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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치매 마을 호그벡의 ‘노멀 라이프’

행복의 근원은 평범한 삶에 있다. 이른바 노멀 라이프다. 네덜란드 치매 마을인 호그벡 마을의 특별함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증 치매 환자도 평범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비전으로 삼은 곳이다.
농촌 자원 콘텐츠 기획사인 빅팜 컴퍼니의 안은금주 대표는 최근 ‘노멀 라이프(nomal life)’ 지향의 공동체 사례로 꼽히는 호그벡에 다녀왔다. 삶의 질은 오히려 ‘평범한 삶을 잘 유지’하는 데 있다는 가치를 보여주는 호그벡 마을 방문기를 싣는다.

글 | 안은금주 빅팜컴퍼니 대표   사진제공 | 안은금주, 비비움(Vivium) 제공

몇 년 전 미국 CNN에 소개되며 알려지기 시작한 네덜란드 호그벡(Hogeweyk) 마을은 일명 치매 마을이다. 호그벡의 비비움(Vivium, 마을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이 운영하는 곳으로  ‘치매 노인도 보통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치매 요양병원 간호사였던 이본 반 아메롱겐이 2009년 중앙정부와 지역기관의 협조로 네덜란드 베스프 마을 북쪽 외곽에 마을을 조성했다.

호그벡 마을은 약 5000평(1만5000㎡)에 150여 명의 뇌 손상 환자 및 중증 치매 환자(이곳에선 환자 대신 거주자라고 부른다)와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250명의 스태프가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은 환자의 증상을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단계별로 나누었을 때 5~7등급에 해당하는 중증 환자에게 주어진다. 치매가 상당히 진행돼 입원이 필요하면서도 환자가 질병 이전의 삶을 이어가며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단계라고 보는 것이다. 치매 노인과 뇌 손상 환자들의 등급은 독립 기관이 인터뷰와 여러 검사를 통해 투명하고 엄격하게 매겨진다.

호그벡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노멀 라이프’다. 마을 안에는 150여 명의 환자들이 23가구에서 모여 산다. 한 가구에 보통 5~6명이 거주하는데, 각 가구는 네덜란드 여러 가정의 형태로 지어졌다. 긴 복도 양쪽에 수십 개의 방을 배치하는 일반 병실 형태 대신 거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을 3개씩 배치하는 일반 가정과 똑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치매에 걸리기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는 듯한 평범하고도 편안한 일상을 지속하도록 돕는 것이다.
 

환자 취향 존중한 맞춤형 공간
 
호그벡 마을의 모든 시설은 환자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해 지었다. 환자들이 거주하는 23개 가정은 각각 환자들이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면밀히 조사해 그 취향과 개성을 존중해 지었다. 이전 직업, 취향, 성격 등을 분석한 다음 환자에 맞는 공간을 제공한다. 클래식한 분위기로 조성된 공간부터 분홍색으로 된 소녀 취향의 공간, 현대적이고 모던한 공간 등 다양한 버전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각자 방은 환자들이 스스로 꾸밀 수도 있다. 각 가정에서는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산다. 낯선 환경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 경우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고, 이 같은 상황은 결코 병의 호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거주하는 가정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시설물에도 이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마을에는 식당을 비롯한 미용실, 슈퍼마켓, 영화관, 공원, 카페, 클럽 등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이 시설들 또한 이곳에 온 환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예를 들어 5000평이라는 크지 않은 공간에 클럽만 해도 웨스턴 바, 클래식 바, 캐주얼 바가 종류별로 있어 환자들은 취향에 따라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아프기 이전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재능과 취미를 계속 살리며 삶을 즐기고, 특별한 날에 발표하는 등 모두가 함께 축제의 장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램들 또한 인상적이다. 작은 규모의 극장은 시즌마다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호그벡 마을에서 환자들은 시설 내 마켓에서 평범하게 물건들을 사고팔며 평상시와 똑같이 생활한다. 일반 가게와 다른 점은 물건에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고 모두 공짜라는 점이다. 비용은 모두 국가에서 부담한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여겨 이런 시설에서는 사용이 금지되는 면도칼이나 볼펜 같은 물건도 판매한다는 것이다. 마을 관리자는 이들이 이것을 가지고 자해를 하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차단하는 순간 노멀과는 멀어진다고 말한다. 과잉보호는 노멀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정도의 물건과 상황은 지금까지 호그벡 마을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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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언노멀이 아닌 노멀
 
호그벡 마을에서 이런 환경 조성과 유지가 가능한 것은 중증 치매 환자를 관리가 필요한 환자가 아니라 생명 연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곳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이 겪는 약간 불편한 상황들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조력자 역할로 자신들의 위치를 규정하고 있다. 호그벡 마을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가운을 입지 않고, 환자들 또한 환자복을 입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곳 슈퍼마켓, 미용실, 카페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이 아니라 치매 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는 과정을 이수한 마을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다. 처음 치매요양센터를 이 마을에 설립할 때 복지국가인 네덜란드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설이 지역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외부인의 방문이 늘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환자와 의사라는 잣대로 나누다 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기보다는 치료해야 할 대상과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 구분되며, 획일화된 관계는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멀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식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이고 실험적인 시스템이었지만, 호그벡 마을에서는 멋지게 성공을 거두어 컨설팅 전담 부서가 생겼을 정도로 전 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행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노멀 라이프, 즉 평범한 삶에 있다. 질병에 걸리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면 그야말로 평범한 삶은 물 건너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모든 평범함이 사라진다. 특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뇌 손상이나 치매환자의 경우, 부정과 왜곡은 훨씬 심각하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그 특별한 상황은 무엇인가 특별한 방법과 처방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행복의 본질이 노멀 라이프에 있다면, 환자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의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호그벡 마을은 중증 치매 환자들에게도 노멀 라이프, 즉 평범한 생활을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 세심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여느 요양 시설과 달리 환자들의 행복도가 무척 높다. 실제 약물 투여의 감소와 생존 기간의 연장은 이러한 환자들의 행복도가 의학적으로 매우 효과가 높음을 증명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도 해마다 치매 인구가 20%씩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지역에 기반을 둔 이러한 시설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떠한 작업이 필요할까. 그러한 고민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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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금주 대표는…

빅팜컴퍼니 대표. Cj오쇼핑 1촌1명품 식객원정대, CJ푸드빌 계절밥상, 도심 속 로컬 레스토랑 ‘하베스트 남산’, 평창군 농부를 테마로 만든 농촌과 도심의 공유 공간 ‘바우파머스몰’ 등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2018년 8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 ‘안동 스페이스 마’ 오픈을 앞두고 있으며, 한국형 노멀 라이프를 위한 치매 마을 설립도 구상하고 있다. 한국컬리너리투어리즘협회 회장, 농식품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과 자문위원, 농식품부 외식산업진흥회 심의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등록일 : 2018-05-21 09:45   |  수정일 : 2018-05-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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