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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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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문 안을 제대로 보존 못한 것 아쉬워”

대한민국 개발의 증인, 곽영훈 사람과환경그룹 회장

⊙ 서울시 도시개발 산증인 곽영훈 회장, “지금의 서울 만든 건 구자춘 전 시장…
적어도 20년 염두에 두고 도시개발 계획해야”
⊙ ‘옛 사대문 안 도심은 보존해야 한다…’ 현대 계동 사옥 설립 두고 정주영 회장과 언성 높이기도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예술원과 학술원 옮겨 놓지 못한 게 아쉬워”

곽영훈
⊙ 72세. 美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 도시건축학 석사,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육환경학 석사, 동국대 대학원 교육철학 박사.
⊙ 홍익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제주대 특훈교수 역임.
⊙ 한국종합조경공사 초대 상임고문,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시건축미관심의위원회 위원,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및 올림픽공원 자문위원, 국토건설종합계획심의회 위원 등 역임.
現 사람과환경그룹 회장, WCO(세계시민기구) 대표.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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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2만명. 지난해 기준 서울 지하철 2호선 하루 이용객의 숫자다. 서울 인구는 약 1000만명. 하루에도 10명 중 3명이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는 셈이다. 이들 중 몇 명이나 2호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까. 이를테면 2호선이 처음과 끝이 없이 서울 시내를 끝없이 돌아가고 있는 이유 같은 것 말이다. 2호선은 서울 지하철 중 유일한 순환선이다. 전세계 도시철도 중 2번째로 긴 순환선이기도 하다.
 
 
  인구 600만 시절에 1000만 시대 대비
 
  2호선의 탄생 배경부터 미리 얘기하자면, ‘한강 유역을 중심에 두고 강남권 등 서울을 골고루 개발하기 위한 것’이 타원형의 순환선으로 설계한 이유다. 곽영훈 사람과환경그룹 회장의 설명이다. 곽 회장은 서울 지하철 2, 3, 9호선의 구상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다. 서울시 건축·도시계획위원회 위원, 한국토지개발공사와 건설부·과기부의 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지하철뿐 아니라 서울, 대전, 여수 등 전국 여러 도시의 개발 및 구상에 몸담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 공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대전 대덕연구단지, 경기도 일산신도시 등이 그의 작품이다. 미국, 이집트, 필리핀, 알제리, 가나 등 해외의 도시계획에도 참여했다. 최근엔 네팔 룸비니(Lumbini) 세계평화시 설계를 마쳤다. 룸비니는 부처의 탄생지다.
 
  도시에 대한 곽 회장의 생각을 처음 들은 건 터키 부르사(Bursa)에서였다. 지난 9월 4일부터 6일까지 부르사에서 ‘실크로드시장포럼(SRMF, Silk Road Mayors Forum)’ 총회가 열렸다. 1년에 한 차례, 실크로드가 지나는 도시의 시장들이 모여 교류를 하는 행사다. 올해로 10회째, 세계시민기구(WCO, World Citizens Organization)가 주최한다. WCO의 회장이 바로 곽 회장이다. 곽 회장은 총회에서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넘어서 유산을 보존하며 진행하는 개발’을 강조했다. 실크로드 근방 일부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참여하고 지켜본 한국의 도시 개발사는 어떨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신당동에 있는 곽 회장의 자택은 지하철 6호선에서 꽤 가까웠다. 역에서 10분 남짓 걸었을까, 문외한의 눈에도 공들여 지은 듯 보이는 집이 나왔다. 안에 들어서자 정원과 연결된 남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자가 가 본 ‘도심의 역세권’ 거주지 중 가장 자연에 가까이 있는 집이었다. 지하철 얘기를 꺼내자, 곽 회장은 대뜸 구자춘(具滋春) 전 서울시장의 얘기를 꺼냈다.
 
  “서울 지하철 만들 때 시장이 구자춘 전 시장이었지요. 저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이었습니다. 시장실에 둘이 마주 앉아 지하철 구상안을 놓고 얘기를 하는데 구 시장이 그러더군요. ‘아니, 시작점이 있고 종착점이 있어야지 빙글빙글 돌면 어떻게 하지요?’ 2호선 얘기였습니다. ‘다른 나라의 도시도 그렇게 한 예가 있다’고 설명했어요. 프랑스 파리의 도시철도도 완전히 순환선인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형태였거든요.
 
  2호선은 강남 등 그때까지 개발되지 않았던 곳의 개발을 촉진하고 한강이 중심에 놓이도록, 타원 형태로 구상한 겁니다.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이미 개발된 곳에 철도나 도로를 넣곤 했지요. 중심상업지구(CBD, Cenrtal Business District)만 생각해 단일도심으로만 개발하면 이집트 카이로처럼 도시가 북새통이 됩니다.
 
  저는 그때 앞으로 서울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을 해 봤어요. 당시 서울 인구가 600만이었는데 다른 나라의 대도시를 보면 곧 1000만이 될 거다 싶었거든요. 개발 지역에 쏠릴 압력을 어떻게 밖으로 분산시킬 것인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걸 넘어서서 앞으로 개발되어야 할 곳으로 철도가 가야 한다는 답이 나온 거죠. 강남, 잠실 등 주변으로 활성대가 퍼지도록 한 겁니다. 그런데 선을 긋다 보니 대학들과 닿더라고요. 홍익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울대, 건국대 등을 한 라인으로 연결했지요.”
 
 
  4대문 안에 지하철역 모아 놓지 말았어야
 
지난 9월 4일부터 6일까지 터키 부르사에서 열린 실크로드시장포럼에서 연설하는 곽영훈 회장. 곽 회장은 포럼을 주최한 세계시민기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실제로 참고한 다른 나라의 사례가 있나요.
 
  “지하철에 호선별로 색깔이 지정되어 있지요? 미국 보스턴의 도시철도를 보고 참고한 겁니다. 불특정 다수인이 쉽게 기억할 수 있게 색깔로 지정했더라고요.”
 
  1974년 1호선을 개통한 이래, 지하철은 서울 및 수도권 전역에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이 됐다. 애초 설계자로서 아쉬운 점이 있는지 물었다. 곽 회장의 말이다.
 
  “몇 가지가 있지요. 첫째, 4대문 안에 역을 너무 많이 몰아 놨습니다. 4대문 안은 보존해야 할 곳이에요. 거기에 2호선이니, 3호선이니 다 지나가게 건설하면 보존이 되겠습니까. 1개의 선을 깔고 거기에서 파생하는 식으로 해야 했어요. 트램이나 전기 버스 같은 수단이 얼마든지 있거든요. ‘서울의 정취를 느끼려면 X호선을 타고 가서,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 된다’고 인식되도록 했어야 했다는 거죠. 기존의 것들을 몽땅 부숴 버리며 하는 개발은 조상을 잡아먹으며 크는 괴물이나 다름없습니다.
 
  두 번째는 서울과 인천, 부천, 수원 등 서울 외곽도시와의 연계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초 구상할 때, 서쪽 끝 영종도부터 동쪽 끝 동해시까지 선을 그었어요. 동서를 쫙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현재 9호선으로 건설된 전철의 구상 취지였습니다. 또 교통 인프라에 있어서 속도의 위계라는 게 있어요. 프랑스를 보면 메트로라는 지하철과 우리로 치면 KTX인 테제베, 지역간 간선 철도인 RER이 상호 연관적으로 배치되어 있거든요. 지하철을 지을 때도 다른 교통수단의 융복합을 고려해야 해요.
 
  세 번째는 과연 땅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지하철이 확장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하철이 깔리면 새롭게 개발되는 땅이 생깁니다. 재개발이라는 말이 쉽게 쓰이는 경향이 있는데, 재개발은 상당히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겁니다. 건물 하나만 놓고 봅시다. 그 건물이 멋있다, 안 멋있다 하는 미학은 보는 사람마다 달라요. 뉴욕같이 거리를 꾸며 놓는다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마구잡이로 허무는 게 아니라 일단 놔 둬야 합니다. 지하철도망이 깔리면 새로 개발되는 지역이 생기겠지요. 그러면 사전에 사유지는 매입해서 확보해 둔 다음 도시 전체가 균형적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고려하며 철도를 놓아야 해요.
 
  마지막으로, 세금을 가능한 한 쓰지 말아야 했습니다. 경기도 구리까지 철도를 놓는다고 하면, 그 주변 땅을 미리 확보해 체계적으로 개발하면 철도를 놓는 비용이 다 충당됩니다. 개발이익으로 다른 곳에도 인프라를 깔아 줄 수 있는 거죠. 그런 생각 없이 철도가 확장됐어요. 왜 시민들의 세금을 그런 데 씁니까. 인프라를 깔 때 얼마든지 예산이 안 드는 방향으로 할 수 있어요.”
 
 
  현대 계동 사옥 신축 두고 실랑이
 
  —한참 개발을 진행한 1970년대, 1980년대에도 4대문 안을 보존하자고 주장했습니까.
 
  “그래서 정주영 회장과 많이 부딪쳤지요. 최불암씨가 소개해 정 회장에게 한강 개발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정 회장이 대찬성을 했어요. 그래서 현대 본사를 한강 쪽에 지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도심에 짓겠다는 거예요. 복잡한 도심이 장사가 잘된다며 계동에 짓겠다고 하더군요. ‘사대문 안은 보존하고 복원해야 할 곳이다. 한강 쪽으로 가시라’고 다시 제안했습니다. 그때 제가 도시계획위원이었어요. 현대 측의 애초 계획엔 건물이 너무 높았어요. 그렇게 지으면 부근에 있는 비원도 비밀스러운 정원(secret garden)이 아니고 ‘오픈 가든(open garden)’이 되어 버립니다. 율곡로 교통도 문제지만, 북촌과 그 근처 보전이 안 되지요. 결국 층수를 애초 계획의 반으로 줄이는 걸로 타협이 되었지요. ‘젊은 교수가 한국 물정도 모르면서’라며 크게 화를 내더군요.”
 
  곽 회장은 얼마 전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유럽 출신 대사와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대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대전에 가도, 대구에 가도 도시의 이미지가 다를 게 없다. 구분이 안 된다. 인간과 그 지역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고 개발한 것 아닌가. 당신이 도시계획을 했다면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는가.’ 그러더니 ‘알레포를 보러 가자’는 겁니다. 알레포는 시리아에 있는 도시인데 무슨 말인가 했더니 관저 2층 침실로 데려가더군요. 창문을 가리켜 내다보니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6·25 사변 때 보던 모습입니다. 고층 아파트 짓는다고 한옥이고 뭐고 일대의 집을 다 부숴 버렸어요. 자신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왜 당신은 이런 것을 못 막느냐고 해요.
 
  흔적은 함부로 없애는 게 아닙니다. 살리면서 자생적으로 변하게 해야 해요. 유럽의 도시가 아름다워 보이는 건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직접 집에 페인트도 칠하고 조금씩 고쳐 가면서 세월의 흔적이 덧입혀진 거예요. 시간과의 함수관계 없이 아름다워지는 도시를 봤습니까.
 
  이탈리아 시에나에 가 보면 캄포 광장이라고 조개껍데기 모양으로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광장이 있어요. 땅이 약간 경사가 져 있습니다. 우리라면 어땠을까요. 깔아뭉개고 평평하게 고치지 않았을까요. 저는 서울 남산 일대가 시에나보다 더 좋게 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 갈아엎고 아파트가 들어섰지요.”
 
 
  ‘사람간의 교류’ 빠져 버린 마로니에 공원
 
1978년 2월 서울시청 연두순시를 마치고 나오는 박정희 대통령과 구자춘 서울시장(앞줄 오른쪽).
  —여러 시장과 일을 해 보셨는데 어떤 시장이 기억에 남습니까.
 
  “구자춘 시장이지요. 오늘의 서울은 구자춘 시장이 토대를 닦은 겁니다. 구자춘 시장과 한 일이 몇 가지가 있지요. 대학로에 마로니에 공원을 만들고 합정동·공덕동 로터리를 확충하는 등 서울의 골격을 잡았지요.
 
  마로니에 공원은 대학이 떠난 자리에 아파트를 짓지 않고 예술지구로 개발한 경우지요. 그런데 애초의 구상과 결과물 사이에 차이점이 있어요. 바로 ‘사람 간의 교류’입니다. 본래 계획에는 학술원과 예술원을 마로니에 공원에 이전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지요. 뜻밖의 발견, 우연한 만남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예요. 인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지요. 젊은이들이 왔다갔다 할 거리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얼마 전에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났는데 연구실에서 혼자 글 쓰고 계시더라고요. 젊은이들이 김윤식 교수 같은 분뿐만 아니라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 이런 분들을 굳이 일부러 찾아가지 않더라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지역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나겠지요. 그런데 애초 도면엔 있던 예술원과 학술원이 빠져 버렸어요. 그 자리를 유흥업소가 채우더군요.”
 
  곽 회장은 건축학 외에도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때 그의 세부 전공이 ‘학습환경(learning environment)’이었단다. 그가 마로니에 공원 구상에 공을 들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서울의 마포대로도 구 전 시장 때 닦았군요.
 
  “거기에도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길을 넓힐 때 한쪽만 확장하면 됩니다. 양쪽의 주민들을 다 괴롭게 할 필요는 없거든요. 게다가 길에서 더 먼 곳일수록 수용하는 비용도 저렴하니 그렇게 하는 게 여러모로 나은데 마포대로는 양쪽으로 넓히더라고요. 구 시장은 뭔가 제안하면 그 다음 날 실행하더군요. 그 시절이니까 그렇게 밀어붙일 수 있었지요.
 
  사실 저는 길을 넓히는 건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길을 무조건 넓히는 게 좋은 건 아니에요. 생활권이 갈라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까지는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때 속으로 한 생각이 이거예요. ‘참자. 일단 확보해 두면 공공의 땅이 되지 않는가. 먼 훗날 보행자로로 바꿀 수도 있다.’ 지하철을 깔기 위해 지도에 선을 그을 때도 그랬어요. 사실 더 직선으로 그었어야 했는데 삐뚤빼뚤 선이 바뀌는 거예요. 여러 가지 요인 때문이었지요. 이때도 ‘선을 더 곧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선은 나중에도 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하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공공의 공간으로 확보해 두면 훗날엔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다.’
 
  구 시장이 1978년에 내무부 장관이 된 이후에는 함께 전국을 다녔지요. 그때는 적어도 20년 이상이 흐른 후를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습니다. 미국에 유학하면서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왜 우리나라라고 보란 듯이 멋있게 살 수 없겠는가.’”
 
 
  MB에 ‘청계천 살리기’ 구상 제안
 
  —대전의 대덕연구단지와 여천신도시 설계에도 참여하셨더군요.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김재익 박사가 계셨지요. 오늘의 대전은 그분이 만든 겁니다. 보람을 느끼는 건 대덕연구단지 설계할 때 현재의 카이스트 부지로 22만 평을 잡아 두었다는 겁니다. 그때는 ‘KIT(Korea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명칭이었지요. 학교에서 누가 부지를 확보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지시한 것도 아니에요. 학교가 없으면 연구단지라 할 수 없으니 부지를 확보해 둔 겁니다.
 
  여수의 송재구 전 시장도 기억에 남지요. 이분은 공직을 걸고 여수를 개발하겠다고까지 했어요. 잘 안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여수 문수지구를 이때 개발했습니다. 결국 사람입니다. 그 시기에 저의 생각을 이해해 주는 분들을 만난 게 보람이지요. 사람들은 모두 잊었겠지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기까지 그분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개발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많지요. 지자체장부터 개발의 방향을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우선 저는 보전과 개발을 조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만 얘기하면 되더군요. 다른 나라도 이렇게 했다고 하면 통합디다. 영종도에 인천국제공항을 지을 때도 ‘왜 공항이 2개나 있어야 되나’부터 시작해 여러 얘기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고 ‘동북아 허브’ 운운하기보다는 ‘다른 나라에도 2개씩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게 효과가 빨랐습니다. 두 번째는 ‘이 사업이 당신의 레거시(legacy, 업적, 유산)가 될 거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만 하면 여지없더군요.”
 
  —1970년대에는 개발만 이뤄진 줄 알았는데, 한양도성 복원도 이때 시작했더군요.
 
  “구자춘 시장 때 시작했습니다. 구 시장한테 3가지 ‘맥’을 잇자고 제안했어요. 문맥과 산맥, 강맥이 그겁니다. 한양도성 복원이 ‘문맥’을 잇는 거라면, 산맥은 서울의 ‘내사산’과 ‘외사산’을 연결하는 거예요. 내사산은 북악산, 낙산, 인왕산, 남산이고 외사산은 관악산, 덕양산, 아차산, 북한산입니다. 강맥을 잇자는 건, 중랑천, 청계천, 안양천, 탄천 등 지류를 한강에 연결시키자는 거였어요. 결과적으로, 보행자 전용도로의 맥이 살아나는 겁니다.”
 
  곽 회장의 ‘청계천 구상’은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실로 이뤘다. 청계천 복원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주요 공약이었다. 이 구상을 세워 준 게 바로 곽 회장이었다.
 
 
  박근혜 캠프 참여해 ‘열차 페리’ 공약 구상
 
곽영훈 회장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원희룡 김영선 이규택 박근혜 이강두 곽영훈 정의화 당시 후보.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청계천 살리기’와 ‘남산 살리기’를 제안했습니다. 시장에 당선이 된 후 어느 날 저한테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당신이 도시계획에서 쌓아 온 걸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중랑구에서 발휘해 봐라’ 그러더니 시장실에 둘이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어디로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합디다. ‘곽영훈 박사가 중랑구로 갈 테니 그렇게 아시오.’ 그러더니 그 다음 날 총선의 중랑구 후보로 공천을 받았어요. 2004년 17대 총선이었지요.
 
  당시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직후였잖아요. 반(反)한나라당 열풍이 거셌지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중랑구에 면목시장이라고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유세하러 들어갔더니 여자 세 명이 ‘여기가 어디라고 왔냐’며 달려드는 거예요. 그중 한 명은 정육점에서 일하는 분이었는지 고기 자르는 칼까지 들고 있었어요. 면목역에 가면 제 명함이 찢긴 채로 수북하게 바닥에 버려져 있었지요. 크게 혼이 났습니다.”
 
  곽 회장은 MB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열렸을 때 ‘21세기 정책단장’을 맡아 박근혜 당시 경선 후보 캠프에 참여했다. 그가 참여한 게 바로 ‘한중 열차 페리’ 구상이다. MB의 ‘한반도 대운하’와 대비되는 공약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에서 화물을 실은 객차를 열차 페리선에 실어 운송한 뒤, 중국 대륙의 철도에 연결해 유럽까지 실어 나르는 물류 방식이었다. 중국 횡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을 이용하면 중국뿐 아니라 유라시아 내륙 각 지역과 물류 교류를 할 수 있는, 어찌 보면 획기적인 구상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하며 열차 페리 구상은 수면 아래로 잠겨 버렸다.
 
  정치 얘기가 나오자 곽 회장은 ‘상처’라는 말을 꺼냈다.
 
  “상처투성이지요. 밀치는 사람이 많더군요. 한편처럼 굴다가도 발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치 쪽 기웃거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니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깨끗한 줄 알았던 정치인을 가까이에서 보니 그렇지 않아 실망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정치는 안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다지요. ‘당신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보다 못한 사람한테 지배당한다.’
 
  사실 도시환경 설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로젝트를 끝내면 공을 서로 가져가려는 움직임이 많았어요. 논의 중에 갑자기 ‘당신만 박사인 줄 아나?’라고 한 사람도 있었어요. 제가 한 일에 애착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 온 것도 그 때문이에요. 애착을 가진들 뭐 합니까. 그걸 위해 했던 생각들에는 애착이 있지만 결과에 애착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스스로 다독였지요. ‘어찌 됐든 잘만 되면 좋은 거다. 할일이 태산 같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
 
 
  “도시의 익명성이 창의성 가능케 해”
 
곽영훈 회장이 설계한 네팔의 룸비니 세계평화시의 설계도. 연꽃 모양을 본떠 설계했다.
  —정치에 아직도 미련이 있습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WCO 활동을 통해 세계의 도시가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지요.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게 도시입니다. 조그만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끼리만 살면 창의력이 안 나옵니다. 치마를 안 입고 다니던 여자가 어느 날 치마를 입으면 뒤에서 쑥덕거립니다. 동네에는 그 동네만의 관습이 있어요. 그만큼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줄어드는 거죠. 도시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됩니다. 개개인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거죠. 프라이버시와 커뮤니티가 함께 있는 삶터를 만들어야겠지요.
 
  요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보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성, 감성, 몸성 다 뛰어나요. 몸성(性)은 제가 만든 말인데, 어떤 생각을 몸의 움직임으로 기억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어느 하나 외국의 젊은이들과 비교했을 때 뒤떨어지는 게 없어요. 흐뭇하지요.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자라면서 번창하고 만개하지 않고, 반대로 위축되는 것 같아요. 쭉정이처럼 됩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이 유행처럼 됐나요? 사회 정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요즘에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게 예전보다는 용이합니다. 제가 젊은 세대에게 하는 말이 그거예요. 필요하면 담을 넘어가 보라는 거예요. 20~30대에는 다른 나라를 돌아보는 게 좋습니다. 젊은이들이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이런 게 정치 아닙니까. 제가 WCO 활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루고 싶은 과제가 있습니까.
 
  “네팔에 짓고 있는 룸비니 세계평화시 건설이 빨리 시작됐으면 합니다. 네팔 정부가 설계도면을 승인했습니다. 이후 단계가 남았지요. 또 남북한 교류가 활성화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이산가족들이라도 만나야지요. 북한의 도시도 실크로드시장포럼에 참여하도록 노력 중입니다. 도시 차원의 교류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UN의 반기문 총장에게도 이 두가지 과제를 이루도록 협조하자고 했습니다.”
 
  도시설계가 곽영훈 회장의 행로는 지하철 2호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발전의 온기가 채 미치지 않는 곳을 둘러 서울을 한 바퀴 감싸 안고 돌아와, 지금의 서울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 2호선 열차처럼, 곽 회장도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를 몰고 서해를 건너 실크로드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고 있다. 그의 열차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 어쩌면 그곳에는 평화로운 한반도가 기다릴지도 모를 일이다.⊙
등록일 : 2015-12-02 12:29   |  수정일 : 2015-12-0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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