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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적폐 30년 약사(略史), 박근혜 정부 때 득세했던 검찰 수뇌부들은 어디에…

⊙ 정권이 바뀌면 전(前) 정권의 사정은 현(現) 정권의 사정 대상이 되는 비극의 악순환
⊙ 노태우·김영삼 정부 들어 안기부·경찰 대신 검찰이 정치 전면에 등장
⊙ 김대중 정부의 검찰… 사법적 잣대보다는 정치적 잣대를 고려한 수사
⊙ 노무현 정부의 검찰… 입으로 검찰개혁을 외쳤지만 명분에만 집착한 아마추어 정권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검찰… 검찰을 정치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통치술로 삼아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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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대한민국 검찰은 현재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적폐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문무일의 검찰청은 “적폐수사 연내 마무리”를 내비쳤으나 청와대는 기한 없음을 못 박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017년 12월 6일 “올해 안 마무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내년(2018년) 봄까지는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초기 검찰은 새로운 권력과 함께 요란한 사정(司正)을 하고 있다. 역대정권마다 검찰은 청와대 하명(下命)기구라는 비판을 들었다. 청와대와 집권세력의 뜻에 따라 편파적이고 왜곡되게 검찰권을 행사, 남용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부처별 적폐청산위원회가 수사 대상을 검찰에 보내면 검찰은 그걸 받아 수사하는 식이다.
 
  이른바 적폐수사는 2017년 7월 시작돼 서울지검 소속 검사의 3분의 1인 87명이 동원됐고 모두 19건에 달하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26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죽은 권력’인 전(前) 정권에 가해지는 정치사정은 3공화국에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권력자들의 연례행사처럼 진행돼 왔다. “사정 바람이 쓸고 가도 사정한 그 새 정권이 5년간 집권하고 나면 어차피 새로운 사정거리들이 지난 정권만큼 다시 쌓이기 마련”이란 얘기가 나온다.
 
  결국 새로운 정치 권력은 지난 정권 당시 핍박을 받을 때 응어리졌던 감정 때문인지 새 정권의 위력을 보여주려 한다. 찾아낸 사정거리를 빌미로 칼날을 세우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얘기가 있다. 현재 사정의 주체인 검찰 엘리트들이 서울대 출신임을 빗대어 “과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사정의 주체와 사정의 대상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또 사정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메우는 이도 그 대학 출신”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집단의 비극 아닌 비극인 셈이다. 검찰 수뇌부 출신의 김기춘과 우병우를 잡으려는 지금의 검찰 수뇌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안기부·경찰 권력 vs. 검찰 권력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검사선서’ 액자가 걸린 로비를 지나고 있다.
  첫 삽은 잘못된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사정이었음에도, 늘 국민의 눈에 무슨 보복이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기획사정으로 비치는 것은, 정권 입맛대로 검찰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다시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사정은 현 정권의 사정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비극은 또다른 비극을 불러온다.
 
  법무부가 2017년 12월 12일 과거 검찰의 인권침해 및 권한 남용 사례를 규명한다며 ‘검찰 과거사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9명의 과거사 위원 중 5명이 민변(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 인권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따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의 정치편향과 기획수사, 외압에 의한 부실수사 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1960년대 박정희 정권과 70년대 유신 시절에는 중앙정보부가 정권 안보의 첨병으로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었다. 당시 막강한 조직과 권한을 부여받았던 중앙정보부는 중요 공안사건 수사는 물론이고 정치적 고비마다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 정권유지 기능을 담당해 왔다. 중정(中情)이 검찰보다 파워가 더 셌다.
 
  1980년대 이후 5공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중정의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이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5공 정권을 ‘경찰 공화국’이라 부를 정도로 당시 경찰의 권한과 기능은 막강했다. 아무래도 학생시위와 관련된 시국사건 영향 탓이다. 안기부와 경찰이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권위주의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할 때, 상대적으로 검찰은 수사절차와 적법성을 확보하고 공소유지 기능을 담당하면서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검사들은 정치적 외압에도 “육사(陸士) 나온 사람들에게 완전 복종할 수는 없다”는 선민(選民)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결국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정치권력은 마지막 남은 수사기관인 검찰을 정치의 일선으로 끌어냈다. 안기부와 경찰이 급격히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장관 20명과 검찰총장 한 명을 안 바꾼다”고. YS는 검찰의 위상을 낮출 생각을 하지 않고 유용하게 활용하려고만 생각했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YS 말기 때 임명된 김태정 검찰총장(임기 1997년 8월~1999년 5월) 체제 아래 검찰의 정치개입 강도는 외견상 더 심해지고, 더 직접적이었다고 한다.
 
  1997년 대선을 보자.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김 총장은 ‘김대중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착수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결단을 요구받았다.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은 김대중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를 검찰에 고발했고 DJ 측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작이라 반발했다.
 
  김 총장은 장고 끝에 수사유보 입장을 표명했다. 수사기관이 고소·고발 사건을 통상 절차에 따라 수사함이 당연한데 검찰은 수사가 가져올 정치적 결과를 고려해 수사유보를 결정한 것이었다. 당시 여권은 펄쩍 뛰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김 총장 체제 당시 수사기획관이었던 박주선 의원(국민의당)은 김 총장에게 “비자금 수사를 하면 광주에서 민란이 일어난다”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과 검찰… 검찰 첫 수사가 ‘DJ 비자금 사건’
 
김태정 검찰총장이 1997년 10월 20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비자금 고발사건에 대한 수사를 유보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뒷자리에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이던 박주선 의원이 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검찰은 널뛰기를 거듭했다.
 
  DJ 정부에서 검찰총장은 총 5명. 검찰총장 임기 보장이 제도화된 이후 유일하게 박순용 총장만이 임기를 채웠다. 총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약 13.8개월. 2년의 임기가 보장되었음에도 임기를 못 채웠다.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총장은 4명이었다. 법무부 장관이 당시 김종빈 총장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지휘권 발동에 불만을 품고 6개월 만에 사퇴한 것을 제외하고 검찰총장들은 모두 2년 임기를 채웠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검찰은 좌충우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DJ 정부 초기 검찰은 정치인 사정수사와 관련, 야당 총재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는 등 정치권과 직접 맞서는 모습을 여러번 연출했다. 국회가 비리 정치인들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지연시키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자, “미치겠다”느니 하는 말을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흘렸다. 그러나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결국은 검찰총장이 검찰의 사령탑이 아니라 정치권 수사의 첨병 또는 소총수로 나서는 듯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쳤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시 여당(국민회의)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 정권 비리 제보가 봇물처럼 밀려들었다고 한다. 청와대 민원실, 대검 범죄정보관리과, 감사원, 국세청, 경찰청, 안기부,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같은 비리 가운데 사법처리가 가능한 범죄정보들은 차곡차곡 검찰로 넘겨져 수사 대상이 됐다.
 
  DJ 정권 출범 후 검찰이 처음 처리한 대형 정치적 사건은 ‘DJ 비자금 사건’이었다. 김태정 총장이 수사를 유보했던 사건이었다. 검찰의 수사결과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정치적 판단’에 가까웠다. 사법적 잣대보다는 정치적 잣대를 고려한 수사였다. “DJ 측이 비자금을 수수한 사실은 일부 인정되지만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라고 판단했다. 또 “한나라당의 금융실명제 위반 행위도 인정되지만 처벌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무혐의 또는 불입건 처리로 매듭지었다.
 
  새 정부의 출발에 찜찜한 걸림돌을 수사라는 요식행위로 치워 버린 검찰은 이후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외환위기를 몰고 온 주범으로 만들면서 이른바 YS 경제실정(失政) 수사를 마무리한 다음, 본격적인 사정이 시작됐다.
 
 
  용두사미수사, 태만수사, 축소수사, 안개수사…
 
김대중 정부 당시 검찰의 세풍·총풍 수사가 대표적인 용두사미식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1998년 12월 14일 국회 법사위에서 박상천 법무장관이 총풍사건과 관련, 답변하고 있다. 고개를 숙인 이가 신승남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다. 그는 2001년 검찰총장이 됐다.
  지금의 적폐수사처럼 DJ 정부 때도 과거 정권 및 야당 관련 사건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경부고속철도 로비 사건, 총풍 사건(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세풍(국세청 불법모금 사건), 안풍(96년 안기부 자금횡령 사건), 박노항 원사 병역비리 사건, 김대업 사건(김대업의 이정연씨 병역비리 의혹 폭로 사건) 등이다. 사실상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DJ 주변의 권력 핵심부나 고위 공직자 연루 사건도 많았다. 옷로비 사건, 백두사업 관련 의혹, 안정남 전 국세청장의 비리의혹 사건, 아·태재단 군인사 개입 사건, 최규선 게이트, 김홍업·홍걸씨 비리,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4000억 대북 뒷거래 의혹 사건,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없었고, 검찰 역시 벌려 놓은 사건에 대한 정치성과 정치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 사건은 당시 참여연대가 지적하듯 대개가 용두사미수사, 태만수사, 축소수사, 안개수사로 끝이 났다. ‘용두사미식 수사’의 전형은 세풍·총풍 사건, 박노항 사건, 농축협 비리 사건, 옷로비 사건 등이 꼽힌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 정작 결과는 흐지부지였다는 얘기다. 가령 1998년 10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신동아그룹 최순영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사회 고위층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사건은 로비 대상자가 검찰총장 부인뿐 아니라 사회 고위층 부인들이 망라된 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으로 번졌지만 검찰은 “로비 시도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DJ는 김태정 법무장관을 유임시켰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검찰수사는 짜맞추기식 면죄부용이며, 법무부 장관 부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검찰이 자존심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DJ가 김태정 장관을 끝까지 보호하는 것은 김 장관이 검찰총장 시절, DJ비자금 사건을 보류해 준 데 대한 보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DJ 정부 때 일어난 파크뷰 특혜 의혹, 동아건설 분식회계 사건, 4000억 대북송금 사건 등을 ‘태만수사’로 명명했다. “수사를 하긴 했으나 일부만 한 수사”라는 얘기였다. 또 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 사건, 최규선 게이트, 김홍업·홍걸 사건. 현대전자 주가조작 의혹 사건, 기양건설 사건, 백궁·정자지구 특혜분양 사건 등을 ‘축소수사’로 규정했다. “수사를 하다 덮었을 것”이란 얘기였다.
 
  DJ 정부에서 검찰이 가장 비판받는 사건은 경성그룹 특혜대출 사건이다. 경성그룹이 2000억원대의 특혜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여권은 물론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공동 정권의 실세들이 다수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다. 당시 검찰은 “최선을 다해 수사했지만 뇌물공여 추정자들이 진술을 하지 않는 바람에 더는 밝히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1999년 심재륜과 검찰의 항명 사태
 
  검찰,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다!
 
  1999년 1월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연루 의혹을 받고 있던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이 검찰 수뇌부의 부정을 비난하고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직후, 전국의 소장검사들이 검찰총장 퇴진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 확보 방안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검찰 초유의 항명 파동이었다.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 원칙에 충실한 검사들이 서명운동 등 집단행동에 나선 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 심 고검장은 법조 브로커에게 떡값과 향응을 제공받았다며 검찰총장(김태정)에게 사퇴를 종용받았다. 그러자 심 고검장은 “검찰 수뇌부가 자신들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후배 검사들을 희생양으로 만든다”며 반박 기자회견을 가졌다. 결국 징계위원회가 열렸는데 금품·향응 수수 비위가 아닌 근무지 이탈로 파면처분을 받았다. 심 고검장은 복직 소송을 제기, 2년 7개월 만에 법원으로부터 복직판결을 받아 검찰로 돌아왔고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물론 역대 정권에서 자행된 검찰의 정치편향이 자청한 것은 아니다.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력이 ‘정치검찰’을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의 행태를 돌이켜보면 모든 책임을 청와대와 권력자에게 떠넘길 수 없다. 수뇌부가 알아서 정치사건에 개입한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 검사들의 집단 항명 사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노무현과 검찰… 문재인·천정배·강금실 시너지 불발
 
2003년 11월 7일 오전 한나라당이 제출한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법사위에 출석한 강금실 장관. 강 장관을 통한 검찰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2003년 이른바 굿모닝 게이트 사건이 터졌다. 쇼핑몰 ‘굿모닝시티 분양비리’에 여권 실세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당시 수사는 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가 맡았다. 예전과 달리 검찰 수사의 칼끝이 야당이 아닌 여권, 특히 정권 창출의 주역인 당시 여권의 실세들에게 겨눠졌다. 일각에서는 여권 붕괴 위기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40여 명의 리스트가 나돌았던 정치권 인사들 중에서는 정대철 전 의원만이 유일하게 구속됐다.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민주당 대표(정대철)는 “왜 청와대가 검찰을 통제하지 못하느냐”며 청와대 측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청와대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수사 불개입 원칙을 내세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우리쪽의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을 보장해 줬다”고 주장한다. “검찰 수뇌부만 바뀌면 검찰이 바뀔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검찰의 힘이 더 막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노무현 정부는 입으로 검찰개혁을 외쳤지만 명분에만 집착한 아마추어 정권이었다. 검찰개혁을 하려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인 문재인, 집권여당의 천정배 대표, 법무부 강금실 장관 등 3인이 뭉쳐야 하는데 따로 놀았다. 나중 강금실 장관이 “그때 왜 나를 보호해 주지 못했냐”면서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섭섭해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2003년 헌정사상 초유로 여야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해 ‘스타 중수부장’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구속하고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대기업 CEO들을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이명박과 검찰… “이렇게 하는 수사는 처음 봤다”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이명박 정부 당시 첫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박용석 중수부장은 휴켐스·세종증권 매각 비리 수사를 맡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등을 구속했다. 이른바 전 정권 적폐세력에 메스를 가했다.
 
  후임 이인규 중수부장은 박연차 사건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수사하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대검 청사로 불러 소환조사까지 벌였다. 당시 대검 중수부 과장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이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이렇게 하는 수사방식은 처음 봤다”고 말할 정도로 검찰의 수사강도가 셌다고 한다. 지속적, 주기적, 빈도 높은 검찰의 언론브리핑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검찰-편집자)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한꺼번에 퇴행해 버린 것이 어이없고 안타깝다. 안타깝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p.240)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은 “검찰 권력이 극대화되는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검찰을 정치수단으로 활용하는 통치술로 삼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위상과 권력이 정권의 명운과 함께하는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정책)의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끈질기고 가혹한 수사, 살아있는 권력이나 자기 식구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답답하리만치 느슨하고 부실한 수사였다”는 것이다.
 
  당시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불거졌다. 최고 권력층이 비선라인을 통해 정부에 비판적인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권력남용 사건이었다. 검찰은 청와대의 최고 윗선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있었음에도 실무자 3명을 기소하며 사건을 봉합했다. 검찰의 특기인 꼬리자르기 수사였다는 야당의 비난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그룹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사건도 당시 일어났다. 검찰은 이미 2007년 7월 첩보문건을 통해 효성그룹이 여러 해외법인을 통해 200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 중앙지검 등에서 사건을 방치하고 있다가 2009년 9월 주요 혐의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했다. 다만 곁가지라 할 수 있는 70억원 비자금 조성과 해외교민의 폭로로 드러난 해외부동산 취득 등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대통령 사돈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검찰의 특별배려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근혜와 검찰… 검찰 출신 인사들이 정권에 안착
 
청와대 실세들과 검찰은 최순실을 정점으로 한 비선실세의 비리에 둔감했고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2016년 11월 6일 오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 쏠림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정권에 대거 등용됐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정부 출범 이후에는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헌법재판소장, 법무부 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총리도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총리다.
 
  그러나 검찰이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부상했지만 스스로 자정능력을 잃고 말았다. 대표적인 예가 진경준·홍만표의 부패 사건이다. 특히 진경준 검사장의 해임은 68년 검찰 역사상 첫 사례였다. 또 홍만표 전 검사장은 오피스텔만 100여 채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을 증폭시켰다.
 
  정윤회 문건파동에서 보듯, 청와대 실세들과 검찰은 최순실을 정점으로 한 비선실세의 비리에 둔감했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을 활용한 통치술로 정권을 끌어가려고 했으나 그 믿었던 검찰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나고 만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 16일 법원의 구속연장 결정과 재판에 대한 심경을 처음으로 이렇게 밝혔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당시 득세했던 검찰 수뇌부에는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등록일 : 2018-01-11 09:00   |  수정일 : 2018-01-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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