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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시장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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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배용진 주간조선 기자 2019-06-29 08:57

▲ 지난 5월 20일 ‘한전 소액주주행동’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한전 강남지사 앞에서 김종갑 한전 사장 사퇴와 탈원전 정책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 photo by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6월 18일 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여름철 전기료 누진제 개편 권고안을 내놓았다. TF가 최종 선택한 안(1안)에 따르면, 올해 여름부터 작년 사용량 기준으로 총 1629만가구가 매년 7, 8월마다 15.8%씩 요금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2·3단계 가구에 각각 100㎾h, 50㎾h(월 사용량 기준)씩 상한을 높여 요금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번 개편안은 누진제를 사실상 그대로 두고 1629만가구에 월 1만원 정도 깎아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국전력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변경된 누진제를 7월 요금부터 반영할 계획이다.
   
전기료 누진제는 매년 여름철이면 돌아오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워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마음대로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는 국민 불만이 주를 이룬다. 민·관 TF는 지난해부터 약 1년간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와 심층면접, 전문가 토론 등을 통해 권고안을 마련했다.
   
한전은 이번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홈페이지에서 자체 여론수렴을 했다. 당초 자체 여론조사 결과는 누진제를 아예 폐지하는 3안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3가지 개편안 중 2안은 현행 3단계인 누진제를 매년 7, 8월에만 2단계로 줄이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전력을 많이 쓰는 3단계 구간(609만가구)이 2단계 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별개로 TF 전문가들이 소비자 1000여명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조사에서는 당초 3안을 선택한 이들이 최종 권고안인 1안으로 많이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관 TF에 참여한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처음에는 3안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정보를 충분히 주니 3안에서 1안으로 옮겨간 비율이 높았다”며 “결론적으로 1안을 선택한 분들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 유 교수와 함께 이번 민·관 TF에 참여한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본부장은 전화통화에서 “매년 여름마다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말이 나오다 보니 일단 여름철마다 반복되는 불편은 피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 사용량과 소득수준 비례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전기를 많이 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번 민·관 TF에 참여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사 결과 가구별 전기 사용량과 가구의 소득별 계층은 비례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TF가 전력 사용량 1단계에 해당하는 1만가구를 조사한 결과, 이 중 80% 정도는 저소득층이 아닌 가구였다. 대기업 등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혼자 사는 가구의 경우 경제력은 있지만 전력을 사용하는 양은 적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사 대상인 전력 사용량 1단계 1만가구 중 나머지 20%는 실제로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었다. 유승훈 교수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전력 복지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것으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예컨대 고시원이라든지 판자촌 등 애매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태를 자세히 파악하기가 여의치 않았다”며 “이들은 누진제를 폐지하면 당장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1년 정도의 정밀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존 전기요금 누진제는 월간 사용량을 기준으로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0~200kWh까지이고 2단계는 200~400kWh, 3단계는 400kWh 이상이다. 1단계는 1kWh당 요금이 93.3원이고, 2단계는 187.9원, 3단계는 280.6원을 낸다. 1단계는 전력생산 요금보다 판매가가 더 적기 때문에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고, 2단계는 원가와 비슷한 수준, 3단계는 원가보다 두 배가량의 가격이라는 것이 TF에 참가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3단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전이 이익을 낸다는 것이다.
   
   

무산된 원가 공개 움직임
   
이번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앞두고는 한전이 그간 영업기밀로 취급해온 전기요금 원가를 밝히겠다고 나서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한전이 사전에 정부와 협의하지 않고 전기요금 원가 공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전이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지난 6월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공청회에서 두 차례나 전기요금 원가공개 방침을 밝혔다. 그는 “지금은 전기요금 청구서에 기본료와 사용료, 부가가치세 등이 기재되는데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공개할 방침”이라고 했다. 공급원가는 전기를 쓰는 용도에 따라 주택용·산업용·농사용 등으로 구분되는데, 내부 검토를 통해 소비자가 쓰는 전기 용도에 따라 도·소매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내용을 청구서에 기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한전의 원가공개 방침은 다음날 “전기요금 원가를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말을 바꾸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적자를 낸 한전이 전기료 할인에 따른 부담까지 떠안을 처지가 되면서 만든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유승훈 교수는 “한전이 왜 원가를 공개한다고 했었는지는 명확하다”며 “일반적으로 산업용 전기는 원가 이하로 공급하고, 주택용 전기는 비싸게 받는다는 게 국민 인식인데, 진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산업용 전기는 연중 일정하게 막대한 양을 쓰고 자체 배전 시스템과 선로를 갖추기 때문에 공급 원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반면, 주택용 전기는 계절별·가구별로 사용량이 들쭉날쭉하고 따로 배전 선로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공급 원가가 훨씬 높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주택용은 원가의 70~80%밖에 못 받고 산업용은 원가의 110% 이상을 받는데 국민들은 반대로 오해를 하기 때문에 한전은 원가를 공개해 이걸 알리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TF에 참가했던 이유수 본부장은 “지금은 전기요금 용도별 원가가 얼마인지 정확하지 않으니 소비자들도 수긍할 수 있도록 한전이 ‘그러면 공개를 해볼 수 있다’고 한 차원 정도로 본다”며 “논란이 많은 부분이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원가를 알아야 이 요금이 적절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토론을 하는데 지금은 자료 자체가 없다 보니 근거가 아예 없다”며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세부적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한전이 용도별 전기요금의 원가를 공개한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말을 바꾼 이유는 내부에서도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전기요금 관련 부서에서는 “원가를 공개하자”고 한 반면, 경영을 맡은 쪽에서는 “공개하지 말자”고 맞섰다는 것이다. 산업부 역시 전기요금 원가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중요 사안이고, 한전이 뉴욕 증시에 상장한 기업인 만큼 “공개하는 게 합리적이냐”는 반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요금 원가 공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누진제 개편으로 한전에는 다시 2900억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더해진다. 한전은 지난 1분기에 분기 사상 최고인 약 629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유가 상승과 원전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오는 수익성 악화, 전남 나주에 짓고 있는 한전공대 건립 등이 한전 재무상태를 악화시킨 부담 요소로 꼽혔다. 여기에 이번 누진제 개편으로 추가 부담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유수 본부장은 “적자 문제가 포함됐으면 개편안 결과가 1안으로 도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요금에 비용을 반영해야 하는데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요금 논란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의 재무상태를 고려했으면 누진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3안으로 갈 수도 있었다는 뉘앙스였다.
   
김종갑 한전 사장이 최근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싸다”며 전기 원가와 요금을 비유한 것도 한전의 압박감을 절실히 나타낸 발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그간 유능한 경영인으로 꼽혔던 김종갑 사장이 한전에 왔지만 외부적 요인이 커서 사실상 본인이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데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하자는 차원에서 얘기를 했지만 대통령과 산업부 장관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을 했으니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력노조 간부 출신인 이경호 한국노총 사무처장도 전화통화에서 사견을 전제로 “한전 적자 문제는 요금체계부터 전력 거래 방식까지 연관된 총체적 문제”라며 “원료가 비싸지면 반영이 돼야 하는데 요금체계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반면 이번 누진제 개편으로 인해 실제로 한전에 가해지는 압박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유승훈 교수는 “한전의 부담이 심해지는 건 맞지만 이번 개편은 여름철에 특별히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다”며 “반대로 개편된 누진제로 여름에 에어컨을 많이 틀면 3단계, 원가보다 높은 요금을 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한전 재무상태가 좋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누진제 1단계에 해당하는 가구는 원가 이하의 요금을, 2단계는 원가와 대략 엇비슷한 요금을, 3단계는 원가 2배 수준의 요금을 낸다. 유 교수는 “누진제 완화는 했는데 올여름이 상대적으로 덥지 않으면 전기 사용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며 “날씨가 변수”라고도 했다.
   
   
▲ 전남 나주의 한국전력 본사. photo 조선일보

정부 재정지원 받을 수 있을까
   
이처럼 수익성은 악화되지만 한전이 별다른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피해는 주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11일 주택용 전기요금 공청회에서 장병천 한국전력 소액주주행동 대표는 “패널들 출연료를 내가 낼 테니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며 10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는 최근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한전 경영진들의 배임 소지가 있다며 이들을 고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장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외국인들은 대부분 펀드 형태로 한전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외국인 직접투자자를 수배하고 있고 우선 국내 주주들끼리 힘을 모은 후 외국인들과도 협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70~80명 정도의 소액주주들이 합심해 활동하고 있다”며 “6월 중으로 한전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전은 뉴욕 증시에 상장한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국인 소유 비중은 지난 2015년 4분기 31.32%에서 올해 1분기 27%까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현재 한전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으로 32.9%의 지분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정부 쪽 보유 지분을 합치면 51%다. 반면 외국인도 아직 27%가 넘는 비중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고, 국내 주주들도 2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민·관 TF가 권고안을 확정하면서 공은 6월 21일 열리는 한전 이사회로 넘어간 상황이다. 한전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사내이사 격인 상임감사 7명, 사외이사 격인 비상임감사 8명으로 구성된다. 사내이사는 7명 중 5명을 한전 사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경영진과 충돌하는 의견을 내는 경우가 드물다. 사외이사는 한전 경영 악화를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사외이사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8명이 있다.
   
일각에서는 “한전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한다. 실제로 한전의 성과급, 억대 연봉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다. 하지만 공공기관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한전의 지출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가 되지 않는다. 한전 지출의 대부분은 사업비로 편성돼 발전소 설치와 유지 보수 등 고유 사업을 하는 비용으로 나간다. 공기업 경영평가는 손익이나 재무구조가 아니라 ‘사회적 기여’ 등에 더 많이 좌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전이 적자를 내거나 부채가 늘어도 한전 임직원은 월급은 물론 성과급을 받는 데도 큰 지장이 없다.
   
결국 쟁점은 한전이 이번 누진제 개편으로 발생한 손실분을 정부로부터 재정지원받을 수 있을지의 문제로 좁혀진다. 한전은 지난해 정부에 약 3000억원의 재정 지원을 요청했지만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지원받지 못했다. 지난 6월 17일 국회 산자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한전 본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종갑 사장은 최근 한전 영업적자를 설명하면서 현재 논의 중인 주택용 누진제 개편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하고, 사업효율 개선 및 사업규모 조정 등의 노력을 통해 재무개선을 이루겠다”고 보고했다. 유승훈 교수는 이에 대해 “하계 냉방에 대한 권리는 국민에 대한 복지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도로공사, LH, 수자원공사도 공익 활동을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재정보조를 해주듯, 복지 차원에서 발생한 손해분은 정부가 재정으로 기금을 편성해 메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전력산업기금을 쓰든지 별도 명목으로 신설 기금을 마련해 한전의 손실분을 보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조선
등록일 : 2019-06-29 08:57   |  수정일 : 2019-06-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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