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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건, 모사드의 전설은 계속된다

글 | 노석조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전 예루살렘 특파원

▲ 지난 4월 3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TV에 출연해 이란 핵 기밀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란은 ‘중동의 북한’이다. 나라 전역이 보안 당국의 철통 같은 감시와 통제 아래 있다. “행동거지가 수상하다”는 동네 이웃의 밀고(密告)로 쥐도 새도 모르게 한 가정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수도 테헤란은 물론 지방 작은 마을 곳곳에도 사복 경찰을 비롯해 보안 당국의 민간인 협조자들이 쫙 깔려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반미 국가가 됐고, 비밀리에 핵 개발을 했다. 때문에 특히 핵 관련 시설에 외부인의 접근을 전면 제한하고 보안을 지키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쓴다. 하루 24시간, 1년 365년 국가 최고 수준으로 보호한다.
   
   그런데 지난 1월 테헤란 핵 기밀 자료실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 테헤란 핵 기밀 자료실에 괴한들이 침입해 CD 183장과 5만5000쪽에 달하는 1급 비밀문서를 빼내간 것이다. 문서 무게는 500㎏에 달했다. 사실상 기밀 자료실이 불과 하룻밤 사이에 통째로 강탈당한 것이다. 이란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밀 유출 참사였다.
   
   중동의 대국(大國) 이란을 욕보인 괴한의 정체는 이스라엘의 대외 첩보부 ‘모사드(Mossad)’ 요원들이었다. 지난 4월 30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TV에 출연해 3개월 전 모사드가 테헤란에서 가져온 이란 핵 기밀 자료를 공개하며 “이것은 이란이 과거 몰래 핵무기 개발을 했다는 증거”라고 발표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신제품을 프레젠테이션하듯 대형 스크린 화면 앞을 거닐며 이란 핵 기밀 자료실에서 입수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의 요지는 간단했다. 이란이 2015년 미국 등과 협상할 때 자기들의 핵 개발 목적은 의료·에너지 등 평화용이라고 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고 실제로는 군사용이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모사드가 입수한 이란 자료를 언급하며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할 의사를 다시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 합의를 파기하면 이란은 다시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받게 된다. 2016년 제재 해제로 잠시 트인 숨통이 다시 꽉 막혀버리는 것이다. 경제난을 호소하는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면 이란 정권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란에 모사드보다 더 원망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모사드는 이스라엘 국민에겐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정보기관이지만, 적대세력엔 모골을 송연케 하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이스라엘 건국 이듬해인 1949년 설립된 모사드는 지난 69년간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국내외 무장단체와 적국의 심장부를 파고들며 각종 암살작전, 첩보전을 벌였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여권 위조·납치도 서슴지 않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국제인권단체는 물론 영국 같은 우방으로부터도 여러 차례 비난을 받았다.
   
   모사드의 임무는 ①과거 국가 안보를 해친 자에 대한 처단(후속 조치) ②미래에 안보 위협이 되는 인물·시설 제거(선제적 조치)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신베트’라는 국내 첩보부는 따로 있기 때문에 모사드는 국외 세력을 대상으로 이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후속 조치의 대표적 사례는 나치 독일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 처단 작전이다. 1960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작은 마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주동한 아이히만은 2차대전 이후 신분을 위장해 이 마을에 몰래 살고 있었다. 이날 그는 평소처럼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때 모사드 요원 7명이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요원들은 앞서 제보를 받고 이 마을에 잠입해 장기간 그를 미행하며 귀 모양 등을 통해 그가 진짜 아이히만이란 걸 확인했다. 이후 그를 잡아갈 틈을 노리다 이날 작전을 개시했던 것이다. 요원들은 그를 거리에서 잡자마자 끼고 있던 장갑을 빼 그의 입에 쑤셔넣었다. 청산가리 알약을 먹고 자살하지 못하도록 미리 목구멍을 막아버린 것이다. 모사드는 치밀했다.
   
   
▲ 모사드의 10년 추적 끝에 체포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photo 뉴시스

   오토바이 자석폭탄으로 암살
   
   요원들은 생포한 아이히만을 현지 안가에서 9일간 데리고 있다 이스라엘 국적기를 타고 귀국했다. 이 비행기는 아르헨티나 독립 1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절단이 타고 온 것이었다. 약물주사를 맞은 아이히만은 승무원 복장 차림으로 이 비행기 일등석에 앉혀졌다. 당시 사절단으로 온 이스라엘 교육문화부 장관이 근처에 앉았는데 이 승무원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고 ‘어디 아픈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반인륜적 행위와 전쟁범죄 등 15개 죄목으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1962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민족의 원수가 처단되는 순간이었다. 10년이 넘도록 음지(陰地)에서 끈질긴 추적을 한 모사드의 성과였다.
   
   모사드는 1983년 아르헨티나 주재 이스라엘대사관 폭탄테러, 1992년 레바논 주재 미국대사관 공격의 주범인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도 2008년 암살했다. ‘유대 민족을 건드린 자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더라도 결국 심판을 받으며 아무리 멀리 도망치더라도 두 발 뻗고 잘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적대세력의 공격을 억제할 뿐 아니라 국민 사이에선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효과로 이어졌다.
   
   모사드는 이렇게 과거사 처리를 하면서도, 국가 안보에 위기가 닥치기 전에 미리 잠재적 위협의 ‘싹’을 제거하는 ‘선제 조치’도 맡았다. 2016년 12월 팔레스타인 드론 전문가 무함마드 알 자와리는 튀니지의 한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하다 그의 집 앞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살해됐다. 범인은 자와리와 함께 드론 프로젝트를 하던 연구실 동료였다. 수사 결과 이 동료는 보스니아 위조여권을 사용해 대학에 위장입학한 모사드 요원이었다. 팔레스타인이 드론 기술을 갖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해당 기술자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2010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한 호텔에선 팔레스타인 강경 무장단체 ‘하마스’의 핵심 간부 마흐무드 알 마브후흐가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두바이 경찰 조사 결과, 최소 11명의 모사드 요원이 그의 암살작전에 참여했다. 요원들은 호텔 곳곳에 잠복해 있다가 그의 방에 들어가 약물과 특수전기 장비 등을 이용해 질식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모사드는 첩보영화에나 나올 법한 특이한 방법으로 타깃 인물들을 ‘제거’했다. 2012년 이란 테헤란에선 나탄즈 핵시설의 무스타파 아흐마디로샨 국장이 차를 운전하고 가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괴한이 차에 붙인 ‘자석폭탄’에 살해됐다. 괴한은 모사드 요원이었다. 적국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들의 핵과학자들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그외 여러 명의 이란 핵과학자가 오토바이를 탄 모사드 요원의 자석폭탄 공격에 사망했다. 테헤란은 ‘교통지옥’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차가 많이 막힌다. 이에 모사드는 승용차 사이를 요리조리 다닐 수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작전을 벌였던 것이다. 모사드는 조직 내에 ‘키돈’이란 이름의 암살 전문팀을 두고 있다. 키돈은 히브리어로 ‘창(槍)끝’이라는 뜻이다. 키돈은 창끝으로 타깃을 정확히 일격(一擊)해 제거할 수 있도록 해당 지역의 도로 사정은 물론 주민들의 생활양식 등을 꼼꼼히 파악해 계획을 짠다고 한다.
   
   모사드는 적국의 심장부에 목숨을 걸고 침투해 정보를 빼내기도 하지만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첩보활동을 하기도 한다. 1981년 이라크 핵시설 공습작전인 ‘오페라 작전’, 2007년 시리아 핵시설 공습작전인 ‘과수원 작전’이 그 사례다. 모사드는 이스라엘군의 통신기술 전문인 ‘8200(쉬모네 메타임) 특수부대’와 협력해 적국의 통신을 감청하거나 컴퓨터 서버를 해킹하고, 정찰 인공위성 사진을 판독해 이라크·시리아의 핵 개발 상황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런 첩보는 적이 어떤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지 미리 파악해 제거할 기회를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작전을 실행하면서 우방 등을 설득할 때도 필요하다. 암살작전 정도가 아니라 전투기 공습 같은 대규모 군사작전을 할 때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미국 등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
   
   모사드가 암살·공습 등 무력을 써 피를 보는 방법만 선호하는 건 아니다. 2010년 이란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1000여대가 갑자기 고장이 난 적이 있었다. 괴한이 들어와 부수지도, 전투기가 미사일 공격을 해서도 아니었다. 졸지에 핵심 장비가 고철덩이가 돼 핵 개발에 큰 차질이 빚어졌지만 이란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전면 조사를 한 끝에 알고 보니 원심분리기를 고장 낸 건 다름아닌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컴퓨터 악성코드였다. 이란 핵시설의 제어시스템이 이 악성 코드에 감염됐던 것이다.
   
   누가 한 걸까? 이스라엘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지만 세계가 한곳을 가리켰다. 모사드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정통한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스턱스넷은 모사드와 미 중앙정보국(CIA)의 합작품”이라고 보도했다.
   
   
   모사드 국장 메이르 다간의 추억
   
   역대 모사드 국장 중에 메이르 다간이라는 인물이 있다. 2002~2011년 정권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킨 인물이다. 기자는 그를 2016년 3월 예루살렘에서 만나 인터뷰할 예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총리실 공보국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다간 사망’. 기자와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날 인터뷰 기사가 아닌 그의 부음을 썼다. 기사를 쓰다 놀랐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이 내놓는 그에 대한 평가, 주요 인사들의 애도사가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존재할 수 있도록 기여한 인물”이라며 호평했기 때문이다. 거리에선 그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총리나 대통령이 아닌 퇴임 5년이 지난 정보기관의 옛 수장이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에 대한 국민의 마음은 모사드라는 정보기관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진보 언론 하 아레츠는 “다간은 자신을 임명한 총리와도 의견 대립을 할 정도로 모사드를 초당파적 조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해 국민의 신뢰를 끌어냈다”고 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고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 다간은 이 같은 모사드의 모토를 가리키며 “정보기관이 여론을 많이 의식하는 정치인의 수단이 되면 나라가 위험에 빠진다”고 경계했다.
   
   다간은 몸에 항상 사진 한 장을 지니고 다녔다. 그의 친할아버지가 유대교 기도 가운을 걸친 채 독일 나치 군인의 총구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의 사진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 사진이 촬영되고 얼마 안 돼 나치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는 종종 품에 있는 이 사진을 꺼내 “이걸 볼 때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지킬 힘을 기르고 강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모사드 국장실 자기 책상에도 이 사진을 놓아뒀다. 그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중심을 잡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할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이에 얽힌 유대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북핵 협상이 긴박하게 진행되는 요즘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수장의 책상에는 어떤 사진, 어떤 문구가 놓여 있는지 궁금해진다.
등록일 : 2018-05-14 09:39   |  수정일 : 2018-05-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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