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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 유지하려면 軍 입대해! 싱가포르 한국인 이중병역 고민

글 |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5-01-14 09:11

▲ 싱가포르군 photo 구글
싱가포르 영주권을 갖고 있는 정모씨는 2년여 전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한국 대기업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현지 고등학교 졸업 후 ‘싱가포르군에 입대하라’는 입대영장을 발부받은 것. 한국과 같이 징병제를 실시하는 싱가포르는 시민권자(국적자)가 아닌 ‘영주권자’에게도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어릴 때부터 싱가포르에서 자라 한국어·영어가 모두 유창한 정씨는 고민을 거듭했다. 싱가포르군에 입대하지 않으면 만 37세 전까지 한국으로 귀국해 한국군에 입대해야 했다. 하지만 싱가포르군 입대를 거부하면 싱가포르 영주권을 포기해야 하고, 향후 싱가포르 내 거주와 취업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정씨는 밤새워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싱가포르군이 아닌 한국군에 입대키로 마음을 먹었다. 정씨의 부친은 “아들이 한국군과 싱가포르군 입대를 놓고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며 “싱가포르군에 가면 한국군보다 월급도 훨씬 많이 주고 일주일에 2~3일씩 집에도 나올 수 있어 좋지만, 그래도 싱가포르군보다는 조국인 한국군에 입대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에는 정씨와 달리 한국군 대신 싱가포르군을 선택하는 젊은 영주권자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특히 한국군에서 총기사고를 비롯 욕설, 구타, 성(性)추행 등 추문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국군 대신 싱가포르군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싱가포르군에 대한 교민 자녀들의 선호도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한다. 싱가포르한인회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는 파악이 안 되지만, 입영 대상자 중 절반은 싱가포르군을 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만 17세,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24개월의 병역의무를 부과한다. 21~24개월의 한국군보다 복무기간이 약간 더 길다. 대개 대학 1~2학년차에 중도 군휴학계를 내고 입대하는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군에 입대한다.
   
   이론적으로 싱가포르에서 입영 통보를 받은 싱가포르 영주권자들은 영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군대를 두 번 갔다와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싱가포르군에 갔다와서 다시 한국군에 입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싱가포르 영주권을 포기하면 싱가포르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 경우 영주권 포기 전력 탓에 향후 싱가포르 내에서 직장을 구하거나 거주하는 길이 사실상 막힌다. 싱가포르는 한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들이 몰려 있는 곳. 싱가포르군을 회피했다는 이유만으로 싱가포르 사정에 밝은 데도 불구하고 취업 자체가 어려워지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군과 한국군을 합쳐 각각 2년씩 모두 4년을 군에서 보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1975년 한국과 싱가포르 간 수교 후 싱가포르 영주권을 취득한 젊은이들이 급증한 터라 이러한 이중 병역 부담은 현실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의 한국 교민은 약 2만5000명. 이 중 영주권자는 3분의 1가량이다. 싱가포르한인회는 교민 5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이중 병역 문제를 해소해 줄 것을 각처에 호소하고 있지만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다.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에서도 교민 자녀들의 이중 병역에 따른 고충을 잘 안다.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병무청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병무청 자원관리과의 이연우 사무관(국외자원총괄)은 주간조선에 “영주권자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싱가포르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며 “남의 나라 병역제도를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자칫 내정간섭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병무청은 해외 영주권자가 한국군 신병훈련소에 입대할 경우 한국군 문화 등을 가르치는 일주일간의 적응 프로그램만 가동 중이다.
   
   싱가포르군이 창설된 것은 1957년. 태평양전쟁 당시 싱가포르 주둔 영국군이 싱가포르를 일본군으로부터 방어하는 데 실패하자 군을 창설하며 독자적인 무장조직을 꾸렸다. 초창기에는 군대라 해봤자 2개 대대, 병력 1000명가량에 그쳤다. 하지만 1959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고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강제축출과 함께 분리독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북으로는 말레이시아, 남으로는 인도네시아가 압도적 인구를 바탕으로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공공연히 위협하는 상황에서 1971년 영국군 철수까지 기정사실화되자 싱가포르는 군을 키우기로 결정한다.
   
   사면초가 위기에 몰린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가 꺼내든 카드가 국민개병제. 1967년부터 싱가포르의 전 남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했고 이를 영주권자에게까지 확대한 것. 국민개병제 도입 후에는 해군과 공군 등도 잇달아 창설했다. 특히 “좋은 남자는 군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호남불당병(好男不當兵)’과 같은 화교(華僑) 특유의 군 천시 문화를 깨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등 명문대 유학생들에게 군 장학금을 제공해 가며 대거 군 장교로 편입시켰다. 리콴유 전 총리의 장남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석 출신인 리셴룽(李顯龍) 현 싱가포르 총리도 싱가포르군 장학생으로 입대해 육군참모차장까지 지낸 군 장성 출신이다.
   
   싱가포르는 이스라엘의 군사교관을 주변 이슬람국 몰래 비밀리에 초빙해 군사훈련 등을 맡겼다. 국토 면적이 서울 크기 정도에 불과해 마땅한 군사훈련장이 없는 약점은 같은 비(非)공산권 화교국가인 대만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대만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에게 훈련장 사용을 타진했고 싱가포르와 같이 푸젠성(福建省) 출신이 대다수인 대만은 1975년 싱가포르의 훈련장 사용 요청에 적극 호응했다. 이후 필리핀, 호주, 미국 등지서 실시하는 싱가포르군의 해외 전지훈련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군은 전체 현역병이 6만500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주변국들이 무시하지 못하는 ‘매운 고추’라는 평가를 듣는다. 특히 40만명에 달하는 예비군은 싱가포르군의 자랑이다. 싱가포르의 전역자들은 제대 후 10년간 연 40일가량의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 싱가포르한인회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예비군은 훈련 참가자의 직업과 직위 등을 고려해 시간 손실 등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충분히 제공한다”며 “싱가포르의 다국적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인도 예비군 훈련을 꺼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등록일 : 2015-01-14 09:11   |  수정일 : 2015-01-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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