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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진흥회장 서로 안 맡으려는 이유

글 |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 한국군 최신예 K-2 흑표 전차. 파워팩 개발 논란은 한국군 무기도입사에 교훈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2월 7일 국방부에서 송영무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제109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는 국산 요격미사일인 철매-Ⅱ성능개량 양산사업, 해상초계기 2차사업, 검독수리 차기고속정 사업, 패트리엇 PAC-3 추가도입 사업 등 여러 개의 대형 무기사업들이 상정됐다. 그중 가장 방산업계의 관심을 끌었던 사업 중의 하나가 K-2 ‘흑표’ 전차 2차 양산계획 수정안이었다.
   
   K-2 ‘흑표’는 국산 파워팩(엔진+변속기) 개발이 지연돼 논란을 빚으면서 양산에 차질을 빚는 등 문제가 커졌다. 이날 방추위에선 군 요구조건을 충족했던 엔진은 국산을,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변속기는 독일제를 사용, 국산+독일제인 하이브리드 파워팩을 쓰기로 결정했다. 원래 엔진과 변속기 모두를 국산품으로 쓰려 했던 계획에서 ‘국산 변속기 포기’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흑표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0여대가 추가 양산된다.
   
   군 안팎에선 흑표 파워팩 개발이 무기개발 및 도입사에서 상징적인 교훈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도한 목표 설정과 경직된 방위사업 정책, 업체의 경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국 국산 변속기 개발 실패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흑표 파워팩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아닌 업체 주도로 개발이 이뤄진 사업이다.
   
   군 당국은 흑표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수입품 대신 국산품 파워팩을 쓰기로 하고 전력화 일정상 5년 내 개발을 요구했다. 이는 애초에 실현이 어려운 무리한 것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파워팩 기술을 가진 독일의 경우도 신형 개발에 10년 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국은 이를 강행했다. 내구도(耐久度) 평가에서 미군보다도 높은 군 요구조건도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군 기준을 적용했으면 우리 변속기도 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변속기 개발 책임을 맡은 S사에 구성품 등을 납품하는 200여개의 하청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변속기 구성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A사는 10년 가까이 10억원을 들여 국산부품을 개발했는데 국산 변속기 도입이 취소됨에 따라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어렵게 됐다.
   
   흑표 파워팩 문제 외에도 방산업계는 2014년 ‘통영함 사건’ 이후 방산비리 문제가 불거진 뒤 지탄의 대상이 되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2014~2015년 35억~36억달러를 기록했던 방산 수출액도 2016년엔 25억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지난해엔 방산 수출이 31.9억달러로 회복세를 보였다. 얼핏 보면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모습이지만 현재 어려운 방산업계의 현실을 상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방산업체들의 대표적 모임인 방위산업진흥회가 2월 말 회장 임기 종료를 맞이하지만 후임자 선정이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2004년부터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조 회장은 방위산업진흥회의 11~16대 회장을 지냈다.
   
   당초 업계에선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을 ‘오너 회장’이 맡아온 관행에 따라 풍산그룹 류진 회장에게 강한 러브콜을 보냈지만 류 회장은 고사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국내 대표 방산그룹인 한화와, 유도무기 대표업체인 LIG넥스원 오너가 후보로 부상했다. 하지만 한화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이고, 구본상 LIG넥스원 전 부회장은 현재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방산 원로로 중견기업을 일군 연합정밀 김인술 회장도 일부에서 추대됐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업계에선 대안으로 한화테크윈, KAI(한국항공우주산업), 풍산 등 대형 업체 CEO가 차기 회장을 맡는 방안도 추진했다. 하지만 대형 업체 CEO들은 오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너가 고사했거나 맡지 못한 자리를 맡겠다고 나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KAI 대표는 이미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의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에 방위산업진흥회까지 맡기에는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방산을 위해 뛰어줄 수 있는 명망 있는 전직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나 군 원로를 추대하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그러려면 방위산업진흥회 정관까지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방산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려면 우선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방산 패러다임은 아직도 내수 위주로 돼 있다. 방산 총매출액 중 수출 비중은 16% 정도(2016년)다. 이는 수출 시대에는 부적합하며 과도한 규제와 간섭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수출형 방산 패러다임’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미국 M1A2 전차. M1 전차는 계속 개량형이 등장해 진화적 개발의 대표사례로 평가된다.

   미국, 이스라엘 등 세계 여러 나라가 활용하고 있는 진화적 무기개발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어떤 무기체계든 처음으로 100%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군에서 요구하는 성능을 단계적으로 100% 충족시키는 무기도입 방식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미 F-35도 초도생산 단계에서 엔진에 화재가 발생했다. 한국군도 도입해 운용 중인 미 UH-60 헬기는 실전배치 뒤 5년이 지나서야 국산 수리온 헬기 결함 논란을 초래했던 체계결빙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방산비리, 무기결함으로 치부됐을 사안들이다. 김영후 방위산업진흥회 부회장은 월간 ‘국방과 기술’ 2018년 1월호 기고를 통해 “외국과 달리 우리 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작전요구성능(ROC)을 목표로 한 무기체계를 요구하다 보니 연구개발이 지연되고 전력화에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100점짜리 무기뿐 아니라 80~90점짜리 무기도 우선 사용하면서 점진적인 성능개량을 거쳐 최종적으로 최첨단 무기를 확보한다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방산 비서관을 신설해 새 방산 수출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서울 국제항공우주방산(ADEX) 전시회 개막식에서 “방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시급하고 이제 수출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방산 국제 경쟁력 강화와 수출 지원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도 절실하다. 최저가 입찰제 등 기존 제도 개선을 통해 방위산업 여건을 강화하고 해외 방산 전시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등록일 : 2018-02-13 14:27   |  수정일 : 2018-02-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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