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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테스트베드 된 제주도 왜 시민단체 성지가 됐나

글 | 배용진 주간조선 기자   사진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2019-01-03 09:45

▲ 지난 12월 25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민군복합미항(제주해군기지).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24일 오후 6시 제주시 제주시청 앞. 이날 이곳에서는 ‘의료영리화 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 주최로 ‘영리병원 철회, 원희룡 퇴진 2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제주시청 앞 주차장 옆 부지 한편에는 100여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서 종이컵에 촛불을 들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들 앞에 설치된 무대에 선 한 래퍼는 “원희룡은 퇴진하라”는 랩을 하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시청 옆 인도와 연결된 쪽에는 ‘문제투성이 영리병원 즉각 중단하라’ ‘국내 1호 숙의민주주의 파괴자 원희룡’이라고 쓰인 피켓이 놓여 있었다.
   
   이날 100여명이 모인 집회가 시청 주차장에서 열렸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 병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있는 건물 현관에서 제주동부경찰서 소속 한 정보관이 바라보는 모습만이 보였다. 기자와 만난 그는 “오늘은 평화집회라 경찰 병력이 대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경찰서가 가까워 시민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경찰서 내부에서 병력이 대기한다는 것이 이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은 아무래도 영리병원을 둘러싼 갈등이 상당한 편”이라며 “(도지사가)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보니 반발하는 단체들이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제주시청과 약 4㎞ 떨어진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앞. 이날 이곳의 본관 1층 건물 주출입구 앞에는 8명의 중년 여성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마이크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민주노총의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주지부 소속으로, 비정규직 8시간 근무를 확대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시위와 달리 이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퇴근 시간을 맞은 교육청 근무자들은 이들을 피해 주출입구가 아닌 건물 왼편의 민원인 출입구를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교육청 내로 들어가자 1층 현관에는 아예 매트를 깔아놓은 모습이 보였다. 매트 위에는 7세 안팎으로 보이는 아이가 혼자 엎드려 있었다. 매트가 바로 보이는 민원실에서 기자와 만난 한 여성 주무관은 “주출입구를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많이 불편하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다” “시위를 한 지는 지금 보름 정도 됐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책 ‘테스트베드(Test Bed·시험대)’로 꼽히는 제주도가 시민단체들로부터도 테스트베드로 이용되면서 제주 전역이 갈등으로 뒤덮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제주에서 시작한 정책 반대 시위에 대한 여론을 풍향계로 삼아 시위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제주도가 마주한 현안은 최근 전국 일간지 1면을 장식한 영리병원 외에도 서귀포 강정마을의 민군복합미항(제주해군기지), 예멘 난민, 제2공항 부지 선정 등 굵직굵직한 현안만 추려도 여럿이다.
   
   
   47개 병상 병원이 전국 주목받는 이유
   
   제주도의 정책 테스트베드적 측면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제주도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인 영리병원이다. 지난 12월 5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조건부로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병원 규모는 병상 47개로 소형병원 수준이고, 내국인 진료는 제한된다.
   
   고작 47개 병상을 지닌 제주도의 민간 병원이 전국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이유는 이 병원이 규제완화를 통한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 일자리 증가라는 찬성 측 논리와 의료의 공공성 약화, 나아가 의료민영화 허용이라는 반대 측 논리가 충돌하는 ‘균열 지점’이기 때문이다. 녹지국제병원은 국내 유일 영리병원이다.
   
   영리병원은 기업 등 민간 투자자의 자본으로 세워진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국내 병원은 의사나 정부·지방자치단체·학교법인·사회복지재단·의료법인 등 비영리 기관만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제주특별법에 따라 외국 기업은 제주도에 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투자자의 수익실현 가능성 여부다. 비영리병원 형태에서는 병원 수익을 외부로 가져갈 수 없는 반면, 영리병원은 투자 지분만큼 수익금을 투자자가 가져갈 수 있다.
   
   영리병원 건립은 원 지사가 마주한 최대의 정치적 난제였다. 2015년 이미 보건복지부가 사업계획을 승인했는데,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면 영리병원 건립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찬성한다는 의견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헌법재판소도 영리병원에 대해 “과잉의료 행위 등 진료 왜곡, 의료자원 수급 계획의 왜곡, 소규모 개인 소유 의료기관의 폐업, 투자자의 자본 회수 등에 따른 의료기관 운영의 왜곡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특히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민간병원이 늘어나면서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될 것이라는 게 반대 측 주장이다.
   
   원 지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때 영리병원 건립 문제를 공론화위원회에 맡긴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도지사에 재선된 다음 공론화위의 권고를 뒤집는 결론을 냈다. 그 결과 원 지사는 반대 측으로부터 “국내 1호 숙의민주주의 파괴범”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찬성 측으로부터는 “의료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고용창출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원 지사가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한 이유는 정부가 이미 승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한 외국 기업 투자를 불허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녹지그룹은 이미 국제병원 건립에 토지 매입비·건설비·운영비 등으로 778억원, 인건비와 관리비를 포함하면 1000억원대 투자를 완료했다. 만약 녹지병원이 개원 불허로 결론이 나면 녹지그룹이 제주도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 지난 12월 24일 제주시청 앞에서 영리병원 건립에 반대하는 이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예멘 난민 이슈까지
   
   2018년은 제주도를 둘러싸고 그간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던 현안도 제기됐다. 지난 4월 제기된 제주도 입국 예멘 난민 논란이다. 2016년부터 지난 6월까지 제주도에는 예멘 난민 500여명이 입국했고 이 중 484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내전으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은 예멘인들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로 피신했다가 최근 활성화된 저가항공사 항공편을 이용해 제주도로 입국한 것이다.
   
   이처럼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단체 입국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입국하려는 개발도상국 국민은 비자가 필요하지만 예외적으로 제주도에는 대부분 국가의 사람들이 30일간 무비자 체류를 할 수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다. 예민 난민들은 이 제도를 이용해 제주도에 합법적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예멘은 무슬림 국가로 제주도에 입국한 난민 역시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난민 범죄자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번지면서 난민을 퇴출하자는 주장이 거세졌다. 한편에서는 전국의 난민 지원 시민단체 15곳이 연합한 ‘난민네트워크’, 제주 기반 시민단체 33곳이 모인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난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벌어진 난민 관련 논란은 여러 외신으로부터 조명받기도 했다.
   
   
▲ 지난 12월 24일 오후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1층 현관 내부. 시위대가 둔 매트가 바닥에 깔려 있다.

   갈등 끝나지 않은 강정마을
   
   지난 12월 25일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 중심부 해군 함정 부두에 회색의 해군 구축함 한 정이 정박된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흰색의 해경 경비정도 두 척 정박돼 있었다. 왼편의 잠수함 부두, 오른편의 서귀포 크루즈터미널에는 아무런 배도 정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크루즈터미널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에 자리를 잡은 몇몇 가게들도 문을 굳게 닫아건 모습이었다.
   
   제주해군기지는 해군 제7기동전단과 제93잠수함전대의 모항이다. 이 중 제7기동전단은 대한민국 해군 최정예 전력이다.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이 모두 이곳에 소속돼 있다.
   
   영리병원 논란 전 제주도에서 여론의 찬반 충돌이 특히 극심했던 대표적인 곳은 서귀포 강정마을이다. 녹지국제병원이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일자리 증가와 의료의 공공성 약화가 부딪히는 지점이라면 제주해군기지는 국가안보·대양해군 전력강화 논리와 국가의 사유재산침해·환경파괴 논리가 부딪히는 ‘균열 지점’이었다. 제주해군기지는 동해 1함대와 서해 2함대의 중심에 있고 대양으로 나갈 수 있는 전진기지라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강정마을은 제주해군기지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지역 갈등을 겪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지역주민 간 갈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1월 제주도와 제주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강정마을 주민 713명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6.7%인 251명이 지역주민 간에 극심한 갈등이 있었다고 꼽았다. 2018년 기준 강정마을의 20세 이상 인구 수는 1900여명이다. 강정마을 인근의 한 청년회장은 기자에게 “강정마을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정점에 있던 강정마을은 현 문재인 정권도 주목하는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구 2200여명의 작은 마을을 2018년 상·하반기 두 번이나 찾았다는 점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0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석해 국내외 함정 39척을 사열했다.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린 이 행사는 강정마을 바로 앞에서 열렸고, 문 대통령은 관함식 전 강정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3일에도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아 강정마을을 방문했었다. 당시 제주해군기지 앞에서는 관함식 개최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하루 종일 이어졌었다.
   
   하지만 이날 찾은 강정마을에서는 시위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로 들어가는 로터리 앞에는 ‘제주 4·3 강정’ ‘平和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등의 구호가 내걸린 현수막이 찻길 양옆에 붙어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빛이 너무 바래 글씨가 제대로 읽히지 않는 현수막도 여럿 있었다.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건설 예정인 제2공항을 둘러싸고도 끊임없이 잡음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내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제주 제2공항반대 범도민행동’은 최근 활동이 종료된 ‘사전타당성 재조사 검토위원회’ 활동 재개를 요청하고 있다. 제2공항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한 시민은 단식농성 중이다. 그는 지난 5월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 후보에게 계란을 던지고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 지난 12월 24일 제주도청 앞에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고도의 자치권 보장
   
   제주도가 이처럼 갈등으로 뒤덮인 근본적 이유는 제주도의 자연·행정적 특성에 산업적 특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육지와 바다로 격리된 독립된 자연환경, 63만명이라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구 수, 한·중·일 3개국의 한가운데 자리한 입지, 편리한 항공교통 환경 등등 정책 테스트베드로서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는 자연적 특성도 특별하지만 행정적 특성이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다. 제주도는 대한민국 유일 특별자치도다. 지방자치법에 의한 광역자치단체로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어 있어 도지사의 권한이 매우 강력하다. 특별자치도 관할 내에 특별자치도지사 직속 도로기획단, 직속 보훈청 등 국방·경제 이외 대부분의 권한을 담당하는 행정 기관이 배치되어 있다. 반면 시장들은 도지사가 임명하는 임명직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행정시로, 다른 시도의 자치시에 비해 권한이 대폭 제한돼 있다. 이처럼 적은 인구에 비해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고 특이한 정책을 많이 시행하다 보니 제주도에서 뜨거운 현안은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는 한·중·일 3국으로부터 모두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관광업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특히 김포~제주 간 항공노선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공노선으로 꼽힌다. 관광을 활성화한다는 명목 아래 제주도에는 전국 최초로 도입된 정책이 여럿 있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전기차 운행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도에서는 하늘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는 2013년 전국 최초로 전기차 민간 보급을 실시했고 2018년 9월 기준 전국 전기차 4만6038대의 30%에 가까운 1만3636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관광객이 많다 보니 섬 전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개발이 추진됐고, 이로 인해 자연파괴와 환경보호론이 힘을 얻어왔다. 게다가 특별법으로 인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중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섬 개발은 더욱 가속화됐다. 특히 제주도는 유네스코 국제보호지역으로 복합지정(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 다수 람사르습지)된 곳이다. 이 때문에 제주도의 환경적 가치는 매우 크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들의 목소리는 전국적으로 주목받는다.
   
   제주도에서 띄운 이슈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다는 점에서 뭍의 세력들이 시위에 개입해 제주도민들의 목소리를 호도한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전국적으로 폭발력을 지닌 현안이 주목받을 때 시위 세력이 결집했다가 그렇지 않을 때는 사라지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섬이자 광역자치단체라는 특성상 웬만한 규모의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제주지부 혹은 제주 기반 단체를 두고 있다. 민주노총 항만노조, 전국교직원조합 제주지부, 제주환경운동연합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외부 세력 개입 의혹에 대해 경찰은 적어도 이번 영리병원 논란 관련 집회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는 입장이다. 지난 12월 24일 열린 ‘영리병원 건립 반대’ 시위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무대에 오른 연사들 외에는 모두 제주도에 거주하는 이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주간조선 2539호
등록일 : 2019-01-0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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