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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집필 ‘독립정신’의 명성황후가 진짜”

을미사변 120주년, 다시 제기된 명성황후 사진 진위 논란

“1910년부터 1932년까지 발간된 총 5종의 책과 잡지 원본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191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출간한 역사서 ‘독립정신’에 처음 소개된 명성황후 사진이 실제 모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글 | 김대현 주간조선 기자 2015-03-20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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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종의 고서 원본을 수집·분석해 명성황후 사진을 연구한 단국대 황필홍 교수.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을미사변(乙未事變)이 발생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최근 “‘독립정신’이라는 책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이 실제 모습”이라는 주장이 다시 제기돼 진위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장을 내놓은 주인공은 단국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하는 황필홍(61) 교수다. 일종의 개인 화랑인 ‘개화공정미술’도 운영하고 있는 황 교수는 지난 20여년 동안 개화기 자료를 수집해온 인물로, 학계는 물론 화랑업계에서도 개화기 컬렉터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2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사무실에서 만난 황 교수는 “1910년부터 1932년까지 발간된 총 5종의 책과 잡지 원본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191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출간한 역사서 ‘독립정신’에 처음 소개된 명성황후 사진<사진 참조>이 실제 모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명성황후의 사진이 새롭게 공개될 때마다 진위 논란이 불거져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처럼 국내 저명인사들이 만든 문서에 등장하는 명성황후의 사진은 물론이고 개화기 당시 국내에서 활동했던 해외 인사들이 작성한 문서에 수록된 명성황후 사진도 모두 “진짜 명성황후의 모습이 아니다”는 반론에 부딪혀 공식 사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때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명성황후 사진은 궁녀로 밝혀져 교과서에서 제외한 적도 있다. 문제의 사진은 1975년 국내 한 언론인이 프랑스에서 발견한 고문서 ‘La Coree’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을 국내에 소개하며 알려졌고, 이를 본 일부 원로 학자들이 “명성황후가 틀림없다”는 주장을 펴는 바람에 정부는 1977년부터 이 사진을 국정교과서에 실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사진 속 주인공이 궁녀라는 반박자료와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결국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황 교수가 “명성황후 사진이 맞다”고 주장한 사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출간한 ‘독립정신’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다. 학계에서 “사진 속 황후가 입은 의상이 황실의 공식 의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사진이기도 하다. 황 교수는 “명성황후의 남편인 고종황제와 아들인 순종, 그리고 며느리 윤비 등이 살아 있던 시절에 나온 5권의 사료에서 모두 ‘독립정신’과 동일한 명성황후 사진을 사용한 걸 확인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렇다 할 반론이 제기되지 않고 명성황후의 실제 사진으로 간주되어온 것이다. 만약 이 사진이 실제 모습과 달랐다면 어느 시점부터 사진 속 인물이 수정됐어야 하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명성황후 사진의 진위 논란은 공교롭게도 가족들이 모두 죽은 뒤, 즉 1970년대부터 갑자기 불거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이날 인터뷰를 위해 지난 20여년간 자신이 수집한 자료 가운데 명성황후 사진이 소개된 고문서 5종을 시대순에 맞게 사무실 바닥에 펼쳐놓았다. 191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 프린스턴대를 다닐 때 집필한 ‘독립정신’, 1917년 3월 미국 하와이의 태평양잡지사에서 발간한 ‘독립정신’ 2쇄본, 1917년 6월 하와이에서 번역돼 출간된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한국통사’, 1927년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장도빈이 쓴 ‘대원군과 명성황후’, 1932년 잡지 ‘별건곤(別乾坤)’에서 펴낸 사진 부록 ‘근대조선의 인물화보’<사진 참조> 등이다. 색이 바래고 해질대로 해진 옛 문서들을 공개한 황 교수는 “모두 원본이다. 5종의 문서에는 모두 동일한 명성황후의 사진이 수록돼 있다”고 말했다.
   

   ‘독립정신’ 2쇄본을 제외하면 해당 문서들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다. 다만, 5종의 고문서 원본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로는 황 교수가 유일하다. 황 교수는 “이 5종의 문서에 명성황후 사진이 소개돼 있는데, 시간 순서와 당시 정황 등을 감안하면 명성황후의 실제 모습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평상복을 입고 편하게 촬영한 사진인 듯하다”고 주장했다.
   
   “우선 여기 있는 책은 모두 당대에 내로라하는 지식인이 작성했거나 가장 대중적인 잡지사에서 발간한 것들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10년 ‘독립정신’에서 명성황후 사진을 담았고 이 사진이 1932년 잡지 ‘별건곤’에서 부록을 만들 당시 명성황후의 공식 사진으로 쓰였다. 이 책과 잡지는 국내 지식인층이 주로 봤을 텐데, 사진이 가짜라는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다. ‘독립정신’이 발간된 지 7년 뒤에 다시 찍은 2쇄본의 경우 초판에서 잘못 소개된 내용을 수정한 흔적이 있지만 여전히 명성황후 사진은 그대로 원용했다.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박은식과 장도빈은 당대의 최고 지식인이었고 이들 또한 책을 출간하며 ‘독립정신’에 쓰인 명성황후 사진과 동일한 사진을 사용했다. 또 ‘별건곤’은 물론이고 또 다른 잡지인 삼천리에서도 같은 사진을 명성황후로 소개하고 있다. 문서의 원본을 모두 수집해 이 같은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황 교수는 특히 ‘별건곤’이 발간한 사진 부록 ‘근대조선의 인물화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932년 1월 발간된 이 화보에는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고종황제, 이승만, 박영효, 서재필, 유길준, 김옥균 등 당대를 대표하는 40여명의 저명인사 사진이 모두 수록돼 있다. “이 화보는 전봉준이 체포될 당시 촬영한 사진까지 구해 실었다. 사진을 구하지 못한 인물은 편지로 대체했다. 조선 말기 학자였던 홍영식 선생의 경우 사진 대신 그의 편지글을 화보에 실었다. 만약 명성황후 사진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면 화보에 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당시까지 이 사진 속 인물이 명성황후로 통용됐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황 교수는 “국장을 치른 뒤 황후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가족들이 생존해 있을 때 여러 종류의 책에서 명성황후의 사진을 실어 소개했다. 그럼에도 이 사진을 교체하지 않고 사용했다면 사진 속 인물이 명성황후가 맞다고 봐야 한다”며 “을미사변 120주년을 맞아 올해 명성황후 사진의 진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교수의 바람과 달리 학계에서는 여전히 ‘독립정신’과 ‘별건곤’ 등에 소개된 사진 속 인물이 명성황후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소개된 반론으로는 “사진 속 인물의 의상이 황후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어느 노상궁은 사진 속 인물이 황후가 아니라고 증언했다”는 내용 등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명성황후의 경우 이견이 없을 만큼 정확한 사진이 등장하기 전에는 진위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물 사진을 두고 ‘맞다’고 인정해줄 증인이 없다. 고종이나 다른 가족과 찍은 명성황후 사진이 나와야 논란이 불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현재로선 명성황후의 사진이라고 특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사편찬위원회 구선희 연구관은 “명성황후 본인이 사진 찍는 걸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진 기술은 근대 이후에 국내에 정착됐기 때문에 명성황후 사진자료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현재 명성황후 사진으로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등록일 : 2015-03-20 06:14   |  수정일 : 2015-03-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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