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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푸스, 여자를 아프게 하는 병

글 | 김민희 기자 2018-07-25 15:12

▲ 일러스트 이철원
“저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몸 여기저기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된 거래요.…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 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려갔고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선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대요.…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2010년 10월 남편과 동반 자살한 ‘행복전도사’ 최윤희의 유서다. 당시 최윤희의 자살은 그의 환한 웃음을 기억하던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더불어 행복전도사의 행복을 앗아간 병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무슨 병이길래 700가지 통증을 유발하며, 폐와 심장에 치명적 손상을 일으킬까? 병명은 루푸스(전신 홍반성 루푸스)다. 자가면역질환 이상으로, 내 몸을 방어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외부 침입을 방어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하는 병이다. 골문을 지켜야 할 골키퍼가 자살골을 넣는 셈이라고 보면 된다.
   
   
   천(千)의 얼굴을 가진 병
   
   루푸스에 걸리면 피부뿐 아니라 관절, 뇌, 신장, 심장, 폐 등 우리 몸 곳곳을 공격하기 때문에 다양한 증세가 나타난다. 루푸스가 천(千)의 얼굴을 가졌다고 하는 이유다. 가벼운 감기처럼 나타나기도 하지만 방치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면 정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다. 하지만 병에 대한 인식이 미미하다 보니 장기 곳곳에 손상을 일으킨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 국내에서 루푸스로 진단받은 환자는 1만5000명 정도. ‘경계선상의 환자’가 많고, 스스로 이 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환자까지 감안하면 적어도 10만명 이상이 루푸스 환자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주대학교 류마티스내과 서창희 교수는 루푸스의 유병률을 1000명당 1명꼴로 본다. 미국 가수 마이클 잭슨이 루푸스를 앓았고, 레이디 가가는 ‘경계선상의 환자’ 진단을 받았다.
   
   루푸스의 발병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과로와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과 다수의 유전자 변이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발생하는 병’이라는 정도다. 15~45세 사이의 가임기 여성에게서 많이 발병하고,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10배 이상 발병률이 높다는 점에서 호르몬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 병의 비밀을 풀 암호가 국내 연구진들에 의해 속속 밝혀져 기대를 모은다. 류머티즘 분야 아시아 최고 명의로 꼽히는 배상철 한양대 교수와 가톨릭인간유전체다형성연구소 정연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배상철 교수는 루푸스 발병에 간여하는 유전자를 발견해냈다.
   
   30여개국이 참가한 다국적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배 교수는 루푸스의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 ‘아이캄1(ICAM1)’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이 논문은 류머티즘 분야 최고 권위지인 ‘류머티즘회보(Annals of the Rheumatic Diseases)’ 2011년 10월호에 실렸으며, 편집자 추천 논문으로 선정됐다. 배상철 교수는 주간조선과 만나 “유전자 아이캄1이 루푸스 악화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루푸스 치료 약제 개발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미국 연구자가 대부분인 가운데 배상철 교수가 책임연구자로 참여했다.
   
   정연준 가톨릭의대 교수팀은 루푸스 발병 위험도를 증가시키는 유전자 복제 수 변이를 규명했다. 연구팀은 RABGAP1L, C4, 10q21 등 세 유전자의 복제 수가 정상보다 낮을 경우 루푸스의 발병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 결과는 자가면역질환 분야의 대표적 학술지인 ‘관절염 및 류머티즘(Arthritis & Rheumatism)’ 온라인판 2013년 1월호에 게재됐다. 이를 이용해 루푸스 위험 예측 검사법을 개발해 루푸스의 발병 위험을 조기에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정연준 교수는 “루푸스는 지금 단계에서는 예방법이 없는데, 이 검사법을 통해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게 됐다”며 “위험도가 높은 사람은 햇볕 쬐는 것을 주의하고,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않는 등 평소에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이사’ 등록 환자 5000명
   
   루푸스의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는 인식이 국내외적으로 팽배하다. ‘세계 루푸스의 날’(5월 10일)이 생겼고, 국내에도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협회(일명 ‘루이사’)’가 있다. ‘루이사’는 아나운서 출신 정미홍(55·더코칭그룹 대표)씨가 1998년에 만든 자조모임이다. 루이사에 등록된 루푸스 환자는 5000여명이라고 한다.
   
   정미홍씨 본인이 루푸스 환자다. 20년 전쯤 루푸스를 심하게 앓았으나 현재는 약을 먹지 않고도 정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루푸스는 반짝 조명을 받지만 여전히 이 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한 사례를 보자. 이서현(38·서울 은평구)씨는 3년 전 루푸스 경계선상 환자 진단을 받았다.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고, 극심한 피로감이 떠나지 않았으며,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숟가락을 들지 못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밥도 못 먹었다. 통증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루푸스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열 군데가 넘는 병원을 다녀야 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진로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차였다. 의사는 무조건 쉴 것을 권했다. 임신은 꿈도 못 꾸었다. ‘몸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라고 생각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하루 열 시간 이상 매달리던 공부도 접었다. 서울 외곽의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 산책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양약은 먹지 않고 한의원에 가서 통증을 경감시키는 침을 맞았다. 놀랍게도 서서히 몸이 회복됐다. 임신도 됐다. 절대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뱃속 아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경고에 건강 관리에 더욱 주력했다. 그 결과 무사히 딸 쌍둥이를 낳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루푸스 이후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마음이 느긋해졌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됐다.
   
   루푸스는 라틴어로 ‘늑대’라는 뜻이다. 루푸스에 걸리면 얼굴의 양 볼에 나비 모양의 발진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모양이 늑대에 물린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루푸스의 역사는 길지 않다. 1850년대에 들어서야 명명된 현대병이다. 자가면역질환 대부분이 그렇듯 루푸스 역시 현대에 와서 발병률이 높아졌다. 배상철 한양대 교수는 “현대화, 문명화되면서 생긴 문제가 있겠지만 확실하게 인과관계를 밝힌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루푸스의 발병 원인은 복잡하다. 배상철 교수의 말이다.
   
   “루푸스 발병은 60%는 유전적 소인, 나머지 40% 정도가 환경적 요인이라고 본다. 부모나 형제 중 자가면역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발병률이 높다. 환경적 요인에는 자외선, 과로, 스트레스 등이 있다. 남자는 루푸스에 잘 안 걸리는데 군대 가서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외선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도 이유다. 공기 중 떠다니는 바이러스가 루푸스 발병 유전자와 접합이 돼 생기는 경우도 있다.”
   
   배상철 교수는 “루푸스는 유전적 소인은 있지만 유전병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전병은 가족력이 있으면 50% 이상 대물림되는데, 루푸스는 한두 가지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가지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기는 병이기 때문이다. 아주대 류마티스내과 서창희 교수는 루푸스 환자 가족 중 10%에서 루푸스가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조기 발견하면 치료 가능
   
   루푸스 치료약은 초기 단계다. 2011년에 들어서서야 루푸스 전문 치료약 벤리스타가 나왔다. 하지만 배상철 교수는 “벤리스타는 비교적 괜찮은 약이지만 강력한 약은 아니다”라면서 “보조적으로 쓰면서 스테로이드제 등을 적게 쓸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루푸스는 스테로이드제, 항말라리아제로 치료해왔다.
   
   루푸스는 100% 완치가 불가능하다.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평생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배상철 교수는 “유전적 소인을 없앨 수 없다는 점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치료는 가능하다”며 “약을 먹으면서 거의 정상인처럼 지내는 경우와 약을 전혀 안 먹고 정상생활을 하는 경우는 치료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치료 확률은 20~30% 정도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루푸스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초기에 발견하면 가벼운 치료를 통해 정상생활이 가능하지만 방치하면 자가면역세포가 신장, 폐, 심장 등 주요 장기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만성 신부전증이 생겨 평생 신장투석을 주기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루푸스는 전문의들에게도 생소한 편이라 오진이 많다. 열이 나서 감염내과를 가는 경우, 폐에 물이 차서 호흡기내과를 가는 경우, 온몸의 통증 때문에 신경외과를 가는 경우 등 온갖 진료과를 다니다 뒤늦게 류머티즘과에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증세가 다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루푸스를 초기에 알 수 있는 자각증세는 무엇일까. 배상철 교수는 “애매모호하게 미열이 나고, 임파선이 붓고 격심하게 피로하고 체중 감소 현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루푸스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단을 위한 검사는 혈액검사가 핵심이고 자가항체검사, 간기능검사, 신장기능검사 등도 한다. 유전자 분석을 이용한 질병 검사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이를 이용한 루푸스 검사법도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고학력자 여성에게서 많이 발병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유창길한의원은 류머티즘 전문 한의원으로 꼽힌다. 유창길 원장은 한약과 턱관절 균형의학을 이용해 자가면역질환을 다스린다. 그는 류머티즘이란 면역계 호르몬 균형이 깨져서 생긴 병이라고 본다. 턱관절 균형의학은 구강 내 균형 장치를 이용해 턱관절의 균형을 맞추는 치료로, 척추 중 경추 1번과 턱관절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턱관절 균형을 맞춰 주면 뇌하수체에서 스테로이드제 기능을 하는 부신피질 호르몬을 스스로 분비한다는 것이 치료의 메커니즘이다. “우리 몸은 스스로 치료능력이 있다”며 “그 환경을 만들어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한의학적인 치료”라고 말한다.
   
   배상철 교수는 루푸스를 한방으로 치료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루푸스는 장기에 직접적 손상을 줄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한방 치료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 그는 “루푸스는 증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치료와 연구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분야”라면서 “대조군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자가면역질환을 한방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루푸스의 경우가 그렇다는 거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루푸스의 한방 치료는 무조건 위험한가. 한의원을 찾은 루푸스 환자를 보자. 김소리(가명·여·19)씨는 양방치료를 하다가 약물 부작용으로 유창길한의원을 찾은 경우다. 지난해 12월에 한 종합병원에서 루푸스 확진을 받고 약을 먹다가 안압이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
   
   김소리씨처럼 양방 치료를 하다가 부작용과 알레르기 때문에 한방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유창길 원장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한약을 1~3단계로 나눠서 쓴다”며 “스테로이드제를 갑자기 끊으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루푸스의 한방 치료는 주가 될 수 없으며, 양방의 보조적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양측의 공통된 의견이다.
   
   유창길 원장이 진료 중인 루푸스 환자는 100명이 넘는다. 그중 남성은 딱 한 명. 양방 치료와는 달리 충분한 상담 시간을 갖기 때문에 환자의 성격이나 특성 등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다. 그는 루푸스 환자의 공통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루푸스 환자 중에는 고학력자가 많다. 박사학위 소지자, 대학교수가 꽤 있다. 치과의사와 한의사 환자도 있다. 평범한 주부라고 해도 자녀의 소풍 도시락을 싸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김밥 재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치밀하고 완벽주의자들에게서 많이 발병된다. 스스로를 달달 볶다가 몸의 생태계가 깨진 거다.”
   
   유창길 원장은 ‘내 사랑 류마티스’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 스스로 류머티즘 경계성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 꾸준히 관리 중이다. 카페인 등은 일절 삼가고 인터넷 카페에 자신이 먹은 식단을 매일 사진으로 찍어 올린다. 그는 “자가면역질환은 마인드가 특히 중요한 병”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카페 이름은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병을 적극적으로 빨리 받아들일수록 치료가 잘된다. 루푸스 환자는 삶의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목표가 100이라면 70까지만 한다고 생각하고 생활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배상철 교수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둔한 사람이 치료가 더 잘된다”면서 “민감하고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 이것저것 따지면서 할까 말까 하는 사람은 대부분 예후가 안 좋다”고 말했다. 이런 말도 남겼다. “(고칠 수 있다는) 신념이 절반의 성공이다.”
   
루푸스
   
   누구에게 생기나
   - 여성이 남자보다 10배 더 잘 생김
   - 15~45세 사이에 가장 흔함
   - 백인보다 동양인, 흑인에서 3배 흔함
   - 우리나라 유병률 0.1%로 추정
   - 루푸스 환자 가족 중 10%에서 루푸스 발생
   
   증상
   - 얼굴 양 볼에 나비 모양의 발진
   - 미열, 심한 피로감, 탈모
   - 소변 이상, 부종, 흉통 등
   
   악화 요인
   - 자외선, 바이러스 감염, 무리한 육체적 활동,
    여성호르몬, 약물 등
   
   환자의 생존율
   - 1930년대 : 2년 생존율 50%
   - 1950년대 : 5년 생존율 70%, 10년 생존율 50%
   - 1980년대 : 5년 생존율 90%, 10년 생존율 80%
   - 1990년대 : 5년 생존율 95%, 10년 생존율 90%
주간조선 2245호
등록일 : 2018-07-25 15:12   |  수정일 : 2018-07-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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