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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부추겨… 매년 피해 기업 늘어나

국내 中企 기술유출 솜방망이 처벌

⊙ 퇴직자 기술·인력도 빼돌려 형사재판만 8년
⊙ 외국 기업 먹잇감 된 韓… 기술유출에도 집유·무죄
⊙ 기술유출에 대해 외국은 ‘간첩죄’로 처벌한다

글 | 정광성 기자

 
대구 성서공단에 위치한 초경합금 제조기업 ‘신생공업’(대표 신성용)전경. 사진=신생공업
 
중소기업의 핵심역량은 기술이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곧 기술이다. 중소기업이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의 명운이 걸린 핵심기술이 외부로 유출된다면 해당 기업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산업기술이 국가경쟁력과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유출에 대한 법원과 검찰의 판단이 현실과는 큰 괴리를 보인다. 기술유출에 따른 피해에 비해 처벌이 너무 가벼워 사회적 예방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기술유출 인정 78억원 보상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 보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기술유출로 인해 성장가도를 달리던 중소기업이 하루아침에 파산하는 사례는 다반사다. 대기업과 달리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기술유출을 적발하더라도 이미 경쟁사가 관련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위기를 맞는다. 또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소송으로 재판에 매달리다 보면 회사는 껍데기만 남기도 한다.
 
최근 기술유출과 기나긴 재판으로 회사 이익에 막대한 손실을 본 중소기업이 있다. 대구 성서공단에 위치한 초경합금 제조기업 ‘신생공업’(대표 신성용)이다. 신생공업은 자동차, 선박, 굴착기에 쓰이는 초경합금 부품생산으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다. 신생공업은 한때 국내 시장점유율 60%, 연간 400억원대의 매출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최근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신생공업의 전직 대표이사였던 A씨가 퇴사 뒤 일본의 경쟁업체와 손잡고 동종업체를 설립해 신생공업 거래처를 대상으로 저가공세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A씨가 2011년 만든 K사는 설립 1년도 안돼 업계 2위로 도약한 반면 신생공업은 지금까지 100여억원대(자체추산)의 손실을 봤다. 또 A씨는 회사 설립 후 신생공업의 핵심 인력을 집중적으로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이에 신생공업은 K사로 옮긴 직원들이 회사의 영업비밀을 유출했다고 보고 2012년 2월 K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신생공업은 대구지방법원에 낸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 2016년 7월 21일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2민사부(남대하 부장판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쟁사 K사 및 임직원들이 신생공업의 영업기밀을 침해한 것으로 인정하고 K사 및 퇴직 직원, 일본 경쟁사 S사 등이 공동으로 71억9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재판은 K사의 항소로 대구 고등법원까지 갔지만 재판부는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된다’며 신생공업의 손을 들어 줬다. 고등법원은 1심에서 산정한 71억9000만원보다 6억원 가까이 늘려 78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대구고법 민사 2부(김문관 부장판사)는 “까다로운 제작공정을 거치는 초경합금에 대한 성분배합·교합 등에 관한 기술과 이러한 품질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원료공급 업체에 관한 정보는 모두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대표를 지낸 A씨 등은 이런 자료를 빼돌리고, 해외 거래처였던 일본 S공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자신들이 만든 회사의 공정에서 그대로 베껴 사용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기술유출로 흔들리는 국내 중소기업
 
2018년 11월 8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위치한 가구 제조업체 정한테크 근로자들이 의자 기둥을 용접하고 있다. 20면 규모의 이 업체는 최근 줄어든 일감으로 3명을 해고했다.
신생공업은 민사소송과 함께 거의 동시에 형사소송까지 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신생공업은 산업기술 유출 전문수사대가 있는 부산경찰청에 진정했고, 2013년 4월 K사 사무실 및 관련자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그 결과 K사의 설립 배후에는 일본 경쟁사 S사가 있었다. S사는 K사 설립 전부터 A씨와 접촉한 정황도 포착됐다.
  
앞서 초경합금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보호를 받는 품목임을 인지한 S사는 국내 대형 로펌을 선임해 법적인 대비책도 준비했다. S사는 설립 초기 제품을 무상으로 K사에 제공하고 추후 K사 지분을 인계 받는 방식으로 최대주주가 될 계획이었다. 이 같은 내용은 연락책 역할을 했던 B씨의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담겨 있었다.
  
경찰은 2014년 2월 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부산지검에 송치했다. 부산지검은 피의자들은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거부했다. 결국 사건은 대구지검으로 이송됐다. 대구지검으로 옮겨가자 수사 초점은 ‘어떻게 K사가 영업기밀을 빼갔는지’에서 ‘신생공업이 영업기밀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로 바뀌었다.
  
대구지검은 A씨 등 피의자에 대해 또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신생공업은 대구고검을 찾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피의자에 대한 배임 혐의만 인정됐을 뿐 영업비밀 유출에 관해서는 모든 혐의가 기각됐다. 여러 차례 기각 끝에 2015년 9월 업무상배임으로 공판이 시작됐다. 2018년 8월까지 17회의 공판이 진행됐지만, 결심조차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K사는 아무런 혐의 없이 현재까지도 영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신생공업 측 관계자는 “영업비밀침해 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이 신속히 수사하여 피고인을 처벌하는 한편, 피해자를 구제해 줘야 한다. 그런데 형사사건과 동일한 민사사건의 경우 2017년에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다”며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된 피해액도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큰 금액이다. 사건을 진행하는 공판검사와 판사의 잦은 교체로 형사재판이 한없이 지연되는 동안, 피고인 회사는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영업비밀을 그대로 활용하여 피해 회사와 동일한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 회사는 지금은 완전한 일본 기업의 자회사로서 한국 진출의 교두보로 변모해 국내 초경합금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 회사는 지속적으로 손해액이 가중되고 있으며, 현재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봤다”며 “피해 회사에 되돌릴 수 없는 피해 발생 후 판결이 내려지면 피해자 구제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술유출에도 집행유예·무죄가 범죄 키운다
 
중소기업이 산업기밀 유출 피해를 경험한 비율. 사진=중소기업청
《서울신문》(2018년 10월 30일자)은 2015년 10월 경남 거제 한 조선소의 기술연구원이었던 A(49·인도 국적)씨가 ‘대외비’인 설계도면 파일을 몰래 USB에 담아 나왔다가 경찰에 적발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가 훔친 파일은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석유시추선 등 특수선박 전장(電裝·전기장치) 설계도면이었다. 경찰 수사 결과 A씨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재직하면서 320개의 파일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조선사들이 주장한 설계도면의 가치를 모두 더하면 3조원대에 달했다. 경찰은 A씨가 국내 조선 기술을 외국의 조선소에 팔아넘기려는 목적으로 설계도면 파일을 훔쳤다고 보고 A씨를 구속 송치했다. 하지만 다음해 8월 재판부는 “경쟁업체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A씨를 풀어 줬다. USB가 외국의 조선사로 넘어갔다면 국가적 손실을 낳을 게 뻔한 상황이었지만, A씨를 출국시키는 것으로 처벌은 마무리됐다.
  
첨단기술 유출 사범에 대한 판결이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유출된 기술의 피해액이 얼마인지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맹점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유출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정부나 법조계가 자각을 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기술유출일지 모르지만 중소기업이나 작은 회사 같은 경우 기술 하나로 회사의 생명줄이 오간다”며 “그런데 외국에 비해 한국은 처벌 수위가 너무 약해서 기술유출 같은 범죄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유출 애매한 기준… ‘피해 기업에 손해 가할 목적 없으면’ 무죄
 
최근 3년간 기술유출 재판 결과를 나타낸 도표다. 사진=경찰청
문제는 기술유출을 적발해도 처벌이 허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지정된 기술이라도 재판이 길어지면서 미온한 처벌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밀 유지가 허술해지면서 영업기밀 요건인 비공지성(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음)·비밀관리성(회사가 합리적 노력으로 비밀을 유지함) 등이 희미해지거나,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강력 처벌 의지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을 빼돌렸어도 ‘부정한 이익을 얻으려 했거나 피해기업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 없었다는 판결이 내려져 무죄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12년 검찰은 이스라엘 검사장비 기업 오보텍의 한국지사 직원들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現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TV용 OLED 패널 기술을 유출했다며 구속 기소했으나, 올해 대법원은 거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오보텍코리아 안모 과장만 일부 혐의가 인정돼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았을 뿐, 함께 기소된 직원 5명은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 받았다. 재판부가 부정한 목적이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술이 유출됐어도 부정한 목적이 없는 경우 범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한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증거가 부족한 경우 부정한 의도가 묻힐 수 있어 기술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바로서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가 핵심기술을 유출해도 재판과정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셈이다.
  
기술유출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처벌이 가벼운 주된 이유로 기술유출 범죄 피해액수를 정확하게 산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법원과 검찰은 적발 당시 기술을 빼돌려 회사를 옮기더라도 유출 기술을 활용해 이익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범행이 미수에 그쳤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기술유출을 화이트칼라 범죄나 생계형 범죄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아직 남아 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는 해외 사용 여부 불명확, 이익 미실현, 초범 등을 이유로 형량을 대폭 줄이거나 무죄 석방하기도 한다.
  
2018년 11월 13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검찰에서 기소한 기술유출 사건 103건의 판결에서 실형 선고는 전체의 2.9%로, 단 3건에 불과했다. 집행유예 56건(54.4%), 벌금이 36건(35.0%)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무죄와 선고유예는 각각 7건(6.8%)과 1건(1.0%)이었다.
  
검찰의 기소율도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해 기술유출 관련 법 위반으로 정식 기소된 피고인은 적발 인원(791명) 가운데 92명(11.6%)에 불과했다. 반면 무혐의 처분을 받은 피의자는 640명(80.9%)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기소유예 피의자도 31명(3.9%)이나 됐다. 특히 기소율은 2015년 16.3%에서 2016년 15.2%로 하락세를 타고 있다.
  
  
해외선 기술유출 처벌 수준은 무관용 원칙
  
외국의 사정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산업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법규를 적극적으로 개정해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일찌감치 경제스파이법을 제정(1996년)한 미국은 2013년 경제스파이에 대한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벌금 상한을 5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로 10배 끌어올린 것이다. 특히 기술유출 범죄에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면 ‘간첩죄’로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도 2015년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해 벌금 인상과 범죄수익 몰수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자국 기업의 영업비밀을 해외로 빼돌리면 가중처벌을 받도록 하고 천문학적인 손해배상도 인정했다. 예컨대 해외 기술유출에 대한 벌금은 개인 3000만 엔, 법인 10억 엔에 이른다.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와 국회가 각종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2018년 3월을 시작으로 정부는 사전진단 성격으로 전문가의 현장진단, 보안교육, 기초자문을 최대 3일간 무료로 제공한다. 세부적으로는 ▲보안전략 ▲보안시스템 ▲법률자문으로 틀을 짜 보안 지침이나 절차를 수립하는 일을 돕는 한편 피해 기업의 분쟁 및 소송과 관련한 지원을 하는 식이다. 사전진단 결과 심도 깊은 자문 및 기술유출 피해에 따른 복구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최장 7일간의 심화자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소요 비용의 75%를 정부가 부담한다.
  
  
中企 기술유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정부는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방지 및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기술유출 방지 시스템 구축 지원도 한다. 내부정보유출방지시스템(이동식 저장장치 통제, DLP, 논리적 망분리 등), PC·문서 보안솔루션(DRM, 워터마크 등) 및 물리적 보안 시스템(출입통제, CCTV, 지문인식 등) 구축을 위한 보안솔루션 도입을 지원하는 식이다. 해외 지사를 보유한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국내 본사와 해외 지사의 보안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도 돕는다. 지원 대상은 40개 기업 내외로 총 사업비의 최대 절반(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받는다.
  
정부는 아울러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임치기관에 보관함으로써 기술보호를 위한 증빙자료로 활용하고 임치기업의 도산·폐업 시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의 안정적 기술사용을 보장하기로 했다. 중소기업과 함께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활용한 대기업 등 거래기업은 중소기업이 파산·폐업 등을 할 경우 임치된 기술자료를 교부받아 지속적인 유지 보수 및 안정적 사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기술유출에 대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들이 기술유출에 따른 손해를 제대로 보상받고 관련자를 엄히 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기술보호 요건’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법률적 기술보호 요건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법적으로 기술이나 영업비밀을 보호받으려면 ▲비(非)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 관리성 등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비공지성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회사의 허락 없이 취득할 수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적 유용성은 말 그대로 해당 기술이나 경쟁에서 이익을 가져오는지를 따진다. 비밀 관리성은 회사 스스로 비밀을 유지하려는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이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등록일 : 2019-02-07 10:00   |  수정일 : 2019-02-0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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