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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웅 로하의 재활일기

글 | 김효정 주간조선 기자 2019-06-06 10:03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2016년 9월 9일 금요일이었다. 서영호·송미령씨의 다섯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성인이 되어 각자의 일로 바쁜 딸과 아들은 물론 초등학교 2학년이던 8살 늦둥이 아들 로하도 함께였다. 진지한 자세로 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가족들을 앞에 두고 로하는 뒤에 앉아 편한 자세로 스마트 패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큰딸이 와서 로하가 아픈 것 같다고 말했어요. 의자에서 떨어졌는데 마치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이었죠. 일단 집으로 가야겠다 싶어 아이를 꼭 안은 채 차를 타고 집으로 갔어요.”
   
로하의 어머니 송미령씨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 서영호씨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가 아픈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심상치 않았습니다. 주변에 뇌경색으로 신체가 마비된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 그때 본 광경이 오버랩되는 것 같았어요.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우선 대학병원 응급실로 차를 돌렸습니다.”
   
로하의 부모가 자리를 뜬 사이에 로하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 너무 아팠어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는데 어떻게 그 아픔을 설명할 길이 없네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엄살이 심했나봐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거든요. 그런 생각은 왜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팠어요.”
   
로하의 기억은 드문드문 선명하지 않다.
   
“응급환자가 있다고 아버지가 급하게 말하던 모습이 떠올라요. 다시 눈을 떠보니 구급차에서 엄마가 손을 꼭 잡고 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제가 간호사 선생님 여럿을 뿌리치면서 몸부림을 쳤을 정도로 힘들어했대요. 그리고는 또 기억이 없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보니 몸이 안 움직였어요.”
   
오른쪽 몸이 마비됐다.
   
꿈만 같았던 그날의 기억
   
“처음에는 꿈일 거야 생각했어요. 스르르 잠들었다가 깼는데 꿈을 꿨구나 싶어서 다시 움직이려고 하는데 움직여지지 않았어요. 주변도 꿈꾸기 전 그대로 병원이었고요.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 안 들었어요. 꿈일 거야, 꿈일 거야 하다가 어느 순간 꿈이 아니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겨우 8살, 로하가 겪어야 했던 일을 로하의 부모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 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3~4시간을 허비했어요.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었는데 영상을 판독해줄 뇌 전문 의사 선생님이 자리에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급하게 응급차를 불러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갔어요. 이미 아이는 정신을 잃었죠. 겨우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해 MRI(자기공명영상)를 찍고 나서 뇌경색이 온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날이 밝더군요. 밤 9시에 아프기 시작한 아이가 날이 밝아서야 혈전용해제를 맞았어요.”
   
오른쪽 팔과 다리는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날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부모는 로하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연휴가 끝나고 나서 정확히 알게 된 사실은 로하가 원인불명의 뇌경색을 앓았다는 것이에요. 로하의 나이에서는 매우 드문 질병이죠. 그것 때문에 로하에게는 오른쪽 편측(片側)마비가 왔던 거죠. 왼쪽 뇌가 손상돼 팔다리가 제기능을 못 하게 됐어요.”
   
9월 9일 그날 전만 하더라도 로하는 별다른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던 아이였다. 태권도와 축구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9월 9일 이후 로하의 손목과 발목은 마치 뒤틀린 것처럼 보였다.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였다.
   
▲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로하.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내 꿈은 축구선수
   
3년이 흐른 지난 5월 16일, 경기도 고양시 로하의 집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로하의 첫인상은 ‘밝다’는 것이었다. 늘상 웃는 표정을 잃지 않는 로하는 다소 말랐을 뿐 건강해 보였다. 여전히 오른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했지만 걷는 데는 장애가 없어 보였다. 급하게 걷노라면 다소 절뚝이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고 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11살 로하의 꿈 중 하나는 축구선수다.
   
“저는 축구가 너무 좋아요. 얼마 전까지는 골키퍼였어요.”
   
로하는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난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골대로 날아들어 오는 공을 잡아낼 때 희열이 말도 못하게 커요. 요즘에는 공격수도 하는데 축구를 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러다 대뜸 “저 요즘 복근도 생겼어요”라고 자랑했다. 마침 로하는 발달장애 어린이의 재활을 위해 마련된 특수체육 프로그램에 따라 1시간가량 운동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윗몸일으키기도 하고 줄넘기도 해요. 운동을 하고 나면 땀이 뻘뻘 나는데 그게 그렇게 즐거워요.”
   
로하의 어머니 송미령씨는 로하의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웃었다.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어서 고마워요.”
   
로하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몸이 제대로 움직이기도 전인 2017년, 그러니까 로하가 3학년이 되던 때부터 학교 출석부에 이름을 올려놓기는 했다. 그러나 꼬박꼬박 출석하기 어려워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생존 신고’만 하는 식으로 얼굴을 비추다가 4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수업을 받았다. 로하의 4학년 때 담임교사의 설명이다.
   
“로하는 대단한 아이였어요. 체육시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어요. 그러다가 넘어지면 짜증낼 법도 한데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 일 없는 듯이 다시 앞으로 나갔죠. 친구들도 그런 로하를 이해하고 함께 어우러져 지냈어요. 생각해보면 지난 1년간 학급 분위기가 제 교사인생 20년을 통틀어서도 손꼽힐 정도로 좋았던 것 같아요.”
   
5학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오른손잡이였던 터라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일상생활을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학급 칠판에 로하의 꿈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라고 지시하자 이런저런 꿈을 줄줄 읊어냈지만 쓰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왼손으로 쓰면 실수를 많이 하고 좀 느려져요.”
   
머쓱한 듯이 몇 번을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더니 빼곡히 적어냈다. 축구선수, 재활의학과 의사, 형사, 연예인 등 다양했다.
   
“축구를 너무 좋아하니까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저처럼 재활해야 하는 친구들을 돕는 의사도 되고 싶거든요. 말을 잘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으니 연예인도 하고 싶고, 형사도 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로하는 사실, 무척 운이 좋은 아이였다.
   
장애는 우리 손님, 재활은 내 친구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 인구 추정치는 266만8411명이다. 이 중 후천적인 이유로 장애가 생긴 중도장애인은 97.6%, 거의 대부분이다. 상당수 장애인이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데 로하처럼 만 5세에서 9세 사이에 장애가 발생할 확률은 0.57%, 아주 드물다. 통계는 여기까지다. 언제 장애가 발생했고 얼마큼 있는지는 조사가 돼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고 사회로 복귀하는지, 아니면 집에만 머무는지 통계조차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러니 로하는 좀 특수한 사례다. 드문 장애가 발생했지만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해 학교에 잘 복귀한 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복지사·의료진들이 “정말 긍정적인 사례”라고 손을 꼽아 칭찬하는 이유다.
   
처음에 로하는 거의 반년간 병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다음에는 서울재활병원에서 6주씩 입원했다. 처음 입원했을 때는 겨우 몸을 펼치고 일어나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회복됐다. 두 번째 입원했을 때도 보조기를 차고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었다. 오른손은 거의 쓰지 못했다.
   
로하가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재활치료를 담당했던 서금혜 세브란스재활병원 물리치료팀 치료사는 “재활 의지가 매우 강하고 승부욕도 강하며 끈기 있는 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동작들도 재활치료를 받는 사람에게는 아프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동작이거든요. 성인들도 못하겠다고 하는 치료를 로하는 될 때까지 하는 아이예요. 보통 중도장애 어린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로하는 자기가 먼저 거울을 가져다 놓고 양쪽 균형을 맞춰보면서 재활운동을 하곤 해요.”
   
로하는 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가 손가락과 손바닥을 모두 펼치는 운동을 시작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왼손만큼 오른손이 펼쳐지지 않자 잠시 팔을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가슴 높이로 손을 들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는 동작을 반복했다.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거예요. 사실 하다가 짜증이 날 때가 많거든요. 왜 내가 이걸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 그럴 때마다 괜찮다, 나는 할 수 있다, 마인드컨트롤 해요.”
   
서금혜 치료사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 로하를 만났을 때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겨우 일어나고 난 뒤에는 공을 차는 운동을 하는데 공 대신 로하의 몸이 날아가곤 했죠. 원하는 대로 다리를 펼치거나 굽히는 것, 모두 안 되었어요.”
   
로하는 그러나 지금 다리를 쭉 펴고 발목을 접었다가 펼치는 섬세한 동작 훈련을 하고 있다.
   
“큰 근육의 움직임을 테스트하는 대동작기능검사라는 게 있는데 로하는 100점을 맞았어요. 균형발달검사도 100점을 맞았죠. 점수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였던 3년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어요.”
   
그건 로하가 가진 긍정적인 자세에서 비롯됐다. 로하는 ‘재활은 내 친구’라는 말을 즐겨 하곤 한다.
   
“가끔씩은 친구와 싸워서 보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가끔은 너무 친근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친구가 없으면 너무 외롭고, 혼자 살 수가 없죠.”
   
말하자면 로하에게 장애는 ‘극복’한다거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 맞서 싸워야 하는 적(敵)이 아니다.
   
“처음에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잖아요. 그러니까 현실을 받아들여야죠.”
   
로하는 예전을 떠올리는 듯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완벽하게 다 낫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대요. 처음에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로하의 부모가 먼저 그 사실을 알려줬다. 속 깊은 로하의 말은 부모의 생각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송미령씨의 말이다.
   
“로하는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에요. 아니, 장애를 얻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장애를 이겨내려고 하면 안 돼요. 적응하고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 로하는 이제 줄넘기도 자유자재로 한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로하와 친구들 서로 배우다
   
후천적으로 얻은 장애 때문에 장애인이 된 중도장애인 중에는 종종 치료와 재활을 수행하면 장애를 얻기 전의 상태 그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재활의 목표는 그게 아니다.
   
“저희도 로하가 아프고 나서 배운 건데 장애를 적대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에요. 저는 십자인대 수술을 해서 무릎에 장애가 있는데, 그렇게 치자면 누구나 장애를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수 있죠.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장애를 모조리 다 이겨내고 극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걸 인생의 장애물로 여기지도 않을 거고요. 내가 가진 질병에 맞게 몸과 마음을 적응시키며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로하와 저희의 목표예요.”
   
송미령씨의 말은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이라면 꼭 귀담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는 장애인이 일상생활로 언제, 어떻게 복귀하는지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로하가 지금 친구들과 어우러져 축구를 하고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이유는 본인·가족·병원·학교가 고루 힘을 합친 덕분이었다. 로하 자신이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았고, 가족은 로하의 장애를 이해하고 한마음으로 믿어줬다. 병원은 로하에게 가장 적절한 의료지원과 목표를 설정해줬고 학교 역시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로하의 학교 복귀는 먼저 병원의 주도하에 시작됐다. 로하가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로하를 지켜본 김진희 서울재활병원 지역연계센터 센터장은 로하 같은 중도장애 어린이 중에는 일찍 학교로 복귀하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 아이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중도장애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에 적응하고 또래집단에서 이해받고 어우러지는지에 따라 경쟁력 있는 인재가 한 명 더 생기느냐 마느냐가 달린 거거든요.”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중도장애 어린이의 학교 복귀에 대한 어떠한 매뉴얼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김진희 센터장이 직접 나섰다.
   
“병원에서는 로하 이전에도 중도장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학교 복귀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습니다. 이지선 서울재활병원 원장님이 외국 사례를 살펴보고 직접 경험해본 바로는 중도장애 어린이의 일상 복귀가 적절한 시기에 빠르게 이뤄지면 질수록 재활은 물론 장래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좀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이상적인 시스템을 갖추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잘 되지 않았다.
   
“로하와 비슷하게 재활치료 경과가 좋고 기능이 빨리 회복된 아이가 있었어요. 이 아이도 학교로 얼른 복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이의 질병에 대한 설명과 치료과정, 현재 상태, 필요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총망라한 설명서 같은 것을 만들어 학교로 들고 갔지요.”
   
그런데 아이의 담임선생님 반응이 시큰둥했다.
   
“학급 친구들에게 직접 아이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전문가가 나서면 훨씬 빨리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다각도로 설득해봤지만 담임선생님이 거절했어요.”
   
이런 현실에서 로하의 사례는 이상(理想)에 가깝게 구현된 학교 복귀 프로그램이었다.
   
“로하가 2학년 때 발병했으니 3학년 때부터 3년간 로하의 학교를 찾아 학급 친구들을 만났어요. 로하는 본인과 가족의 의지와 믿음이 강해 재활 경과가 매우 좋은 아이였지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속 병원에 있는 것보다 학교로 돌아가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 판단은 로하를 담당하는 의료진, 치료사, 사회복지사 모두가 모여 함께 내린 것이다. ‘학교 복귀’라는 목표가 세워지자 치료도, 상담도 방향과 방법이 달라졌다. 맨 처음에는 로하가 쓸 수 없는 오른손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던 치료가 오른손이 비록 불편해도 왼손을 함께 써 보완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김진희 센터장은 로하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상담했다.
   
“로하는 겉으로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두려워하고 있더군요.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해서요. 저희는 로하가 다른 친구들에게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친구’가 아니라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는 친구’가 되기를 바랐어요.”
   
로하의 반에 가서 친구들에게 OX 퀴즈를 냈다.
   
“예를 들면 ‘로하는 뛸 수 있다’는 질문에 맞다, 아니다를 답하게 한 거죠. 그러면서 로하가 어떻게 아팠었는지, 얼마나 강인하고 용감하게 이겨냈는지, 지금 왜 학교로 돌아오는지, 만약 로하가 돌아오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가르쳤어요.”
   
로하에게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5학년이 되던 지난 3월에는 로하가 직접 친구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친구들은 로하에게 ‘너는 어떻게 그렇게 좋아질 수 있었어?’ ‘그럼 우리처럼 뛰어다닐 수 있어?’ 등을 직접 물어봤다. 그러면서 서로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로하는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던 날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3학년 때는 사실 어쩌다가 한 번씩 겨우 출석만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같이 지내지를 못했어요. 4학년 때 병원에서 친구들에게 저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교실에 들어가는데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박수 치며 저를 환영해줬어요. 저에게 보내는 편지도 만들어주고요.”
   
로하의 4학년 때 담임교사는 로하로 인해 학급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로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이 ‘로하는 혼자서 저렇게 어려운 병도 이겨냈는데 나는 왜?’라는 의문을 가졌던 것 같아요. 로하가 손으로 농구공을 드리블하는 것을 어려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친구들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수업에 임했던 것 같아요. 로하를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줄 줄 알고, 나와 조금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할 줄 알게 된 것이죠.”
   
로하 스스로도 학교에 나가면서 비로소 자신의 장애가 어떤 모습인지 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인식은 날이 갈수록 단단해졌다.
   
“예전에는 잘 안되면 짜증을 냈었죠. 그런데 친구들과 운동하고 싶어서, 축구하고 싶어서, 치료를 열심히 받게 됐죠. 복근운동도 하고, 체육시간도 엄청 기다리게 됐어요.”
   
자신에 대한 두려움, 부끄러움도 서서히 사라졌다. 오히려 “갑자기 ‘인싸(인기 있고 잘 어울리는 사람)’가 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물론 모두가 로하를 도와준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로하를 괴롭히는 친구도 있긴 했다.
   
“저를 밀치거나 하면서 괴롭히는 친구에게 제가 대놓고 말을 걸었어요. ‘너 나한테 악감정 있어?’라고 물으니까 친구가 대답이 없었어요. 제가 말했죠. ‘싫으면 싫다고 직접 말을 해줘. 혹시 네가 관심을 받고 싶은데 내가 관심을 빼앗아가니까 싫은 건 아니니? 만약 네가 관심을 받고 싶다면 나를 도와주면서 좋은 의미에서 관심을 받으면 어떨까?’ 제안했어요.”
   
친구는 곧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괴롭힘은 사라졌다. 적어도 로하가 있는 반에서는 나와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일은 없어졌다.
   
김진희 센터장은 바로 이런 모습이 로하 같은 중도장애 어린이의 이른 학교 복귀가 가져오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을 모든 장애 어린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로하의 어머니 송미령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아이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덜컥 걱정이 되는데 아무도 저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운이 좋게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으면 로하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 생각도 못 하겠네요.”
   
그래서 로하의 재활을 함께 겪은 어른들은 하나같이 ‘시스템’에 대해 강조했다. 로하가 언론사의 카메라 앞에 직접 선 이유도 바로 ‘시스템’의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주변 장애인 가족들을 보면 각자 알아서 정보를 얻고 알아서 사회에 합류하는 게 태반이에요. 사실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인력도 없고 매뉴얼도 없어서, 장애인은 늘 변두리에서 맴돌기 마련이죠. 사실은 로하처럼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데 말이죠.”
   
재활병원의 수가 적어 재활치료를 받을 기회도 없다 보니 장애인들 중에는 치료를 받는 일에만 급급한 경우도 많다. 사회 복귀 등 자신의 장애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는 다루지도 못하는 것이다.
   
“장애 어린이에 대한 심리치료는 아예 없다시피 해요. 특히 부모교육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병원에서만 재활을 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어나갈 수 있게 부모교육을 해야 하는데 경제적으로도 시스템적으로도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 편측마비가 왔던 로하는 이제 양손으로 농구공을 던질 수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해낼 로하’라고 불러주세요
   
로하에게는 서로 믿음을 주는 가족, 체계적인 병원, 도와주는 학교와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로하는 자신의 장애에 긍정적이다. 로하의 아버지 서영호씨는 “로하가 ‘다른 경험’을 하면서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갖추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로하에게 질병이 그저 힘들고 괴로운 것이지 않기를 바랐어요.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30년을 향해가고 있는데 늦둥이 로하 덕분에 익숙하기만 했던 둘 사이에 다시 대화가 많아졌어요. 어떻게 하면 로하에게 장애가 장애물이 아니라 너를 찾아온 손님이라고 가르쳐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우선 가족들부터 로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로하의 재활치료를 연구하며 생활 속에서 함께 실천하려고 했다. 원래 사회복지사였던 로하의 어머니 송미령씨는 로하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서 발달장애인을 돕는 직업을 얻게 됐을 정도였다.
   
“이렇게 말하면 마냥 긍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로하의 장애는 온 가족을 하나로 다시 묶어주는 사건이었어요. 힘들고 때로는 울고 싶었지만 로하 덕분에 모두가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해가며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로하 역시 늘 웃는 표정을 가지게 됐다. 서영호씨는 로하와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을 기억했다.
   
“잘 걷지도 못할 때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갔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까 걱정했는데 로하가 그러더군요. ‘아빠, 휠체어 타니까 1번으로 들어갔다 나와서 좋다!’ 허허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무척 고마웠습니다.”
   
서영호씨는 “아마 로하는 멋진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해봤다”는 게 이유다.
   
로하에게 물어봤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고. 로하가 답했다.
   
“‘해낼 로하’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어제는 못 했지만 오늘은 해낼 거예요. 오늘 못 하면 내일 할 거고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해낼 거예요.”
등록일 : 2019-06-06 10:03   |  수정일 : 2019-06-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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