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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뇌 연구한 신경과학자가 전하는 ‘뇌를 발달시키는 5요소’

글 |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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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실제 뇌를 연구한 매리언 다아아몬드 박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한 미국의 신경과학자 매리언 다이아몬드 박사가 지난 달 말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 4월 이스라엘 건국 7주년 기념행사의 연설을 준비하다가 쓰러져 내출혈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가 죽은 뒤에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 아인슈타인의 사체 부검을 맡았던 프린스턴 병원의 병리학자 토머스 S. 하비 박사가 어느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아인슈타인의 사체에서 뇌를 빼낸 뒤 240조각으로 잘라내 포르말린 용액에 보관한 것이다.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아인슈타인을 화장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곧 지역신문에 보도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고, 하비는 분노한 가족을 설득해 아인슈타인 뇌에 대해 연구를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뇌를 같이 연구하자고 매달렸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통합생물학 교수였던 다이아몬드 박사 역시 아인슈타인 뇌를 연구하겠다며 요청했고 마침내 1984년 뇌 조각들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현미경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이상하리만치 많은 양의 ‘교질 세포’(glial cells, 뇌 세포를 보호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세포)를 발견해 내고, 이를 토대로 아인슈타인이 개념을 창안하는 능력이 탁월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일로 다이아몬드와 하비는 유명해졌다.
 
1926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서 영국 출신 물리학자 부친과 고전학자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다이아몬드는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해부학과 첫 여성 졸업생으로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60년대 ‘뇌 적응성(plasticity)’에 대한 첫 증거를 밝혀낸 연구로, 유전적으로 타고난다는 기존의 뇌 연구 패러다임을 깨트려 현대 신경과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불린다.
 
뇌 적응성이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환경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 뇌 기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뇌 개발의 핵심 요소로 5가지를 꼽았다. ▲다이어트(a good diet) ▲운동(exercise) ▲도전(challenge) ▲새로움(novelty) ▲사랑(love)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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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녀는 뇌의 기능은 “쓰지 않으면 잃는다(Use it or lose it)”며 뇌 성장을 역설하면서 이 5가지 요소의 중요성을 동물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 5가지에 초점을 두면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stress resilience)이 증가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정신을 명민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조직을 이끌고 있다면 직원들의 식단을 바꾸거나(다이어트) 운동을 강요하고 사랑을 나눌 수는 없지만, ‘새로움(newness)’과 도전에 대한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반복성과 표준화를 최소화하고 직원들이 자신의 제한된 직무 외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도록 격려하면 된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의 뇌는 이후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일반인과 다른 몇몇 특징들이 발견됐다. 2003년에는 아인슈타인의 뇌 앞뒤 부분에 주름이 많고 굴곡이 복잡하게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수학적 추론과 이미지 처리를 돕는 영역이다.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한 줄기 빛을 타고 여행하거나 우주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내부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사고 실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또 우뇌와 좌뇌를 연결하는 뇌량(腦梁, 좌우의 대뇌반구가 만나는 부분)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넓다는 것도 확인됐다. 아인슈타인의 가족들에 따르면 특정한 청각 신호가 그의 뇌를 자극했다. 물리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그는 곧잘 바이올린을 연주하곤 했는데 그러고는 “이제 알겠다”며 책상으로 달려가곤 했다는 것이다.
 
[글=신용관 기자]
등록일 : 2017-08-09 09:11   |  수정일 : 2017-08-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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