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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끝에 맺힌 봄의 향기

‘봄나물의 제왕’ 두릅을 찾아서

글 | 이지형 작가·푸드칼럼니스트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4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경기도 용문으로 가는 열차표를 끊었다. 이미 며칠 전, 시내 대형마트에서 플라스틱 포장 속에 얌전한 두릅을 목격했다. 쌉쌀한 맛과 독특한 향, 그리고 아삭한 식감으로 ‘봄나물의 제왕’ 호칭을 얻은 두릅. 옛 문헌이 전하는 명성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두릅나무’ 항목은 ‘해동죽지(海東竹枝)’란 20세기 초 문헌을 인용하며 이렇게 전한다. ‘용문산의 두릅이 특히 맛있다.’
   
   작년 5월쯤이었나, 양평 지나 용문역에 우연히 내렸다가 역 바로 앞, 어지럽게 선 장(場)에서 쇳내 알싸한 취나물을 듬뿍 사왔던 기억도 났다. 4월 초의 일요일 아침, 청량리역으로 달려간 건 그렇게, 옛 책의 구절과 봄나물이 합세해 뿜어올린 한 줄기 향 때문이었다.
   
   안동행 무궁화호 1603호 열차에 올랐다. 열차의 종점인 안동까지야 여러 시간이지만 용문까지는 고작해야 40분 남짓이다. 덕소와 양평만 지나면, 저 멀리로 후덕한 용문산을 펼치고 있는 용문역이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두릅으로 만든 요리가 떠오르고 만다. 두릅을 활용한 레시피는 다양하다. 전을 부치고, 장아찌를 만들고, 된장찌개에도 넣지만, 숙회와 튀김이 그중 윗길이다. 요리의 본질은 좋은 재료의 선택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두릅 숙회다. 나무의 줄기에 붙어 있었을 두릅 밑동의 붉은 껍질을 벗겨내고, 소금 넣은 끓는 물에 잠시 데친 뒤 찬물에 헹구면 끝이다. 그걸 초고추장에 툭 찍어 먹으면, 쌉쌀하고 아리면서도 달콤한 봄의 향이 입안으로 차오른다.
   
   연한 밀가루 반죽에 슬쩍 적셨다가 뜨거운 기름 속에서 완성하는 두릅 튀김은, 튀김 중 예외적으로 느끼함에서 자유롭다. 얇은 튀김옷을 관통해 두릅을 깨무는 순간, 두릅의 향과 즙이 퍼지며 혀를 자극하니 느끼할 틈이 없다.
   
   그런데 숙회도 튀김도 두릅의 전통적 요리법은 아닌가 보다. 열차 창밖으로 여전한 아파트들의 풍경이 무미건조해 스크랩해두었던 자료를 몇 장 넘기는데, 100년 전 두릅 레시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생두릅을 물러지지 않게 잠깐 삶아 약에 감초 쓰듯 어슷하게 썰어놓고 소금과 깨를 뿌리고 기름을 흥건하도록 쳐서 주무르면 풋나물 중에 극상등이요….”
   
   얼마나 맛있길래 ‘극상등(極上等)’씩이나.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흥건한 기름’ 사이를 홀연히 뚫고 나와, 지나친 고소함에 막 질리려는 우리의 입맛을 쌉쌀하게 훑어주는 두릅의 맛과 향…. 눈 질끈 감고 그 맛을 상상하는데, 열차의 안내방송이 덕소를 알린다.
   
   
   참두릅, 땅두릅, 개두릅
   
   덕소를 벗어나고 5분쯤 지났을까? 차창 밖으로 산과 강이다. 저기 저 산들이, 싱싱한 두릅 자라고 있을 용문까지 이어지는 거겠지. 두릅은 매년 4~5월, 두릅나무의 가지 끝으로 삐죽 솟아오르는 봄 새순이다. 나무 끝에 마알간 초록으로 맺히는 새순을 톡 꺾어, 데쳐 먹고, 튀겨 먹고, 국에도 넣어 먹는다. 두릅을 이르는 한자어를 보면 겨우내 비축한 에너지로 새순을 밀어올리고 있는 두릅나무의 모습이 금방 떠오른다.
   
   한자로 목두채(木頭菜) 또는 목말채(木末菜)다. 감각적인 작명이다. 나무(木)의 가장 높은 곳(頭)에, 나무의 가장 끄트머리(末)에 맺히는 나물(菜)이라니. 차디찬 겨울을 침묵으로 견뎌내며 뿌리에 저장하고 있던 영양분을, 봄 들어 아주 천천히 끌어올린 뒤 자신의 지엽말단을 통해 분출하는 나무의 생명력을 상상하는 것은 즐겁고도 숭고하다. 이게 ‘참두릅’이다.
   
   그런데 시장에 나가 보면 ‘땅두릅’이라고 써놓은 두릅도 많다. 어느 쪽이 좋다거나 맛나다고, 비교하고 차별할 건 아니다. 참두릅은 참두릅대로, 땅두릅은 땅두릅대로 저마다의 향과 맛을 발한다.
   
   땅두릅은 두릅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에서 뜯어내는 새순이다. 나무가 아니라 풀이니, 땅을 파헤치고 순을 뜯게 되고 그래서 땅두릅이다. 땅두릅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먹는 새순 외에, 뿌리도 귀한 약재로 쓰인다. 근육통·마비·두통·중풍에 좋다.
   
   남다른 약성(藥性)을 반영하듯, 땅두릅을 새순으로 내미는 풀의 이름은 독활(獨活)이다. 다른 풀들이 바람을 못 이겨 축축 늘어질 때에도, 이 풀만은 홀로(獨) 쌩쌩하다(活). 그렇게 건강한 몸체가 봄기운을 담아 밀어내는 땅두릅의 활력 또한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참두릅, 땅두릅에 또 하나의 두릅 ‘개두릅’이 가세한다. 이건 음나무의 새순이다. 두릅나무과에 속하지만, 두릅나무보다 크다. 새순의 이름을 좇아 음나무를 그냥 개두릅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어떤 두릅이든 새순이고, 봄나물이다. 그런데 두릅의 맛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옛사람들은 늦가을이면 두릅나무 가지를 꺾어 방안 화분에 두고 정성스레 물을 줬다. 그럼 계절을 헷갈린 두릅이 한겨울에 새순을 내놓고 만다. 겨울철에도 그렇게 두릅을 즐겼다. 산에서 가지를 잘라다가 (또는 중국산 묘목을 들여다가) 하우스에서 길러낸 요즘 두릅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옛날 온돌방에서 어렵사리 키워 먹던 겨울 두릅 생각하며 너그럽게 먹어주잔 얘기다.
   
   
   사포닌과 단백질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참두릅, 땅두릅, 개두릅의 이미지를 찬찬히 떠올리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양평을 알린다. 용문까지 10분도 안 남았다. 용문역 앞 장터로 내려온 용문산 두릅나무의 새순을 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두릅을 호위하고 있을 다른 봄나물들도 함께 만나겠지.
   
   그런데 봄이 되면 사람들은 왜 봄나물을 찾을까? 사람들이 특정 음식을 찾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흔하니까 찾는다. 안 보이면 찾을 일도 없고 먹을 일도 없다. 두릅을 비롯한 봄나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봄나물은 그 이상이다.
   
   봄날에 찾아오는 대사의 저하가 춘곤(春困)이다. 몸의 생리 기능이 원활치 못한 상황이다. 우리 몸은 그때, 흔히 말하는 5대 영양소 중 비타민과 무기질을 급구한다. 봄나물은 예외 없이 비타민과 무기질의 보고(寶庫)다. 봄에 봄나물을 먹는 건 흔해서이기도 하지만, 낮·밤, 주중·주말을 안 가리고 달려드는 춘곤을 퇴치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봄나물의 왕인 두릅이야 말할 나위 없다. 비타민 A와 비타민 C가 노곤한 몸에 원기를 돋워주고, 칼륨과 인·칼슘이 심신을 안정시킨다. 거기에 덤이랄까. 두릅은 봄나물로는 이례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다. 두릅 100g이면 3.7g 정도의 단백질을 함유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 ‘봄나물의 제왕’이란 별칭을 얻진 못한다. 두릅은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단백질 뒤로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다. 바로 사포닌(saponin)이다.
   
   사포닌은 인삼과 홍삼의 주요 성분이다. 그렇다고 인삼과 홍삼에만 들어 있는 건 아니다. 가깝게는 마늘, 양파, 콩, 파, 미나리로부터 멀게는 칡, 영지버섯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사포닌을 함유한다. 두릅도 사포닌을 빼놓곤 얘기할 수 없다.
   
   사포닌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누(soap)’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나타난다. 비누는 물에 닿으면 거품을 내, 몸에 붙은 때를 씻어내준다. 사포닌이 우리 몸속에서 실제로 하는 일도 비누와 비슷하다. 혈액 속에 과다한 콜레스테롤이나 지방 성분을 흡착해서 몸 밖으로 내보낸다. 사포닌의 면역 효과야 인삼·홍삼의 효능을 통해 반복적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더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안내방송이 안동행 1603호 열차의 용문 도착을 알린다.
   
   청량리를 출발한 지 40분 만이다.
   
   
   용문산 두릅은 만나지 못했지만…
   
   1년 전, 역 앞을 갖가지 나물로 채우고 있던 장터의 장관을 기대하며 용문역 계단을 내려섰다. 계단 아래에는 용문산 아래로 자리 잡은 천년 고찰 용문사 부근의 식당 차량들이 호객에 한창이다. 절까지 데려다줄 테니 용문사와 용문사 은행나무를 구경하고, 그 뒤에나 자기네 식당에 들러달란 것이다. 기사 한 분에게 슬쩍 물어봤다.
   
   “혹시 두릅나물도 해요?”
   
   “두릅? 있나, 글쎄….”
   
   불안한 마음으로 차량을 헤치고 나갔다. 역전 우측으로 장이 초라하게 열려 있고, 초입에 몇몇 상인들이 나물을 펼쳐 놓았다. 꼼꼼히 쳐다보는데, 두릅은 없다. 개중 구색을 갖춰 봄나물을 늘어놓은 중년의 사내에게 물었다.
   
   “두릅은 없어요?”
   
   “지금 구해달라면 따다 줄 순 있는데 비싸. 한 관에 18만원은 줘야 해.”
   
   자연산 참두릅을 얘기하나 보다.
   
   “지금이 철 아니에요?”
   
   “용문산 쪽은 4월 중순은 넘어가야 제대로지. 지금 두릅 나는 데는 아래 지방들이고…. 4월 중순 가면 한 관에 6만~7만원이면 살 수 있어. 명함 줄 테니 그때 가서 연락해요.”
   
   ‘용문산의 두릅이 특히 맛있다.’ ‘해동죽지’의 한 줄 평에 이끌려 무턱대고 찾아온 용문산의 두릅나무엔 아직 새순이 돋지 않았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두릅이야 시장에 가면 어디든 널렸다. 용문까지 찾아온 것은 물론 자연산 두릅의 향이라도 맡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옛 문헌에 나오는 용문산 두릅의 명성도 확인하고 싶었고.
   
   발길을 돌렸다. 청량리로 돌아가 멀지 않은 경동시장이라도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엔 남쪽지방 여러 곳에서 봄 향기를 이끌고 올라온 두릅들이 풍성할 것이다. 두릅뿐이겠는가. 쑥, 은달래, 씀바귀, 민들레, 곰취, 방풍, 보리순, 비름, 냉이, 달래, 삼채까지 봄을 한껏 머금은 나물들이 즐비할 것이다. 그들, 봄의 민초(民草)들이 몰고 온 계절의 향이 천지에 가득한데, 굳이 봄나물의 제왕만을 생각하겠는가.
등록일 : 2018-04-13 18:25   |  수정일 : 2018-04-1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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