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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오역 논란 번역청 설립을 許하라!

글 | 김효정 주간조선 기자

4월 한 달 한국 영화계는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쏟아낸 이야기로 북적였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영화 자막 번역과 관련된 문제다. 영화 ‘어벤져스’의 자막을 맡은 번역가는 그동안 마블 영화 대다수를 번역해온 박지훈 번역가다. 이번 논란이 있기 전에도 마블 팬들은 그의 번역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가 번역한 자막에 오류가 많았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 나온 대사다. 영화 주인공인 수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가 가장 친한 친구 버키 반즈와의 옛 일을 회상할 때 장면에서 오역이 나왔다. 버키 반즈가 원래 했던 말은 “I was gonna ask…(내가 하려던 말은)”였는데 번역가는 이를 “그거 할래?”라고 완전히 다르게 번역했다. 단지 한두 문장의 오역 때문에 팬들이 그의 번역을 꺼려했던 것이 아니다. 팬들은 그가 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자막을 번역한다고 여러 번 지적했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아예 영화를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오역이 나왔다. 주인공 캐릭터 중 하나인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를 완전히 다른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원래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는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대사였다. 그러나 그가 번역한 자막은 완전히 달랐다. 영어 관용어구를 직역하면서 생긴 일인데 팬들은 영화가 개봉한 날부터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왜 이 영화의 자막이 잘못 번역된 것인지,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지 토론을 이어나갔다.
   
   사실 오역 논란이 이번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만화,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번역물에 대한 오역 논란은 꾸준히 제기됐다. 명확하게 오역으로 판명된 부분뿐 아니라 문화적 배경이나 작품성과 괴리가 있는 어색한 번역에 대한 비판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번역가가 아닌 팬들도 외국어와 외국 문화에 능숙해진 데다 외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지식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영화 배급사 같은 영상물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번역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텐데 오역 논란은 왜 반복해 일어나는 것일까. 영상물 번역가나 번역물에 대해 제대로 신경 쓰지 않는 업계 풍토는 익히 잘 알려진 바다. 애초에 한국에서 번역은 부차적인 업무로 취급당한다. 이번 어벤져스 오역 논란과 관련해 영화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월트디즈니코리아 측에서는 주간조선에 “별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 없다”는 입장만 밝혔다. 영화 개봉 후 한 달 가까이 진행되는 논란에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열악한 번역의 세계
   
   대학에서 외국어를 공부해 석사학위를 딴 후 10년 가까이 번역가로 활동 중인 A씨는 이를 두고 “영화 배급사 측에서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는 독자, 시청자들이 외국어로 만들어진 창작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거든요. 모든 창작자들은 영상 장면 하나, 문장 한 줄에 의미를 담는데 번역을 대충 읽고 들리는 대로만 만든다면 창작자의 뜻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은 딱 ‘텍스트 언어 변환’ 그 정도로만 인식이 되고 있어요.”
   
   인터뷰를 요청한 10여명의 번역가 중 유일하게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해준 번역가가 A씨였다. 유명 영화 번역가 중 한 명은 “영화 번역가가 몇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터뷰를 하면 (누구인지) 드러날 것 같아 못 하겠다”고 취재 요청을 거절했다. A씨는 “번역가가 번역물을 맡게 되는 데는 어떤 공개된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맥, 기회 같은 것이 합쳐져야 한다”며 “번역가의 세계만큼 폐쇄적인 곳도 드물다”고 설명했다.
   
   영상물이든 서적이든 대부분의 번역물은 매우 촉박한 일정으로 진행된다. A씨 역시 한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를 몇 편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3편의 중편영화를 번역하는 데 단 이틀만 주어졌다고 했다. “세 작품 다 영상 없이 대본만 보고 번역하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나중에 한 작품은 번역에 참고할 만한 평론 같은 것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제대로 참고하기도 어려웠어요. 텍스트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만 급급해 대사의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을 파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영화제가 개막하고 나서 A씨는 자신이 번역한 작품을 영화관에서 처음 관람했다. 그마저도 번역가에게는 관람 기회를 따로 주지 않아 직접 예매해 봤다고 한다. “첫 작품을 보는데 도중에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인 장면이 나오더군요. 대사만 봐서는 심각한 장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그 뉘앙스를 미처 다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대본만 보고 번역할 때는 몰랐는데 영화 번역은 줄글 번역과 완전히 다르더군요. 영상에 자막을 입혀봤더니 번역가가 영화를 잘 모르고 직역(直譯)했다는 게 티가 났습니다.”
   
   그렇게 번역을 하고 받은 돈은 몇십만원에 불과했다. 그 시점에 A씨에게는 별다른 일감이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영화 세 편을 번역한 돈으로 생활했다. 대부분의 번역가는 A씨처럼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떠맡는다.
   
   “이건 악순환 같은 겁니다. 알음알음 번역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에 번역가는 최대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주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로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바는 저렴한 비용, 빠른 마감 같은 거지요. 이런 걸 잘 해내면 같은 클라이언트에게서 계속 일감이 들어옵니다. 그러니 번역의 질보다는 양, 속도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작은 영화제의 영화나 큰 배급사의 영화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번역은 문화 번역이다”
   
   A씨의 말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한국에서 번역이 어떤 지위를 가지느냐의 문제다. 예전에는 번역이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라고 인식됐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말로 바꾸어 알려주는 것’이라고 기계적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번역은 단지 언어를 변환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로 대표되는 문화적 차이를 짚어내 다른 문화권 사람에게 정확한 맥락과 의미를 전달해주는 일이다. 요즘 번역학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번역해내는 것을 두고 ‘문화 번역(cultural translation)’이라고 하는데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추세다.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을 지낸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는 “외국어 번역은 문화 번역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영상 번역은 문화 번역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그 중요성을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망의 발달로 한국에 미국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했을 때 주된 역할을 한 것은 자발적으로 드라마를 번역하고 자막을 만들었던 팬이었다. 이들 팬은 단지 언어를 번역할 뿐 아니라 자막에 부가적인 설명을 붙여가면서 시청자가 미국 드라마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미국 인기 시트콤 ‘프렌즈’는 아예 몇몇 팬이 팀을 꾸려 자막을 만들 정도였는데 이들 자막팀은 자막에 미처 반영하지 못한 미국 문화에 대한 해설은 따로 커뮤니티에 게시하기도 했다. 언어유희, 옛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설명 같은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시트콤 내용뿐 아니라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머코드까지도 이해하게 됐다.
   
   이런 점에서 번역가(translator)를 문화와 의미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희은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번역가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에는 능숙한 언어 실력도 있지만 상호 문화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도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 번역의 중요성이 거의 강조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 번역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야 하는 영상 번역, 즉 영화나 드라마 번역에서조차 번역은 단지 언어를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번역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니 최대한 번역을 값싸고 빠르게 해내려 하고 몇몇 오역이 생기더라도 일단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겨 놓는 것에 만족해하는 것이다.
   
   왜 한국에서는 번역이 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래전부터 번역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설명이다.
   
   “대부분 한국 대학의 교수들은 서구권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유학파입니다. 우리가 ‘우리 학문’을 정립하기도 전에 서구의 학문 체계와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이죠. 그것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들이 외국의 학문을 우리 사회에 전달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 없이 책임감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수들이 그렇게 책임감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학교가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번역이 덜 중요해진 이유
   
   미국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 대학의 교수로서 한국 학생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국어로 된 교재를 활용해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영어로 된 교재에 미국의 사례를 들어 미국식 경제학을 한국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문학번역원 이사를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이런 현실을 두고 “우리말로 세계를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괴테, 칸트 같은 고전문학, 고전철학 대가들의 전집(全集)은 한국어로 출간된 적이 없습니다. 일본에서 칸트 전집이 3번 번역될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한국어로 칸트를 다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칸트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일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학문의 발전이 이뤄질 리 없다. 번역서가 부족해 원서를 읽어내야만 학문에 통달할 수 있으니 전공자가 아니라면 학제 간 융합을 시도하는 일도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칸트 전집을 번역할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칸트 전집이 번역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박상익 교수는 “교수 개개인의 책임감 문제도 있지만 제도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한국 학계는 외형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대학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러면서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는 대학이 이른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 저널에 투고하는 교수에게는 더 많은 점수를 주면서 국내 저널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 식입니다. 교수들 입장에서는 외국어로 외국 학계에서 선호할 만한 주제를 연구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겠지요.”
   
   대다수의 대학에서 번역은 연구 실적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외국 서적을 한국 독자에게 한국어로 전하고 싶어 번역하는 일은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번역에 대한 보수도 낮을 뿐더러 연구실적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데 누가 책임감 있게 번역에 매달릴까요. 그냥 외국어로 말하고 외국어로 연구하는 일이 더 편한 교수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번역은 학문으로 잘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번역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존재하긴 하지만 여타 학문에 비해 위상이 매우 낮은 편이다. 번역학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없다. 번역을 하려는 사람도 적고 번역을 인정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보니 번역은 꼭 필요한 곳에서만 이뤄져왔다.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번역은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외국의 책을 번역해 출판해온 한 중소 출판사 사장은 “그렇지 않아도 적자로 운영되는 출판사에서 ‘줄일 수 있는 비용’ 중 하나가 번역료”라면서 “극히 전문적인 서적을 번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격적으로 경쟁력 있는 번역가에게 번역을 맡기곤 한다”고 말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번역청 설립에 관한 청원. photo 청와대

   더 이상 시장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번역에 대한 요구 수준은 높아지는데 능력 있는 번역가는 부족한 채로 제대로 된 한국어 콘텐츠를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학술 분야에서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당장 이번 ‘어벤져스’ 영화 오역 논란을 두고 보더라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는 사람과 자막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의 영화 이해 수준은 큰 격차를 보였다.
   
   거꾸로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외국어로 번역할 번역가 또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번역가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낮다 보니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고 문화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굳이 번역가로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면서 늘 한국 문학이나 영화, 만화 등을 제대로 번역할 번역가가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제는 더 이상 번역을 시장의 문제로 내버려둘 수만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도적으로 번역가를 양성하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1년부터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돼 번역가를 양성하는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번역 지원, 출판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원하는 범위는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제한된다. 한국어 콘텐츠를 늘리고 기초를 다지는 데는 별다른 지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책을 펴낸 박상익 교수는 “번역청 같은 정부 기관이 됐든 번역위원회 같은 조직이 됐든 간에 돈 안 되는 번역과 번역학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번역을 지원하는 일은 많은 예산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돈 안 되는 번역물을 출간할 수 있게 출판 지원을 해주고 번역가의 최소 생계가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 사업을 하는 일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지원 사업이 가져오는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일 것입니다. 외국어와 외국 문화에 능통한 사람이 자신이 접한 좋은 콘텐츠를 한국 사회에 알리고 싶어할 것이고, 한국 사회의 기초 토양은 더욱 강해질 겁니다. 학술적인 얘기에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번역물과 번역가에 대한 처우가 좋아지면 저절로 양질의 번역이 제공될 거고 일반 대중들 역시 외국인 못지않게 외국 콘텐츠를 우리말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박 교수의 말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1967년 언론 보도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3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 ‘번역청을 설치하라’의 내용이다.
   
   “외국에서는 타국에서 어떤 책이 발간되면 즉시 바른 번역서가 나와 외국어에 부심(腐心)치 않고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고 한다. ‘칼을 갈기만 하다 막상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크게 본받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등록일 : 2018-05-1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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