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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돗물’이 확실한 인재인 이유

글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2019-06-25 09:40

▲ 김영훈 환경부 물통합정책국장이 지난 6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인천 지역 ‘붉은 수돗물’ 사태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photo by 뉴시스
인천의 ‘붉은 수돗물’ 소동이 수도사업본부의 총체적 관리부실에 의한 인재(人災)로 밝혀졌다. 정수장의 정비를 위해 수돗물 관로를 변경하는 수계(水系) 전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대형 수도관에 고압의 수돗물을 급하게 역류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수도관에서 떨어져나온 붉은 녹과 물때가 정수지 바닥에 쌓여 있던 침전물과 뒤섞이면서 만들어진 엄청난 양의 시뻘건 녹물이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공급되었다.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상식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데 20일이나 허둥거린 환경부와 인천시의 부실도 심각했다. 
   
그렇다고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그저 녹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하는 모양이다. 한 달이 넘게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붉은 수돗물’은 ‘녹물’
   
수도꼭지에서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전에도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다. 단수 후에 수돗물 공급이 재개되면 일시적으로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대부분 철제 수도관의 부식으로 생긴 녹이 주범이다. 그런 녹물에서는 특유의 녹 냄새가 난다. 수도 사정이 좋지 않았던 과거에는 누구나 심심치 않게 경험하던 일이었다.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3주가 넘도록 오염된 수돗물이 계속 쏟아지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상권이 무너지고 학교 급식도 중단됐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붉은 수돗물’이나 ‘적수(赤水)’라는 낯선 표현도 불안을 부추겼다. 2012년부터 지자체의 수돗물 관리자들이 누구나 이해하는 ‘녹물’이라는 친숙한 표현 대신 낯선 용어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인천시의 관리부실은 혀를 찰 수준이었다. 수계 전환을 할 때 수압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켜서 녹물 발생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쾌한 지침이다. 
   
녹과 물때가 잔뜩 끼어 있는 수도관 내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정수장의 작업자들이 그런 상식을 무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정수장 바닥에 쌓여 있는 녹과 침전물, 망가진 탁도계를 방치한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주민들의 고통을 먼 산 바라보듯 했던 인천시와 환경부가 간이수질검사를 핑계로 시뻘건 녹물에 대한 ‘음용 불가’ 판정을 거부했던 일도 황당했다. 녹의 주성분인 철(鐵)은 검출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혼란스러웠다. 붉은 수돗물에서 철이 검출되지 않았다면 이물질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어야만 했다. 수돗물 오염의 주범이라고 보기 어려운 망간·니켈·알루미늄을 들먹여서 혼란을 부추긴 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염소 정수법은 인류의 걸작
   
지구는 태양계의 8개 행성 중에서 액체인 물이 넘쳐나는 유일한 행성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민물이 넘쳐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97%는 짠 소금이 평균 3.4%나 녹아 있는 바닷물이다. 그나마 민물의 70%는 꽁꽁 얼어붙은 빙하와 빙산으로 존재한다.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지하수의 양도 엄청나다.
   
강·호수·우물의 민물이라고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은 무엇이든 잘 녹이는 유별난 화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금도 잘 녹고, 포도당이나 단백질과 같은 유기물도 잘 녹는다. 심지어 산소나 이산화탄소와 같은 기체도 녹아들어간다. 물이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도 그런 화학적 특성 때문이다.
   
무엇이든 잘 녹아들어가는 물의 독특한 특성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수인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도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물은 쉽게 썩기 마련이고, 세균으로 오염된 물을 마시면 고약한 감염성 질병에 걸리게 된다. 
   
실제로 조선시대 한성의 주민들이 평균 2년마다 역병(疫病)에 시달렸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깨끗한 수돗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1970년대까지도 수인성 전염병은 심각한 골칫거리였다.
   
인류를 수인성 전염병에서 해방시켜준 것이 바로 20세기에 개발된 ‘염소 소독법’이었다. 염소를 이용해서 깨끗하고 건강한 수돗물을 생산하도록 해주는 정수(淨水) 기술은 인류의 보건위생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준 위대한 걸작이다. 수돗물에서 염소 냄새가 난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 수돗물에 남아 있는 잔류 염소는 냉장고에 넣어두거나 끓이기만 하면 말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
   
   
수돗물을 활용하는 지혜
   
깨끗한 수돗물을 생산하는 데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정수 비용은 수돗물 생산에 사용되는 원수(原水)의 수질에 반비례한다. 상수원의 물이 깨끗할수록 정수 비용이 적게 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수원의 오염을 막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상수원 보호구역에는 공장이나 축사도 허가하지 않고 화학비료의 사용도 억제한다.
   
깨끗한 수돗물의 혜택을 온전하게 누리려면 소비자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소비자의 부주의로 애써 깨끗하게 만든 수돗물을 다시 오염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낡은 옥내 배관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아파트·대형건물·단독주택에 설치된 저수조(물탱크)도 문제가 된다. 아파트와 대형건물의 저수조는 매년 2회 이상 의무적으로 청소를 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단독주택의 저수조도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야만 한다. 자신의 노력은 게을리하고, 무작정 수돗물의 수질만 탓해서는 안 된다.
   
정수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철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필터를 교체하고 내부의 파이프도 철저하게 세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수기는 내부 구조가 간단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정수기에 고도의 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육각수·이온수·알칼리수·수소수처럼 의학적 효능을 요란하게 강조하는 정수기는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생수(먹는 샘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경계해야 한다. 생수도 다른 물과 마찬가지로 쉽게 오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생수 업체의 마케팅은 경계해야 한다. 생수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도 걱정해야 한다.
   
수돗물에 대한 근거 없는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더욱 획기적으로 강화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주간조선
등록일 : 2019-06-25 09:40   |  수정일 : 2019-06-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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