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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홍콩발 역도미노게임

글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2019-07-01 09:50

▲ 일요일인 지난 6월 16일 대규모 시위에 나선 홍콩 시민들. 이날 시위대 규모가 200만명에 이르렀다. / photo by 뉴시스·AP
도미노게임은 벽돌 모양의 작은 블록(패)을 촘촘히 세워놓고 맨 앞에 있는 첫 번째 블록을 쓰러뜨리면 그 뒤의 블록들이 연이어 쓰러지도록 만드는 놀이를 말한다. 이 게임에서 파생된 국제정치학 용어가 ‘도미노이론(Domino Theory)’이다. 존 포스터 덜레스 전 미국 국무장관은 1953년 동남아에서 한 국가가 공산화하면 도미노 패가 연달아 넘어지듯 차례차례 주변국들이 공산화한다는 도미노이론을 처음 제시했다. 덜레스 전 장관은 동북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은 미국의 6·25전쟁 개입으로 한반도 허리에서 저지됐지만 서방의 전략적 입지가 약한 동남아 지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인도차이나의 공산화 도미노
   
이런 경고는 베트남에서 실제 상황이 됐다. 프랑스는 1954년 국제사회의 중재로 제네바협정에 따라 북위 17도를 경계로 베트남을 남북으로 나누는 분할안에 합의하고 식민 지배를 포기했다. 이에 따라 북위 17도 위쪽 지역엔 호찌민의 베트남 공산당이 주축이 된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월맹)이, 아래쪽엔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제13대 황제인 바오 다이를 총리로 하는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월남)이 각각 세워졌다. 월맹이 첫 번째 도미노 패가 된 것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덜레스의 조언에 따라 도미노의 다음 패인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월남에 상당한 지원을 해주었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인도차이나는 도미노의 첫 줄”이라며 “인도차이나가 무너지면 버마(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가 다음이며 이후 일본, 대만, 필리핀은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전략을 존중했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도 월남에 군사 지원까지 해주었고, 후임인 린든 B. 존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에 대규모 병력까지 투입했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3년 1월 월맹과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을 철수시켰다. 이에 따라 월맹은 1975년 4월 월남을 무력으로 통일시키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베트남)을 세웠다. 이후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차례로 공산화됐다.
   
20세기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도미노이론이 실현됐듯이, 21세기에도 도미노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지역들이 있을까. 만약 도미노이론이 적용된다면 첫 도미노 패는 어디가 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1997년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은 홍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청나라가 서구 열강과의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에서 패배해 난징조약을 맺고 홍콩을 영국에 할양한 것을 치욕의 역사라고 생각해왔다. 이 때문에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홍콩을 되찾기 위해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끈질기게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대처 총리는 홍콩에 구축해놓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가 붕괴될 것을 우려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기를 꺼렸다. 이를 간파한 덩은 홍콩에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세계 역사상 초유의 제도를 50년간 보장한다고 밝혔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2개 체제, 다시 말해 국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지만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따른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 지난 6월 16일 타이베이에서 홍콩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만 시민들. photo 뉴시스·AP

홍콩의 중국화 밀어붙인 시진핑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은 홍콩을 중국으로 완전히 귀속시키기 위해 2014년 6월 10일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이란 제목의 백서를 발표하면서 덩의 약속을 깨고 새로운 일국양제 원칙을 제시했다. 이 백서에는 “홍콩의 관할권은 중앙정부가 전면적으로 보유한다. 일국양제의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특히 시 주석은 “양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경제 체제의 원칙을 가리킨 것일 뿐, 정치 체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시 주석의 의도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를 홍콩에 도입해 ‘홍콩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를 2047년까지 그대로 유지시킬 경우 대만과의 통일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티베트와 위구르 등 소수민족들의 독립과 자치권 요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그동안 홍콩처럼 티베트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해줄 것을 촉구해왔다. 또 신장위구르 지역에선 동투르크이슬람운동(ETIM) 등 과격세력들이 무장투쟁을 통해 분리독립운동을 벌여왔다. 게다가 시 주석은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에 영향을 받은 중국의 민주화 세력이 서구식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할 경우 자칫하면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중국 정부가 2014년 9월 ‘우산혁명’이라고 불린 홍콩 대학생과 시민들의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홍콩 경찰을 동원해 철저하게 저지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은 영국과의 주권반환 협정에서 2017년 홍콩 시민들의 직접선거로 행정장관을 선출하기로 합의한 바 있었다. 결국 홍콩 대학생과 시민들이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지키라며 벌였던 민주화 시위는 실패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각종 정치 문제에 개입하고 입법부와 사법부, 언론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등 ‘홍콩의 중국화’ 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지도부는 징역형이 선고됐고, 독립을 주장했던 홍콩민족당은 강제로 해산됐다. 독립 성향을 가진 야당 후보들은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반중 서적 출판업자들을 홍콩에서 중국으로 강제연행하기도 했다.
   
   
홍콩의 민주화, 대만 차이 총통을 살리다
   
이처럼 중국 정부의 지나친 중국화 정책에 대해 불만과 반감을 느껴왔던 홍콩 시민들은 홍콩 정부 수장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추진하자 지난 6월 9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00만여명과 200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홍콩법은 영국법의 속지주의를 따르고 있어 타국에서 발생한 범죄를 처벌할 수 없으며,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 범죄자를 인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중국,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면서 개정에 반대했다. 다시 말해 홍콩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홍콩을 자국의 통제에 두려다 오히려 홍콩 시민들의 반감에 불을 붙인 셈이 됐다.
   
홍콩 시위 사태는 동북아 지역에 도미노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만에서 중국이 그동안 주장해온 일국양제 통일론에 대한 거부감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눈엣가시로 여겨온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내년 1월 실시될 총통 선거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차이 총통과 집권 여당인 민진당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중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 따른 경제난으로 제1야당인 국민당에 참패했다. 이 때문에 차이 총통은 민진당 주석(대표)직에서 사임했고 차기 총통 선거에 도전하지도 못할 것이란 말까지 나왔었다.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일국양제를 거부해온 차이 총통과 대만 정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왔다. 하지만 차이 총통은 지난 6월 12일 민진당 총통 후보 경선에서 도전자인 라이칭더 전 행정원장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됐다. 대만 언론들은 차이 총통이 중국 정부의 일국양제 통일론 압박에 단호하게 대응한 덕분에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차이 총통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들에게 크게 밀렸지만 홍콩 시위 사태 이후 지지율이 뚜렷이 반등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홍콩 시민들의 민주, 자유, 인권을 수호하려는 시위를 볼 때 일국양제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친중 성향인 국민당의 유력한 총통 후보인 한궈위 가오슝시 시장은 “홍콩 시위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내 주검을 밟고 넘어가지 않는 한 대만에서 일국양제는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국민당 후보 경선에 나선 대만 최고 부자인 궈타이밍 훙하이 정밀공업 회장도 “홍콩의 일국양제는 실패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국민당 후보가 차기 대만 총통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면서 물밑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지원해왔다. 하지만 홍콩 시위 사태를 계기로 대만에서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지고 있어 대만 총통 선거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시나리오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 2017년 7월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두 번째)이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 국가를 부르고 있다. photo SAR

홍콩 일국양제 성공 여부는 대만 통일과도 직결
   
일국양제의 성패는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 실현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요소다. 홍콩에서 일국양제가 실패하면 대만과의 통일도 자칫하면 물 건너갈 수 있다. 시 주석은 올 초 ‘대만 동포들에 전하는 연설’에서 “체제의 차이는 통일의 장애물이 아니며, 분열의 핑계는 더더욱 아니다”라면서 “일국양제는 대만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통일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시 주석은 홍콩의 일국양제를 성공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차이 총통이 연임에 성공할 경우 양안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중국의 대만과의 통일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홍콩 시민들이 궁극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할 경우 중국 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베트남의 공산화가 도미노이론에 따라 인도차이나반도의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영향을 미쳤듯이, 홍콩의 독립 추구가 대만은 물론 중국 본토의 티베트와 신장위구르까지 확산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공산화’ 도미노가 아니라 ‘독립과 민주주의’라는 역(逆)도미노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사태가 우려되자 시 주석은 지난 6월 20일과 21일 평양을 1박2일간 방문하면서 ‘북한 카드’를 전격 꺼내들었다.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평양 방문을 주저해왔던 시 주석으로선 미국이 홍콩과 대만 문제 등 가장 아픈 지점을 건드리기 시작하자 ‘북한 카드’로 견제구를 던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시 주석의 방북은 홍콩에 몰렸던 국제사회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북한 핵 문제에 최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내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시 주석은 미국의 홍콩과 대만 개입을 막기 위해 김정은 정권의 ‘뒷배’가 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시 주석은 김정은에게 “중국은 조선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한다”면서 “중국은 조선이 합리적 안보·발전 관련 관심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북한에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해주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시 주석은 6월 21일 김정은과 함께 중·조 우의탑을 찾아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자들을 추모하며 ‘혈맹’임을 과시했다.
   
홍콩 시위 사태라는 도미노 패가 대만과 티베트, 신장위구르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시 주석의 ‘북한 카드’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 사태를 언급하면서 가장 강력하게 경계한 것이 ‘외세의 개입’이다.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이고, 홍콩의 사안은 중국의 내정”이라면서 “홍콩 내정에 대한 외세 간섭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성명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외세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홍콩의 가치는 북한에 비해 엄청나다. 홍콩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3630억달러로 싱가포르(3611억달러), 말레이시아(3543억달러), 필리핀(3308억달러)보다 많다.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도시인 홍콩은 중국 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루트다. 홍콩은 광저우, 선전을 연결하는 주장삼각주의 중심 지역이다. 주장삼각주는 중국에서 제조업의 심장이다. 이 때문에 홍콩의 경제적 중요성은 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홍콩의 정치·안보 및 지정학적 가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시위 사태에 개입한다면 중국 정부와 시 주석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홍콩 사태로 위기 느낀 시진핑 북한 카드 꺼내
   
대만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안보 및 지정학적 가치 면에서 홍콩보다 더욱 중요하다. 특히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만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시 주석을 자극해왔다. 심지어 미국 국방부는 지난 6월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민주주의 국가들과 동맹 관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기술하면서 대만을 ‘국가(country)’라고 처음 명기했다. 미국 정부는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 대륙과 대만·홍콩·마카오를 모두 중국의 영토로 보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했다. 보고서의 내용으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중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하고 ‘대만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 주석의 ‘북한 카드’는 역도미노를 막기 위한 적절한 패는 아니다. 시 주석이 ‘북한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세를 편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시 주석이 말 그대로 ‘제2의 천안문사건’를 감수하더라도 홍콩 시위 사태를 진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무튼 홍콩판 도미노게임에서 궁지에 몰린 것은 시 주석과 중국 정부인 것만은 분명하다.
등록일 : 2019-07-01 09:50   |  수정일 : 2019-07-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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