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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다

글 | 김효정 기자 2019-02-19 10:16

▲ 일러스트 허인회
#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권리만 주장한다’가 86.9%, ‘이기적이다’가 86.6%, ‘예의를 모른다’가 79.9%, ‘감각적으로 사물을 판단한다’가 71%, ‘일에 대해 무책임하다’가 54.4%다. 한마디로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이 못 미더울 뿐 아니라 못마땅하고 걱정스럽다. 대체적으로 약삭빠르고 영악하긴 한데 자기만 알고 남을 이해할 줄 모른다는 얘기다. 젊은이들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85.7%나 된다. 이 결과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이 바람직해지지 않고 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1992년 9월 6일자 조선일보>

 
언제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2년 9월 6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을 읽어 봐도 그렇다. 만물상은 “요즘 젊은이에 대한 불만과 우려는 어느 시대나 있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고 위안을 하면 그만일까. 오늘의 젊은이들 자신이 한번 깊이 생각할 때인 것 같다”로 마무리 짓는다.
 
그 시절의 ‘젊은이’는 지금의 기성세대다. 지금의 기성세대에게 가장 어려운 일 역시 새로운 세대와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것이다. 젊은이는 늘 새로운 사고방식과 이해할 수 없는 생활방식을 보여주며 기성세대에게 물음표를 안겨줬지만, 지금은 좀 더 어려운 시점이다. ‘밀레니얼’이라고 통칭되는 청년층은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서 이제껏 없었던 방식으로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제법 많다. 이제야 한국 사회에서도 ‘꼰대’ 담론 등을 통해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가 쓴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마케팅 전문가 임홍택씨가 쓴 ‘90년생이 온다’ 등의 책이 출간돼 인기를 얻고 있다.
   
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많다. 한국 사회에서는 10년 단위로 새로운 세대론이 만들어져왔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다. 1990년대 청년세대를 일컫는 말로는 X세대, 신세대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전후로는 확산된 인터넷 환경에 발맞춰 N세대가 주로 청년을 가리키는 말로 통칭됐는데 곧 ‘88만원세대’로 대체됐다.
   
88만원세대는 지금도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흔하게 쓰인다. 88만원세대, ‘N포세대’ 같은 단어는 청년세대의 경제적 궁핍함을 잘 표현해준다. 실제로 지금의 청년세대는 이은형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모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첫 번째 세대”다. 그래서 대개 이 세대를 이해하려 할 때는 경제적 결핍, 그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감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는 이렇게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사상 최고의 실업률에 경제적 빈곤을 일상화한 청년들인데 왜 회사를 쉽게 그만두는 것인지, 왜 절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지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세대를 경제적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로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르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청년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하고 글로벌 환경에 익숙하며 다양한 자원을 누리고 자라났지만 불안정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세대를 일컫는다. 미국에서는 1982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20~30대를 모두 밀레니얼 세대라고 통칭하지만 한국에서는 조금 더 범위를 좁혀야 할 필요가 있다. 1990년 이후 태생을 중심으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성인을 맞은 지금의 20대를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빠르고 효율적인 삶
   
# 제조업체 마케팅 부서의 A 부장은 요즘 부서 회의를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의견을 나눈다. 회의실에 모여 앉아 회의를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부하직원들의 의견 때문이다. 벌써 반년 넘게 해오는 일이지만 사실 A 부장은 못마땅한 심정이다. 모바일 채팅으로는 제대로 의견이 교환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기도 어렵고 이런 방식의 회의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서도 회의실에 모여 앉아 회의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까지 든다.
   
밀레니얼 세대는 첫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 세대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디지털 네이티브란 ‘14~25세 중 최소 5년 이상 활동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정의로는 요즘 세상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네이티브’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 ‘아주 어릴 적부터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사람’으로 범위를 바꿔보자. 즉 밀레니얼 세대는 ‘어릴 때부터 인터넷 환경에 익숙해 대면 커뮤니케이션보다 온라인·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더 익숙한 세대’로 정의될 수 있다.
   
장점은 분명하다. 수평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이 이뤄진다. 정보수집에 능하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기성세대는 이런 장점을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면 예전보다 더 수월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장점으로 제시된 밀레니얼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밀레니얼의 디지털 네이티브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조직을 떠올려보자.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고 소통이 드문드문 끊기고 그나마 질서도 잡히지 않은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일례로 어떤 밀레니얼은 ‘소통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이유미 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배달앱(app)을 쓰는 밀레니얼 중에는 커뮤니케이션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는 대체 매체가 존재한다면 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배달앱이 대표적인 사례다.
   
완전히 밀레니얼과 밀착돼 소통하기 위해서는 밀레니얼이 기존의 대면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다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사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메일 내용에 ‘ㅈㄱㄴ’라고만 쓰는 밀레니얼이 단지 예의가 없다고 꾸짖을 일만은 아니다. ‘ㅈㄱㄴ’란 ‘제목이 곧 내용’의 줄임말인 ‘제곧내’를 초성만 따서 쓰는 신조어다. 기성세대는 굳이 내용을 적을 필요 없는 메일에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부하오니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구구절절한 내용을 적지 않는 밀레니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밀레니얼의 소통방식은 좀 더 직설적이다. 더러 일단 뱉고 보는 실수를 할 때도 많다. 기성세대는 카톡 하나 보낼 때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밀레니얼 중에는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상사가 있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상사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괜히 카카오 측에서 카카오톡에 삭제 기능을 보강한 것이 아니다.
   
정리해보자. 밀레니얼은 마주 앉아 소통하는 것보다 카카오톡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데 익숙한 세대다. 소통방식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밀레니얼이 서로 간에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세 줄 요약’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종이 문서와 불필요한 수식어로 가득 찬 지시는 혼란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간결하고 즉각적인 소통이 필요한 때다.
   
“어린 시절부터 즉흥적이고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에 입사하는 순간 당혹해한다. 갑자기 큰 조직 속의 최하위층에 위치하면서 직급과 나이 등에 따른 위계질서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일방적 지시나 커뮤니케이션은 몹시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느낀다. 회사의 일하는 방식, 상사의 사고방식 등이 이해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이지 않다면 더욱 힘들어진다.”(‘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197쪽)
   
불합리함과 불공정함, 불투명함에 맞서는 밀레니얼
   
# 언론사에 다니는 B 차장은 얼마 전 ‘경고’를 받았다. B 차장이 특히 신경 쓰는 후배가 회사에 ‘B 차장이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습관적으로 자신을 꾸짖는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이 후배는 B 차장이 다른 후배와 자신을 차별대우한다고 주장하면서 회사가 이를 중재해줄 것을 요구했다. 언론사에 입사한 지 15년이 넘은 B 차장은 “예전에는 선배들이 후배에게 욕설도 내뱉었는데 지금은 도리어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밀레니얼에게 불합리한 것, 불공정한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거의 모든 젊은 세대는 항상 기성세대에 도전해왔지만 밀레니얼이 맞부딪히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사회조직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서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게 일어나는 일에 개인적으로 맞선다.
   
밀레니얼이 불합리함을 참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들이 태어난 시기가 민주화 이후에 시민교육이 강조되던 시기라는 점도 한몫을 한다. 더 활발해진 언론활동과, 개인이라도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함을 내 일인 것마냥 목격한 밀레니얼에게 불합리함이란 ‘더러워도 참는 것’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밀레니얼의 성장환경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무척 경쟁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랐다.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밀레니얼은 늘 시험의 압박을 받고 살았다. 심지어 대학에 진학해서도 상대평가제라는 이름의 경쟁은 멈추지 않았다. ‘나답게 살라’는 얘기를 듣는 동시에 주변을 늘 경쟁 상대로 의식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런 성장환경 속에서 자란 밀레니얼은 불공정함에 매우 민감하다.
   
더군다나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밀레니얼은 거의 모든 것이 공개돼 있다고 믿으며 자랐다. 만약 회사 안에서 구성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밀레니얼은 참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든 댓글을 통해서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절차’와 ‘격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존의 절차에만 집중한다면 밀레니얼의 ‘돌출 행동’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밀레니얼은 다양한 경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에 ‘합당한’ 절차를 밟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 만약 기성세대가 밀레니얼의 이런 점을 ‘이기적인 행동’으로만 바라본다면 끝까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C 변호사는 지난해에만 두 번이나 직원을 새로 뽑았다. 두 번째 뽑은 직원 D씨는 입사 첫날 회사의 휴가 규정에 대해 물어왔다. ‘회사를 놀기 위해 다니는 곳으로 생각하나’라는 아니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D씨는 업무 시간에는 딴짓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편이었지만 잔업이나 다른 회사 일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보다 못한 C 변호사가 D씨를 따로 불러 ‘윗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회사 일에 참여하라’고 당부했지만 별 소용 없는 일이었다. C 변호사 주변에도 신입사원이 회사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밀레니얼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경제적인 것이다. 밀레니얼이 살아갈 세계는 예전처럼 팽창하는 세계가 아니다. 소멸하고 오염되며 불확실한 세계다. 밀레니얼은 부모를 통해 이를 목격하기도 했다. 자신을 희생하고 열심히 살아도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 밀레니얼은 더 이상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중시한다.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비관적이고 염세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아질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은 ‘헬조선’ ‘혐생(嫌生)’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밀레니얼 이전 세대는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 속에서 치열하게 투쟁했지만 밀레니얼은 아예 신자유주의가 확립된 세계에서 자라났다. 글로벌 자본이 점령한 세계에서 개인의 노력이 오롯이 보답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밀레니얼은 1997년과 2008년의 경제위기를 전설처럼 전해들었다. 사회든 회사든 사람에게든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얘기를 믿는다.
   
노동과 관련해서 좁혀보자면 밀레니얼에게 중요한 것은 직업이지 직장이 아니다. 힘들게 들어온 회사를 손쉽게 그만두고 나가는 신입사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라면 신입사원이 진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가진 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라도 ‘나’에게 위협이 된다면 그만둘 수 있는 것이 밀레니얼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밀레니얼의 가치관은 ‘취존’이라는 신조어로도 설명이 된다. 취향을 존중한다는 말을 줄인 ‘취존’은 밀레니얼에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개인의 취향이 중요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뭔가를 손에 넣으면 그것을 자기 입맛에 맞게 조정한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얻으면서 성장했다. 따라서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방식에 맞추는 것을 당연시한다.”(‘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71쪽)
   
회사 안에서는 자신이 해석한 방식대로 일을 하고 규칙을 만든다. 회사 안에서는 다소 무기력하게 있다가도 회사 밖에서는 수없이 많은 일을 한다. 오히려 회사 밖에서 끊임 없이 시도하고 움직이는 밀레니얼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좀처럼 어우러질 수 없다.
 

   
▲ 지난해 서점가에서 밀레니얼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책은 ‘나’에 집중하고 현실에 만족하자는 힐링 에세이였다.

성장하거나 무기력하거나
   
그렇다면 회사에서 밀레니얼과 함께 성공적으로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전문가들은 밀레니얼과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90년대생들은 숙련공이 되기 전에도 자신의 회사나 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길 원하며, 직접 참여를 통해 주목받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이 본인을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회사 업무에의 참여는 이들에게 일종의 ‘인정’의 의미이고, 이는 그들의 직무와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이다.”(‘90년생이 온다’, 211쪽)
   
밀레니얼에게 ‘나’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면 그들의 의욕을 고취하는 방법이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회사가 어려운데” “경기가 좋지 않아서”라는 얘기는 밀레니얼에게 아무런 깨우침을 줄 수 없다. 오히려 무기력함만을 키울 뿐이다. 밀레니얼에게는 ‘나’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이 함께 간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특정 업무를 해내는 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를 깨닫게 해줘야 한다. 주도적인 업무능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조직의 관리자들은 90년대생 신입 사원들이 입사하는 순간부터 이직을 생각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고 말한다.… 90년대생들은 경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해당 조직에 남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언제든 조직을 떠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이직을 막는 방법은 그들의 성장을 돕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90년생이 온다’, 227~228쪽)
   
밀레니얼이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삶에마저 충성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밀레니얼은 더 먼 미래를 보고 삶 전체를 충실하게 꾸미기 위해, 다시 말해 ‘헌신하다가 헌신짝 된’ 기성세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일상처럼 ‘퇴사’를 입에 올리고 ‘이직’을 꿈꾸는 밀레니얼이 눈에 띈다면 회사와 조직의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봐도 좋다. 그것은 밀레니얼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밀레니얼의 세계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넓고 다채롭다. 가장 풍족한 자원을 누리며 살아온 밀레니얼에게 오히려 기성세대의 좁은 책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밀레니얼의 시대가 막 시작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은형 국민대 교수의 말처럼 “밀레니얼 세대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고 세상을 바꿀 것이며 성공 문법을 완전히 새롭게 할 것”이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도 함께 일해야 하고 그들을 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주간조선 2545호
등록일 : 2019-02-19 10:16   |  수정일 : 2019-02-1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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