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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의 눈물 배신의 역사로 점철된 독립의 꿈

글 | 노석조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 베이루트에 거주하는 한 쿠르드 여인이 쿠르드 전통의상을 입고 쿠르드기를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이라크 정규군은 이들과 싸워보기도 전에 줄행랑을 쳤다. 누구도 이들과 맞서 싸울 배짱이 없었다. 그렇게 일개 테러리스트인 IS는 2014년 6월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손에 넣었다. 시리아 동부 유전(油田)지대도 그들에게 넘어갔다. IS는 ‘영토를 가진 테러리스트’로 등극했다.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도 하지 못한 일이다.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이때 IS 앞을 가로막고 나선 이들이 있다. 시리아군도 이라크군도 아닌, 독립국가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중동의 집시’ ‘중동의 방랑자’ 쿠르드족(族)이었다. 나라가 통째로 테러리스트 손에 넘어갈 지경이 되자, 쿠르드가 ‘의병(義兵)’이 돼 나선 것이다. 평소 나라로부터 ‘3등 시민’ ‘반역 세력’ 취급받던 이들이 구국 용사가 됐다.
 
 IS는 당황했다. 쿠르드는 강했다. 시리아·이라크 지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쿠르드 민병대는 IS와의 전투에서 잇따라 승리했다. 사방으로 뻗던 IS의 기세가 단박에 꺾였다. 하지만 IS도 만만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사담 후세인·아사드 등 아랍 독재자들의 철권통치에서도 아득바득 버티며 잔뼈가 굵은 조직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당시 서방 기자·구호대원 등을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 운운하며 잔인하게 살해하는 만행으로 악명이 높아져, 세계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막대한 테러 자금을 지원받았다. 고성능 무기로 금세 무장했다. 이라크 정규군이 버리고 간 탱크 같은 무기도 이들 것이었다. IS 화력은 쿠르드보다 앞섰다.
   
   
   IS 탱크에 몸을 던진 두 아이의 엄마
   
   쿠르드는 목숨을 걸었다. 관용적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몸을 내던졌다. 2014년 10월 5일 시리아 북부 코바니의 미쉬타누르 고지(高地)가 IS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IS는 탱크로 고지의 쿠르드 진지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대로 있다간, 고지를 버리고 퇴각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때 여성 대대장 아린 미르칸은 수류탄을 들고 적진으로 침투해 IS 탱크로 뛰어들었다. 그는 수류탄을 탱크 밑에서 터트리며 산화했다. 미르칸의 육탄전은 미쉬타누르 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기폭제가 됐다.
   
   이 소식은 쿠르드 전군에 알려졌다. 세계 언론들도 이 사실을 확인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뒤늦게 알려지기로, 미르칸은 그의 군용(軍用) 이름이었고, 본명은 데일라 겐즈 카미스였다. 그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의 사연은 쿠르드가 2014년부터 2017년 말까지 이어진 IS 전쟁에서 얼마나 열심히 싸웠고 큰 역할을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미스가 두 아이까지 뒤로하고 적진으로 뛰어들어간 건 민족을 위해서였다. 카미스는 부하들에게 항상 ‘독립의 꿈’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쿠르드가 애초 전쟁에 나선 건 이들 마을까지 IS가 쳐들어와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위기를 민족 독립의 기회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 쿠르드는 사태 초기 IS를 마을 밖으로 밀어내고 난 뒤에도 다른 지역 IS 격퇴전에도 계속해 참전했다.
   
   이들에게 ‘IS 격퇴전’ 참전을 독려한 건 미국이다. IS는 중동 지역만의 골칫덩이가 아니었다. 이들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지에서도 테러를 일으켰다. 테러로 ‘서방 제국주의’ 국민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은 IS와 이들에 종속된 극단주의 단체들의 세력엔 ‘희소식’이었다. 미국과 서방·중동 동맹국들은 어떻게든 IS라는 암 덩어리를 하루빨리 도려내고 싶었다.
   
   미국은 직접 메스를 들고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암 제거 수술을 해줄 외과의사 같은 지상 전투병력이 필요했다. 전투기·미사일 공습만으로는 시리아·이라크 마을 주민과 뒤섞여 있는 IS를 격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아프가니스탄전쟁 때처럼 대규모 미군 병력을 파병하는 건 부담이었다. 앞서 미국은 2001년 탈레반을 없애기 위해 아프간에 수만 명의 병력을 파병했지만, 천문학적인 전비(戰費) 지출과 2300명의 미군 전사자라는 큰 손해를 보고도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아프간의 늪’에 빠지는 쓰라린 경험을 한 미국은 또다시 ‘시리아의 늪’에 빠지는 걸 피해야 했다. 이에 미군 지상군은 소수만 보내고 IS 격퇴전 주력군으로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하기로 했다.
   
   쿠르드는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모처럼 미국의 기대와 국제사회의 관심을 한껏 받게 된 이들은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실제로 중동 외교가와 전문가 사이에서 쿠르드가 IS 격퇴 임무만 잘 마치면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독립국가를 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쿠르드의 활약에 미군 주도 연합군은 2017년 7월과 10월 IS의 양대 점령 도시인 이라크의 모술과 시리아 락카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IS는 막판까지 탱크가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좁고 미로같이 복잡한 모술과 락카의 주택가에 배수진을 쳤다. 이런 이들을 치려면 육탄전을 벌여야만 했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그 역할을 쿠르드가 도맡았다. 그리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IS 격퇴전 승리의 주역은 단연 쿠르드였다.
   
   
▲ 시리아에서 IS와 싸우고 있는 쿠르드 병사들. photo 뉴시스

   트럼프의 토사구팽
   
   IS 점령지를 거의 탈환하며 격퇴전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자, 쿠르드는 드디어 ‘꿈’ 실현에 돌입했다. 우선 이라크 내 쿠르드가 이라크 중앙정부에서 분리 독립하겠다고 나섰다. 독립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를 강력 반대했다. 하지만 이라크 쿠르드는 미국 등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을 내심 기대하며 독립을 외쳤다.
   
   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단합된 이라크를 지지한다” “우리는 쿠르드와 이라크 정부 어느 한쪽의 편도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라크 정부 편을 든 것이었다. 쿠르드는 버림받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시리아 내 쿠르드는 이라크 쿠르드 형제들의 비보(悲報)에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 쿠르드는 저버렸어도, 시리아 쿠르드의 손만큼은 잡아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일리가 있었다. 미국이 이라크 쿠르드를 독립시킨다는 건 이라크 정부의 등에 칼을 꽂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라크 정부는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파트너다. 미국 입장에선 이라크 정부를 잃으면서까지 쿠르드를 독립시킨다는 건 밑지는 장사였다.
   
   하지만 시리아는 사정이 다르다. 시리아 정부는 반미(反美)다. 거기에다 트럼프 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 이란과는 단짝이다. 트럼프 정부가 시리아 정부와의 관계를 위해 쿠르드를 외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시리아 쿠르드는 이런 판세를 읽고, 2018년 미국의 지시에 따라 시리아에 남은 IS 세력을 해치우는 전투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시리아 쿠르드의 ‘독립 꿈’은 커져만 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컸다. 지난 12월19일 이들의 꿈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19일 트위터에 “우리는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를 격퇴했다. 내 임기 동안 그곳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유일한 이유(가 사라졌다)”라며 철군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시리아에 약 2000명의 병력을 두고 쿠르드와 같이 IS 격퇴전을 치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주둔 미군을 전원 철수하겠다고 한 것이다. 졸지에 시리아 쿠르드는 외톨이가 됐다. 미국이 ‘사냥개’로 삼은 쿠르드를 ‘사냥’(IS 격퇴전)이 끝나자 버린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따로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이 결정은 터키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 분석한다. 쿠르드의 독립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 중 하나가 터키이기 때문이다. 터키는 자국 내에도 분리독립을 원하는 쿠르드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인접한 시리아에서 쿠르드의 영향력이 세지는 걸 원치 않는다. 덩달아 터키 쿠르드의 독립 목소리도 커지기 때문이다.
   
   
   “열강이 필요에 따라 휘두르는 채찍”
   
   쿠르드는 4000여년 전 지금의 이란·이라크 국경지대에 있는 자그로스 산악지대에 살던 고대 민족 ‘구티(또는 쿠티)’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페르시아(현 이란) 민족과 같은 아리안계 인종으로 약 3000년 전부터 중동에서 이들 고유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지키며 살아왔다.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 하나인 쿠르드이지만, 이들은 한 번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항상 어느 나라에 종속돼 살아왔다. 오늘날 이들 전체 인구는 4000만명에 달하는데, 한데 다 뭉쳐 살지 않고, 터키(1540만명)·이란(680만명)·이라크(430만명)·시리아(130만명) 등지에 흩어져 있다.
   
   쿠르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내 나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세계 1차대전(1914~1918)으로 오스만제국이 무너질 무렵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오스만제국 이후 터키공화국이 세워지면서 쿠르드는 뒷전으로 밀렸다. 터키는 서구에 “쿠르드를 독립시켜주면 안 된다”면서 이들을 터키공화국에 편입되도록 했다.
   
   쿠르드에 다시 기회가 찾아온 건 1972년 이란과 이라크가 분쟁을 벌일 때다. 친미 팔레비 왕조의 이란이 접경국 이라크와 국경선을 놓고 싸울 때 쿠르드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은 동맹인 팔레비 왕조를 돕기 위해 쿠르드에 무기와 자금을 대며 이라크와 싸워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3년 뒤인 1975년 이란과 이라크 관계가 급개선되자, 쿠르드는 버려졌다. 미국은 ‘용도 폐기’된 쿠르드에 손을 뗐다. ‘작아도 좋으니 우리 민족만의 나라를 세워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외면했다.
   
   이들의 희망과 좌절은 반복됐다. 1980~1988년 이라크는 이란과 전쟁을 벌이면서 쿠르드를 꼬여 자기 편에 서도록 했다. 하지만 후세인은 1988년 전쟁이 끝날 무렵 쿠르드가 독립하거나 이란 편으로 돌아설지 모른다고 우려해 이라크 쿠르드 주민들을 화학무기로 대량학살하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다.
   
   이로부터 3년 뒤 쿠르드는 또다시 열강의 싸움에 휘말렸다. 후세인이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이를 규탄하며 미국이 걸프전쟁을 일으켜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때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흔들기 위해 쿠르드에 반후세인 무장투쟁에 나서달라고 부탁했고, 쿠르드는 ‘내 나라’ 꿈을 기대하며 전쟁터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은 후세인의 군대에 진압됐다.
   
   다행히 쿠르드는 1991년 걸프전쟁 이후 미·영국 등의 도움으로 이라크 동부 유전(油田) 지역에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자치정부라 해도 이라크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만, 소기의 성과는 올린 것이다. 서구와 중동 열강 사이에서 이렇게 이용됐다 저렇게 버려지는 쿠르드는 지금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터키 쿠르드 언론인인 알파고 시나씨는 “쿠르드는 열강이 필요에 따라 휘두르는 ‘채찍’과 같은 존재였다”면서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독립을 한 한국처럼 쿠르드도 지금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도 쿠르드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등록일 : 2019-01-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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