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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대문 밖 나가야 기운이 난다”

50년 한결같은 TV 속 어머니

성우와 배우 영역을 함께했던 TV·라디오 1세대 여배우 중 가장 키가 크고 품성이 깊었던 김용림. 그녀는 삼십 세 이전부터 강직한 ‘어머니’ 상을 연기하며 우리 시대의 주요 배우로 인식돼 왔다. 팔십 세라는 나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고령에 체념하지 않겠다는 건강한 여배우의 오늘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대한민국 TV 드라마의 거목, 김용림을 만났다.

글 | 이일섭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2019-04-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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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이전부터 어머니 배역… 어느새 80세 
 
지난 3월로 배우 김용림은 여든 살이 됐다. 배화여고를 졸업하던 이듬해, 1961년 KBS 성우 4기로 방송에 입문했으니 이제 그녀의 연기 구력은 58년 차에 이른다. 그녀는 서른 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어머니 역을 맡았으며 마흔에도 쉰에도 변함없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드라마에 등장했다. 출세작인 1980년대 중반의 <억새풀>과 <사랑과 야망>에서도 어머니였으며, <청춘의 덫>과 <인생은 아름다워> 등 2000년대의 드라마에서도 강직하고 속 깊은 어머니상을 변함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나이를 50대 중반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싶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부인 중년의 어머니를 너무도 오래도록 연기해 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연기해 온 그 많은 어머니 역은 드라마의 중심인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극의 주변 배역을 통해서 시청자의 가슴 가까이 다가가는 믿음이 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점은 애석하지만 한 시절 잠깐의 인기가 아닌 평생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도 조연이라는 역할을 통해서 깨닫게 됐다. 30대나 지금이나 그녀의 인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멜로드라마의 주역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수록 자리가 좁아지는 것에 초초해하고 얼굴을 고치기까지 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몹시 안타까웠다고.
 
미녀보다 연기 잘하는 잉그리드 버그먼 동경 
 
스물한 살에 시작해서 여든이 된 지금까지 슬럼프라는 게 무언지도 모른 채 그냥 일만 했다. 얼마 안 되는 출연료와 배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백 없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생활 현장 속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배우론을 정립해 갔다. 아름다워 보 이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연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유연한 잉그리드 버그먼의 연 기를 동경하며 절제와 여백, 그리고 증폭을 지닌 배우, 실제 비중보다 큰 이미지로 존재 할 수 있는 배우가 돼야 한다고 말이다.

배우의 에너지는 정신과 육체, 어느 쪽에 기 인할까? 그녀는 단연 육체라고 얘기한다. 예 전엔 대본 속 자신의 배역에게 어울리는 머 리 모양이나 옷의 컬러 등을 우선시했지만 지금은 변화무쌍한 촬영 상황에 대응할 만 큼의 체력을 비축하는 게 배우 제1의 덕목 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어 떤 역할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배 우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운동을 해야 한다 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실제 그녀는 헬스클 럽의 PT와 수영, 골프 라운딩 등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을 좋아한다. 기력이 예전만 못하고 무리를 하면 여지없이 몸살이 찾아 오는 데다 허리통증이 도지지만 몸이 아프 고 무거울수록 더 운동에 매달리는 편이다. 그게 여든 살 여배우의 의무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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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팔십 세가 된 소감을 들려주세요.
A. “세월이 또 가는 게 왜 두렵지 않겠나. 나이가 들면 조금만 몸이 불편해져도 더럭 겁이 난다. 불편 과 통증에 대한 내성이 완전히 사라진다. 땀이 조 금만 나도 괴로워진다. 더구나 쉽게 목이 잠기고 감기에 허리 디스크에…. 그런데 한창 시절에도 몸 은 늘 피곤했고 사는 일에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다만 나이가 들면 참을성이 없어져서 힘들고 괴로 운 걸 조금도 견디지 못하게 된다. 나 자신을 더 내 몰고 나무라야 될 것 같다. 운동이든 스트레스든 나를 더 단련할 수 있는 상황이 필요하다.”
 
Q. 젊어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나요?
A. “난 대문 밖으로 나가야 기운이 난다. 집에 있으 면 좀 다운이 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스케줄이 없 으면 노래 교실에 나가서 보컬 레슨을 받는다. 가 수 데뷔를 하려는 건 아니고. 이문세의 ‘슬픔도 지 나고 나면’이나 홍서범의 ‘그래’ 같은 발라드를 부르며 내 감수성을 키운다. 박자도 틀리고 가끔은 가사를 잊기도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신나고 흥분된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가사를 되새기다 보면 마음에 여유도 생긴다. 연기를 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Q.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는 편인가요?
A.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건 불쌍한 인생이지만 너무 믿어도 불행해지게 된다. 자신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게 여러모로 좋다. 나는 오히려 신을 믿는 편이다. 불교는 내 모태신앙이다. 석가모니를 신봉하기 보다는 그분의 말씀과 경전으로 마음 수양을 하는 편이다. 난 인과응보를 믿는다. 내가 지은 업은 내가 꼭 받고 간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나 자신을 공부하는 종교여서 좋다.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게 된다.”
 
Q. 남편 남일우 선생님과 아들 남성진씨 중 누가 더 좋으세요?
A. “당연히 아들이 좋다. 함께 54년을 살아봐라. 남는 건 애증뿐이다. 스물두 살엔 남일우씨의 과묵함과 빠른 걸음걸이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정반대가 됐다. 입만 열었다 하면 잔소리에…. 남자가 어쩌면 그리도 좁쌀 같은지. 거기다 몸은 어쩌면 그리도 굼뜨고 추해졌는지. 옛날엔 키가 큰 그 남자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늙으면 키도 줄어드는지 이제는 아래로 내려다보여서 저절로 무시하는 마음이 생긴다. 잠자는 모습은 왜 그리도 애처로운지! 그런데 성진이를 더 좋아하는 이유가 아들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남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도대체 뭐지?”
 
Q. 그럼 아직도 집 안 선생님을 사랑하고 계신 거네요.
A. “잘 모르겠다. 집 안 남자는 좀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밖에서는 남일우씨가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다고 하는데 나는 남편이 집 안에서 웃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희미하게 웃는 표정을 몇 번 봤을 뿐이다. 더구나 내가 차려주는 식사, 몸에 좋다는 음식을 모두 외면한다. 갖은 정성을 다해 코앞에 대령하지만 먹기 싫다며 치우라고 한다. 독자로 자라서 먹어라! 먹어라! 하는 어머님의 강요에 트라우마가 있는 건 알지만 내 성의를 무시할 땐 너무 속상하다.”
 
Q. 왜 어머니 역만 주어졌다고 생각하세요?
A. “PD들은 늘 내가 적역이라고 얘기했다. 내 인격에 어머니라는 봉건의 품성이 크게 있기 때문이다. 다감하고 인정만 많아서 안달하며 자식들에게 밥을 더 먹이고, 공부도 더 가르치고 싶어 하는 원색적인 엄마의 모습이 있는 건 사실이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난 너무 강하다. 하지만 못마땅하게 굴면 총알처럼 쏘아대기도 한다. 그게 다 잘되라고 하는 건데 남편도 자식도 방송국의 후배들도 야속하다고만 한다. 거기서 비극이 시작되는 셈이다.”
등록일 : 2019-04-26 10:22   |  수정일 : 2019-04-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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