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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주범 김영철, 2009년 "우리 설정 해상경계선 지키려 무자비한 군사조치” 협박

군부가 대남공작 주도권 장악, 대남공작이 전투화(戰鬪化)될 것

⊙ 작년 초 노동당 작전부, 35호실 등이 국방위 정찰총국 산하로 들어가
⊙ 군부가 대남공작 주도권 쥐었던 1967~1970년 대남 도발 빈발

글 | 류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안보정책실 선임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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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지난 3월 26일 해군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이후, 원인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정확한 원인은 천안함 인양 후 국내외 공동조사단의 정밀조사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북한 잠수정에 의한 어뢰공격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에 의한 도발이라면, 우리는 북한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느 부서에서, 왜 이런 도발을 자행했는지에 대한 배경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향후 우리 정부의 대응방향과 수위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배경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것은 ‘대남(對南)전략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남전략을 정확히 이해해야 북한의 의도와 향후 행동방향을 예측해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배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남전략의 관점에서 ‘2012년 강성대국론(强盛大國論)’과 2009년에 단행한 대남공작부서의 대규모 개편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북한은 2008년 1월 1일 신년공동사설에서 ‘김일성(金日成) 출생(1912년) 10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공포한 이래, 각종 행사,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이를 독려해 오고 있다.
 
  북한에 의하면, ‘2012년 강성대국 실현’이란 사상강국·군사강국·경제강국의 달성으로 실현된다.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의 완성이란 궁극적으로 전조선혁명(사회주의혁명 실현, 즉 적화통일)으로 완수되는 것인데, 결국 2012년 적화통일의 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서 2010년은 강성대국 실현을 위한 교두보를 대내외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중요한 해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대남전략과 하위체계인 대남공작도 이의 연장선에서 매우 공세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북한 대남공작부서의 전면 개편과 의미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실현(적화통일 완수)을 위해 2009년 초 대남공작 기구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의 내용은 국방위원회 직속으로 ‘정찰총국’을 신설하고 산하에 작전국(舊 노동당 작전부), 정찰국(舊 총참모부 정찰국), 해외정보국(舊 노동당35호실) 등을 두었다. 노동당 대외연락부도 225부로 명칭이 바뀐 후, 정찰총국 소속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 통일전선부는 축소했다. (표 참조)
 
  이와 같은 대남공작기구 개편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대남공작의 주체가 ‘당(黨·조선노동당)’에서 ‘군(軍·국방위원회)’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이 지난 60여 년간 전개해 온 당 중심의 대남공작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는 김일성 사후(死後) 김정일(金正日) 통치시대에 들어서 ‘군’을 최우선시하는 선군(先軍)노선을 강조하고, 2009년 4월 9일 북한 헌법 개정시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북한의 지도이념으로 내세우면서 국방위원회를 명실상부한 최고권력기관으로 규정한 연장선에 있다.
 
  둘째, 기존의 당 중심의 대남공작 체제로는 적화통일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군 중심으로 대남공작 체제를 개편한 것이다. 김정일은 대남공작의 궁극적 목표가 ‘전조선혁명의 완수(적화통일 실현)’인데 당의 대남공작부서가 이를 달성하지 못한 책임을 묻고, 군을 통해서 이른바 ‘수령의 조국통일 유훈’(적화통일)을 관철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셋째, 향후 대남공작의 방향은 기존의 방식에 추가하여 대남테러, 제한적 무력도발 등 전투화(戰鬪化)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권수립 이전부터 지금까지 대남공작에 진력해 왔다. 당이 모든 사업을 지도하는 체제의 특성상 대남공작을 담당해 온 것도 노동당이었다. 그런데 대남공작의 주도권이 잠시 군부로 넘어간 시기가 있었다. 그때가 1967~1970년이다.
 
  당시 북한군이 주도권을 장악했던 대남공작은 후에 군사모험주의, 좌경맹동주의(左傾盲動主義)라고 자체비판을 받을 정도로 초강경 일변도였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비타협적인 대남테러 도발을 자행하였던 이 시기 대남공작의 특징과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군부가 대남공작 주도권 쥘 경우 강경화
 
  첫째, 당시 북한의 대남공작 부서들은 김일성의 환갑이 되는 해인 1972년까지 적화통일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대남공작을 전개했다. 이는 북한이 2008년부터 김일성 출생 100주년인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달성하겠다는 ‘적화통일 스케줄’과 대비된다.
 
  둘째, 그동안 민간출신이 당에서 담당했던 대남공작 부서를 군 중심으로 개편하였다. 김창봉 민족보위상(우리의 국방장관에 해당)이 대남공작의 지휘권을 가지고 노동당 대남총국을 대남사업총국으로 개편하였다. 당 대남총국장이자 연락부장이었던 리효순을 숙청하고, 현역군인인 허봉학(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대남사업총국장에 임명했다. 또 군 대남침투공작 부서인 특수정찰국을 특수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하고, 국장에 민족보위성 부상(副相·국방차관)인 김정태(북한 부수상과 인민군 전선사령관을 지낸 김책의 차남)를 취임시켰다. 당시 특수정찰총국은 124군 부대, 283부대, 837부대 등 무장소조(小組) 형태의 연합특수부대를 신설, 운용하며 1·21 청와대 기습사건 등 각종 대남도발을 일삼았다.
 
  이 당시 북한의 대남공작 라인은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 - 김창봉 민족보위상 - 김정태 특수정찰총국장 및 허봉학 당 대남사업총국장으로, 명실상부하게 군부 중심으로 대남공작 부서가 재편되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북한의 대남도발 사례를 보면, ▲청와대 기습사건(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정찰총국 소속 124군 부대 소속 31명의 무장공비를 남파시켜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 ▲1968년 11월 울진-삼척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사건(120명 침투) ▲미국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1968년 1월) ▲동해안 공해 상공 미국 해군정찰기 EC121기 격추사건(1969년 4월) ▲KAL기 납북사건(1969년 12월) ▲해군경비함 56호 격침사건(1967년 1월, 해군사망 11명, 실종 27명, 부상 23명) ▲열차폭파사건(운정역 미군 화물열차, 초성역 열차, 문산 철도 폭파사건 등) ▲무장공비 침투사건(정읍, 임실, 진안, 제천, 단양, 괴산 침투) ▲한국군(12사단, 28사단, 7사단) 및 미군2사단 기습 ▲미군59항공대 헬기 피격(1969년 8월) ▲서해상 승용호, 동해상 어선 부성호 등 20여 척의 어선나포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대남공작 기구 개편 이후 군부 주도의 전투적인 대남공작이 다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방위 정찰총국 소행 가능성 높아
 
북한의 대남공작 총책인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왼쪽)과 정찰총국장 김영철(오른쪽).
  금번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면, 이는 북한의 정규 해군이 자행한 것이 아니라 국방위 직속의 대남공작 부서인 정찰총국이 자행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1800톤의 로미오급 잠수함과 300톤 상어급(SSC) 소형 잠수함은 백령도 해상의 수심(水深)을 감안할 때 작전이 용이치 않다. 따라서 북한이 사용한 잠수정은 80톤 유고급 잠수정(SSC)과 반(半)잠수정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반잠수정에 장착된 어뢰는 경(輕)어뢰로 파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 결국 중(重)어뢰를 장착할 수 있는 유고급 잠수정(유고제 잠수정을 개량)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유고급 잠수정은 북한 해군이 아닌 국방위 정찰총국이 대남침투 및 공격용으로 여러 척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을 정찰총국 소행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1998년 6월 22일 동해안 양양에서 꽁치그물에 걸려 좌초한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을 보면, 레이더 탐지를 피하기 위해 강화플라스틱(FRP)으로 외부도장을 했고 소나(음향탐지기)를 피하기 위해 하이스쿠르프로펠러(HSP)와 특수 소음감소팬(PBCF)을 장착했으며, 어뢰관 2문과 기뢰부설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현재 북한의 대남공작 지휘라인을 보면 김정일(국방위원장)-오극렬 대장(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대남담당)-김영철 상장(上將·정찰총국장)으로 이어진다. 오극렬(79)은 공군사령관·총참모장 등을 역임한 후 1989년부터 대남공작원 양성과 대남침투를 담당하는 부서인 당 작전부장을 20년간 지냈다. 2009년부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영철(64) 정찰총국장은 1968년 미(美) 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당시 인민군 소좌(우리의 소령에 해당)로 판문점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를 맡았다. 그는 인민무력부 부국장,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 남북군사분과위 북측위원장,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를 역임한 대남통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12월 국방위 정책실장(당시 인민군 중장) 자격으로 개성공단을 방문, 상주(常駐)인원 제한 등을 강요한 12·1 조치 이행 상황을 점검한 바 있다. 작년 12월 13일에는 남북장성급회담 대표로 “우리가 설정한 해상경계선만 있다. 지금 이 시각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의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 바 있다.
 
 
  북한의 도발 저의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했다면, 그 의도는 무엇인가?
 
  첫째, 단편적으로는 작년 11월 10일 대청해전의 보복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3월 8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담화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대남군사위협과 보복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 왔다. 1·2차 연평해전 패배를 복수하기 위한 3차 교전에서조차 패배한 북한군(해군)의 자존심을 대남공작 전문부서인 국방위 정찰총국이 만회해 준 것이다.
 
  둘째, 지난 좌파정부와는 달리 북한에 휘둘리지 않으며 남북관계에서 나름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위협이다. 비밀리에 대남무력도발을 자행해 우리 내부의 안보위협을 높여 남남(南南)갈등과 사회혼란을 조성하고 궁극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관리 기반을 무력화(無力化)하려는 것이다.
 
  셋째, 북한정권의 목표인 적화통일, 특히 2012년 강성대국 실현을 위한 혁명역량 강화의 일환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선체 인양 후 공동조사단이 북한이 자행했다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북한은 결코 이를 인정치 않을 것이다. 향후 북한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보복공격, 북한선박의 제주항로 통행 금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북한을 압박할 경우, 북한은 더 강하게 대남위협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협박에 우리가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사태해결 혹은 다른 명목으로 당국자회담을 제의하면서 상당한 정도의 대남유화책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그 결과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진척되더라도 북한 김정일은 정권목표인 적화통일 실현을 위한 대남공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적화혁명에 앞서 대남공작 자체가 김정일 체제 생존의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등록일 : 2018-02-22 15:41   |  수정일 : 2018-02-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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