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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로맨스, N포 세대로서 연애한다는 것

글 | 박소정 작가   일러스트 | 셔터스톡

연애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다. 후텁지근한 공기와 피부 사이로 스미는 땀의 촉감은 연애와는 영 거리가 멀다. 아무래도 연애 이야기는 무더위를 식히는 데에 효과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속 공포스러운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남자가 자고 있다. 남자는 인기척에 잠을 깨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무심코 거실을 바라본다. 새하얀 얼굴의 어린아이가 남자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남자는 공포에 질린 채 앞을 다시 보지만 아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조심조심 한 걸음 내딛다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남자는 소스라친다. 아이는 남자의 등 뒤에 매달려 있다.

놀랍게도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오싹한 연애〉(2011)는 귀신을 보는 여자 여리(손예진)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조구(이민기)가 역경을 이겨내고 로맨스로 향하는 여정을 그려낸다. 여리에게는 오래 전 죽은 단짝 친구의 귀신이 늘 붙어 다니며 여리를 괴롭히고 다른 귀신들도 덩달아 여리 주변을 맴돈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며 고립된 생활을 하는 여리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조구는 이내 사랑에 빠진다. 그러자 귀신은 조구마저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사랑에 장애물이 있어야 더 단단한 사랑이 된다고는 하지만 영화가 설정한 장애물은 무려 귀신이다.

‘로코믹 호러 드라마’라는 장르를 내세우며 나온 드라마도 있었다. 〈주군의 태양〉(SBS, 2013)에서 공실(공효진)은 늘 귀신들에 시달리느라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여자다.

대개의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공실에게 운명적이고 필연적으로 재벌인 중원(소지섭 역)이 다가온다. 중원이 귀신에 쫓기는 공실을 받아들일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공실과 중원에게 사랑의 장애물은 비단 신분 격차만이 아니다.

어디 귀신뿐이랴. 드라마 〈구가의 서〉(MBC, 2013)의 주인공은 반인반수고, 〈별에서 온 그대〉(SBS, 2013)의 주인공은 외계인이다. 〈킬미, 힐미〉(MBC, 2015)와 〈하이드 지킬, 나〉(SBS, 2015)의 주인공은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는 다중 캐릭터이고 〈뷰티 인사이드〉(2015)의 주인공은 매일 얼굴이 변하는 희귀병에 걸렸다. 최근 많은 여성의 심금을 울렸던 〈도깨비〉(tvN, 2016)의 남자 캐릭터들은 심지어 도깨비와 저승사자이다. 주인공들의 연애가 절대 무탈할 리 없다.

종래의 신데렐라 스토리에서처럼 돈봉투 내밀며 헤어지라거나 따귀부터 올려붙이고 보는 예비 시어머니를 설득하는 정도의 난도가 아니다.


연애 불가능의 시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초인적인 사랑의 장애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텔링의 경쟁, CG와 같은 테크놀로지의 발전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연애가 가혹한 최근의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이 연애 불가능의 시대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의 삶의 조건에서 사람들은, 특히 일자리 시장의 문턱에 있는 청년들은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린다. 이들은 N포 세대로 불린다. 청년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에 이어 집,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청년실업률은 매해 ‘역대 최고’를 경신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삶이 지속되는 한 ‘N’이 가리키는 숫자는 자꾸 늘어만 갈 것이다. 이런 삶의 조건을 누군가는 ‘생존주의’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매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이다. 생존주의의 일상 속에 연애는 사치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연애하는 청년들에게 공포는 귀신과 같은 실체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피부에 와 닿는 경제적· 물리적 고통이다.

무릇 로맨틱 코미디는 두 사람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동화 같은 결말을 보여주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싹한 연애〉는 그렇지만도 않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리는 여전히 귀신을 본다. 조구의 사랑은 귀신을 퇴치하지 못한다. 그는 마술사다. 마술쇼 무대에서 그는 귀신을 물리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마법에 가까운 마술을 보여주고 관객의 박수를 받는다. 그런데 무대 밖에서의 절절한 사랑은 마법은커녕 눈속임의 마술도 될 수 없다. 왕자의 입맞춤으로 백설공주가 깨어나고, 미녀의 진정한 사랑으로 야수가 왕자로 변하는 마법 같은 낭만적 사랑은 더 이상 없다. 공포는,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로맨스로 공포를 견디기


조구 : 공포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사랑을 안 해요. 희한하죠?

여리 : 에이 씨, 공포영화 여주인공이 사랑을 하면 그게 멜로지, 공폰가? 이 바보팅이.

조구 : 왜? 걔네는 사랑하면 안 되나?

여리 : 공포영화의 여주인공이 사랑을 하면 하나도 무섭지가 않잖아요. 옆에 누가 있는데 무섭겠어요?

여리 : 조구 씨가 나 사랑하는 거 알아요. 나도 조구 씨 사랑해요.

조구 : 그럼 됐네.

여리 : 그럼 어떡해요. (조구의 어깨 너머 귀신을 바라보며) 해결된 게 하나도 없는데.

조구 : (귀신을 보며) 평생 안 떨어질 것 같죠?

여리 : 평생 안 떨어져요.

조구 : 연애하기 참 힘드네.

여리 : 그걸 이제 알았어요?

조구 : 네, 이제 알았어요. 키스할래요?

- 영화 〈오싹한 연애〉 中


그럼에도 사랑은 공포와 고통에 대한 유일한 처방이다. 조구는 여리를 공포영화의 여주인공에서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바꾸어놓는다. 중원이 공실의 손을 잡아줄 때, 〈도깨비〉의 은탁(김고은)이 도깨비(공유)의 검을 뽑아줄 때, 지리멸렬한 공포는 이내, 잠시 뿐일지라도, 그친다. 사라지지 않는 공포와 고통, 그러나 이것을 함께 견디자며 손을 부여잡는 연인.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극화되어 나타난 이 모습들은 오늘날 무수히 많은 연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어려움에 대한 메타포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사랑을 현대사회의 종교라고 불렀다. 위험사회라고도 불리는 오늘날의 사회가 무한한 불안정성으로 당신을 흔들어 놓을 때 결국 당신을 위로하는 삶의 중심지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N포 세대라는 호칭을 필두로 하여 연애가 불가능하다는 담론이 우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애에 대한 강박이 넘쳐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공포를 로맨스로 견디는 셈이다. 이것이 건강한 현상은 아니겠으나 오늘날의 한국 사회의 두드러진 연애 정경인 건 분명하다. 손끝 발끝으로 버티며 살아야 하는 오늘날, 연애에서만은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기를!

※ 이 콘텐츠는 북저널리즘 시리즈 《연애정경》(박소정 저)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등록일 : 2017-08-0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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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  ( 2017-08-09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0
내 주변 없는놈이 더 적은데 길거리커플들 죄수생 똥시생중에도 연애하는 애들 넘치는데 참 사기공화국다운 선동 ㅋㅋㅋㅋ 아 혹시 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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