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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폭락해도, 역발상 ‘한전 투자법’

글 | 조동진 주간조선 기자 2019-07-02 09:34

▲ 전남 나주 한전 본사 / photo by 뉴시스
‘심각한 수준으로 경영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경영 실패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올 여름철 가정용 전기료 인하(누진제 완화) 여부를 두고 정부의 경영 간섭 논란까지 커지고 있다. 예상되는 적자에 대한 보존 방안 없이 정부 요구를 수용할 경우 자칫 ‘배임’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한 이사회가 정부의 요구를 보류시키며 이사회와 정부의 힘 겨루기 양상까지 부각되고 있다.’
   
연매출 60조원이 넘는 공룡기업 한국전력을 둘러싸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다. 수천억원대 적자로 추락한 경영실적, 정부의 사실상 경영 개입, 이사들의 이사회 안건처리 보류 등 한국전력의 최근 상황은 이래저래 투자자들과 주주들을 근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2017년만 해도 한전은 영업이익 4조9532억원, 순이익 1조4414억원의 실적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뒤인 지난해 실적이 말 그대로 추락했다. 2080억100만원에 이르는 영업적자에 순적자 규모가 무려 1조1744억9800만원이나 됐다. 올해 1분기 상황도 암울하다. 1월부터 3월까지 벌써 6298억8000만원에 이르는 영업적자도 모자라, 7612억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적자로 투자자들과 주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1조1745억 적자 주가 폭락에 무배당
   
주가도 마찬가지다. 올 주식시장 첫 개장 날이던 1월 2일 한전 주가는 주당 3만4050원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6월 25일 현재, 2만5800원으로 주가가 폭락했다. 반년 만에 24.23%나 추락한 것이다. 주가 추락과 함께 올해 1분기만 해도 28%대를 유지했던 외국인 지분율 역시 26%대로 쪼그라들었다. 2019년 주식시장에서 한전이 투자 대상으로 어떻게 비치는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전은 2015년 이후 2~3년간 투자시장, 특히 주식시장에서 중장기 혹은 배당 투자처를 찾던 투자자들 사이에서 눈길을 끌었던 게 사실이다. 2015년(회계연도 기준)부터 갑자기 배당금을 급증시켰기 때문이다. 2014년 주당 500원(보통주 기준)이던 배당금을 2015년 무려 주당 3100원으로 급격히 끌어올려 지급했고, 2016년에도 1980원의 주당 배당금을 지급했다. 2015년 시가배당률이 무려 6.2%였고, 2016년 역시 4.49%를 유지하며 저금리 투자시장에서 매력적인 배당률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7년 말부터 한전을 바라보는 투자자들과 시장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당 배당금이 급감하며 안정적 현금 확보 투자처로서 매력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2017년 주당 배당금은 790원(시가배당률 2.07%)으로 전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급락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적자로 추락한 2018년에는 배당금을 아예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전은 성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가 주인(한국산업은행 32.9%, 정부 18.2%, KDB생명 0.03% 등 국가 지분 51.15%)으로 전력시장의 독점사업자라는 독특한 위치를 앞세워 안정적인 사업을 보장받고 있다. 독점적 사업 구조와 함께 2015년부터 시작된 높은 배당금 지급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중장기적으로 안정된 투자처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그런데 2017년부터 급격히 진행된 실적 추락과 적자 지속, 급기야 배당금까지 지급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며 안정적인 투자수익 확보처라는 인식이 사라진 것이다.
   
   
23년 전 찍어낸 100년 만기 채권
   
그렇다면 한전은 안정적 현금 확보가 가능한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일까. 최소한 주식시장에서만큼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채권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국가가 주인이라는 특수성과 독점 사업자라는 시장지배력이 채권시장에서는 오히려 안전한 투자처이자 변동성이 적은 투자처로 인식되게 만들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한전 투자와 관련해 최근 투자자들과 금융권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채권 상품이 있다. 한전이 발행해 판매한 무려 만기 100년짜리 채권이다. 이 채권은 외환위기가 몰아치기 직전인 1996년 4월 발행됐다. 그러니 투자원금 반환 시점이 2096년 4월이다. 이미 발행돼 시장에 풀려나간 지 23년이나 된 채권이지만, 지금 투자한다 해도 만기가 77년이나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채권은 6개월 이표채로 연 4% 정도의 이자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원화가 아닌 달러 표시 채권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 채권의 소유자는 매년 액면가의 4% 정도를 한전에서 이자로 받는데, 이때 ‘원’이 아닌 ‘달러’로 받는다는 뜻이다. 좀 더 살펴보자. 이 채권은 이자소득세에 대해 발행 당시 특례가 적용돼 일부 비과세 혜택을 받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이자소득에 대해 15.4%를 정부에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이 채권의 경우 농어촌특별세인 1.4%만 과세되고 나머지 14%는 비과세된다. 총 이자소득의 1.4%만 세금으로 내면 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 채권은 발행 당시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투자 대상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만기가 100년이라는 독특한 구조가 이야깃거리는 됐지만 실제 투자처로는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외환위기 직후 이보다 더 안전한 은행의 예금 이자가 연 4%를 훨씬 넘어 10%에 육박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 금융사들이 고금리 후순위채권을 앞다퉈 판 것도 4%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이 채권을 인기 없게 만들었다. 외환위기와 카드사태 등을 거치며 가라앉았던 주식시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무섭게 급등하며 개별 주식은 물론 펀드, 랩어카운트 상품 등으로 관심이 몰렸던 것도 사실이다.
   
   
연 4% 정도 이자 수익 달러로 지급
   
그랬던 만기 100년짜리 한전 채권에 대한 투자자들과 금융권 관계자들의 관심이 커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당장 저금리 상태가 지속되며 금리 4%짜리 상품을 찾기 힘들어졌다. 한 번 투자로 4% 정도의 수익을 오랫동안 확보할 수 있는 투자 상품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절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고, 정부의 세원 확보 강화 움직임이 확대되며 비과세 투자 상품이 축소되는 상황도 이 채권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여기에 국가가 주인인 한전의 특수성으로 인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안정성, 그리고 만기가 길다는 점이 상속용 투자처로서도 주목도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이 투자상품에는 단점도 존재한다. 당장 사고 싶다고 쉽게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이 채권 소유자가 모두 공개된 건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발행 채권 상당량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채권 거래에서 해외 소유자들은 대량 거래를 선호하고, 높은 가격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특성을 보인다. 한국 시장, 한국 투자자들이 사들일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매도 물량이 등장했을 때 매수 경쟁이 커진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또 최소 억원대의 투자금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투자 진입 장벽 중 하나다.
   
달러 표시 채권의 특성상 환율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환율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늘 수도 있지만 자칫 수익이 낮아질 수도 있다. 즉 수익 회수와 관련해 늘 환율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품이라는 뜻이다.
   
한전과 관련해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적자에 빠지며 수익성이 추락했고, 관치에 허덕이면서 투자처로서 매력이 급락했다. 하지만 한전을 향한 주식시장의 평가가 박해지고, 주가와 배당금이 추락할수록 무려 23년 전 나왔던 만기 100년짜리 채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등록일 : 2019-07-02 09:34   |  수정일 : 2019-07-0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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