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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남루하지만 행복했노라'

'한국 문학의 어머니' 박완서 타계 10주기

글 | 오누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21-01-22 14:36

▲ 지난 2010년 등단 4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는 박완서 작가. 소설 ‘나목’으로 마흔 살에 등단한 그는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사진=조선일보 DB

"내가 쓴 글들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거울인 동시에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거울이 있어서 나를 가다듬을 수 있으니 다행스럽고, 글을 쓸 수 있는 한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한국 문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박완서(1931~2011) 작가가 생전 남긴 말입니다. 1970년,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해 지난 2011년 타계하기까지 그는 80여 편 넘는 단편과 15편의 장편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초등학생이라면 한 번쯤 읽어봤을 동화 '자전거 도둑'도 바로 그의 작품이죠. 오늘(22일)은 박완서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평생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아 '영원한 현역'으로 기억되는, 작가 박완서의 삶을 돌아봤습니다

내 어머니는 참으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셨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 경기도(현재 황해도) 개풍군 박적골에서 1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세 살 때, 그의 아버지는 맹장염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일찌감치 아픔을 경험했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막내딸을 향한 할아버지와 엄마, 오빠의 극진한 사랑 덕분이었어요. 박완서는 여덟 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오게 됩니다. '여성도 좋은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념에 따라, 박완서는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죠. 그의 어머니는 삯바느질(남의 옷을 바느질해주고 돈을 받는 일)로 악착같이 생활비를 벌었다고 해요. 팍팍한 삶 속에서도 밤이면 자녀들을 앉혀두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죠. 어머니는 어린 박완서가 작가란 꿈을 갖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그는 수필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에서 "어머니는 참으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셨다. 무작정 상경한 세 식구가 차린 최초의 서울 살림은 필시 곤궁했을 텐데도 지극히 행복하고 충만한 시절로 회상된다"고 이야기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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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가 1975년부터 2년여간 '문학사상'에 연재한 '도시의 흉년' 육필원고.

고통과 절망 속에서 발견한 출구, 글쓰기

박완서는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어요. 하지만 입학식을 치른 지 닷새 만에 6·25전쟁이 터져 대학 생활을 접어야 했죠. 박완서는 전쟁에서 하나뿐인 친오빠를 잃습니다. 아버지나 다름없던 삼촌도 전쟁통에 옥사(감옥에서 죽음)했죠. 그에겐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박완서는 미8군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어요. 그곳에서 인생의 스승 박수근 화백을 만납니다. 박완서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박 화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보게 됐다"고 고백했어요.

이후 그는 '나목(1970)'과 '엄마의 말뚝(1980)' 등 여러 작품에서 전쟁의 상처를 그려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그에겐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 거죠. 그는 작가가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뎠다. '언젠가는 이 경험을 글로 쓰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40세 늦깎이 작가 되다

1953년 휴전 직후 결혼한 그는 네 딸과 외아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아갑니다. 그의 어머니는 딸이 서울대에 복학하지 않고 결혼한 것을 두고두고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해요. 여자가 결혼하면 자기 꿈은 일단 뒷전이 되는 시대였으니까요.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박완서는 자신의 꿈을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흔 살의 나이인 1970년, 박수근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나목'으로 뒤늦게 등단합니다. 그간 쌓인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풀기라도 하듯,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벌였죠. 40년 넘는 시간 동안 100편이 넘는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장편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50만 부 이상 팔리며 오랫동안 '밀리언셀러' 자리를 지켰죠.

마지막까지 펜 놓지 않은 진정한 文人

전쟁의 기억을 털어낼 즈음, 또 한번 삶의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1988년 5월 남편이 암으로 사망하고, 같은 해 8월 생때같은 외아들도 갑작스레 떠나보내야 했거든요.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단편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에 담아냈어요. ‘참척(慘慽·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진정한 문인이었죠.

한국 문학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작가는 2010년 9월 담낭암 진단을 받습니다. 항암치료에도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후배 문인들의 글을 봐주는 등,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해요. 작가는 ‘가난한 문인들에겐 부의금을 받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채, 2011년 1월 22일 8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올해 박완서 타계 10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어요. 작가의 대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새 표지를 갈아입은 개정판으로 출간됐어요. 작가의 맏딸 호원숙씨도 최근 ‘엄마 박완서의 부엌-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라는 에세이를 펴냈어요. 소설가이기 전에 엄마이자 아내였던 박완서의 모습이 담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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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남루하지만 행복했노라' 

전쟁의 아픔, 한국 현대사의 비극, 여성이 경험하는 고통….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지요. 그가 견뎌낸 시대가 그리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다양한 동화를 펴내며 살아간다는 것의 기쁨을 어린이에게 전하고자 애썼죠. 어린이가 읽으면 좋을 박완서 작가의 대표 작품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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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1979·1999년 作)

자전거 도둑은 초등학생이 가장 사랑하는 베스트 셀러다. 국립중앙도서관이 2009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전국 844개 도서관 대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전거 도둑은 조사 대상 기간(10년간)에 초등학생이 가장 많이 빌린 도서 2위에 올랐다. 이 책은 박완서가 1979년에 쓴 동화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서 일부를 추려 어린이용으로 묶은 것으로, ‘자전거 도둑’을 비롯해 총 6편의 단편동화가 실려 있다.

표제작인 자전거 도둑은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하는 16세 소년 수남이와 주인 영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 날, 수남이의 자전거가 어느 노신사의 고급 차 위로 쓰러진다. 반짝반짝 빛나는 차에 흠집이 생기고 만다. 돈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인 수남이는 그만 자신의 자전거를 들고 도망친다. 자초지종을 들은 주인 영감은 수남이를 되레 칭찬하는데…. 내면의 선(善)과 악(惡)을 다룬 동화다. 작가는 순진한 소년 수남을 통해 비양심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꼬집는다.

★책 속 문장

소년은 아버지가 그리웠다. 도덕적으로 자기를 견제해줄 어른이 그리웠다. 주인 영감님은 자기가 한 짓을 나무라기는커녕 손해 안 난 것만 좋아서 "오늘 운 텄다"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중략) 마침내 결심을 굳힌 수남이의 얼굴은 누런 똥빛이 말끔히 가시고, 소년다운 청순함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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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2009년 作)

주인공 복동이의 가슴 뭉클한 성장동화다. 복동이는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고, 숙제를 싫어하는 평범한 어린이다. 하지만 복동이는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안고 있다.

복동이 엄마는 복동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다. 아빠마저 그런 복동이를 두고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복동이는 부모의 부재(不在) 속에 일찍 어른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동이는 우연히 아빠가 있는 미국으로 간다. 아빠를 만나지만, 아빠와의 행복한 삶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아빠는 그곳에서 다른 가족을 꾸렸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서 복동이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복동이는 한국계 입양아였던 브라운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변화한다.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복동이는 제목 그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난 모든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책.

★책 속 문장

공항에는 내가 도착했을 때처럼 네 식구가 환송을 나와 주었다. 식구들고 따로따로 포옹을 하고 나서 맨 나중에 데니스를 안았다. 녀석이 나를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있어 주어서 기뻤다. 녀석이 나만큼 자랐을 때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녀석고 나는 좋은 친구도 한 가족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은 녀석도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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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년 作)

‘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콧물이 아니라 누렇고 차진 코여서 훌쩍거려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만 아니라 그때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싸잡아서 코흘리개라고 부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첫 문장이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가 나고 자란 고향 개풍군 박적골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6·25 전쟁을 경험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소설.

★책 속 문장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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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에(2009년 作)

“내 유년기 이야기니까 아마 옛날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남루하고 부족한 것 천지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노라고 으스대고 싶어서 썼습니다.”

작가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펴낸 동화집 ‘나 어릴 적에’엔 이 같은 머리말이 나온다. 작가는 이 책에서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듯 다정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골집에서 신나게 뛰놀고, 밤이면 등잔불 앞에서 엄마와 도란도란 수다 떨던 추억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 돼서도 잊히지 않는 법.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을 읽으면 뭉근한 감동이 전해진다.

★책 속 문장

새벽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는 나의 몽롱한 의식에 상쾌한 찬물을 끼얹으면서 나는 전혀 새롭게 낯선 기쁨에 몸을 떨며 곧장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신문을 대문간 장작더미 뒤에 숨겼다가 엄마가 아침을 지으시는 동안 우리 방에서 몰래 읽고 나서 안 집으로 들어갔다.

 

 

등록일 : 2021-01-22 14:36   |  수정일 : 2021-01-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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