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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위에 양심! 영국의 3대 3D업종 하원의원이 사는 법

글 |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내부. photo 뉴시스
영국 하원의원의 청렴도나 절제의식 같은 것을 설명하려면 먼저 영국 하원의원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서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영국 하원의원들이 더욱 빛날 것 같다.
   
   나는 평소 영국의 대표적인 3D업종을 ‘교사와 간호사 그리고 하원의원’으로 꼽는다. 한국에서는 선망의 직업인 국회의원과 교사가 영국에서는 3D업종이라면 놀랄 독자들이 많겠지만 사실이다. 이 세 직종은 근무 시간과 업무 강도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고 개인적인 희생이 아주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적으로 영국 하원의원은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1년 평균 148일을 보낸다. 이는 1년 52주 중 30주, 주당 5일을 일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숫자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하원의원들은 가족과 헤어져 런던에서 죽도록 일만 한다. 주말이라고 지역구로 가도 가족보다는 선거구민을 먼저 만나야 한다. 교사 역시 아침 7시까지 출근해서 정상적인 퇴근시간인 오후 5시를 넘기기 일쑤다. 영국 학교에도 처리해야 할 공문서가 많아 6시는 넘어야 퇴근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교사 역시 하루 평균 11시간 근무는 보통이다. 물론 교사는 퇴근 후 집에 가면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만 의원들은 그것도 쉽지 않다. 주말에 집에 돌아가도 선거구민들의 행사나 당원들과의 모임 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혼 초선 중 40%가 재선 때 이혼
   
   영국 하원의원에게 유권자 한 표, 한 표는 정말 중요하다. 영국 유권자는 매주 약속하지 않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선거구 내의 의원 사무실로 찾아가면 어렵지 않게 하원의원을 만날 수 있다. ‘서저리(surgery·외과의원이란 뜻도 있다)’라는 ‘선거구민 면담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하원의원은 유권자가 만나자고 하면 이를 거절할 수가 없다. 유럽 유일의 한인촌인 런던 뉴몰든이 속한 킹스턴 지역구의 하원의원은 5선인 에드 데이비인데 1997년 32살의 나이로 초선 의원이 될 때 단 56표 차로 당선되었다. 2017년 조기 총선 때 킹스턴의 이웃 선거구인 리치먼드에서는 불과 45표 차로 당락이 갈리기도 했다. 그만큼 한 표, 한 표가 갖는 가치는 엄청나다.
   
   영국 하원의원 숫자는 650명이다. 영국 인구 6500만명으로 나누면 10만명당 한 명꼴이다. 영국에서는 영국 국적의 유권자라도 선거 때 등록을 해야 투표를 할 수 있다. 2017년 총선의 경우 6500만 인구 중에서 4700만명이 등록을 했고 그중 약 70%가 실제 투표를 했다. 이런 비율로 보면 대개 한 선거구에서 5만명 정도가 투표를 하는데 그중 과반수인 2만5000표만 얻으면 당선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하원의원들은 선거철이 아니라고 해도 유권자를 소홀히 대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영국에서 하원의원이 얼마나 고달픈 직업인지를 구체적인 수치를 동원해 좀 더 알아보자. 얼마 전 영국 신문에서 한 하원의원이 지난 10개월간 2만4000통의 메일, 9600장의 편지, 4800건의 전화 등 도합 3만8400건의 각종 통신에 회답해야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해당 의원은 이와 동시에 2183건의 지역구 민원을 처리했다. 거기다가 각종 회의나 선거구 내의 행사에도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격무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하원의원협회 격인 ‘한사드 소사이어티(Hansard Society)’는 초선 의원들에게 “가정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No)’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지 않으면 초선 첫해부터 건강을 해치거나 가정이 파괴된다고 주의를 준다. 하지만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으로서 ‘노’라고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사드 소사이어티가 예로 드는 통계를 보면 2005년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 중 기혼 의원의 40%가 5년 뒤 재선 때는 이혼했다. 2010년의 경우에는 보수당 초선 의원 17%가 당선 후 3년 내에 이혼, 별거를 겪었다.
   
   하원의원들의 가정을 파탄 내는 요소는 부지기수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와 달리 의회가 상시적으로 열리는 상황에서 하원의원은 주중에는 항상 가정을 떠나 런던에서 일을 해야 한다. 1년 중 거의 5분의 4를 런던에서 보낸다. 특히 집권당 의원들은 정부 자리까지 맡아 더 바쁘다. 한사드 소사이어티의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하원 평의원이 의회에서 근무하는 시간은 주당 69시간이다. 여기에는 지역구에서 런던, 다시 런던에서 지역구로 돌아가는 시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스코틀랜드 끝 에버딘에서 런던까지는 기차로 8시간이 걸린다. 일주일에 두 번 왕복한다고 치면 가정을 위한 시간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원래 영국 의회는 겸직의 전통이 있어 오전에는 생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대개 중요한 회의는 오후에 몰아서 한다. 많은 경우 심야까지 회의가 계속된다. 요즘은 시간에 쫓긴 브렉시트 협상 일정 때문에 해당 하원 분과는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원의원 한 달 월급 600만원
   
   바쁜 것보다 가정을 파탄 내는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돈 문제다. 영국 하원의원의 세비는 연 7만6011파운드(약 1억1400만원)로 적지 않은 편이다. 영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2만7600파운드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하원의원의 업무 강도에 견줘 보면 이는 박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여당이 되어 정부에 입각하면 수입이 많아지긴 한다. 총리는 7만7896파운드, 장관은 6만9844파운드가 수당으로 붙는다. 그렇다고 해도 정부의 행정 차관이나 국장들의 평균 연봉(15만파운드)에 비하면 많지 않다. 일반 하원의원은 40%에 이르는 세금을 제하고 나면 한 달 월급이 고작 4000파운드(약 600만원)에 불과하다. 물가 비싼 영국에서 “중산층 4인 가족 생계유지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하원의원은 한 해 학비가 1만5000파운드에 이르는 사립학교에 자식들을 보낼 방법이 없다. 학비가 3만파운드나 되는 명문 기숙 사립학교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하원의원이 중산층도 아니고 서민층에 불과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영국 하원의원 세비는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낮을까. 물론 영국 국민들이 의원 세비가 많아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지만 여기에는 영국 특유의 철학이 있다. 영국인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금전적 혜택까지 받아서는 부당하다고 믿는다. 권력·금권·명예 3 가지 중 한 가지만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어느 직업도 돈과 권력과 명예를 모두 가지지는 못한다. 셋 중 두 가지를 같이 갖고 있는 직업도 드물다. 하원의원의 경우 권력을 갖고 있으니 당연히 돈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믿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역사에 있다. 제대로 된 잉글랜드 의회가 형성된 13세기 대헌장 시절 이후부터 1952년 의원들에게 소액이나마 세비를 지불하기까지 거의 700년간 영국 의회 의원은 무급의 봉사직이었다. 현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상원(House of Lords)은 지배계급(귀족과 교회), 하원(House of Commons)은 직업을 가진 중산층이 구성원이었는데 모두 자기 계급과 직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를 했다. 정치가 생계유지 수단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정치는 돈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까지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photo 뉴시스

   물가 감안하면 세비 한국의 4분의 1
   
   처음부터 정치는 돈이나 개인 영달의 목적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세비 인상도 쉽지 않았다. 누구도 세비를 인상해달라고 먼저 나설 수가 없었다. 올 4월 1일부터 하원의원 세비가 겨우 1.8%(1368파운드) 올라 7만7379파운드가 되었다. 한국 국회의원 세비는 영국 하원의원과 비교하면 절대액도 많고 상대적으로도 높은 소득이다. 영국 1인당 GDP(3만8846달러)를 하원의원 세비 10만8984달러와 비교하면 세비가 GDP의 2.8배 수준이다. 반면 한국은 1인당 GDP(2만9745달러)를 세비 1억4000만원(약 13만2575달러)으로 나누면 4.45배에 이른다. 절대 금액도 적지만 1인당 GDP와 비교해도 영국 하원의원 세비는 한국 국회의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다가 한국에 비해 평균 두 배에 이르는 영국의 높은 물가를 대입하면 4분의 1이 될까 말까한 수준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국 하원의원의 업무환경도 한국과 비교해 좋은 편이 아니다. 하원의원을 보조하는 직원이라고 해봤자 지역구 사무실에 3~4명, 의회에 1명이 전부다. 이들의 연봉도 최상급자인 의정 상급보좌관이 4만파운드(약 6000만원) 수준이다. 나머지는 영국 직장인 평균 연봉인 2만~3만파운드 정도다. 더욱이 영국 하원의원에게는 운전기사도 관용차도 지급되지 않는다. 그냥 지역구와 런던을 오가는 기차 교통비와 우편요금, 그리고 런던에서 머물 숙소 경비 정도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의사당 내의 하원의원 사무실은 정말 목불인견이다. 가로 3m, 세로 2m의 규모로, 겨우 책상 하나 들어갈 공간이 하원의원 사무실이다. 차를 끓일 수 있는 주전자도 제대로 놓을 곳이 없을 정도다.
   
   영국에서는 2010년 하원의원이 경비를 부당청구했다고 난리법석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데일리텔레그래프지가 폭로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었는데 당시 많은 의원들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부당청구한 경비를 뱉어냈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놀란 것은 부당청구한 경비의 규모였다. 650명의 하원의원 중 70%가 넘는 의원이 부당청구 경비를 반환했는데 작게는 몇십만원이었고 대개 수백만원 수준이었다. 최대가 3억원 정도였다. 민간인이나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검은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박봉에 시달린 끝에 서로 작당해 국가예산을 좀 슬쩍한 사건이었는데도 청구금액을 ‘악질적으로’ 속인 7명의 하원의원은 감옥에 갔다. 그것도 한국 기준으로는 정말 ‘쪼잔하다’고 할 만한 금액으로 말이다. 당시 영국 국민들은 의원의 도덕성이 땅으로 떨어졌다고 개탄했지만 필자의 눈에는 역설적으로 영국 하원의원이 엄청나게 깨끗해 보였다.
   
   
   양심에 맡기는 이해상충
   
   실제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지난 100년의 영국 하원 역사에서 의원이 범법 행위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경우는 단 5건에 불과하다. 다른 어느 나라 국회와 비교해도 영국 하원이 깨끗하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 하원의 윤리규정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윤리규정 자체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규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해상충의 원칙(conflict of interest)’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권한을 가진 세상의 어떤 심의기구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는 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영국 하원의원은 사전에 의원들이 자신의 이해 관련 사항을 확실하게 공개, 신고, 등록해 놓으면 이해상충이 문제되지 않는다. 이는 영국 의회의 역사를 감안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원래 자신의 계급과 직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출발했기 때문에 이해상충의 원칙만을 고집하면 의회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원칙적으로 겸직까지 허용했었다. 그래서 영국 하원의원의 윤리규정은 의원의 직업적인 이해관계를 이유로 의정 활동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실제 모든 의원이 자신이 개입하고 있는 이익집단과의 이해관계를 워낙 확실하게 사전에 신고,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공개 토론에서도 정정당당하게 해당 이익집단의 입장을 설명하고 변호한다.
   
   이와 관계된 영국 하원의 윤리규정 조항은 워낙 특이해서 좀 길지만 인용해 보자. 먼저 10조는 ‘어떤 의원도 의회 내의 모든 사안을 다룸에 있어 보수를 받고 이익을 보호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No Member shall act as a paid advocate in any proceeding of the House)’고 돼 있다. 이 말은 달리 해석하면 이해 관련이 없는 집단을 위해 단순히 보수를 받는 로비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11조는 좀 더 구체적이다. ‘의원은 여하한 경우에도 자신이 금전적인 보수를 받는 의회 밖의 기관이나 상업 법인의 이사, 고문, 자문, 혹은 어떤 지위를 계속해서 가질 수 있다. 또 그러한 기관이나 법인으로부터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 의원이라 할지라도, 이 규정이 정하는 지침 3장에 따라 행동한다는 전제하에 사안의 이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관, 의원, 공직자와의 의회 내 절차를 위한 미팅과 협의에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의원은 나중에 경제적 혜택이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어떠한 기관이나 개인의 금전적·물질적 이득이 되는 절차나 미팅을 주체적으로 시도해서는 안 된다.(A Member may, however, still hold a remunerated outside interest as a director, consultant or adviser or in any other capacity. Members who receive such financial benefits may take part in parliamentary proceedings or in meetings and discussions with Ministers, other Members and public officials, which could affect that interest, provided they do so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set out in Chapter 3 of this Guide. But such Members must not initiate proceedings or meetings which would provide a financial or material benefit to any organisation or individual from whom they have received, are receiving or expect to receive reward or consideration.)’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한국인의 머리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조항이다. 어떻게 자신의 이득과 관련이 있는 사안을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영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영국의 모든 규정이나 사회규범이 무 자르듯 흑백으로 사안을 재단하지 않듯이 의원 윤리규정도 상식의 선에서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하도록 한다. 수만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의원이 된 개개인 의원의 양심에 이해상충의 문제를 맡기겠다는 발상이다. 이렇게 해놓아도 실제 별 문제 없는 것이 영국 언론에서 하원의원의 이해상충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의회를 감시하는 수많은 외부 단체와 상대 당 의원들에 의해 견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당 동료 의원들도 부당한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영국 사회에서는 ‘의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된다. 동료애나 집단이익 때문에 부정을 묵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서 영국의 윤리규정은 문구에 있지 않고 전통과 양심에 있다.
등록일 : 2018-04-10 10:05   |  수정일 : 2018-04-1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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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수  ( 2018-04-12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4
한국도 국회의원의 년봉 과 보좌관/운전기사/차량지원 등을 영국수준으로 줄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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