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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안상영, 남상국...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수사 중 자살한 사람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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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국정원 소속 변호사와 현직 검사가 일주일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9월21일 KAI(한국항공우주산업) 김인식 부사장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목을 매 숨진 데 이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소위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6개월 사이 세 명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고위직 공무원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적지 않지만, 노무현 정부(2003년 2월~2008년 2월) 시절은 유달리 많았다.
 
2003년 8월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던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투신자살을 시작으로, 안상영 전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박태영 전 전남지사, 이준원 전 파주시장,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 강희도 전 경위 등의 고위직 공무원과 유명 기업인 등이 검찰 조사 도중 자살했다.  
 
이 가운데 특히 사회적 파장과 충격이 컸던 정몽헌 전 회장, 안상영 전 시장, 남상국 전 사장 세 명의 자살 사건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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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2003년 8월4일 쓰러져 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된 현대 계동 본사 사옥 뒤편 화단을 한 현대 직원이 내려다보고 있다./ 조선DB

여러가지 의문점을 불러일으킨 정몽헌 전 현대그룹회장 투신자살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과 관련해 송두환 특검팀에서 조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4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 12층에서 투신했다. 당시 정 회장은 2003년 5월30일 첫 조사를 받은 후 두 달여 사이에 10여 차례 특검과 법원·검찰에 출석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에서 월간조선이 특종 보도한 현대상선 비자금 200억원 관련 수사를 시작했고, 정 회장은 7월26일과 31일, 8월2일은 대검 중수부의 1, 2, 3차 소환조사를 받았고, 8월1일은 대북 송금 3차 공판에 출석했다.
 
대검 중수부는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서 불거져 나온 현대 비자금(150억원+α) 이외에 현대상선 비자금 200억원에 대해 정 회장을 상대로 중점 조사를 벌였다. 조사 당시 정 회장은 검찰 관계자에게 “내가 구속될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고, 검찰 관계자는 “구속이 되더라도 몇 개월 이상 되겠습니까. 담담하게 마음먹고 대처하십시오”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몽헌 회장은 2003년 8월3일 밤 11시40분 청담동 소재 W바에서 술을 같이 마시던 친구 박모 씨를 하얏트호텔에 데려다 준 후 성북동 집으로 향했다. 정 회장은 밤 11시52분경 성북동을 향하다가 갑자기 운전사 김 모씨에게 “현대사옥으로 가자”며 행선지를 바꿨다.
 
사옥에 도착한 그는 운전사에게 “20~30분 있다가 나오겠다”고 말한 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2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섯 시간이 지난 8월4일 오전 5시52분경, 건물 미화원과 보안요원이 1층 화단에서 정 회장의 주검을 발견했다.
 
대기업 회장이 검찰 수사도중 자살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자 검찰의 ‘가혹행위’와 ‘타살의혹’ 등의 논란이 불거졌다.
 
정 회장 투신자살 사건을 오랫동안 취재한 월간조선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 8월 사망하기 직전 측근들과 자살소동을 벌이는 문제에 대해 협의 했고, 친분이 있는 검찰관계자를 만나 유서 5장을 보여 주며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월간조선은 정 회장이 사건 당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유서를 쓴 것이 아니라 측근들과 상의해 미리 써 놓았고, 당시 경찰이 발표한 유서 4장 이외에 김대중 정권 핵심인사에게 보내는 유서 1장이 추가로 존재했다는 정 회장의 최측근과 검찰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하고 정 회장 죽음에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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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9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고 돌아가는 안상영 당시 부산 시장./조선DB

 
'불도저'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자살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졌던 안상영 전 부산시장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종합건설본부장을 지내며 한강개발 등을 입안했고, 사직터널, 3·1 고가도로, 서울 지하철 1호선, 목동 신시가지, 올림픽대로 건설을 진두지휘한 기술직 공무원의 신화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 관선 부산시장이 되자 ‘부산 재창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부산 앞바다 인공섬 개발, 서낙동강권 개발, 해안순환도로 등 광역 교통망 구축,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사업, 동부상권 개발, 광안대로 계획, 가덕도 신항만 및 신공항 건설, 동서 고가도로 건설 등 부산의 장기발전 계획이 마련됐다.
 
이런 안상영 시장이 2003년 10월16일, 부산 고속버스 터미널 이전과 관련 터미널 소유주인 박 모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고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안 시장은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재판을 진행 중, 2004년 2월4일 새벽 1시에 부산 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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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시장은 구속 당일부터 2004년 1월27일까지 일기를 썼다. 안 시장의 일기는 안 시장이 구속 후 자살하기까지 심경 변화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처음에 재판에 강한 집념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명예의 실추’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2004년 1월27일, ‘안 시장이 부산 모 여객 대표 이 모씨로부터 3억원을 받았다는 사건’이 추가로 발표되었고, 안 시장은 1월29일 이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안 시장은 서울지검에서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2월3일 서울구치소에서 부산구치소로 재이송되었으며, 이날(4일) 새벽 목을 맸다. 구속된 지 석 달 보름 만의 일이었다.
 
구속된 안 시장은 2003년 10월23일 기소됐다. 이해 10월29일 안 시장의 변호인은 보석을 신청했다. “뇌물을 주었다는 박 회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안 시장이 현직 시장으로 도주 우려가 없고,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불구속 상태에서 변론에 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보석신청 이유였다.
 
재판부는 안 시장의 보석 결정을 미뤘다. 11월12일까지 보석이 결정되지 않자 안 시장은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썼다. 
<재판부가 결정 못 했단다. 묶어 놓으려고 하는지, 법원장 영향 있다고 한다. 재판부와 인간적인 것도 중요하단다. 어제 저녁 의무실에서 주사를 맞고 잤다. 밤에는 추웠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생활해야 한다.>
 
보석으로 풀려나리라는 희망이 멀어지고, 날씨는 추워지기 시작했다. ‘춥다’는 얘기가 일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추위는 안 시장의 몸과 마음을 극도로 얼어붙게 만들었고, 안 시장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추운 밤을 지냈다. 하루하루가 힘겹다. 그러나 이겨내야만 한다. 체력도 한계에 다다른다. 부처님 하느님 이 시련에서 벗어나도록 힘을 주십시오.>(11월13일)
 
12월에 접어들자 안 시장은 약해지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오늘 하루 좋은 소식(보석 결정) 있기를 기대한다. 여보 당신이 나의 힘이오. 우리는 남보다 훨씬 많은 인생을 살았소.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합시다. 부처님 간절한 가피를 기원합니다.>(12월8일)

안 시장은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그가 수감됐던 의료병동 독방에는 위장약, 변비약, 혈압약, 안정제, 위산 억제제, 한약 등이 널려 있었다. 약을 수거하니 종이 쇼핑백 하나에 가득 차는 부피였다. 그는 수감된 지 한 달쯤부터 감기·몸살·고혈압·배탈·치질·요통·고열·피부병·어지러움 등을 호소했고, 12월에 들어서는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없었다.
 
1998년부터 6년간 안 시장을 보좌했던 박성헌 당시 정책특보는 안 시장이 자살한 구치소 현장에 다녀왔다.
 
“시장님이 계시던 독방에 들어갔어요. 창문에 바람막이 비닐을 하나 했는데 바깥 온도나 방 안 온도나 똑같아요. 형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은 무죄입니다. 대명천지에 무죄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드는 권능을 누가 검찰에게 주었습니까.”
 
수감 석 달이 지나면서 안 시장은 추위를 더욱 호소하고 있다. 이때는 이미 안 시장이 가족에게 유서를 쓰는 등 삶과 죽음의 번민을 넘나들던 시기였다.
 <찬 발이 녹는 데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온수통이 크게 도움된다. 심한 추위와 고독과 많은 잡생각이 난다.>(1월14일)  
<여기 생활은 인간이 겪지 않으면 모른다. 극악의 상황이다. 이를 국민이 알아야 정직한 국민이 된다. 준법해야 한다.>(1월27일)
<명예도 잃고, 결국 생명도 잃고, 모든 것을 잃으니 살아도 산다고 할 수 없다.>(1월23일)
 
1월29일 안 시장은 시장은 이 모씨로부터 받았다는 3억원 수뢰사건을 조사받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박상헌 특보는 “서울구치소로 이감한 것이 안 시장을 죽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1월29일 오전 8시에 안 시장을 수갑을 채운 뒤 포승줄을 묶고 호송차에 태워 서울로 끌고 갔습니다. 호송차에서 오줌을 누겠다고 하니까, 교도관이 깡통을 가지고 와서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안 시장을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2월3일 부산구치소로 다시 보냈습니다. 안 시장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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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장례식이 치러진 2004년 3월25일 오전 서울 남대문 대우빌딩 앞으로 남 전 사장의 영정이 지나가고 있다./ 조선DB

노무현 대통령의 공개 실명 비난 후 한강에 투신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2004년 3월11일 낮 12시 25분경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남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부인·아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승용차를 몰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을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남상국 사장의 사장직 연임 로비와 관련, 실명을 거론해 가며 남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 모두 발언 말미에서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 사장은 이날 낮 12시경 회사 모 팀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모든 것은 내가 안고 가겠다. 한강 남단에 차를 세워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말했다.
 
당시 많은 언론은 남 사장이 검찰의 대우건설 비자금 사건 및 남 사장이 자신의 사장직 연임 로비사건 수사에 따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한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대우건설 관계자들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 회장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 자살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한 전직 임원은 “남 사장은 자존심이 무척 센 성격의 소유자”라면서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자리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그를 비판한 데 대해 심한 충격과 함께 모멸감을 느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시 남상국 사장의 사장직 연임 로비사건에 대한 검찰 및 법원의 태도 또한 형평성과 관례에 어긋났다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은 남상국 사장 측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를 변호사법 위반 및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불구속 기소한 이유에 대해 비록 돈을 받은 뒤 몇 개월이 지나기는 했지만, 받은 돈을 돌려주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 노건평씨는 돈을 받기 한 달 전인 2003년 8월 서울로 올라와 호텔에서 남상국 회장을 직접 만나는 등 소극적으로 인사 청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월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이런 점들을 감안할 경우 검찰은 마땅히 노건평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등록일 : 2017-11-10 15:04   |  수정일 : 2017-11-1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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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 2017-11-13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22
죽은 사람들과 거명된 사람들에 대해서 이명박과 박근혜는 도대체 어떤 조치를 취했냐? 근무태만 했던게 사실아닌가?
      답글보이기  오소리들이  ( 2017-11-14 )  찬성 : 1 반대 : 4
오줌싸고 갔구나. ㅋㅋㅋ
무서워요  ( 2017-11-11 )  답글보이기 찬성 : 30 반대 : 1
기자님. 진짜 탄핵한지도 2,3년이 지났는데 왜 국정원.타살은 이슈가 안되는거죠. 이러다가 또 정의로운 사람들 다 죽고.... 진짜 지금 댓글사건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국정원이 타살하는것부터 어떻게 해결해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옳은 말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유족도 아니고 그냥 학생이지만, 역사나 사건, 정치들을 관심있게 조사해보면서 진짜 소름끼치게 무섭더라고요. 어떻게 해결해야하지 않을까요... 여론도 아직 힘이 없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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