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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탄생 100년]
박정희, 오해와 진실

18명이 펴낸 ‘박정희 새로 보기’ ‘박정희 바로 보기’

글 | 김태형 주간조선 기자

“이 책의 글을 읽으면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폄하되는지 잘 알 수 있다.”
   
   송복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박정희 바로 보기’(기파랑)란 책의 서문에 쓴 말이다. ‘박정희 바로 보기’는 주제별로 ‘박정희 업적의 왜곡과 감춰진 사실’을 밝히고, 박정희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 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송복 연세대 교수, 김인영 한림대 교수, 류석춘 연세대 교수,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등 각 분야 전문가 10명이 참여했다. 기파랑에서 함께 출간한 ‘박정희 새로 보기’는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세대를 위한 안내서이다. 이 책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전상인 서울대 교수, 이승수 청년박정희연구회장 등 8명이 집필했다.
   
   박정희 시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좌파 진영에서조차 ‘오늘의 한국을 설계하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룬 공(功)’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박정희 바로 보기·새로 보기’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바로 알아야 할 진실과 성공모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책의 내용 가운데 인상 깊은 몇 가지 내용을 정리했다.
   
   
   박정희가 정경유착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로 만들어진 경제적 성취가 ‘민주주의를 위한 조건’을 만들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남미·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경제성장이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성장이 부진하거나 실패할 경우 거의 예외 없이 권위주의 정권이 재등장한 것을 볼 때, 한국의 민주화는 박정희 산업화의 성공 없이 가능하지도 유지되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1987년의 민주화는 ‘넥타이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그 이유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넥타이를 맨 중산층이 더 이상 권위주의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의 민주화가 지속될 수 없었던 이유는 국민이 ‘정치적 자유’보다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를 먼저 원해서다.
   
   김 교수는 “박정희가 추진한 산업화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은 정부와 기업 간의 협력관계”라고 말했다. ‘정경유착’만으로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박정희 산업화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정희 정부는 다른 신생국가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기업육성을 위해 개입했다. 하지만 기업들에 혜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업이 정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불이익을 주는 철저한 ‘상벌(賞罰)’에 기초한 육성 전략을 수행했다. 박정희가 경제개발 초기부터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한 이유가 있다.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고, 단기간 내에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기업 육성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정경유착이 이뤄진 국가경제는 부정부패로 몰락하기 마련인데 박정희 정부가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는 점은 ‘유착’이 아니라 ‘협력’”이라고 평가했다.
   
   1971년 3월, 미국의 무기제조업체인 콜트사(社)는 한국과 M-16 소총 공급을 체결한다. 이에 콜트사의 데이비드 심슨은 청와대를 찾아와 박정희에게 감사의 표시로 100만달러가 든 봉투를 건넸다. 돈봉투를 받은 박정희는 이렇게 화답했다. “당신이 내게 준 100만달러는 내 돈도 당신 돈도 아니다. 이 돈은 저 멀리 베트남에서 싸우고 있는 내 형제 자식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다. 이 돈을 다시 가져가고 대신 이 돈만큼의 총을 우리에게 더 달라.” 데이비드 심슨은 후진국 대통령의 작고 깡마른 모습에서 거인의 모습을 보았다.
   
   이 사례는 ‘박정희 바로 보기’의 필자 중 한 사람인 최종부 자유경제연구원 연구원의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일부에서는 박정희가 일군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근거를 강력한 권력욕의 발현으로 보고 있으며, 박정희가 권력욕에 눈이 먼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최종부 연구원은 “이 말은 전혀 틀린 말이며, 당시 모두 ‘잘살아보자’라는 국민적 신풍이 불었고, 이는 새마을운동으로 발현됐다”고 말했다.
   
   생전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박정희를 평가한 말이다. “박정희는 사리사욕으로 장기 집권한 것이 아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기업도 성장시켰지만 자손에게 남긴 것이 없다.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한 사람이다.”
   
   
   주택정책과 과학을 일으킨 대통령
   
   ‘박정희 경제모델’은 폐기될 것이 아니라 내외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개량됐어야 한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모델의 기본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은 아파트의 나라다. 아파트는 국가대표 주거 유형이다. 이런 아파트를 통해 주택문제를 해결하고, 주거 수준의 향상에 기여한 인물이 바로 박정희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박정희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 역사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정책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한 최초의 지도자다. 도시에서는 주택건설사업을, 농촌에서는 주택개량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택문제, 주택정책에 관해서 박정희는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측면이 많다.”
   
   1960~197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아파트의 대량공급 이외에 대안적인 선택은 없었다. 1960년대는 1970년대 이후 아파트 위주의 ‘한국적’ 주택공급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유·무형의 토대를 마련한 기간이었다.
   
   
   “과학기술의 진흥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잘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5개년 계획’도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표적인 예로 박정희는 이미 4차 과학기술부문 계획(1977~1981)에서 ‘두뇌산업과 정보육성’을 내세웠다. 한국 최초로 과학기술 전담 부서를 만든 것도 박정희다. 1967년,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한 ‘과학기술처’가 탄생했다. 박정희와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김기형 박사와의 만남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965년 박정희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재미 한인 과학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박정희는 미국에서 만난 김기형 뉴욕에야리덕션 전자요업연구소 박사를 눈여겨보았다. 이후 박정희는 한국에 돌아와 김기형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처 장관직을 맡아달라”고 청했다. 이에 대해 이승수 청년박정희연구회장은 “과학기술 없이는 조국 근대화도 없다는 박정희의 신념이 과학강국 한국을 만든 시발점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정희는 단순기능인에서 기술자로 올라가는 첫 단계인 ‘기능공’ 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70년대 기술교육 확충을 통해 양성된 인력은 약 100만명에 이르게 됐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보면, 박정희 덕분에 400만명의 국민이 먹고살 길을 찾게 된 것이다.
   
   박정희는 기능올림픽을 통해 ‘기능공’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었다. 기능올림픽에서 선수단을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를 개최했다. 기능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가난했지만 성실히 기술을 갈고닦은 사람들이었다. 박정희는 그들에게 카퍼레이드를 통해 자신감을 키워준 것이다. 한국은 1977년부터 2003년까지 단 한 해(1993년)를 빼고 총 14회 종합우승을 기록할 만큼 이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1968년 4월 21일, 박정희 정부 주최로 제1회 과학의 날 행사가 개최됐다. 이 행사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박정희의 이러한 노력은 마침내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성과를 맺기 시작한다. 이때는 고등학생들의 이공계 진학이 늘어났던 시기다. 이승수 청년박정희연구회장의 말이다. “과학기술이 국제 경쟁력의 키로 떠오른 오늘날, 과학 대통령 박정희가 그립다.”
등록일 : 2017-11-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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