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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는 '마음의 창'...또박또박 갈고닦아 보세요"

국내 최초 필적학자 구본진 변호사

검사 시절 흉악범 필체 주목, 필적학 매료
BTS 멤버들 글씨체엔 활력·인내심 보여
인격 형성되는 어릴 때 習字많이 해야

글 | 박새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21-02-18 20:34

▲ 구본진 변호사는 “글씨는 사람을 바꾼다”면서 “내 인생을 이끌어준 운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매일 글씨 연습에 몰두한다. 사진=이신영 기자

"방탄소년단(BTS) 뷔의 글씨는 글자 간격이 좁네요.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하겠어요. 'ㅎ'의 꼭지를 크게 쓰는 슈가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욕망이 강해 보여요. 멤버 7명의 글씨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글자 크기 등의 변화가 많고 가로획이 긴 편이죠. 7명 모두 활력이 넘치고 인내심이 강하다는 특성이 돋보입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난 구본진(56) 변호사가 BTS의 필체를 분석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변호사이자 국내 1호 필적학자(筆跡學者)다. 필적학은 어떤 사람의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추론하는 학문이다. 구 변호사는 본업인 변호사 일만큼이나 필적학자라는 '부캐(부캐릭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독보적인 필적학자가 된 지도 어언 16년. 그동안 대통령과 장관, CEO부터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된 인물까지 다양한 이들의 필체 분석을 도맡아 왔다. 필적학 관련 책도 세 권을 냈다. 구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글씨란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닌 내면을 갈고닦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글씨에 꽂힌 계기는 뭔가요.

"1994년부터 20여 년 동안 살인·조직폭력 등 강력 사건을 주로 맡았어요. 흉악범들의 자필진술서를 수도 없이 봤죠. 어느 순간, 평범한 사람과는 너무 다른 그들만의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연필심이 부러질 정도로 꾹꾹 눌러쓰거나, 글자를 지나치게 크고 각지게 쓰는 등 저마다 달랐지만 흔히 볼 수 없는 필체임은 분명했죠. 사람의 내면과 글씨체 사이 깊은 연관이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때부터 필적학에 빠져들었죠.“

-필적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저도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었을 땐 참 막막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글을 손으로 써온 세월이 짧아서 필적학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유럽에서는 17세기부터 체계적인 필적학 연구가 시작됐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여러 대학에는 필적학 강의가 있어요. 미국에서는 필적 분석을 FBI 범죄 수사에 활용하고, 프랑스에선 약 1000명의 필적 진단사가 회사의 인사 담당자로 활동합니다. 글씨체를 분석해 범죄자를 찾아내고, 회사에 알맞은 인재를 골라내려는 노력이죠. 우리나라에도 서예 연구나 필적 대조·감정 분야는 있지만 글씨로 내면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쉽지 않은 연구였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독립운동가들의 글씨 덕분이었죠. 어린 시절부터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게 취미였어요. 고(古)미술상을 밥 먹듯 드나들었죠. 그러다 아무 물건이나 모으기보다는 의미 있는 주제로 수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독립운동가들의 친필이었죠.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해 친필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경매 참여는 물론 후손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고, 국가보훈처의 도움으로 광복회지에 광고를 낸 적도 있어요. 그렇게 20여 년간 발품 팔아 모은 독립운동가들의 글씨만 700~800점입니다. 정밀한 연구를 위해 모은 친일파들의 글씨체까지 합치면 1000점이 넘어요. 독립운동가에 비해 친일파의 글씨는 그 간격과 크기가 불규칙한 것들이 많습니다. 행동이 일관되지 않고, 변덕스러운 성향을 보여주죠.“

-글씨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나요.

"글씨는 '뇌의 흔적'이라 할 정도로 내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요. 크기와 꺾임, 규칙성, 기울기, 간격, 속도 등 요소 하나하나가 그 사람을 나타내죠. 몇 년 전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PD가 처음 보는 글씨를 보여주며 어떤 사람일 것 같은지 묻더군요. 예사롭지 않은 연쇄살인범의 글씨기에 그리 답했는데, 실제로 1975년에 17명을 죽인 흉악범의 글씨였죠. 2017엔 국방부 요청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글씨도 분석했어요. 둘 다 목표 지향성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주관이 뚜렷하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기억에 남는 글씨가 있다면요.

"가장 큰 울림을 준 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필체예요. 모음의 긴 세로획과 가로획의 꺾임에서 보통 사람에게 잘 없는 강한 인내력이 보여요. 절약 정신과 빈틈없는 성격도 글씨에 고스란히 드러나죠. 안중근 의사(義士)의 글씨에서는 송곳 같은 예리함을 느꼈어요. 모난 'ㄷ'과 'ㅈ'에서 굳고 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요즘 같은 디지털 사회에서 글씨의 중요성을 느낄 사람들이 많을까요.

"글씨가 의사 전달의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깨어나야 해요. 글씨체에는 한 사람의 성격, 취향, 욕망, 한마디로 인생이 담겨 있어요. 글씨 연습은 인격을 가다듬고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특히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글씨 연습은 더욱 중요해요.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습자(習字) 교과서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등록일 : 2021-02-18 20:34   |  수정일 : 2021-02-1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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