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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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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이발사 박수웅씨가 본 '인간 박정희'

10ㆍ26사태 35주기를 맞아 진짜 효자동 이발사 박수웅씨가 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다. 본 기사는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에 게재되었으며,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2004년 5월에 만들어 졌다.

글 | 송승호 깨끗한 정치포럼 상임대표. 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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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발사 朴秀雄(오른쪽)씨는 어린 志晩군의 머리를 깎아 준 것이 인연이 되어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사로 16년간 일하게 됐다.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권의식 가진 사람을 유달리 싫어하셨습니다. 15년 동안 그분을 곁에서 모셨지만 권위의식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았습니다』
 
  『그분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자상하셨고 情도 많으셨습니다. 특히 절약하는 데는 아마 그분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늘 윗옷을 벗고 러닝 셔츠 차림으로 이발관에 오셨는데, 해진 러닝 셔츠를 입고 계신 적이 많았습니다. 허리띠도 얼마나 사용하셨던지 허리띠 구멍이 사람의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크게 나 있었습니다. 절대권력자가 이처럼 검소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머리를 15년간 만져 온 朴대통령의 전용 이발사 朴秀雄(박수웅ㆍ64)씨는 朴대통령을 모셔온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두 눈에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陸英修(육영수) 여사가 北韓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文世光(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1974년 8월15일 아침 그는 朴대통령의 머리를 빗겨드렸으며, 朴대통령이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 金載圭(김재규)의 총에 맞은 그 날 아침에도 朴대통령의 머리를 만져 드렸다고 한다. 朴대통령이 유달리 사랑한 외아들 志晩(지만)씨가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陸英修 여사의 안내로 志晩씨의 이발을 해주었고, 陸여사의 장례일에는 朴대통령의 뜻에 따라 喪主(상주)인 志晩씨의 머리를 눈물로 만져 주었다는 것.   
  
  최고 권력자 4명의 이발을 한 진짜 권력자   
  
  朴正熙 대통령의 전용 이발사 朴秀雄씨는 朴대통령 이외에도 崔圭夏(최규하)ㆍ全斗煥(전두환)ㆍ盧泰愚(노태우) 前 대통령의 이발도 잠시나마 맡아 해 전직 대통령 4명의 머리를 이리저리 주물러 온 별난 履歷(이력)을 가지게 됐다. 권력자로부터 無限(무한) 신임을 받았던 그 어느 누구도 朴씨만큼 권력자를 마음대로 움직여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발을 하기 위해서는 천하없는 사람도 이발사가 의도하는 대로 머리를 이리저리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朴씨는 대한민국의 권력자 중 최고의 권력(?)을 누렸었다고 할 수도 있다.
 
  朴씨는 2001년 9월27일 오후 3시부터 세 시간여 동안 조선일보사 미술관 뒤편 벤치에 앉아 기자와 얘기를 나눴다. 朴씨는 인터뷰 도중 世波(세파)를 대변하듯 투박하고 두툼한 손등을 눈으로 자주 가져가 좌우로 훔치곤 했다. 그는 朴대통령이 돌아가신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朴대통령 묘소를 찾아 막걸리 한 잔을 올린 뒤 자신의 身邊(신변)에 관한 보고를 드려 왔다고 한다.
 
  朴씨가 대통령 전용 이발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출신인 朴씨는 한림면 가산초등학교와 부산 금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과 제주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21세 때인 1958년 서울로 와 효자이발관에 취직했다. 당시 효자이발관은 청와대에서 볼 때 정문 大路 오른쪽 모퉁이에 있었으며, 서울에서는 최고급 수준이었다고 한다.
 
  효자이발관에서 항상 청와대를 바라보며 근무하던 朴씨는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이 나라 최고 어른인 대통령의 머리를 한 번만이라도 깎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1963년 12월17일 오후 2시 중앙청 앞 광장에서 제 5代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朴正熙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오던 날 그는 자신의 후배 이발사와 면도사 13명에게 흰 가운을 입힌 채로 이발관 앞 도로변에 일렬로 도열시켜 朴대통령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朴씨는 이 일이 있은 직후 효자이발관 바로 옆에 다른 이발관을 내 독립했고 이때 예쁘장하게 생긴 유치원생 남자 어린이의 이발을 하게 된다. 이 남자 유치원생이 朴대통령의 외동아들이라는 사실은 두 달여쯤 지난 뒤에야 알았다고 한다. 당시 경복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생이던 志晩 어린이는 이발 도중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바람에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을 부탁한 陸여사   
  
  朴씨는 보름 간격으로 이발소를 찾는 志晩 어린이의 이발을 별 탈 없이 하기 위해 동화책을 읽었고, 이 동화를 志晩 어린이에게 들려 주었다. 어린 손님은 이발사 아저씨가 들려 주는 동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가만히 앉아 있었고 이때를 틈타 이발사 아저씨는 귀한 어린 손님의 이발을 순식간에 마무리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발사 아저씨가 어린 손님에게 주로 들려 준 이야기는 「여우가 사람 잡아 먹는다」는 것 등이었다.
 
  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 1964년 5월10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쯤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잘 차려입은 건장한 사람이 이발관으로 찾아와 『급히 이발을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며 같이 가줄 것을 요청해 밖으로 나가 보니 잉크색 지프차가 이발소 앞에 대기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지프차에 오르자 지프차가 청와대 정문을 거쳐 한 건물 앞에 멈췄고 자신은 건장한 사람을 따라 건물(부속실)로 올라갔다.   
  
  떨려서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朴씨는 부속실로 들어가면서 평소 아침마다 자신의 이발관에 와 머리를 손질하던 李東元(이동원) 비서실장이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 李실장이 1963년 12월 비서실장직을 그만두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방안을 둘러보니 3평 남짓한 방안의 벽에는 조그마한 거울이 걸려 있고 한 가운데에는 낡은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이곳이 이발을 하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
 
  ―그때 朴대통령을 처음 대면하게 되었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대통령의 머리를 제 손으로 한 번만이라도 만져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이제야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그마한 실수라도 할 경우 제 발로 걸어서 나가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지요.
 
  방안에서 한 5분쯤 기다리고 있으니까 자그마한 사람이 하얀 러닝 셔츠 차림으로 혼자서 들어왔습니다. 직감적으로 이분이 朴대통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인사말은 건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저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자네 이름이 뭔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저는 제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이발사입니다」고 말씀드렸지요.
 
  조금 있으니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陸英修 여사께서 방안으로 들어오시면서 저를 보고 「朴선생이시죠. 이발을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지만이에게 재미있는 얘기도 많이 들려 주신다면서요. 이 어르신을 잘 부탁드립니다」고 인사를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朴씨는 이렇게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처음 하게 되었고, 가슴이 떨려 어떻게 이발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을 가누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陸여사가 밖으로 나가 두 개의 양동이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담아와 그 물로 朴대통령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는 것. 陸여사가 손수 물을 떠오는 바람에 더욱 황송했었다고 한다.
 
  朴씨는 자신이 朴대통령의 전용 이발사가 된 배경에는 陸英修 여사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당시 朴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이발사가 여성이어서 陸여사는 여성 이발사를 남자로 교체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志晩 어린이의 이발을 정성스럽게 해주는 朴씨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陸여사는 朴대통령의 女이발사를 교체하기 위해 이날 이 女이발사를 집에서 쉬게 하고 대신 朴씨를 급하게 불러올렸다. 물론 朴대통령에게는 女이발사가 몸이 아파 이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둘러댔다는 것.
 
  朴씨는 이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어 준공한 1969년 이전까지는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관에서 일을 하면서 대통령이 찾을 때마다 청와대로 가 이발을 했다.   
  
  『朴군, 왜 내가 싫은가?』   
  
  ―정식 직원으로 청와대에 상주하면서 이발을 하기 시작한 것은 朴正熙 대통령의 권유 때문이었습니까?
 
  『1969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간이 이발관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15평 규모의 전용 이발관이 마련된 직후 하루는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시기 위해 저를 찾는다는 전갈이 부속실에서 왔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朴대통령께서는 이발을 하시기 위해 이발관으로 들어오셔서는 저를 보고 「朴군, 이제 이발 시설도 갖추고 했으니 왔다갔다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떤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제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대통령께서 재차 「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싫은가?」고 하시더군요. 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죠.
 
  朴대통령께서는 제가 머뭇거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朴군, 왜 내가 싫은가?」고 다시 말씀이 계시길래 제가 「그런 것이 아니고 어르신을 모시려면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제가 청와대 앞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발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방안이 언뜻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린 것이지 결코 어르신을 모시는 것이 싫어서가 아닙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말을 들으신 뒤 朴대통령께서 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시더니 「걱정했잖아, 자네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 줄 알고. 내일 당장 짐을 이곳으로 옮기도록 해」라고 하시면서 의자에 앉으시더군요. 이발을 마치자 「내일 보세」라고 짧은 한 말씀을 남기시고는 집무실로 돌아가셨습니다』
 
  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소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는 그날로 이발관 문을 닫아 버렸다고 한다. 朴씨는 이날부터 19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이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他界하는 날까지 항상 朴대통령 곁에서 생활했었다.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朴대통령은 주로 언제 이발을 했습니까?
 
  『이발을 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이발은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하셨는데, 아침 식사를 하시기 전에 하셨고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물론 國事(국사)로 바쁘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으신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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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대통령께서는 특히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뜨거운 물에 담가 그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른 다음 스킨을 머리에 바르는 것으로 이발을 끝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킨 로션도 비싼 외제 같은 것은 싫어하시고 그 당시 국산 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특정회사의 제품을 좋아하셨습니다. 향기가 마음에 드신다나요.
 
  비서실 내에 전용 이발 공간이 마련되면서 직원도 저를 포함해 남자 이발사 3명, 여자 면도사 2명 등 5명으로 늘렸습니다. 비서실 간부들의 이발을 맡았습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제가 朴대통령의 이발도 하고 면도도 했지만 면도를 하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1968년 초에 대통령께 「어르신, 저는 면도는 못 하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직접 면도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그래 알았네」 하시면서 면도칼을 손에 들고 거울을 보시면서 직접 면도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면도를 못 하겠다고 한 것은 실수가 두려워서입니다. 만약 면도를 하다 朴대통령의 얼굴에 상처라도 냈다고 가정해 보세요. 반창고를 붙인 朴대통령의 얼굴이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어르신의 수염이 일반인들처럼 한쪽 방향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엇갈리게 나 있어 때문에 면도하기가 그만큼 어렵기도 했습니다』
 
  朴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朴正熙 대통령을 「각하」라고 하지 않고 꼭 「어르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朴대통령이 평소에 가까이서 도와 주는 사람들이 「각하」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해 「어르신」이라고 부른 것이 입에 익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朴正熙 대통령께 좋아하신 머리 스타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제가 朴대통령을 모시면서 대통령께서 저에게 머리 스타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제가 하는 대로 맡겨 놓으셨습니다. 다만 머릿기름을 바르는 것과 중간 가르마를 타는 것은 싫어하셨습니다』
 
  ―이발을 하는 도중 朴대통령은 어떤 말씀을 주로 하셨습니까?
 
  『평소에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朴대통령께서 이발관으로 가셨다는 연락이 부속실에서 오면 저희들은 서둘러 이발관을 깨끗이 정돈한 뒤 출입구 안쪽에 도열해서 기다리다 대통령께서 이발관으로 들어오시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朴대통령은 「어 그래, 잘들 있었나」 이 한 마디만 하신 뒤 곧 바로 의자에 앉으십니다. 朴대통령은 의자에 앉을 때 허리를 직각으로 곧추세우신 채로 이발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으셨죠』
 
  ―朴대통령이 이발을 할 때 陸英修 여사도 자주 이발관에 오시곤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陸여사께서 자주 이발관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朴대통령 머리 만져드릴 수건을 적당한 온도의 물에 적셔 저에게 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름에도 절전운동 때문에 이발관에 에어컨을 잘 가동하지 않았는데, 陸여사께서 선풍기를 들고 오셔서 朴대통령에게 틀어 주신 적도 많았습니다』   
  
  『朴대통령은 곱슬머리』   
  
  ―陸英修 여사께서 이발관에 오시면 朴대통령은 陸여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朴대통령께서는 참 무뚝뚝한 분입니다. 陸여사께서 선풍기도 틀어 주시고 하면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는 하셔도 흉이 안 되는데 그런 말씀도 없으십니다. 그냥 묵묵히 앉아 이발만 하시죠.
 
  한 번은 제가 陸여사께 「어르신의 머리가 곱슬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스타일을 내기가 어렵습니다」고 말씀을 건넸더니 陸여사께서 「결혼할 때는 곱슬머리가 아니었는데 나이를 드시면서 곱슬머리로 변하더군요. 참 이상도 하지요」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계시던 朴대통령께서 「곱슬머리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그게 뭐 그리 이상하다고」 하시며 웃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곱슬머리 얘기가 나오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곱슬머리는 보통 머리보다 이발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꾀를 내 대통령의 머리를 야금야금 조금씩 짧게 잘랐습니다. 제가 이발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朴군, 너무 짧게 자르지는 마래이」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하신 기억도 있습니다』
 
  朴씨는 얘기를 하던 도중 한 가지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소개해 주었다. 신축한 비서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66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때는 전용 이발 공간이 갖추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머리 감을 때 사용하는 샤워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더운물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이날도 陸여사가 더운물과 찬물을 양동이에 받아와 세면대에 담아 놓았는데 머리를 감던 중 朴대통령이 비눗물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허리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타일이 부착돼 있지 않은데다 세면대도 낮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는 것.
 
  朴씨는 당시 이 나라 최고 권력자가 이처럼 낡은 시설에서 이발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朴正熙 대통령의 머리 생김새가 이상한 곳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朴대통령의 머리는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이마도 그렇게 잘생기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시다시피 朴대통령의 귀가 특히 잘 생기셨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뒤에서 보면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양쪽 귀의 모양이 똑같았죠. 보통사람들은 양쪽 귀의 모양이 똑같은 경우가 드물죠.
 
  그리고 귀 윗부분의 머리를 자를 때에도 가위가 귀에 닿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난 부분과 귀의 구분이 뚜렷했습니다』
 
  ―朴대통령께서 이발관을 찾으실 때 정장 차림으로 옵니까?
 
  『아닙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하얀 러닝 셔츠 차림에다 허리띠를 맨 바지의 윗부분을 한 번 아래로 접고 오십니다. 바지의 허리 부분이 헐렁할 때 허리띠를 맨 부분을 한 번 접으면 어느 정도 맞지 않습니까?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대통령이 구멍 난 러닝 셔츠를 입고 계셨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기자는 갑작스럽게 朴씨로부터 逆질문을 받는 바람에 조금은 당황스러워 「그냥 계속하시죠」라고 넘겼다)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어르신, 이제 허리띠를 좀 바꾸시지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이 사람아, 이것도 아주 편해. 몇 년은 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라며 웃으시더군요』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朴正熙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상관이었습니까?
 
  『朴대통령은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부속실로 하여금 이발하러 가겠다는 연락을 하도록 한 뒤 5분 정도만 늦어질 것 같아도 직접 이발관에 오셔서 「朴군,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래이」 하시면서 양해를 구하십니다.
 
  한 번은 연락을 받은 뒤 40여 분 만에 이발을 했는데, 이때에도 朴대통령께서 중간에 이발관으로 오셔서 「미안해서 우짜노. 朴군, 일 마치고 바로 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 하시더군요. 도리어 제가 미안해 「어르신 저는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각하시지 말고 충분히 집무 보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래 고맙대이」라며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그리고 원래 나이가 들면 방귀나 트림이 본인도 모르게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朴대통령을 모시면서 그분이 방귀나 트림을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습니까?
 
  『京釜고속도로가 개통된 직후인 1970년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때 이발관에 카세트를 한 대 구입했었습니다. 평소 朴대통령은 가수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씨 등의 노래를 즐겨 들으셨습니다.
 
  그날 대통령께서 이발관에 오셨을 때 제가 남인수의 노래를 틀었습니다. 이발을 하던 중 남인수가 부른 「경부선 열차」라는 제목의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이 노래 가사는 부산에서 서울로 오기 위해서는 삼랑진과 대구, 대전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러다 보니 며칠이 걸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朴대통령께서 이 노래를 가만히 듣고 계시더니만 저에게 「朴군, 이제 고속버스 타면 다섯 시간이면 부산에서 서울로 오고 하루에도 서울과 부산을 왔다가 갈 수 있는데 이 노래를 들으니 한 달도 더 걸리겠네」라고 농담을 하시며 웃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당시 또 朴대통령께서 「황성옛터」라는 노래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하루는 제가 이 노래의 가사를 적어서 대통령께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朴대통령께서 가사를 보시더니 「朴군, 황성옛터의 「황」자가 틀렸네. 이 때는 임금 皇(황)이 아니라 황폐하다는 荒(황)을 써야 맞지. 말이 나왔으니 자네가 한 번 불러 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물론 저는 노래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청을 받들지는 못했습니다』
 
  朴씨는 이 말을 하면서 두 눈을 지그시 내려감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朴正熙 대통령의 전용 이발사는 계속 朴대통령과의 기억을 되살려 나갔다.
 
  『1973년 겨울 어느 날 오전으로 기억됩니다. 부속실에서 朴대통령께서 본관에서 이발을 하시면 좋겠다고 하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통령께서 가끔 이발관이 아닌 본관 집무실 옆방에서 드라이 등 간단한 머리 손질은 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제가 여직원과 함께 가운을 입고 본관으로 올라갔죠. 朴대통령께서 저희들을 보시자 「朴군,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꼭 얇은 가운을 입어야 하나? 격식 따지지 말고 얼른 가서 두툼한 스웨터 같은 옷을 입고 와」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운만을 입고 여직원에게는 가운 위에 겨울 스웨터를 입게 하고는 다시 본관으로 올라갔죠. 대통령께서 겨울 스웨터를 차려입은 여직원을 보시더니만 「그래, 이렇게 입으니 얼마나 좋아. 이제 안 춥재」하시며 여직원의 어깨를 두드리시고 이 직원의 어깨에 묻어 있던 머리카락을 털어내 주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朴대통령을 보면 찬바람이 분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朴대통령만큼 인정이 넘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朴씨는 1973년 4월 朴대통령을 모시고 청와대 全직원들이 안양 근처로 모내기 지원을 나갔을 때의 기억도 소개해 주었다. 
    
  『술은 역시 막걸리가 최고야!』   
  
  이날 朴대통령은 오전에 모내기를 한 뒤 점심 시간에 막걸리를 여러 잔 마시시고는 직원들보다 먼저 청와대로 돌아가 자신을 찾았다고 한다. 서둘러 청와대로 돌아온 자신을 보고 朴대통령은 『朴군, 막걸리 한 잔 했나? 술이 참 맛있지. 역시 논바닥에서 퍼더버리고 앉아 먹는 막걸리가 최고야』라고 하더라는 것.
 
  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한 분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한 가지 얘기를 더 들려 주었다. 면도사로 근무하던 박순옥씨에 관한 얘기였다.
 
  1974년 봄 면도사로 근무하던 박순옥 씨가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이 보고를 들은 朴대통령이 어느 날 본관으로 자신과 박순옥씨를 부르더라는 것. 둘이서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으로 올라가자 朴대통령이 『朴군, 순옥이가 곧 시집을 간다고 하니 우리 오늘 사진이나 같이 찍자』고 하더라는 것.
 
  朴대통령이 그러면서 사진기를 서랍에서 끄집어 내 이를 朴씨에게 주고 박순옥씨의 어깨를 감싼 채 햇볕이 잘 드는 창가로 가 포즈를 취했다. 朴대통령도 사진기를 달라고 해 朴씨와 박순옥씨에게 『창가로 다시 가 포즈를 취해. 이번에는 내가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줄게』라고 하시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고 한다.
 
  집무실에서 사진을 찍으니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사진이 흐리게 나올 것을 염려한 朴대통령은 『이왕이면 앞마당 잔디밭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찍자』며 두 사람을 잔디밭으로 데려 갔고 서로 두 명씩 짝을 이뤄 사진을 찍었다. 朴대통령은 세 명이서 같이 사진을 찍자며 부속실 직원을 앞마당으로 나오게 해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는 것.
 
  며칠 후 朴대통령이 불러 박순옥씨와 함께 본관 집무실로 가니 대통령이 창틀에 사진을 펴놓고 『이리 와 봐. 지난번 사진이 아주 잘 나왔어. 순옥아, 네가 시집을 가는데 내가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사진이라도 추억으로 가지고 가라』며 사진을 순옥씨에게 건네 주었다고 한다. 朴씨에게도 물론 사진을 건네 주었지만 자신은 그후 이사를 다니면서 이 사진을 잃어버렸다고 애통해 했다.
 
  이때 朴대통령은 『사진은 너거들에게 주지만 필름은 내가 갖는대이』 하시면서 웃더라는 것이다. 필름은 아마 보안상 외부에 유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게 朴씨의 설명이다.   
  
  『이 애가 맏상주인데 이발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陸英修 여사가 1974년 8월15일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날도 朴正熙 대통령이 이발을 했습니까?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날 朴대통령의 머리를 만져 드리는 도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대통령의 머리를 빗겨 드릴 빗이 바닥에 떨어져 두 동강이가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 제가 사용하던 빗은 평소 바닥에 떨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괜한 말씀을 드려 대통령의 심기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부러진 빗을 발로 의자 밑으로 밀어넣고 계속 머리를 만져 드렸습니다.
 
  그날도 머리를 자르지는 않고 다만 물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빗으로 가지런히 정리만 해드렸습니다. 陸여사께서 文世光의 총탄에 맞으신 그날 저녁 저는 사건현장인 국립극장으로 가 평소 알고 지내던 이 극장 공연계장 이재문씨를 만났습니다. 李계장의 안내로 극장 안에 들어가 보니 방청석 앞쪽에 앉아 있다가 경호원의 응사에 맞아 숨진 학생이 흘린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李계장이 저에게 묘한 꿈 얘기를 하더군요.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꿈을 꾸었는데 陸여사께서 괴한의 총에 맞는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李계장은 자신의 꿈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을 줄 알았으면 국립극장 간부들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했을 것이라며 몹시 안타까워하더라는 것이다.
 
  ―陸英修 여사가 돌아가신 직후 朴正熙 대통령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朴대통령께서는 아침과 저녁 두 차례 志晩군과 槿惠(근혜)ㆍ槿英(근영)씨 등 자녀들을 데리고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아팠던 것은 국민장으로 치러진 陸여사의 장례식 당일(1974년 8월19일) 아침 朴대통령의 머리를 만져 드리는데 눈물을 참지 못해 펑펑 울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두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 앞에 있는 거울을 보니까 朴대통령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朴대통령께서 志晩군을 부르시더군요. 당시 중학생이던 志晩군이 올라오니까 대통령께서 저를 보고 「임자, 오늘이 이 애 애미의 출상이 아닌가? 이 애가 맏상주인데 이발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잘 좀 해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시더니 朴대통령께서 志晩군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어릴 때는 예쁘기만 하더니 크고 나니 (대하기가) 어렵구나」라고 하시면서 이발관을 나서셨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朴씨는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애써 참으려는 듯 청와대가 있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통령 그만 두고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陸英修 여사가 돌아가신 뒤 朴正熙 대통령은 외로움을 느끼시지는 않았습니까?
 
  『평소에도 말씀이 없으셨지만 陸여사께서 돌아가신 뒤 더욱 말씀이 없으시고 갑자기 많이 늙으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1976년부터 청와대 본관 앞 구석진 잔디밭에 펜스를 만들어 깃털이 금빛색을 띠는 닭의 일종인 金鷄(금계)를 키우셨습니다. 아마 외로운 마음에 금계를 키우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루는 이발이 끝나자 대통령께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무시고는 잔디밭 쪽을 바라보시다 참새 수십 마리가 날아와 펜스 주위를 맴돌다 이 중 몇 마리가 펜스 안에 넣어둔 먹이를 먹기 위해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자 「朴군, 저거 보래이. 역시 용기 있는 놈이 맛있는 먹이를 먹는구먼」 하시며 너털웃음을 지으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1977년 여름에는 朴대통령께서 이발을 마치신 뒤 돌아가신 陸여사가 생각나셨는지 먼 하늘을 쳐다보시면서 「나도 이제 대통령 그만두고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집을 처음 살 때 내자(陸여사)와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었지. 집안 살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많이 마련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라고.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키워 나가는 것이 삶의 재미지. 朴군, 자네도 욕심내지 말고 차근차근 살아」 하시면서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朴正熙 대통령께서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신 날에도 이발을 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날 오전 9시쯤 이발을 하셨습니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지는 않았고 물수건으로 머리를 닦아낸 뒤 스킨을 바르고는 빗질만 해드렸습니다. 제가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래, 갔다와서 보자구」하시더군요. 이 한 마디가 제가 이승에서 朴대통령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朴대통령께서 이발관 직원들에게 용돈도 자주 주시곤 하셨는지요.
 
  『朴대통령께서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저희 직원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보통 20만 원 정도였습니다. 10만 원권 수표를 두 장 주실 경우도 있고 현금으로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이 돈은 직원들에게 똑 같이 나눠 주고 朴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면 「그래, 잘했다」고 말씀하셨죠』   
  
  全斗煥 추억   
  
  朴씨는 崔圭夏ㆍ全斗煥ㆍ盧泰愚 등 전직 대통령의 이발도 했다고 한다. 崔 前 대통령은 청와대 특보시절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을 때 몇 번 이발을 했다는 것. 崔 前 대통령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발관을 찾았으며 평소에는 자신이 직접 머리를 감고 빗질을 했다고 한다.
 
  全 前 대통령과 盧 前 대통령도 청와대 경호실 차장보 시절 가끔 이발을 하기 위해 이발관을 찾았었다고 한다. 全차장보는 이발관을 찾을 때마다 지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술이나 한 잔씩 해라』며 10만 원 정도씩 용돈을 주었다.
 
  朴씨는 1980년 9월 全斗煥 장군이 제 11代 대통령에 취임해 청와대로 들어오기 전날 짐을 챙겨 청와대를 나왔다. 朴씨는 이때 청와대를 나온 뒤로 지금까지 한 번도 청와대 근처를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朴正熙 대통령이 없는 청와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朴씨는 인터뷰가 끝날 때쯤 朴正熙 대통령의 왼쪽 손바닥에 임금 「王」 字의 손금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고 했다.
 
  『흔히 「임금은 하늘이 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손바닥의 손금만을 볼 때 朴正熙 대통령은 분명 하늘이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지도자로 낙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등록일 : 2014-10-25 10:09   |  수정일 : 2014-10-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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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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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호  ( 2014-11-02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6
효자동이발사였구나.
손창호  ( 2014-11-02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4
노사모영화 그때 그사람하고 분위기가 정반대이군요. 물론, 서울아동유괴살인협박6개월방송사건 이후로 금자씨 재외하고 국산영화 단 한편도 안봐서 더 많이는 알 수 없지만....
유인광  ( 2014-10-28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6
운영자야.

너무하는거 아냐?
이동석이를 향해 위진남북조(오호십륙44509;)의 역사서나 이를 만화로 쉽게 설명한 고우영 선생의 十八史略을 읽어보고 나서 나에게 덤비라는 장문의 글을 썼더니
十八자 들어갔다고 단숨에 날려버리냐?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0 )  찬성 : 1 반대 : 7
고우영 선생이 쓴 박정희 반화를 읽어보라는 것은 너가 박정희에 대해 가진 셍각과 그 만화의 내용이 같기 때문이 아니냐? 고우영선생이 쓴 박정희 만화에 박정희가 18년 집권하면서 친일파와 일제의 잔재들을 없앳다느 이야기가 있냐? 없지! 또 박정희가 컬러텔레비전방송을 허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냐? 없지! 박정희의 잘못은 분명한데도 그저 박정희를 찬양하는 너 유인광은 한심한 사람이다. 박정희의 행적은 분명하고 박정희 시대를 산 사람도 많은데 무슨 엉뚱한 고우영선생의 박정희 만화타령이냐?
이승재  ( 2014-10-28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4
이발사의 인생 중 가장 소중한 부분을 이야기 해주신 것 고맙고, 박 정희 대통령의 소소한 일상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분 하늘에서 낸 인물 맞고요 훌륭한 분 맞습니다, 유신만 하지 않았더라도 ...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분이었는데...... 그 부분만 아쉬울 뿐이지요.....
정승원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0
저도 중2학년 한글날 여주영릉에서 한글날행사때 스카우트대표로두명이박정희대통령옆에서 기념식을 갖저다 끝나고 가시면서 점식은 어디서먹는냐 해서 학교에서 빵과우유를준단고해던니 누구한테 시켜서 도시락을 보내왔다
나에게는 영광이였다 친구랑 맛이게먹던것이 생각나게 하는기사 입니다.
이동석  ( 2014-10-28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9
박정희의 잘못을 철저히 부정하고 그저 박정희를 우상화하고 미화하기만 하는 바보 얼간이들은 박정희가 종북빨갱이의 괴수 김대중을 죽이지 않은 잘못으로 김대중과 노무현의 종북 빨갱이 정권이 10년동안 집권하여 온 나라를 빨갱이들이 마구 날뛰게 만들어 그 악영향이 한국을 갉아먹는 사태가 일어난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동석  ( 2014-10-28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14
박정희의 큰 잘못은 친일행위를 하고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애지 않은 것 말고도 종북빨갱이의 괴수 김대중을 죽이지 않은 것과 한국의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막은 것이다.
철저한 반공정책을 썼던 박정희는 종북빨갱이의 괴수이며 박정희의 큰 정적인 김대중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하여 죽일 수 있었는데도 박정희와 전두환이 김대중을 죽이지 않아 김대중이 온갖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대통령이 되어 종북 빨갱이 정권이 10년 동안 득세하여 온갖 종북빨갱이짓을 하여 종북빨갱이들이 마구 날뛰어 나라의 상황이 매우 나빠진 것은 매우 어이가 없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악질 종북빨갱이의 두목인 김대중을 죽였다면 한국의 상황은 매우 좋아져 이미 남북한이 남한 주도로 통일되었을것이다.
박정희의 잘못과는 반대로 이승만이 김대중과 같은 악질 종북빨갱이이며 이승만의 정적이였던 악질종북빨갱이의 원조인 조봉암을 죽인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엿다. 이승만이 조봉암을 죽이지 않았다면 조봉암은 김대중과 같이 온갖 종북 빨갱이 짓을 하여 나라를 북한 빨갱이들에게 주엇을 것이다. 이승만이 잘한 정책은 철저한 반공정책과 반공정책에 입각하여 종북빨갱이의 원조인 조봉암을 죽여 빨갱이들이 만드는 나라의 뒷탈을 없앤 것이다.
이승만과는 반대로 조봉암의 후예인 김대중을 죽이지 않아은 뒷탈이 생긴 것은 것은 막정희의 잘못들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의 또 다른 큰 잘못은 컬려텔레비전방송이 사치를 부추겨 국민들 사이에 위하감을 생기게 한다는 어이없는 구실로 한국에서 컬러탤레비전 방송을 금지하고 흑백텔레비전 방송이 계속되게 한 것이다. 박정희가 대통령이였던 1974년 1월애 아남전자가 한국 역사상 처움으로 컬려탤래비전을 만들었으나 박정희 정권의 어이없는 컬러텔레비전방송 금지정책으로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끝날때까지 컬러탤레비전 방송이 시행되지 못했다. 박정희가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금지하여 우리나라는 박정희가 죽은 뒤인 1980년 12월에여 세계에서 매우 늦게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아니라 정권이 컬러켈레비전방송을 금지라여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행돠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심지어는 악독한 공산독재체제인 북한에서도 컬러텔레비전방송은 남한보더 6년 빠른 1974년애 시작되었다. 남북한의 경쟁에서 남한의 우위를 강조햇던 반공주의자 박정희가 북한도 남한보다 빨리 시작한 컬러방송을 금지한 것은 매우 이해할 수 없는 큰 잘못들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 정권이 계속되었으면 한국의 컬러텔레비전방송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답글보이기  유인광  ( 2014-10-28 )  찬성 : 2 반대 : 2
동석아!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께서 미국이나 일본(육사) 유학을 안하시고 한학이나 공부하시다가
중국에 들어가 일본군을 향해 크게는 육혈포를 쏘아대거나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작게는 화염병이나 돌팔매질이나 하시다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의 승전에 의해 해방된 한반도에 들어오셨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그 분들이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고 가꾸실 수 있었겠니?
그 분들이 일제 치하에서 관리나 군대나 경찰직에 종사하며 어께너머로나마 국가나 조직의 경영을 배운 지식인들을 다 숙청하셨다고 하자. 아니 이동석이 네가 이승만이 되어 대한민국을 세우고 박정희가 되어 세계 최빈국인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치자.
너는
도대체 누구를 대리고 대한민국을 세우고 누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추구할래?
그분들의 그러한 선택의 결과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한학이나 익히고 중국에 들어가 권총질이나 일삼던 네가 일제 참여자들을 다 숙청하고 남은 인물들을 골라 쓰며 일굴 수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날 위상이 어떠할 지를 설명좀 해봐라.
제발 좀.
친일파를 척결하고 그 대신 누구와 국가를 경영했어야만 했는 지를 콕집어서 말해보라우.
척결했어야만 했다고만 말하지 말고. 김구도 아니고 김규식이도 아니고 도대체 어느 누가 지도자가 되어 누구와 어떻게 대한민국을 세우고 선진화시켰어야 했는 지를 말하라우.
씨앙! 콱! 곁에 있으면 대그빡을 박치기로 박살을 내겠구먼!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1 )  찬성 : 2 반대 : 1
네가 쓴 글의 뜻과 전혀 다르게 이승만이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였으면 누가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고 박정희가 아니였으면 누가 한국의 경제를 일으켰겠느냐는 등의 엉뚱한 이승만 박정희 우상화글만 글만 개속 쓰는 유인관 너는 아주 한심한 바보다.
전달석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1
자원외교 한답시고...국민 혈세를 수십조 세계에다 날려버린..역사상 가장 무능했고 부패했던 이명박은 박정희 발 뒷꿈치도 못따라가겠다... 박정희만 생각하면..엉엉∼∼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8 )  찬성 : 1 반대 : 2
김대중과 노무현과 이명박은 대통령의 권력을 사용하여 종북 빨갱이짓만 하여 나라를 매우 위태롭게 만들어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안되었던 쓰레기 인간 3종새트였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었던 세 놈들이 대통령을 한 후유증이 한국을 매우 갉아먹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박근혜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자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김대중노무현 아명박 쓰레기 3종새트 인간들이 저질렀던 종북질을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어이가 없다.
      답글보이기  유인광  ( 2014-10-28 )  찬성 : 2 반대 : 1
여기 이동석이는 김영삼의 외손쯤 되나?
말하는 뽄세가 영락없는 헨체리 말투네? 황태자질 해처먹든...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0 )  찬성 : 0 반대 : 1
이승만 박정희 광신도인 유인광 너는 김대중 광신도들과 다를것이 없는 한심한 인간이다.
장중수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1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신 그날 하늘을 죽는날까지 잊지는 못할겁니다 저는 청와대 부근 효자동에 살앗엇는데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엇습니다, 하늘이 붉은빛으로 온통 물들어잇엇는데 아직도 그때의 하늘 기억이 생생 합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0 )  찬성 : 0 반대 : 4
박정희는 공적으로는 친일행위를 하고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를 없애지 않은 잘못과 사적으로는 술과 여자와 담배를 좋아하여 여자문제가 많았고 자주 술을 마시는 비도덕적인 잘못을 저질렀지만 육영수 여사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전혀 흠이 없고 훌륭한 일만 하신 훌륭한 분입니다. 그래서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이른바 민주화투사라는 종북빨갱이들도 육영수 여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육영수여사느 훌륭한 국모이셧습니다. 훌륭한 육영수여사가 어이없게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살앗엇는데가 아니고 살았었는데이고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가 아니고 중학교 2학년이이었습니다 입니다. ㅆ받침을 ㅅ맏침으로 쓰지 마세요.
김규환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2
여기에 댓글을 다는 것이야 뭐라고 하겠소마는 이동석이라는 사람은 앞으로 안 기어들어오면 좋겠네. 생각과 사상이 틀리면 가만히 있지 X자식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7 )  찬성 : 1 반대 : 3
내가 중학교 2학년때 학교에 너 같은 김규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 있었는데 그 김규환 녀석은 매우 공부를 못해 학교성적은 바닥이였고 늘 말썽을 피워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늘 야단을 맞고 매를 맞았다. 나를 비방하고 욕을 하는 내용이 있는 김규환 네놈의 댓글을 보니 나의 중학교 2학년때 선생님들의 지독한 골치덩어리였던 김규환 녀석이 생각난다. 나를 비방하는 댓글을 쓴 김규환 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들의 지독한 골칫거리엿던 김규환 녀석과 같은 한심한 인간이다.
도현경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0
오랫만에 인간적이고 진솔한 글을 보니 진실은 살아 있구나 오늘 패널 분들을 보니 조금더 국민인식과 현실을 보는 사람들이 나와야지 국민들 수준보다 못한 패널을 내세워서 뭐하자는 것인지 진실은 왜면되고 지금 패거리 정치를 하자는 것인지 바른소리하는 정치인을 언론이 죽이고 있어니 어찌 현실을 직시 못하고 있는지 현실은 정치인의 패거리가 아니고 나라발전을 위해서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하는 것을 듣고 싶고 하는데 진실은 왜면하고 엉뚱한 패널이 나와서 주객이 전도 되는 말을 하고 있으니 젊은 애들이 무엇을 믿고 통일을 생각하고 할지 한심한 언론인들도 많다 국민인식이 더높아서 이제는 언론인들도 자라는 세대를 위해서 진실만 말하길 바란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8 )  찬성 : 0 반대 : 1
위애 글에 나온 박정희 찬양자는 박정희의 잘못은 철저하게 숨기가나 변명하고 그저 박정희를 찬양하기만하는 댓글을 쓴 바보들과 같은 매우 역거운 사람입니다.
      답글보이기  박덕식  ( 2014-10-27 )  찬성 : 2 반대 : 0
이동석은 아마 현재 실업자일거야 낙오된자들이 불평이 많거던...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0 )  찬성 : 0 반대 : 1
덕식아 된장을 똥으로 생각하고 사는 너가 바보라는 것을 너는 모른다.
이봉길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29 반대 : 3
정말 휼륭한 지도자 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다시한번 휼륭한 지도자가 나올수 있을까요
존경하는 대통령이자 마음의 지도자 이십니다,
저승에서나마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조윤래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2
차분히 잘 읽었습니다. 새삼스레 그분이 더욱 그리워 지네요.
이경우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44 반대 : 2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한민족역사에서 으뜸이요 해서 조금만보면
첫째 정신계몽이요
둘째 잘 살아보세요
세째 자주국방이요
네째 경제부흥 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것이 유를 크게하는것보다 몇십배 힘듭니다
박대통령이 해놓으신것 보면 대한민국의 부국강국을위한 터를확실히
닦았고 이를 발전시켜서 열매를 못보시고 오늘날 우리들이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것이라고 생각되며 그시절은 미래가 있었고 꿈도많았고 열심이었고
훌륭한 지도자가있었기에 우리에게는 다 가능햇다고 봅니다
우리민족은 지도자가 바로섯을때 발전및 융성해51275;다고 봅니다
하여 이런 지도자가 우리민족앞에 다시 생환했으면 좋겠읍니다.
있는것 퍼주는것은 쉽고 말로는 도덕군자행세 누군들 못하겠읍니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며 몸소근검절약 부정축재 없는
18년 고난의 지도자 박대통령을 지금도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지도자로
본받아야 할것으로 사료되는데 머리만있는 중생들 공부좀 하시지요
지금은 자주국방이 우선시 되어야하는데 대책들이 미진하지 않읍니까,
만주벌판을 52287;아올 지도자를 꿈꾸어 봅시다
남진수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1
모두에게 잘한일,못한일이 있다. 그것도 구분 못하고 민족에 영광을 안겨주신 분의 제사날에 못났다고 떠들어 대는, 조금 부족한 이들,민주 xx 하고 있네. 몽둥이 가지고 조패주고 싶다. 기본적으로 님을 생각 하며 보내야 할 날이기에, 여러분들과 함께 같은 마음을 가진다. 나 일본좋아 하지 않았었다.해외 나와서 일본인들을 만나 상대 하면서,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인정 하는 이유를 바로 알아야한다. 우리에게는 상처를 주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상처를 받기 원하는가? 그들보다 더 배우고, 더 매너가 좋아 지고, 그들의 좋은점이 뭔가를 떠들어 보라. 친일 해야 하고, 친중 해야한다. 우리 스스로들 삐딱한 사상에서 벚어 나자..훌륭한 선배들의 업적을 더 가치있게 발전 시킬 수 있도록 노력 하자. 중남미 대농으로 자리한 일본인들..아프리카 곳곳에 퍼져 나가는 화교들의 역량...우물안에서 민주 민주 나 따져 되지말고, 북한 처럼 가둬 두고 떠들지말고 넓은 세계로 나가라...벗어나라..한민족이여...지금 보다 더 나가야 한다....
김석배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59
박정희가 장준하선생처럼 일본군에서 탈출해 항일전투라도 했단말인가, 일본이 패망하지 않고 승승장구했더라면 박정희는 천황에게 혈서맹세한대로 별달고 충성을 다 했을 거 아닌가.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갑론을박은 차치하고 왜 멀쩡한 헌법 뜯어고쳐 삼선개헌으로 또 해 먹고 왜 그것마져 다시 뜯어고쳐 유신헌법으로 죽을 때까지 종신집권 했는가. 웃기지 마라, 악마인들 조금의 인간적인 면이야 없을까.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이도 조선일보가 작업들어가면 영웅이 될 수 있다.
      답글보이기  도현경  ( 2014-10-27 )  찬성 : 0 반대 : 1
역사공부를 좀더 자세히 하세요 박정희와 동명이인이 있다고 나왔어요 나이도 열살 많은 사람인데 독립군 쫒는 그야 말로 이름만 같지 시대도 맞지않고 불과 2년동안 만주에 근무 하시면서 얼마나 친일을 했다고 그렇게 역사를 오도하고 계십니까.(기억속의 만주국1권)그 책속에 있어요
김제은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5 반대 : 3
겉보리 두섬도 쌓아놓고 살지못할 조맹이 같은 자들. 이승만대통령이 선택해 정착시킨 민주주의정체속에서 자유를 누리며, 박정희대통령이 영도한 경제개발의 富덕에 뱃살늘리며 살다보니 굶주림이 어떤 고통인지도 모르는 것들. 글케 두분을 헐46913;지말고 정은이 밑으로 가봐. 꼭 맛을봐야만 아는가?
자유없는 삶을, 배고푼 고통을......
백민현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0
1979년..35년...벌써 그리되었군요...
빈소가 마련된 충북도청을 찾아가 한참을 엎드려 울었던 기억이..벌써 35년이나 지났네요..
      답글보이기  유인광  ( 2014-10-26 )  찬성 : 1 반대 : 3
백민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는 그 당시 청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요.
부끄럽지만 그 당시 저는 아래 이동석이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겠구나. 지화자! 라고 좋아라 했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김재섭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24 반대 : 1
박정희대통령의 업적은 필설로는 곤란 할 정도이다
김형수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
정말 본받고싶은 분입니다, 존경합니다, 또다시 이런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서 우리나라를 또한번 도약시켜 주셨으면 좋으련만,,
허순호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2
사람다운 사람 박정희 전 대통령님 존경스러운 인물입니다.
박희순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
그립습니다
보구 싶습니다
감사 합니다
몇일 44407;고 먹을것 도둑질 안할 사람없다구 하지요
그시절 18년 살아왔지만 불편한 기억 거이 없습니다
이동석  ( 2014-10-27 )  답글보이기 찬성 : 25 반대 : 83
마치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같이 박정희의 잘못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눈을 감고 그저 박정희 찬양일색의 글을 쓰고 박정희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한 나의 댓글을 반대한 인간들은 미개하고 한심하고 단순한 속성을 가진 바보들이다.
      답글보이기  김동조  ( 2014-10-26 )  찬성 : 6 반대 : 1
그런데 북에서는 김일성 일가 비판하면 처형당하지만 여기서는 당신과 같이 박정희 비난해도 처형당하지는 않지. 그러니 자네가 마음대로 비난하겠지..
      답글보이기  전봉우  ( 2014-10-26 )  찬성 : 9 반대 : 7
박정희 전대통령도 인간인지라 잘못되었던 부분도 많았었지만 역사적으로 평가할 때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 중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등으로 종합평가에서 박정희 전대통령만 한분이 없습니다. 김일성 집안의 세습독재에 비하면 박정희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답글보이기  박마이크  ( 2014-10-26 )  찬성 : 6 반대 : 2
이동석씨, 댁을 포함해서 모든 한국인들은 박정희대통령에게 평생 못값을 큰 빚을 지고 있소. 이걸 부정하는 자는 배은망덕한 패륜아 요.
      답글보이기  유인광  ( 2014-10-26 )  찬성 : 5 반대 : 1
동석아. 일단은 잘한 것 부터 알리고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우선 아니겠나?
잘못한 것을 찾아내 고치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
하지만 일의 순서상 성공한 사례와 잘 한 것을 찾아내 인정하고 확대보급시키는 것이 우선이란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한민국 부흥은 전세계 모든 후진국가의 귀감이고 그들을 선진국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교본과 같단다.
김구의 방식으로는 세계 어떤 저개발 국가도 오늘의 대한민국과 비슷한 경지로 오를 수 없거덩!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7 )  찬성 : 1 반대 : 3
동조야! 너 같은 박정희 광신자들이 박정희의 잘못을 마구 비난하는 나를 마구 비난하고 욕하는 댓글을 쓰는 짓은 북한 빨갱이드들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짓과 같은 것이다. 김동조 너 같은 박정희광신자들은 북한의 빨갱이들이 하는 짓을 한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7 )  찬성 : 0 반대 : 1
그저 박정희 우상화와 미화에 미친 유인광 너의 의식에 무슨 박정희의 잘못이 보이겠냐? 그저 박정희 귀신이 가득한 너는 한심한 바보라 옭고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저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과 장점만 본다. 그리고 엉뚱하게 무슨 난데없는 김구타령이냐? 윤인광 너는 박정희와 이승만을 좋아하는 것만큼 김구를 싫어한다는것을 나도 다 아니 쓸데없이 김구타령을 하지 말아라.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7 )  찬성 : 0 반대 : 1
박마이크 이 바보야! 삐딱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너다. 나는 분명히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고 박정희에 대한 사실을 말했는대도 네가 삐딱한 성격을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느 박마이크 너느 참으로 한심하 인간이다. 사실을 거짓으로 생각하는 박마이크 너는 역사를 왜곡하ㄴ느 알본의 극우세력들과 같은 인간이다. 너 같은 친일의식을 가진 박정희 광신자들이 마구 날뛰는 한국의 상황은 친일파와 일본의 잔재를 없애지 않은 이승만의 잘못으로 생긴 악영향이 매우 큼을 보여준다. 박마이크 너같은 박정희 광신자들에게는 박정희의 우상화외 미화만이 참이고 박정희의 잘못은 모두 거짓이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0 )  찬성 : 0 반대 : 1
박정희의 잘못에 대헤서는 완전히 눈을 감고 박정희를 100퍼센트 완전한 사람으로 우상화하는 사람즐이 한심한것입니다.
임대호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45 반대 : 4
10.26 오늘은 민족의 성군이신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날입니다.우리모두 가정에 조기를 게양토록하는 운동을 전개합시다. 오늘 하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날이었음 합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6 )  찬성 : 1 반대 : 17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인 이또히로부미에게 권총을 쏘아 죽인 날이다. 일본 침략주의의 두목 이또히로부미와 우리나라를 망쳐놓은 침략국가인 제국주의 일본의 충실한 일본군장교 출신 박정희가 죽은 날이 70년의 차이를 두고 같다는 것은 매우 희안하다. 그래서 박정희가 김재규가 쏜 권총에 맞아죽자 당시 한국에 주재했던 일본대사는 최후의 황군이 죽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답글보이기  이영재  ( 2014-10-26 )  찬성 : 2 반대 : 1
이동석씨
일본대사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든가요 ?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책임지지 못할말을 쉽게하지말기를 바랍니다.
      답글보이기  박마이크  ( 2014-10-26 )  찬성 : 3 반대 : 1
이동석, 그렇게 삐딱하게 틀어진 사악한 심성으로 거짓말해대면 본인의 정신이 황폐해 진다. 도대체 거짓말도 그럴듯해야지, 유치한 헛소리를 하는 꼴을 보면 정체가 뭔지 알만 하다.
      답글보이기  유인광  ( 2014-10-26 )  찬성 : 6 반대 : 1
동석아.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뜻깊은 반일 투쟁이라고 하여
이승만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이나
박정희에 의한 산업화 및 민주화의 완성이 나쁜 짓이 될 수는 없는 거란다.
안중근의 의거는 작은 분발이고 이승만에 의한 대한민국 건국은 코ㅔ거이고
박정희에 의한 선업화 및 민주와의 완결은 역사의 궤적을 바꾼 성인적 위업일 수는 있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거덩!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7 )  찬성 : 0 반대 : 0
독립운동을 마적질이라고 생각하는 유인광 네놈이 안중근의사의 의거를 찬양하는 것같은 글을 쓴 것이 우습다. 친일파인 이승만과 박정희 광신도인 너는 안중근의사의 의거는 대수롭지 않은 행동일뿐이다. 너가 말한 민주화라는 것은 박정희를 싫어하는 종북빨갱이 김대중패거리들이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기 위해서 쓰는 단어일 뿐이다. 받정희의 정적들이 박정희르 비난하기 위해서 50043;던 민주화라는 말을 막정희 광신자인 너가 쓰는 것은 지독한 모순이다. 그리고 쾌거이지 코ㅔ거가 뭐냐? 이상한 글자나 쓰고 그저 왜곡된 생각을 가진 너가 매우 한심하다.
유인광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53 반대 : 2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에
이승만과 같은 선각자(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과는 비교가 안될)와
박정희와 같은 실사구시/무실역행의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은
환타지입니다.
이차대전 이후 독립된 백여개 나라 중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빨리 민주주의를 안착시키고 선진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준비된 지도자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김일성이나 김대중이는 저 두 분의 발톱의 때만큼도 못되는 존재들인 것이지요.
아-하∼
대한민국!.아-하∼ 나의 조국!
유인광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35 반대 : 5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대한민국에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신의 축복이다. 조상의 음덕이다. 하늘의 보우하심이다.

이승만은 선지자이십니다.
수천년 이어져 내려온 왕조를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일거에 민주로 바꾼 위대한 리더입니다. 조갑제님의 글에 의하면
대한제국 신민으로써 고종이라는 황제의 권위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왕국을 폐하고 민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셨던 그리하여 그 죄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혁명가라고 합니다.
고조선 이래 지금까지 이 정도의 혁명적 사상을 지니고 실천하셨던 분이 또 있나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으로 건너거
그들의 심장부에서 최고의 지혜와 사사와 리더십을 깨우치고 습득하고 익힐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은총을 빼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분은 미국에서의 유학을 통해
민주주의의 실체와 인류사회가 추구해야할 가치와 국제 정세 및 역학 그리고 우리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정확하게 꿸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김구나 김일성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오라 계셨다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분이
나와 같은 핏줄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 자랑스럽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식민지 신민으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분이 일본 육사에 입학하는 것을 막거나 탓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인 중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더더군다나 우리 민족의 독립을 염두에 두고 있거나 추구했던 사람이라면...
독립이 된 이후에
독립된 나라를 바로 세우고 이끌어 나갈 것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력에 의하거나 외세를 끌여들어 독립을 이룬들
그 이후의 국가를 경영해 나갈 아무런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그가 일군 독립은 한낱 구테다 혹은 반란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망이/망소의 난, 새우젓 장수 이의민의 무권, 이괄, 황건적, 진나라에 반기를 들어 무지막지한 혼란의 도가니로 이끈 진승/오광의 무리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일을 도모하기 보다 이룬 다음에 수습하고 정비할 실력을 갖추거나 그런 자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핵심이라고 할 것입니다.
박정희는
그러한 때를 위해 실력을 갖춘 선지자이셨던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조선에
막상 독립을 쥐어준들 독립된 국가를 만들고 경영해 나갈 실력을 갖춘 인물이 있었나요?
달리 그런 실력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 실력을 배울 길이 있었나요?
그러한 실력을 배우는 길은
이승만 대통령처럼 미국에 유학가 계셨던 분이나
아니면 일본 육사에 들어가 군대 행정과 통솔력을 배우는 길이 유일했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은 육사가 아닌 일반대학에서는 조선인을 상대로 그러한 지식과 노하우를 교육시키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박정희가 교사를 때려치우고 육사에 입학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으로서는 평가하기조차 힘든 축복이라는 생각입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6 )  찬성 : 3 반대 : 24
친일파와 일재잔재를 없애지 않은 이승만과, 자발적으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일본군 장교를 하여 이승만보다 더욱 더 악질적인 친일짓을 하고 대통령아 된 후에 친일파들즐과 일제잔재를 비호하고 놔둔 악질 친일인간 박정희를 비호하는데 미쳐 박정희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것이 한국에 축복이라는 망상을 하는 유인관 당신은 일제식민지 지배가 축복이였다는 망언을 한 문찬극같은 돌대가리다. 당신이 광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를 떠받드는 꼴은 북한의 빨갱이들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광적으로 떠받들고 날뛰는 것과 매우 똑같다. 박정희가 일제침략기에 일본에 충성하기 위해 일본육군사관 학교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 우리나라에게 축복이라면 일제침략기 때 항일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일본과 싸운 것은 우리나라에게 저주이고 일본이 패망하자 만세를 불럿던 사람들은 바보냐? 그리고 일본이 제2차 세게대전에서 미국을 이겼다면 우리나라는 완전히 영구적으로 일본의 노예국이 되고 친일장교박정희는 적극적으로 반민족적인 친일행위를 했을 것이 분명한데 박정희가 자발적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간 것이 우리나라에게 축복이냐? 그리고 박정희가 일본육군사관학교에 갈 때 우리나라는 일본의 폭압통치를 받고 있어서 나라가 없었는데 무슨 엉뚱한 대한민국 타령이냐? 유인광 당신같이 자꾸 시도 때도 없이 마구 대한민국을 운운하는 것은 일제침략기때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나라 일본을 일본이라고 부르지 않고 매우 듣기 역겹게 대일본제국이라고 불렀던 것같은 나쁜 습관이다. 덮어놓고 무조건 이승만과 박정희를 떠받드는 유인광 당신의 의식은 매우 잘못되었다.
      답글보이기  유인광  ( 2014-10-26 )  찬성 : 2 반대 : 2
동석이 흉아. 흥분하지 말어.

좌좀들이 말하는 뽄세의 특징중 가장 큰 것이
일제 시대에 일본 육사나 일본 대학에 유학한 것이 대한민국(우리의 국가를 그렇게 지칭하는 것과 그 당시에 우리가 대한민국이었다고 말하는것을 구분조차 못하는 인간하고 더 이상 말을 석어야 하나?)을 위해 나쁜 행위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면 한결같이 나서서 쏘아대기를
그럼 독립투사들의 투쟁은? 그들의 희생은? 븅신 짓이냐?라고 따지는 것이지.

독립투사가 투쟁(더러는 양아치가 파출소 순경에게 행패부리는 정도이거나 마적패나 공산 빨치산들이 마약이나 광물 채취권등을 두고 단속하는 순사에게 대든 수준 일 수도 있는)도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고
독립후의 국가 경영을 위한 실력을 쌓거나 무너뜨려야 할 적의 본질을 꿰기 위해 적의 심장부에 들어가 적을 배운 행위도 다 대한민국을 위한 행동일 수 있는 것이거늘...
독립투쟁과 일본을 배우고 아는 것이 왜 꼭 대척점에 서는 행위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면서.

나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행위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끈 것으로 그 목적과 방법이 옳은 것으로 입증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덩.
너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처당되고 그 자리에 김구가 들어섰을 경우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었을 지를 설명해봐봐.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7 )  찬성 : 1 반대 : 5
독립운동을 마적질로 생각하고 일본순사에게 대든것을 오늘날 경찰관에게 대드는 것 같은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일본군 장교가 된 박정희의 친일짓을 일본을 배우는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떠받드는 것에 미쳐 이승만을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박정희르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유인광 너는 지독한 정신벙자다. 내놈은 일제침략기의 일본경찰이 지금의 우리나라 경찰과 같고 일본침략군이 국군과 같다고 생각하는 돌대가리다. 유인광 네놈은 박정희의 일본사관학교 입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의 육군사관학교 입학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유인광 네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단순한 이승만 박정희의 광신교도일뿐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아니였으면 김구가 대통령이 되엇을 것이라는 유인광 내놈의 그 한심하고 유치한 의식부터 잘못된 것이다. 무슨 엉뚱한 김구 타령이냐?
이승만이 나쁜 이유는 그는 일제 침략기 동안 미국에 있다가 일본이 망하고 한국이 해방되자 한국의 대통령이 될 욕심으로 한국에 왔으나 국내에 아무런 기반이 없어, 일재침략기에 일본의 도움으로 세력을 키운 친일파들과 미국에 의지하여 정권을 잡아 그의 정권은 친일파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애는데는 전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국내에 아무런 기반이 없었던 김일성이 소련과 김일성솨 같이 활동했던 빨갱이들을 등에없고 북한을 공산화하고 정권을 세운 것과 같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6.26전쟁이 멎은 뒤에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이승만이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앨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앨수 잇엇는대도 이승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승만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이승만은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을 정도로 일본을 매우 싫어했음에도 일본이 우리나라에 만들어놓은 친일파들과 일제잔재들을 없애지 않은 것이다.
박정희가 나쁜 것은 독립운동을 하려고 만주에 가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가 되기위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었고 박정희처럼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엇다가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만주에 가서 항일독맂투쟁을한 이청천장군과는 전혀 다르게 박정희는 끝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앗고 일본이 패망할때까지 일본군장교를 하면서 친일부역질을 한 것이다. 또 한 박정희는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2년 뒤에 대통령이 되어 이승만과 같은 강력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박정희가 그 당시 한국에 잇엇던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앨 의지가 잇엇다면 벅정희는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앨수 잇엇고 자발적으로 일본군장교가 되어 친일부역질을 한 박정희는 자기의 친일짓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의미에서도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애야 했으나 박정희는 결코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애지 않앗고 일본을 싫어하여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앗던 이승만보다 더 악질적으로 친일짓을 하여 집권하자마자 일본과의 와교관계를 맺는 것에 몰두했다.결국 이승만과 박정희는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에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촉압에서 해방된 한국대통령의 매우 중요한 입무인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애지 않고 놔두는 대통령 직무유기를 해서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저 이승만과 박정희 광신도인 유인광 너는 이런 사실글을 철저히 무시하고 그저 이승만과 박정희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짓만 한다.
      답글보이기  박덕식  ( 2014-10-27 )  찬성 : 0 반대 : 0
아마 동석이는 뻘겅이 같소 글찮고는 저리도 철저히 꼬였을까???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0 )  찬성 : 0 반대 : 0
친일파를 비난하는 것은 마음이 꼬인것이고 친일파와 친일행위르 비닌하지 않으 것은 마음이 꼬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박덕식 너의 머리에는 똥만 들었다. 너야말로 생각이 아주 잘못된 인간이다. 나는 빨갱이 김재중과 북한 공산집단을 ㅇ아주 싫어하는데도 나르 발갱이라고 비방하는 너는 머리에 똥만 들은 인간이므로 망상을 가진 놈이다.
유인광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5
이동석씨가 대중교나 주사파가 아니라는 사실이 듯밖입니다.
동석씨는
두문동에 대해 알고 게시겠지요?
고려왕조를 혁파하고 조선을 세운 유림들도
나라의 경영을 책임지는 입장이 되고보니 자신들이 척결하고자 했던 고려 유신들의 경영 노하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역성혁명의 원조라 할 주왕조도 그와 비슷한 선례를 남겼지요. 은나라 지배계층을 척결하고 보니
나라를 굴려나갈 아무런 지식과 경험과 노하우가 없어 살아남은 은나라 지식인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였더라는...
세상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김일성/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안목으로는 친일파를 척결하는 것이 정도이겠지만...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6 )  찬성 : 2 반대 : 9
내가 북한 빵갱이들과 종북 빨갱이의 두목 김대중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을 모르고 내가 이승만과 박정희의 친일행위를 비난한 글을 보고 나를 종북주사파나 김대중광신자로 오해하고 나에게 조선민주공화국으로 가라는 악성 댓글을 쓴 유인광 당신은 생각이 아주 단순한 무뇌인같은 바보이다. 그저 박정희와 이승만의 친일행위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모두 종북빨갱이와 김대중 광신자로 생각하는 단순한 유인광 당신은 단순한 생각을 가진 바보답게 친일파와 일본의 잔재를 없애지 않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난하지 않는다. 단순한 생각을 가진 유인광 당신은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가 한국에 끼친 악영향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친일파와 일본의 잔재박멸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엉뚱하게 이성계가 고려를 없애고 조선을 세운 이야기를 하면서 친일파와 일본의 잔재를 비호하는 당신은 무뇌인같은 바보이고 기회주의자다.
      답글보이기  유인광  ( 2014-10-26 )  찬성 : 3 반대 : 0
동석이 형은 말하는 투로 봐서는 대중교도가 확실한데 아니라니 믿는 수밖에.
흉아야.
그렇다면 말이지. 대한민국 아니지 해방 조선(혹은 대한제국)이 친일파를 척결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를 제거하였을 경우와 국민으로 나아가 지도자로 받아들였을 경우를 비교하여 그 차이를 설명해줘 봐바.
지도자로 받아들인 경우는 우리가 지금 현실로 누리고 느끼는 바이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처단하고 그 대신 김구나 김일성이나 김규식이나 조봉암이나 신익희나 양일동이나 김대중이를 지도자로 선택하였다면
오늘의 우리가 어디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그 자리가 오늘의 우리 위치에 비해 얼마나 나은 자리인지를 비교하여 설명해줘봐봐. 응!
이혜진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1
토요타 제갈대중이는 학생회장하면서 그 많은 학생들에게 일본군대에 입대해서 총받이하라고 종용했죠...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0 )  찬성 : 3 반대 : 1
1989년1월에 일본왕 히로히또가 죽자 일본대사관에 마련돤 히로히또의 빈소에 자발적으로 가서 머리를 숙이고 조문했던 김대중놈은 일제침략기에 악질적인 친일짓을 한 것이 분명한 쓰레기인간입니다. 이런 쓰레기 친일 빨갱이 인간이 온갖 거짓말을 하여 국민을 속여 대통령이 되어 온갇 못돤 종북빨갱이짓만 하고 뒈지자 그를 국립묘지에 묻은 한국정부가 매우 한심합나다. 더러운 악질친일파이며 종북빨갱이 두목놈인 역적 김대중놈의 더러운 뼈다귀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어 부관참시하고 그 더러운 뺘다귀를 가루로 만들어 버려야 합니다. 친일파와 빨갱이가 대통령이 되는 한국의 꼴은 하도 어이가 없습나다.
이동석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40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를 한 친알파 박정희는 이승만이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을 없애지 않어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고 한국군에서 늘 고질적으로 폭행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도 다 이승만이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를 한 박정희 같은 친일파군인들을 놔두어서 한국군에서 득세한 박정희와 백선염 정일권 같은 친일파군인들이 한국군에 일본군의 흉악한 습성들을 심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부역한 박정희와 같은 친일파군인들을 모두 죽여 없앴다면 박정희가 집권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한국군이 일본군의 못된 악습으로 만산창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답글보이기  백민현  ( 2014-10-26 )  찬성 : 5 반대 : 1
이동석씨...보아하니 이곳은 댁같은 위인들이 올곳이 아닌듯싶소....공연히 이사람저사람 찐짜붙어 이름석자에 똥물튀기지말고 찌그러지시게...부모 욕먹이지말고..
      답글보이기  손영백  ( 2014-10-26 )  찬성 : 1 반대 : 0
과거에, 그것도 지극히 편협한 자기만의 과거에 침착한 아메바같은 인물이다. 그냥 그속에서 썩고 말이이지...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7 )  찬성 : 0 반대 : 0
빅민현 손영백 이 바보들아!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똥물을 된장으로 생각하고 사는 너희들은 병신 얼간이들이다. 너희놈들이야말로 그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찬양하는 북한 빨갱이들과 남한에서 날뛰는 종북 삘갱이들과 같은 편협한 사고를 가진 인간들이다.
이동석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8
바보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의 훌륭했던 반공적 대북정책을 버리고 엉뚱하게도 자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정적이였던 종북빨갱이의 괴수 김대중과 김대중의 졸개인 노무현이 저지른 종북 빨갱이짓만 한다.
이동석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0
분명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은 수학과 과학 공학 음악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질 정도로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서 가장 머리가 좋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동석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2
1909넌에 이또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가 쏜 권총에 맞아죽은 날짜와 1979년에 박정희가 김재규가 쏜 권총에 맞아죽은 날짜가 70년의 차이로 같은 것은 매우 괴이하다.
이동석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20
다음은 박정희 대통령이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잘한 것

1철저한 국가안보정책
2철저한 반공적 대북정책
3자주국방정책
4걍제개발정책
6과학기술과 과학자들을 우대했다.
7물욕이 없이 검소해서 친척과 인척의 바리가 전혀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아 절못한 것

1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를 하는 친일행위를 하고 이승만이 놔둔 친일파들과 일본의 잔재들를 전혀 없애지 많았다.
2 악질종북 빨갱이의 괴수 김대중을 죽이지 않았다.
3술과 담배와 여자를 좋아했다.
4잘못된 군사우월주의를 심어놓았다.
5 컬러텔레비전방송을 금지했다.
6석가의 생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그저 박정희를 찬양하기만 하는 바보들은 위에 내가 적은 박정희의 잘못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눈을 감고 그저 박정희를 찬양하기만 한다.
이시우  ( 2014-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25 반대 : 2
먼 훗날 역사가 대변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방법은 옳지 않았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세계 역사에 찬란히 빛날 것입니다.
김혜숙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39 반대 : 5
그래서 오늘날 제대로 된 국가관과 민족관을 가진 지성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영웅이라고 서슴없이 칭합니다. 검소한 생활 습관에 몸에 베인 민족사랑과 가난퇴치는 세종대왕의 민족사랑과 이순신의 애국정신에 버금간다 하여도 틀린 비유가 아닌 것입니다. 이분의 유산을 지금의 종북허접들을 포함한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향유한다는 사실 잊으면 안됩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26 )  찬성 : 1 반대 : 14
왜군을 무찌른 가장 위대한 군인인 이순신 장군과 이순신장군의 적이였던 일본군 장교를 한 친일파 박정희를 동급의 인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박학린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15 반대 : 3
위대한 영웅이요 은인으로 대우하고 모셔야할 분을 천하에 몹쓸 사람으로 호도하고 둔갑시켜 버린*들로 인해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국민으로 만들어 버렸어니 이ㄴ들이야 말로 진정 천하에 몹쓸 ㄴ들이고 벼락을 맞을놈들이 아닌가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10-31 )  찬성 : 2 반대 : 3
인터넷에 못된 한글이모티콘을 쓰는 당신과 같이 한심한 행위는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하지 않는 행위일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박정희대통령을 존경한다면 못된 한글 이모티콘을 쓰는 못된 버릇을 버려라.
김중대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26 반대 : 1
박정희 대통령은 귀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우리나라를 부국으로 만드신 분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때 야당에서 반대가 심해지요 그러나 그분이 공사를 시행하였지요 그런것이 우리나라를 부국으로 만던 기초이지요 그분을 10년간 대통령으로 더 계셨으면 우리나라는 더 강한민족 경제부국이 되었을 겁니다 참 안타까울 뿐 입니다.
서정교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37 반대 : 1
귀중한 글 잘읽었습니다.가슴이 뭉클합니다.그분같은 분이 한분만이라도 대를 이었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선진국이 되었을 겁니다.흉탄에 돌아가신것이 가슴이 너무 너무 아픕니다.
DanielWYang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0
1년만 더 계셨어도 지금보다 20년 이상 앞서 갈텐데 참으로 원통하다.
그리운 대통령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17 반대 : 0
귀하신 경험담 잘 읽었습니다.

이옥순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27 반대 : 15
그렇다면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완전 거짓말이었다는 말이네요.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온.
박상희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76 반대 : 1
한국 역사에 박정희 같은 대통령이 한 분만 더 있었어도, 지금의 우리나라가 애국심 없는 빨개이 천지는 아니었을 텐데, 참 으로 안타까울 뿐 입니다.
이양우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7
지금 나이가 65세라면, 1979년에는 30세, 15년 간 이발하자면 15세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나이가 안 맞다.
      답글보이기  박종관  ( 2014-10-25 )  찬성 : 16 반대 : 0
2001년 기사라고 맨위 박스칸에 나와 있습니다
      답글보이기  이양우  ( 2014-10-26 )  찬성 : 0 반대 : 0
감사
백영달  ( 2014-10-25 )  답글보이기 찬성 : 154 반대 : 6
2천명의 정치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2천만명의 국민들을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시다가 가신 분...

      답글보이기  정재례  ( 2014-10-26 )  찬성 : 18 반대 : 1
4천3백만 국민을 위해서 불철주야 노심초사 하시다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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