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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그'의 성희롱 비난..."평창 올림픽 일로 묻혀 버릴까 걱정" 댓글도 등장

글 | 우태영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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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시인 En선생에 대한 최영미 시인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En선생은 고은 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시인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과 같이 올렸다.
 
“그가 아무리 자유와 평등을 외쳐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짖밟는다면
 그의 자유는 공허한 말잔치.
 
그가 아무리 인류를 노래해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비하한다면
그의 휴머니즘은 가짜다.
 
그의 시도 그럴듯하게 포장된 상품.
휴머니즘을 포장해 팔아먹는 문학은 이제 그만! ”
 
시의 형식을 취한 듯한 최 시인의 8일 포스팅에 대해 격려가 쇄도하였다. 답글을 통한 격려의 메시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시를 쓰다니! 기가 차네요 ㅠㅠ 본질을 흐리는 이야기들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가지고 있는 것을 잃고 싶지 않은 헛된 탐욕이죠...저들 스스로 추잡하다 말을 하네요...시인님의 용기가 세상을, 거지같은 권위주의에 물들은 스스로도 인지하기 어려운? 한국 남자들의 비뚤어진 성문화를 아니, 인권에 대한 평등하지 못한 왜곡된 시선들이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지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기를...부디....
- 작가님 언제나 응원해요 아시죠? 작가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작가님과 함께 문단내 여성에 대한 성희롱을 비롯 한국과 세계의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 세상에 소외된 약자들을 위해 함께 싸워 나갈겁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 그들의 민족에 여성이 없었고
  그들의 민주주의에도 여성은 없었다!
  최영미 시인님, 저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세상에 눈 뜬 사람입니다. 감사하고 응원합니다!
- 시원한 동치미를 언제 마실 수 있으려나?
 잘 해결나지 않을 채로  평창 올림픽 일로 묻혀 버릴까 걱정이네요.
 이런 일들이 시원하게 해결 됐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어찌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은 있는지요?
 암튼 또 응원 응원 힘 놓고 갑니다.
 건강도 잘 챙기시고요.
- 진정 사랑을 아는 남자라면 성적 모욕을 주는 등의 행위 따위는 하질 않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자가 시심을 가지고 있기나 했을까요 ?
  그런 글재주와 그런 이에게 찬사를 보낸 우매한 사람들...
-일찌기 그의 악행은 들은 바 있으나
  풍문 뿐이어서 긴가 민가했는데 이 정도였을 줄이야~
  인격이 동반되지 않은 문학작품은 공허한 사설이 아닐런지~
  추악한 자신의 실체만으로도
  그가 자랑하는 만인보의
  몇페이지는 장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시인님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 여자들이 당하는 상황을 알고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 저역시 방관자이면서 공범입니다....
- 침묵으로 일관해온 동종업에 종사하는 문학인들 또한 공범입니다.
- 그동안 만행을 저지른 가짜시인들은 참회록 시를 썼으면...

한편 지난 7일 고은 시인을 비호하는 듯한 포스팅을 올렸던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이틀 후인 9일 이를 반성하는 포스팅을 올렸다. 김 교수는 지난 7일 최영미 시인이 “조금 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그런 식의 성마른 일반화를 강변하지 않고도 자기 본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린 바 있다. 다음은 김 교수의 9일 포스팅 전문.
 
“* 성폭력은 범죄다. 그것도 가해자의 동물적 쾌락만이 그 유일한 목적이고, 그 순간 피해자의 신체는 완벽히 도구화되는 가장 악랄한 범죄다. 그리고 그 쾌락을 향유해 왔으며, 계속 향유하려는 가해자 집단의 집단적 구조적 부정과 저항에 의해 인류의 가장 야만적인 범죄행위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범죄로 인정받지 못해 온 범죄다.
 
* 성폭력이 범죄가 아니던 시절이란 것은 없다. 그 정도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다거나 그 시절엔 만연했었다거나 하는 말은 가해자 이데올로기가 하는 말이다. 어느 시대, 어느 시절이건 피해자가 겪는 자기 신체가 사물화되고, 자기 주체성이 부인되는 데서 오는 고통과 모욕감은 동일하다. 그 ‘괜찮았던 시절’이란 그러므로 더 악랄했던 시절의 다른 말일 뿐이다.
 
* 성폭력 범죄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선험적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행위를 개시한 순간 그 가해자는 그가 어떤 중요한 존재였고, 존재인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자기 존재의 모든 존엄성과 가치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므로, 그 순간 그 동안 그를 보호해 왔던 모든 사회적 방어장치는 자동해제되어 버린다.
 
* 성폭력 범죄에 중립은 없다. 명백하게 확인된 범죄사실을 인지하고도 중립을 지킨다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 가해자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가해자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심지어 가족의 일원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 성폭력 범죄에 경중이나 상대성은 없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범죄행위일 뿐이다. 그 안에 어떤 가능한 허용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범죄행위와 똑 같이 정도 차이, 상대성, 정상 등을 참작하는 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행위를 명백히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응분의 사죄를 청하여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즉 원칙적으로 법정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가해자가 이런 절차에 돌입하기 전에, 피해자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전에 상대성이나 경중이나 정상을 논하는 제3자가 있다면 그는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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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나는 이러한 원칙들에 위배되는 글을 공공연하게 발표했다. 이 원칙들 중에는 스스로 이전부터 잘 숙지하고 있었던 것들도 있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정리된 이 원칙들은 그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격렬한 반응 속에서 재확인하고 또 새로 학습한 것들이다. 알고 있었든, 미처 몰랐든 나는 불철저했고, 나이브했으며, 또 교만했다. 특히 그 글이 보여준바 균형과 형평을 가장한 방관적이고 관조적인 문체와 공허한 수사학은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영혼 없는 미문’이 어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으로서도 내가 이런 글을 써서 발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참담한 심정이다.
 
수많은 댓글을 읽으면서, 그 엄청난 분노와 절망의 소리들을 들으면서, 많이 괴로웠다. 신속하고 엄정한 반성과 자기비판만이 그 절망과 분노, 실망과 허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글 때문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실망하고 허탈해 했을 모든 사람들에게 엎드려 깊은 사죄의 뜻을 전한다. 특히 글의 초반부에 거론된 최영미 시인과 서지현 검사에게도 주제넘게 더 의연하라는 등, 성마른 일반화를 했다는 등 부적절한 ‘맨스플레인’을 늘어놓은 것에 대해 깊은 사과의 뜻을 전한다. 굳이 문학을 끌어다 댈 필요도 없이, 글을 쓰는 자에게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존재(들)의 명예’여야 할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쓰는 순간, 멍청하고 교만하게도 그 가장 기본을 잃고, 또한 나의 명예에도 스스로 먹칠을 했다.
 
깊이 반성하고, 더 성찰하고, 더 공부하고, 더 낮은 자세로 이 거대한 기득권의 세계 안에서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싸워나갈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 글은 당장 내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지만, 이미 그대로 공공의 것이 되어 버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 대한 거울로 삼기 위해 그대로 남겨두고자 한다.”
 
등록일 : 2018-02-12 14:32   |  수정일 : 2018-02-1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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