방하느냐?’라며 의학적 소신의 차이까지 궁금해할 정도로 똑똑해요. 의사로서 피곤할 때도 있지만,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웃음)
아니나 다를까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고용률은 49.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5~29세와 45~49세 고용률은 68.6%에 달했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요즘 불임병원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임신을 위해 시술(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 시술)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많다.

“시험관시술이 간편해졌어요. 예전에는 병원에 자주 가야 해서 직장에 다니는 경우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난자를 여러 개 키우는 과배란 주사를 병원에서 맞아야 했고, 배아이식을 한 후에는 임신이 확인될 때(피검사)까지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착상을 돕는) 주사를 맞는데 그것도 꼭 병원에 가서 맞아야 했으니까요. 요즘은 과배란 주사도 자가로 맞을 수 있고, 프로게스테론 호르몬도 질정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요즘은 (시험관시술을) 한 번 도전하는 데 평균적으로 5~7회 정도 방문하면 됩니다.”
난임을 치료하는 생식의학의 기술과 테크닉도 진화했다. 사랑하는 남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상통화를 하는 시대에 걸맞게 정자와 난자가 몸 밖에서 미팅(체외수정)하고 수정되는 것 정도는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한번은 지방에 사는 분이 오셨어요. 난자채취를 해달라는 겁니다. 지방에서 과배란 주사 처방을 받아서 난자를 여러 개 키우고 있었는데, 서울로 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부랴부랴 남편과 함께 병원에 왔더라고요. 요즘은 여성들도 출장을 자주 다녀서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마리아병원은 전국적으로 분원이 9군데 있어요. 네트워크가 되어 있어서 이동 채취가 가능해요. 요즘은 그런 병원이 많습니다.”
이뿐 아니다. 부부의 형태도 옛날과는 다르다. 주말부부 정도라면 다행이다. 월말부부, 심지어 학기부부도 있다. 어떤 부부는 해외출장 등으로 1년에 서너 번밖에 얼굴을 못 본다며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각자의 하늘이 다르니 도무지 별을 같이 딸 수가 없다. 정 원장은 건강한 부부라도 자연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설명한다. 그나마도 아내의 나이가 35세 이상이라면 더더욱 낮아진다. 설상가상으로 부부가 같이 살지 못한다면 임신이 힘들어지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배란일 때 관계를 맺어도 임신 성공률이 20%밖에 안 됩니다. 건강한 부부가 이틀이 멀다하고 잠자리를 한다? 1년 안에 90%가 자연임신을 해요. 10~15%만이 임신을 못 하는 거죠. 결혼 후 2년이 지났는데 임신이 안 된다면 ‘임신력이 떨어지는구나’ 하고 인정을 해야 해요. 수정장애가 있는지 나팔관이 막혔는지 등을 추적해봐야 합니다.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넋 놓고 있으면 안 돼요.”
정 원장은 여성의 생식학적 환갑을 마흔 살쯤으로 봐야 하지만 보조생식술이 발전해서 시기만 놓쳐서 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임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마흔이 넘으면 30~35% 자궁근종이 생기는 등 문제가 생기고 난자 퀄리티도 떨어질 수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때문에 정 원장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임신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자식을 낳는 문제에 있어서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용감하고 적극적입니다. 직장 때문에 헤어져서 사는 부부가 많아요. 배란일 때마다 일이 생긴다? 남편을 만날 수 없다? 그런 때 지방으로 쫓아 내려가는 쪽은 여성이더라고요. 어떤 여성분은 남편에게 해외출장이 잦으니까 정자를 냉동해놓고 혼자서 병원 다니면서 시도하더군요. 안 낳겠다면 모를까, 낳겠다면 적극적인 쪽이 여성이에요. 임신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거죠. ‘몸이 부서져도 좋으니까 쓸 수 있는 약 다 써달라’는 여성도 있었어요. 반면 남편들은 아내만큼 적극적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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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잘되는 여자 & 안 되는 여자

최근 들어서 왜 이렇게 난임부부가 많아지는 걸까?

정 원장은 “가장 큰 원인은 만혼(晩婚)이지만 스트레스도 한몫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난임 그 자체만 해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직장인인 경우 난임 스트레스에 직장 스트레스까지 가중되어 더 힘들 수 있다. 더욱이 직장 내 갈등이나 직장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는 혈압만 올리는 게 아니라 난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법원이 직장생활로 받는 스트레스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겠는가.
“난임 스트레스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스트레스와 비슷하다는 보고가 있어요. 난임 자체도 스트레스인데 직장에서 난임을 이해하지 않아서, 휴가를 쉽게 내주지 않아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난임휴직을 받으려면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진단서 내용이 너무 까다로운 거예요. 난임이 해결되려면 몇 달 쉬어야 하는지 개월 수를 적으라는 식으로 돼 있으니 의사로서 참 난감했어요. ‘장기간 안정’이라고 적어서 주긴 했는데… 난임휴직은 문서에 얽매이지 않으면 좋겠어요.”
정 원장은 난임을 유발하는 직업과 상황이 있다며 이런 예를 들었다.

“승무원들은 배란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몸매관리가 잘되고 피부관리도 잘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화사해 보이지만, 고도가 높은 하늘에서 서 있어야 하고 생활이 불규칙하니까 배란 불균형이 될 수 있는 거죠. 또 잦은 비행으로 인해 배란일에 맞춰 남편을 만날 기회가 적잖아요. 여성들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배란장애는 물론이고, 자궁이 수축되거나 나팔관에 경련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임신이 되어도 자궁외임신 비율이 높아져요. 꼬박꼬박 생리를 하던 여성이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몇 달씩 생리를 거를 수도 있거든요. 또 요즘 여성들, 술도 너무 많이 마셔요. 스웨덴 쪽 연구 결과를 보면, 하루에 2잔 이상 알코올을 마실 경우 난임 가능성이 1.59배 증가한다고 해요. 다른 연구에서는 알코올 섭취량에 비례해서 임신율이 떨어진다고 나왔어요. 또 과다한 알코올 섭취는 기형아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까 술은 자제하는 게 좋아요.”

임신은 남녀가 사랑 후 맞이하는 축복의 열매다. 하지만 난임부부에게는 마치 수능이나 입사시험보다 더 무겁게 와 닿을 수 있다. 같은 또래라도 임신이 너무 잘돼서 골치 아프다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의사의 코치 아래 온갖 노력을 해도 안 되는 부부가 있다. 불임의사로 18년간 10만 명을 만나봤다는 그는 낙천적인 성격이 예민한 성격보다 훨씬 빨리 임신한다고 귀띔했다.

“얼굴만 봐도 대충은 알아요. 또 대화를 해봐도 느낌이 와요. 피부가 어둡고 거칠면서 어깨가 너무 떡 벌어진 여성들은 수태력이 떨어질 수 있어요. 아무래도 여성스러워야 임신을 잘하는 거죠. 또 여드름이 많이 났던 흔적이 있고 음부의 털이 배꼽에서 항문까지 너무 많으면 다낭성난소증후군일 가능성이 높아요. 초음파를 통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대충 봐도 아는 거죠. 성격도 중요해요. 까칠하고 예민하면 임신이 잘 되지 않아요. 초조해하고 긴장을 하면 혈관이 수축되고 자궁 혈류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거든요.”

조선시대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에는 유자상(有子相)과 무자상(無子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책에는 월경의 양과 색깔, 월경주기, 여성의 눈동자와 손과 발의 온도, 얼굴 피부색은 물론이고 몸매와 치모(恥毛)의 형태까지 들어가며 무자상과 유자상을 구분했다.
그렇다면 유자상은 어떤 모습일까?

간단하게 ‘손바닥이 붉어야 하고, 남달리 어깨가 둥글고, 등이 두껍고 배꼽은 깊을 것이며, 엉덩이가 펀펀하고 골반이 쩍 벌어져야 하며, 배는 커야 하고, 봉의 눈처럼 검은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리지 않을 상’에 속해야 한다. 사실 얼굴과 외모만으로 유자상과 무자상을 가려낸다는 건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결국 자궁과 난소를 봐야 된다.

“태어날 때부터 자궁이 기형인 경우도 있고, 자궁이 없는 경우도 있고, 난소의 크기도 사람마다 달라요. 난소가 정상 위치에 있지 않고 자궁 위쪽에 달라붙어 있거나 유착이 생긴 경우도 많죠. 자궁 옆에 있어야 할 난소가 이상한 데 가 있는 거예요. 난소와 자궁 위치가 변형되어 있으면 질 초음파로 잘 보이지 않아서 배를 눌러 질 입구와 가까워지게 해서 봐야 해요. 이런 경우 난자채취를 하고 이식할 때(시험관시술 시) 경험이 많지 않으면 힘들 수 있어요.”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면, 불임의사에게 초음파 보기는 매우 중요하다. 의사는 직접 초음파를 보면서 난소의 상태 등을 파악해서 과배란 주사의 용량을 정해야 하고, 난포가 자라는 반응을 관찰하며 난자채취 디데이를 잡는다. 초음파는 2차원으로 본 인체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하여 3차원의 입체적인 그림으로 그려내야 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을수록 실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평면적 영상을 보면서 머리로 공간까지 다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임의사는 초음파를 잘 봐야 해요. (초음파를) 직접 보지 않고 간접적으로 소견을 보게 되면 시리즈별로 녹화된 초음파가 아니라서 전체적인 감이 떨어져요. 난소도 공간이거든요. 입체적인 거니까 단면만 봐서는 알 수가 없어요. 또 초음파를 봐야 환자의 추세를 알 수 있어요. 이 사람의 난소가 옛날에는 어떠했는데 지금은 어떻다, 이렇게요. 또 난자가 자라는 속도와 사이즈를 봐야 난자채취 디데이도 정할 수 있어요. 난자가 몇 개 자랐는지는 피검사(혈중 에스트로겐 농도)를 통해 알 수 있지만, 경험이 많은 의사라면 초음파만 봐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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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를 타다

시험관아기 시술의 임신 성공률은 약 40%에 다다른다. 아무리 체외에서 수정되어 건강한 배아를 고른다고 해도 착상의 비밀은 불임의사조차 모르는 부분이 많다. 정 원장은 “열심히 걸으면 임신이 잘된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에 임신하려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잖아요. 어지간하면 임신을 했을 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바로 운동 효과입니다. 운동량이 많지 않은 양반집 아낙이 불공을 드린다고 매일 산에 오르고 108배를 했으니 얼마나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실제로 밭에서 일하는 여성이 훨씬 임신이 잘돼요. 햇볕을 봐야 수태력이 좋아집니다. 늦은 결혼을 하더라도 몸 관리 잘하고 혈액순환 잘될 정도로 운동하는 여성이 빨리 임신이 됩니다.”

정 원장은 “자궁내막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비아그라를 질정으로 처방하는 이유도 혈액순환 때문”이라면서 “(비아그라를 질정으로 사용하면) 난임여성 자궁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착상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비아그라 질정을 사용하면 질과 자궁경부 쪽으로 약이 흡수되는 과정을 통해 자궁에 혈이 몰린다는 것. 남성이 비아그라를 복용하면 말초혈관과 정맥이 확장되면서 음경 속에 피가 많아져 발기가 된다. 결국 난임여성이 비아그라를 질정으로 사용하는 경우, 자궁으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일시적으로 원활해져서 착상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한편, 그 어떤 처방과 시술로도 임신이 쉽지 않은 난임여성도 적지 않다. 최근 불임병원들은 만혼과 재혼으로 인한 고령 환자가 많아져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배란 주사를 고용량으로 투여해도 도무지 난자가 자라지 않는 난소기능저하를 겪는 여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적이 없는 건 아니다.

“난소가 거의 폐경 수준인 분이 있었어요. 과배란 주사를 아무리 많이 맞아도 난자가 1개 겨우 자라거나 안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도전에서 난자가 3개 자라더라고요. 그 난자로 결국 임신했어요. 난소기능이 너무 떨어져서 배아를 3개 이식했는데, 세쌍둥이를 임신한 거예요. 정말, 자식과의 인연에는 의사가 모르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그야말로 신의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50대 여성이 임신되었을 때 의사인 저도 믿어지지 않았어요.”

정 원장은 생김새나 성품이 결코 상냥하거나 보드라워 보이진 않았다. 경상도 억양 때문에 다소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집요한 구석이 있어 보였고 자신감 있는 말투가 돋보였다. 왠지 그것이 불임의사로서의 강점으로 느껴졌다. 특히 요즘처럼 여전사가 많아지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럴지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 빨리빨리 스타일입니다. 낙관하며 허송세월 보내다가 가임력 다 잃어요. 또 무조건 희망적으로 좋게 말하지 않아요. 바른 소리를 하니까 무섭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는 ‘한 여성의 임신은 한 가정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와 환자는 이미 한배를 탔어요. 이유를 불문하고 믿고 따라와 주면 좋겠어요. 세상 최고의 명의는 결국 나를 임신시켜주는 의사 아니겠어요.”
등록일 : 2016-08-0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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