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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의 살며, 생각하며, 배우며

김연아 심층인터뷰, “점수 나쁘게 나오는 상상 많이 했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5-13 16:14

  어려운 인터뷰였다. 18년간 피겨스케이팅을 해 왔고, 이제 막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마감한 김연아(金姸兒)와의 인터뷰는 시작 전부터 난감했다. 질문을 던질 인물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탓도 있겠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자와 김연아 선수가 그저 예사로운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는 아니다.
 
  기자는 《月刊朝鮮》 입사 전 김연아의 매니저로 일했다. 2008년 말부터 2010 밴쿠버(Vancouver)올림픽 직후까지였다. 주로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서 김연아 선수의 전지훈련 생활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밴쿠버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준비과정을 지켜본 셈이다. 인터뷰 기사 속에 김연아가 들려주는 김연아와, ‘매니저’가 지켜본 김연아가 녹아 있는 이유다.
 
 
  은퇴했지만 여전히 훈련 중
 
  기자는 소치올림픽 전에도 김연아를 지켜본 경험을 들려달라는 요청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세계 여자피겨선수로는 3번째로 ‘백투백 챔피언(Back to Back Champion, 2대회 이상에서 연속으로 챔피언이 되는 것)’에 도전하는 김연아였다. 혹시라도 그에게 영향이 있을까 김연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걸 미뤄 왔다. 올림픽이 끝나고, 그 끝에 김연아와의 심층 인터뷰가 성사됐다. 김연아로서는 언론과 하는 최초의 심층 인터뷰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연아는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말라 보였다. 소치올림픽을 준비하며 계속 살이 빠져 고민이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밴쿠버올림픽 때는 체중을 조절하려고 식단도 조절하고 그랬는데, 이번 소치(Sochi)올림픽을 준비하면서는 오히려 체중이 빠지더라고요. 식욕이 왕성하지 않아서 먹는 것도 거의 의무적으로 먹었어요. ‘아 내가 이걸 먹어야 힘을 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먹었어요. 한끼라도 부실하게 먹으면 살이 빠지더라고요. 체중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체력이 달리니까 매끼니 의무처럼 챙겨 먹었어요. 먹어야 하는 것 땜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할 정도였어요.”
 
  ―은퇴했는데 요즘엔 어떻게 일과를 보내는지.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태릉에서 아이스쇼 연습을 해요. 피겨 대표팀 훈련시간이 10시부터 2시거든요. 그 시간에 맞춰서 연습해요. 공연도 설렁설렁 할 수 없잖아요. 공연을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하니까 선수생활할 때만큼 훈련하고 있어요.”
 
  ―이제 ‘선수’가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나나요.
 
  “사실 이맘때쯤이면 보통 ‘아 시즌이 끝났다’고 기뻐하면서도 다음 시즌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없으니까 은퇴를 했구나, 실감이 나지요. 그런데 5월에 아이스쇼를 열거든요. 그 공연을 위한 갈라 안무를 받은 지 얼마 안 돼요. 몸에 익히려고 연습 중이지요.
 
  어차피 연습하러 가야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건 똑같아요. 물론 연습할 때 마음가짐은 좀 다르죠. 보통 하루에 두 세션으로 나눠서 타거든요. 경기 준비할 때는 첫 번째 세션을 잘해도 두 번째 세션에 대한 부담이 있었어요. 잘해야 스스로 속이 시원한 그런 감정이지요. 이제는 경기를 위해 훈련하는 게 아니니 그런 부담은 없잖아요.”
 
 
  “점수 안 나올 수 있다” 미리 각오
 
김연아는 “지금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훈련이 이어진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김연아는 즐거워 보였다. 은퇴 후의 여유를 막 즐기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소치올림픽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결과가 아쉽지 않은지 물었다. 그의 답이다.
 
  “소치올림픽 직전 연습에서 클린(Clean,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는 것)을 많이 했거든요. ‘내가 긴장만 안 하면 실전에서 클린은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있었어요. 다행히 생각한 대로 경기 때 클린을 했잖아요. 저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심판이 판단하는 것이지요.
 
  사실 그동안 수많은 대회를 나갔지요. 제가 예상했던 대로 점수가 나오지 않은 적이 많았어요. 물론 제가 제대로 예상했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건 아니지만요. ‘내가 잘해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점수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경기에 나가요.
 
  이번 올림픽에 나가기 전에도 그런 예상을 했어요. 그래서 상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예상 못한 점수가 나오는 상상을요. 그래서 놀랍지도 않았어요. 프리스케이팅 때 제 차례를 준비하며 다른 선수들 점수가 높게 나오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점수가 발표되는 키스앤크라이(Kiss & Cry)존이나 시상대에서 표정이 의연했던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그랬던 건 아니에요.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금메달을 꼭 따야 된다’ 이런 것보다는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 이 경기가 끝나면 너무 시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경기장 뒤에서 우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는데.
 
  “경기가 끝나고 믹스존(자신의 경기를 마친 선수가 퇴장하며 지나가는 일종의 프레스존) 첫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는 질문이 나왔어요. 대답을 하려는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그건 억울하고 분한 그런 눈물이 아니었어요. 끝나서 정말 좋다는 말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동안 동기부여도 안 되고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올림픽을 앞둔 지난 두 시즌이, 선수생활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예요. 목표가 없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순간순간 느꼈어요. 복귀 선언하고 막상 훈련에 임하니까 동기부여가 안 되더라고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럼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극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슬럼프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라 생각해요. 너무 힘들지만 제가 포기할 수 없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고….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빨리 마음을 추스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미 올림픽을 나가겠다고 했는데 동기부여가 안 된다고 번복할 수는 없으니까. 이번 시즌에는, 너무 하기 싫은 날엔 훈련을 쉬었어요. 그런 날은 훈련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아니까. 그러다 보면 또 마음이 돌아오더라고요. 힘들 때는 그냥 힘들어하는 식으로 마음을 추슬렀어요.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했어요. 나는 나한테 주어진 일은 다하는 사람이라고요.”
 
  올림픽 결과가 나온 후 ‘김연아가 3회전 연속 점프를 한 번만 더 뛰었어도 우승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점프가 모자랐기 때문에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기술 점수에서 뒤졌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김연아의 대답은 단호했다.
 
  “결과가 나오고 제각각의 의견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과거로 돌아가 점프를 하나 더 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제는 신경 안 쓰고 있어요.”
 
 
  숙명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
 
다른 나라의 피겨 스타는 은퇴 후 어떤 행보를 보일까. 미국의 ‘피겨 여제’ 미셸 콴은 은퇴 후 여성운동에 참여하며 스페셜올림픽위원회 이사를 맡는 등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지사 선거에 뛰어든 남편을 내조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김연아의 선수 인생을 얘기하며 아사다 마오(淺田眞央)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둘은 생일도 비슷하고 키 등 신체 조건도 비슷하다. 김연아의 생일은 1990년 9월 5일이고 아사다 마오는 1990년 9월 25일이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이라는 서로의 국적, 얄궂은 인연이다.
 
  주니어 시절 나란히 경기에 나갔던 두 소녀는 시니어에 올라가며 ‘숙명의 라이벌’로 양국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주니어 시절 ‘천재’로 불렸던 마오는 시니어로 올라온 후 김연아의 기세에 꺾여 버렸다.
 
  기자가 본 아사다 마오는 그야말로 그 나이대의 얌전한 소녀였다. 얌전함이 지나쳐 심리적인 위축으로 이어질까 일본 측에서는 우려하는 눈치였다. 마오와 같은 나고야 출신인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 선수가 경기 전후 마오에게 전화해 심리적인 부분에 조언을 주기도 했다.
 
  아사다 마오는 경기 전후 라커룸에서도 별말이 없었다. 사실 동양권 선수들은 대개 라커룸에서 말이 없는데 반해, 미국 등 서양권 선수들은 서로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등 문화권별로 약간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긴 한다.
 
  라커룸 하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파리에서 열렸던 2010년 그랑프리 시리즈 에릭봉파르(Trophee Eric Bompard) 대회에 출전했을 때였다. 올림픽 직전 시즌의 첫 대회이자 기자가 매니저로 처음 동행한 대회이기도 했다.
 
  김연아 선수가 몸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다 웜업이 끝나고 함께 선수들이 모여 있는 라커룸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이때 오가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점점 아파 왔던 기억이 있다.
 
  일단 다른 나라 선수들은 한 나라에서 여러 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양권 선수들의 경우는 경기 관계자들 중 자국 출신이 많으므로 경기장 내에서 심리적으로 생경함이나 낯설음 같은 감정을 크게 느낄 가능성이 적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마오 및 일본 선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출전하는 대표선수가 많고, 그렇기 때문인지 일본빙상연맹에서는 매경기 꼬박꼬박 여자대표선수들을 전담하는 여성 직원들을 파견했다. 이들이 경기 전후 내내 선수들 양옆에 붙어 앉아 이것저것 챙겨 주곤 했다. 어떤 선수든 특히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게 스케이트화였다. 칼날에 약간의 문제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다. 경기 직전까지 눈을 떼면 안 된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해 있을 선수가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이 긴요한 대목이다.
 
  김연아 전까지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팅은 불모지였다. 빙상경기연맹 차원의 지원은 막 체계를 잡아 가고 있었다. 당연히 경기에 동행하는 여성 직원 같은 건 없었다. 소속사의 매니저였던 기자를 선수단 명단에 넣어 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동안 연아는 이곳에서 늘 혼자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결과론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그 시간들이 김연아를 더 강한 선수로 키웠는지 모른다.
 
 
  “축하한다”, “수고했다”
 
  결국 얼음 위로 나갈 때는 모두 혼자다. 어떤 대회든 매 대회는 긴장의 연속이다. 게다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두 소녀가 함께 출전하면 그 대회는 순식간에 한일전 분위기로 달아올랐으니 두 선수의 마음고생은 어땠을까. 마오에 대해 물었다. 순간 김연아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번 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저와 마오 선수가 다른 조에서 경기를 했잖아요. 제가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는 마오가 경기 중이었어요. 텔레비전이 있는 선수 라운지에 가서 마오의 경기를 지켜봤지요. 자신의 경기를 마치자마자 마오가 우는데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선수시절 내내 계속 함께 비교도 많이 당하고, 두 번의 올림픽에 함께 출전해, 만나고 또 만나고…. 그 선수도 올림픽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맺혔던 마음이 터졌을 거라 생각했어요. 보면서 울컥했어요. 저 마음을 너무 이해할 것 같으니까, 조금 있다가 나에게 일어날 상황이기도 하니까요. 서둘러서 라운지에서 나갔어요. 라운지에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경기 도중에 감정조절이 안 될까 봐 들어가기 전부터 걱정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갈라(Gala)를 하는 날, 라커룸에서 마오 선수가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함께 사진을 찍고 마오가 축하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수고했다고 답해 줬어요.”
 
  기자는 프리스케이팅을 마친 마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문득 언젠가 마주친 일본의 피겨팬들을 떠올렸다. 아이스쇼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으로 잠시 건너온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靜香)를 만나기 위해 한국까지 온 일본팬들이었다.
 
  아라카와 시즈카는 2006 토리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일본의 ‘피겨 여왕’이다. 호텔 로비 한쪽에서 아라카와를 기다리고 있다가 조용히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건네는 팬들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아라카와에게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듯, 은퇴하는 김연아 선수의 뒷모습에 한국 국민들이 따뜻한 박수를 보내듯, 아사다 마오에게도 고국의 팬들이 변함없이 따스한 지지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
 
   기자는 김연아의 매니저를 하며 여러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김연아 선수를 지켜보며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선수”라는 평가를 하곤 했다. 세계 정상급의 월등한 역량에 아이돌을 압도하는 스타성까지 갖춘 스포츠 선수라는 얘기였다. 해외의 스포츠 마케터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 때문에 김연아와 관련을 맺은 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경험을 했다. 광고업계는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현역 스포츠선수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현역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훈련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마케팅 활동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받아들였다고 할까.
 
  밴쿠버올림픽을 앞두고 캐나다에서 훈련할 당시에는 광고를 찍기 위해 한국에서 촬영팀이 통째로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오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투싼 광고를 미리 찍기 위해 미국에서 캐나다로 자동차를 공수해 왔는데, 여기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휴대폰 광고를 찍기 위해 촬영 스태프는 물론 보조 출연자들까지 함께 캐나다로 건너왔다.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선수와 광고를 찍기 위해 전지훈련지로 원정팀을 파견하는 사례가 앞으로 또 있을 수 있을까.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언론은 국민의 관심도와 취재 가능 횟수가 안타깝게도 비례하지 않는 인물 앞에서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밴쿠버올림픽이 가까워지자 한국 언론뿐 아니라 해외 언론도 조바심을 냈다.
 
  올림픽을 앞두고 밀려드는 각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어 토론토 현지에서 김연아 선수를 취재할 수 있는 ‘미디어데이 주간’를 열었다. 한국 언론을 비롯한 NBC, 뉴욕타임스, NHK, CBC,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등 수많은 언론이 김연아 선수의 미디어데이에 맞춰 토론토를 찾았다. 기자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한국의 아마추어 운동선수가 해외에서 미디어데이를 여는 일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김연아를 만든 사람들
 
  김연아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로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선천적인 신체조건과 재능은 많이 알려진 요인이니 차치하고, 후천적인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던 환경이다.
 
  잘 알려진 대로 어머니 박미희(現 올댓스포츠 대표이사)씨의 뒷받침이 컸다. 김연아는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엄마 때문에 힘들다 어떻다 말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후배 선수들이 훈련하면서 엄마와 투닥거리는 걸 보면 선수들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이제는 엄마의 입장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박 대표의 뒷바라지는 알려진 것 이상이다. 전지훈련을 한 토론토 현지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링크 안이 가장 잘 보이는 전면 통유리 앞 가운데 좌석은 늘 박 대표의 자리였다. 현지의 외국인 피겨맘(Mom)들이 농담조로 그 자리를 ‘유나의 캠프(Yuna's camp)’라고 부를 정도였다. 처음 와서 잘 몰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캐나다인이 아무도 무슨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황급히 자리를 옮길 정도였다.
 
  코치들도 빼놓을 수 없다. 김연아는 “그 타이밍에 맞는 코치들을 잘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저를 선수의 길로 이끌어 주신 유종현 코치를 포함해 총 8명의 코치 선생님들을 만났지요. 유종현 선생님께 배운 이후엔 신혜숙 선생님께 배우면서 트리플 점프를 다 배울 수 있었고요. 유종현, 신혜숙 선생님 두 분과 선수생활 마지막을 함께했네요. 어릴 때부터 저를 봐 왔던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훈련 과정에서도 마음이 편안했어요. 정신적인 안정감이라고 할까요. 배려를 많이 해 주셨죠.
 
  아무리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라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힘들어요.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고 봐 주셔서 소치올림픽 준비 기간 내내 든든했어요. 밴쿠버올림픽 때 금메달까지 땄는데 코치가 꼭 있어야 하나 할 수도 있지만, 운동이라는 게 매일매일 컨디션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어릴 때 선생님들과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나니 경기가 끝난 후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코치 중 브라이언 오서(Orser) 코치의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그대로예요. 선수와 코치가 헤어지면서 잡음 같은 게 날 수 있잖아요. 중요한 건 지금 밝게 인사하고 지낸다는 것이죠. 이번 올림픽 때나 세계선수권 때도 경기장에서 마주쳤어요. 서로 인사를 했지요.”
 
밴쿠버올림픽 경기복에 얽힌 뒷이야기

 

  쇼트 프로그램이었던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의 경기의상은 원래는 홀터넥 스타일로 디자인되었다. 안무를 한 데이비드 윌슨(Wilson)이 의상디자이너인 조지앙(Josiane)에게 007의 여성 주인공이 입을 법한 ‘칵테일 드레스 느낌’으로 디자인해 달라고 주문한 결과였다. 목과 가슴 부분에 눈부심을 강조하기 위해 원석(Stone)과 비즈를 아끼지 않고 붙였는데, 그것 때문에 의상이 너무 무거워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목 부분을 잘라내고 한쪽 어깨에만 걸치는 스타일로 변형해야 했다. 그러고 나자 이번엔 목 부분이 너무 허전하다는 문제가 생겼는데, 김연아 선수가 잘라 낸 옷감 조각을 들고 목에 둘러 봤다. 그러고 나니 목 부분의 허전함이 채워져 결국 최종 의상으로 결정됐다.
 
  올림픽 시즌 갈라 프로그램이었던 <타이스의 명상곡>의 의상 또한 애초의 디자인에서 많이 변형된 경우다. 비둘기색 의상은 원래는 안감이었다. 그 위에 쉬폰으로 된 옷감이 한꺼풀 더 있었는데 색과 디자인 등이 별로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해 아예 쉬폰을 뜯어냈다. 뜯어낸 안감이 의외로 곡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그대로 의상으로 채택한 경우다.
 
  자필 과제 꼬박꼬박 제출
 
김연아가 출전했던 2014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대회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는 팬들.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훈련했던 시절 훈련 거점이었던 토론토 크리켓, 스케이팅 & 컬링클럽(Toronto Cricket, Skating & Curling Club)은 기자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는, 특히 얼굴이 알려진 선수에게는 최고의 훈련 링크다.
 
  상당한 금액의 연회비를 지불하는 멤버들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출입하는 사람이 제한적이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 안전하며 사생활이 유출될 우려도 적다. 게다가 수준 높은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을 내부에 갖추고 있어 장기적인 전지훈련지로는 적격이다. 우리나라의 시설을 예로 들면 서울 장충동에 있는 서울클럽을 생각하면 된다. 서울클럽에는 아이스링크가 없긴 하지만 내부 시설이나 공간 구성이 상당히 유사하다.
 
  김연아의 모교인 고려대학교도 올림픽 준비에 열중하는 김연아를 위해 배려를 했다. 토론토 전지훈련 시에는 수업에 출석할 수 없으니 리포트로 대체를 했는데, 자필로 리포트를 쓸 것을 요구한 수업이 많았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김연아가 직접 과제를 하곤 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후 2년 동안 학교에 가서 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좋았다”고 했다.
 
  “학교에 가니까 새로운 얘기도 들어 보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졸업할 때 아쉬웠어요. 이제 막 재미를 붙였는데 졸업하는 것 같아서…. 훈련을 계속 병행하면서 수업 듣고 과제 내느라 바빴지만 재밌었던 시간이었어요. 마지막 학기엔 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해 훈련하느라 또 학교를 잘 못 갔거든요. 전공수업이 아닌 교양수업 때는 처음에 다른 과 학생들이 놀라기도 하고 그랬는데 학교에 자주 가니까 나중엔 괜찮아지더라고요.
 
  교생실습도 잊을 수 없어요.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는데 다행히 학생들이 많이 좋아해 줬어요.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학생들이 있어요. 교생실습 끝나고 카카오톡으로 대화도 나누고, 고민도 물어보고, 어떤 학생은 고려대 후배가 됐다고 연락도 해 오더라고요. 좋은 추억이에요.”
 
  그러나 기자의 판단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지금의 김연아를 만든 건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다. 소위 말하는 ‘대인배’ 기질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에서 아이스쇼를 열었는데, 여기에 출연했던 미국의 조니 위어(Weir) 선수가 공연 직전 갑자기 몸 상태가 안좋아졌다.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조용히 누워 있을 만한 공간이 김연아 선수가 따로 쓰고 있던 대기실 외에는 마땅히 없었다. 진행 스태프가 양해를 구하자 김연아는 흔쾌히 대기실을 양보했다. 그러곤 창고방에 앉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메이크업을 했다. 공연 직전 긴장된 순간이 틀어져 불편했을 법도 한데, 그 또래답지 않은 대범한 모습이었다.
 
  김연아의 선수생활 동안 있었던 일련의 일들과 그것을 극복하는 김연아의 모습은, 조금 과장한다면 과거에 있었던 어떤 균열도 긍정의 아스팔트로 덮어 버리고 앞으로 달려가는 긍정의 화신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김연아가 《시크릿》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기자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책도 같은 맥락의 내용을 담고 있다.
 
  김연아를 두고 대인배라는 별명 외에 한편으론, ‘김연아를 어떤 행사에서 봤는데 태도가 뚱하더라’, ‘사인 요청을 거부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인터넷에 가끔 올라온다. 기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들은 질문도 ‘김연아는 착한가’ 하는 질문이었다. 실제 인성이나 태도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 얼굴이 무표정하게 있으면 뚱해 있는 걸로 보이나 봐요. 쌍꺼풀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 것 같고요. 가만히 있으면 화났냐, 기분이 안좋냐, 그런 얘기를 들어요. 실제로는 아닌데….
 
  소문이라는 게 별의별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예전에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어느 승무원이 비행기에서 저랑 엄마가 욕을 하며 싸운 걸 봤다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지요. 저는 비행기에 타면 말 자체를 별로 안 하거든요. 그런 소문을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근거 없는 소문이 마치 진실처럼 회자되는 것은 기자도 직접 겪은 사실이다. 토론토에서 훈련할 당시 뜬금없이 김연아와 배우 장근석이 사귄다는 소문이 한국에 돌고 있다는 귀띔을 받은 적이 있다. 전혀 사실무근의 소문이었다.
 
 
  “남자친구, 이상화가 소개해 준 것은 아냐”
 
  ―기사에 광고출연과 관련한 부정적인 댓글도 붙는데….
 
  “알고 있어요. 요즘엔 그런 댓글들을 잘 안 봐요. 봐서 좋을 것도 없고…. 총수입은 저는 잘 몰라요. 용돈도 안 받는 걸요. 이제 좀 관심을 가져 볼까 봐요.(웃음)”
 
  ―최근에 남자친구와 교제 사실이 밝혀졌는데, 도대체 김연아 같은 사람은 남자를 볼 때 어떤 면을 볼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다 봐야지요. 남자친구와 관련해 사실과 거리가 먼 루머들이 오고가는데 어쩌겠어요.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지요. 다만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인 이상화 선수가 소개해 줬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결혼도, 글쎄요, 예전부터 결혼을 빨리 하고 싶다거나 늦게 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해 본 적이 없어요.”
 
  열여덟 해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나니 이제 스물다섯, 김연아에게는 아쉬움이 없을까 물었다. ‘아쉬움은 없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해 볼 거 다 해 봤잖아요. 성적도 그렇고, 아쉬움이 남을 것도 없이 말 그대로 ‘끝장’을 봤잖아요. 올림픽도 두 번이나 나가고. 후회나 미련,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 기분 좋게 선수생활을 마쳤어요.”
 
  운동선수이기 전에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의 청춘으로서 아쉬움은 없을까.
 
  “아쉬움… 없어요.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제대로 겪어 보질 않았잖아요. 아예 경험 자체를 제대로 못 해 봐서 그런지 학창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별로 없어요. 저에게는 스케이트장이 학교였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좋은 결과를 거뒀어요.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만족스럽게 살아왔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는데, 결정을 내리기가 아직 힘들어요. 뭘 하며 살지,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어요. 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지난 18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잖아요.
 
  제 자신이 세상의 관심 대상인 걸 알고 있어요. 그 시선이 신경 쓰여서 못 정하겠어요.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은 것 같아요.
 
  지금 생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건, 후배 선수들을 돕는 거예요. 지금 후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을 때, 빨리 더 다듬어서 실력이 향상하도록 돕고 싶어요. 제가 제일 관심 있는 분야도 피겨스케이팅이고 제일 잘하는 것도 피겨스케이팅이잖아요. 그걸 그냥 썩히기에는 아깝기 때문에 후배들을 돕고 싶어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조언해 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전 코치가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라는 등 그냥 선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조언들을 해 주었지요.”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는 김연아와 함께 박소연, 김해진, 김진서 선수가 출전했다. 평창올림픽에서 한국을 대표할 유망주로 손꼽히는 선수들이다. 특히 박소연 선수는 올림픽 직후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위의 성적을 거뒀다.
 
 
  “후배 선수들 돕고 싶다”
 
소치올림픽 출전을 위해 러시아에 도착한 김해진, 김연아, 박소연 선수(왼쪽부터). 김연아는 “후배들을 자신과 비교해 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출마 가능성도 거론됐는데.
 
  “다 아시다시피 평창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조직에 참여했었죠. 유치가 성공한 후 스포츠외교 참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걸 생각하기엔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이제 저에게 선수위원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다음 올림픽은 하계올림픽이기 때문에 하계 종목 선수가 더 유리할 수도 있는 거고요.”
 
  ―선수생활을 돌아보면 고마웠던 사람들로 누가 있는지.
 
  “코치 선생님들과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감사해요. 그리고 저를 응원해 주셨던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어요. 팬들 중에는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의 표를 끊어 원정응원 오는 팬들도 계셨어요. 경기를 보러 해외까지 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가까이에 있어도 한발짝 뒤에서 조용히 응원만 해 주신 팬들, 가장 감사했어요. 긴 선수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믿고 좋아해 주신 팬들에게 감사드려요.”
 
  김연아는 인터뷰 내내 진심으로 후련해 보였다. 한푼 에누리 없이 최선에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심층인터뷰라는 이름으로 마주 앉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도 기자와 김연아 사이에는 끝내 묻지 못한 질문, 차마 답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공인이지만 밖으로 내보이고 싶지 않은 김연아의 사적인 삶과 생각, 얼음 위에서 보낸 열여덟 해의 순간순간을 모조리 해석하고 되새기라 할 수는 없었다. 십여 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보이며 국민들을 울고 웃게 해 준 김연아다. 그의 나이 이제 스물다섯, 남은 인생 동안 살아갈 힘이 될 그 고갱이마저 까발리라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월
간조선 2014년 5월호
등록일 : 2014-05-13 16:14   |  수정일 : 2014-05-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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