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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 기로에 놓인 문예지 시장, 몸집은 불어났지만 재정난으로 ‘등단 장사’ 하는 곳도!

⊙ 2016년 기준 문예지 670종 발간, 한때 300여 종으로 알려진 예상치의 두 배
⊙ 대부분 기금·회비·후원으로 연명, 대형 출판사 둔 문예지들도 어려운 현실
⊙ “함량 미달의 등단 장사도 사양길”… “자원(응모자)이 고갈돼 살아남기 힘들 것”
⊙ 엘리트주의 버리고 도전적 기획을, 출판사 권위 형성 위한 지면은 곤란
⊙ 독립 문예지 출현, 자극제 될까… 《쓺》 《악스트》 《문학3》 《미스테리아》 등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670종, 1853권, 14만864편.’
 
  지난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간한 〈문예연감 2017〉에 명시된 2016년 문예지 수다. 그해 동안 700종에 육박하는 문학 잡지사가 총 1800여 권의 문예지를 펴냈고, 그 속에 수록된 문학작품만 14만 편이다. 한때 문단에서 300여 종으로 알려졌던 문예지 시장이 공식 집계 결과, 예상치의 두 배를 넘어섰다. 양적 팽창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문예지인 종합 문학동인지 《창조》가 발행(1919년)된 지 햇수로 100년. 오래전 끝난 줄로만 알았던 ‘문예지의 시대’가 100년 만에 전설처럼 되돌아오는 걸까.
 
 
  고질병 ‘등단 장사’
 
  안타깝게도 ‘몸집’만 불어났을 뿐이다. 문예지 시장은 속병을 앓고 있다. 사실상 진퇴 기로, 존폐 위기에 놓였다. 바로 돈 때문이다. 상업성을 지향하는 게 문예지의 본령은 아니지만, 생존의 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팔리지 않고 찾는 사람이 없으니 폐간하거나 ‘동인지’ 수준으로 전락한 곳이 많다. 문학수업을 받는 문예창작과 학생들조차 안 본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세계의 문학》 《문예중앙》 《작가세계》와 같은 전통과 내력이 있는 속칭 ‘일급’ 문예지들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외부 수입이 저조하니 그나마 숨이 붙어 있는 문예지들도 국고 보조, 작가 회비, 기업 후원 등으로 연명하는 수준이다. 발행인 자비까지 투입해 다음 호 발간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형 출판사를 배경으로 둔 《문학동네》 《창작과 비평》 등의 사정도 넉넉한 편은 아니라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지적이다.
 
  그보다 더 열악한 곳, 자본 경쟁력이 없는 곳은 이른바 ‘등단 장사’를 한다. 신인작가 당선 조건으로 적게는 수십 권, 많게는 수백 권의 문예지 구매를 권한다. 딱히 강매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작가 데뷔가 모종의 거래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풍경은 아니다. 더욱이 함량 미달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걸어 문학판 전체의 질적 하락을 초래한다. 문예지의 종수와 권수가 많아져도 실속이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 신달자 시인은 시 전문 문예지 《미네르바》 2017년 가을호에 실린 ‘한국 문단 등단제도 이대로 좋은가’ 좌담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요즘은 문학 관련 잡지가 너무 많아졌잖아요. 제가 모르는 잡지도 너무 많아요. 그리고 그 잡지사들마다 새로운 시인(작가)을 배출합니다. (중략) 다른 것에 열정을 쏟고 욕망하는 것보다야 시를 쓰려고 하고 시를 읽고, 또 문학잡지도 구매해 주면 좋잖아요. 그것 자체가 문학의 판에서는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시인들의 이미지나 명예에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걸 굉장히 경험을 많이 합니다. 돈을 내면 또 시집도 내주고 하다 보니까 질적 저하가 발생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전체 시와 시인에 대해 자칫 오해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점은 분명 안타까운 점입니다.”
 
  이 같은 부작용이 나타남에 따라 일각에서는 문예지 신인상, 신춘문예 등 등단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2012년 《문화정책논총》 제26집 2호에 수록된 〈문예지에 대한 문학 작가의 인식과 정책적 대안〉 논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207명 중 53.1%인 110명이 현 등단 제도가 ‘문제점이 있지만 인정한다’고 답했다. 31.4%인 65명이 ‘보완해 시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매우 만족한다’와 ‘만족한다’를 선택한 경우는 12.1%에 불과했다.
 
  나머지 87.9%는 각자 체감 정도는 달라도, 현 등단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203명 응답자 중(중복응답) 등단 제도의 ‘심사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60.6%로 가장 많았다. ‘너무 (신인작가를) 자주 뽑는다’고 답한 비율도 51.2%로 두 번째였다.
 
 
  “치어까지 모두 건져냈다”
 
  물론 한때는 ‘등단 장사’가 잘되는 문예지들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등단 장사’를 하는 월간·계간 종합문예지 기준, 한번 잡지를 발행할 때마다 신인작가들을 무더기로 배출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문예지 가격은 1만원 안팎이고, 1명당 수십 권 내지 수백 권을 구매했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정도 수익이 나온다. 이와 관련 송준영 《시와세계》 발행인의 지적이다.
 
  “사실 이게(신인작가에게 자기가 등단한 문예지 구매를 유도하는 것) 문인으로서 대단히 예민한 구석입니다. 그래서 저희 《시와세계》는 물론이고, 문학의 원칙을 지키는 대부분의 문예지는 강요·선약 절대 안 합니다. 넉넉잡아 한 100여 곳은 안 그러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거명은 못해도, 몇 군데 보면 시·소설·수필·시조로 나눠서 매달 10명 가까이 등단시키는 곳도 있어요. 책을 못 찍을 정도로 잡지사가 빈약해지면 그런 경우가 생깁니다. 또 이게 자꾸 반복이 되면 경영이 고약해지고 책도 이상해지죠.”
 
  그런데 등단 장사로 세를 이뤘던 문예지조차 지금은 ‘사양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은 “이른바 ‘신인 장사’ 하는 문예지들조차 악전고투하는 게 현실”이라며 “자원(응모자)이 고갈돼서 어렵다는 비명 같은 이야기가 들려온 게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비밀도 아니죠. 심지어 어장에다 비유해서 ‘치어까지 다 건져낸 터라 이렇게 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니까 양자가 거래하는 걸 뭐라 할 수도 없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어렵다고 해요. 신인 장사, 거의 다 사양길이라고 봐요. 그렇게 해서 살아남을 곳 이제 얼마 없을 거예요.”
 
  간단히 말해, 해당 문예지들이 아직 숙련이 덜 된 작가 지망생들을 ‘싹쓸이’ 하듯 등단 장사로 데뷔를 시켜서 전체 수요가 줄어들게 됐다는 뜻이다. 궁여지책 또는 장삿속으로 흘러갔던 함량 미달의 문예지들도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목’ 문예지들의 형편은 어떨까. 현재 이 부이사장이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은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는 손꼽히는 전통 문예지다. 그런 《월간문학》조차도 외부 판매 수입은 적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우리 《월간문학》도 문인협회 기관지라서 회원 작가들 회비로 제작하는 정도입니다. 작가 회비가 《월간문학》을 살려주는 것이죠. 그래도 시중에서 팔리는 것은 월 200부도 안 됩니다. 우리가 총판(도매상)에 6개월 단위로 수금을 하는데 월 200부도 안 팔립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자생력 있는 문예지 지원해야”
 
정부에서는 문예지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매년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올해는 총 9억4000만원 규모로 문학단체 및 출판사에서 발간된 51개 문예지에 배정됐다. 사진은 국내 유력 문예지들.
  정부에서는 문예지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매년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잠시 중단된 이 사업은 작년 여름 재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3월 13일 올해 해당 사업의 심의결과를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총 9억4000만원 규모로 문학단체 및 출판사에서 발간된 51개 문예지에 배정됐다. 적게는 백만원대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배정 금액은 오직 작가 원고료로만 집행 가능하다.
 
  이 부이사장은 “정부에서 무턱대고 지원하면 문예지들이 또 난립할 것”이라며 “모든 문예지에 다 지원할 수 없다면 기준을 더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문예지이기 때문에 돈 받아야 할 명목은 없는 거예요. 그래도 30~50년 신산고초를 겪으며 생존해 온 문예지들은 전통과 역사를 따져서 지원해야 합니다. 또 이전부터 작가들에게 꾸준히 고료를 지급해 온 ‘자생력 있는’ 문예지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개인이 수익을 내는 상업지가 아닌, 공적 성격이 강한 문학단체 기관지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고형렬 《현대시학》 편집주간은 “순수문예지가 생존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시장에 내던져질 수밖에 없다. 독자가 사 봐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상업성과 문학성 사이에) 딜레마가 있는 건 사실이다.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문예지, 치열하게 아이템을 개척해 내는 문예지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언제까지 국고 보조로 문예지 발간을 도와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정홍수 문학평론가의 말이다. “공공기금으로 문예지를 꾸려가는 시스템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요.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문예지가 자생력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문화적인 일이니까 도와야 한다’ 이게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일반인들은 문예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잖아요. 자기들끼리 읽고 마는 식의 구조라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문학이라는 게 원래 세상과 함께하는 거잖아요. 잘못된 게 있으면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흐름을 부추기고, 어떤 방향이든 문예지들이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재미없는 문예지
 
2015년부터 작년까지 종간·휴간에 들어간 전통 계간 문예지들. 왼쪽부터 《작가세계》 《문예중앙》 《세계의 문학》. 사진=조선DB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09년 12월 발표한 〈문예지 정책 수립을 위한 소비자 실태 조사 연구〉 논문에 따르면, ‘1년에 문예지를 구입하는 횟수’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36.4%의 응답자(103명)가 ‘구입하지 않는다’, 21.6%의 응답자(61명)가 ‘1번 이하’라고 밝혔다. 총 응답자 283명 중 절반 이상이 1년에 한 번 이하로 문예지를 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문예지를 읽지 않을까. 동일 자료에서 앞으로도 문예지를 사볼 의향이 없다고 답한 114명(중복응답)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45.8%가 ‘재미가 없어서’라고 이유를 꼽았다. 그 밖에 ‘별로 얻을 내용이 없어서’(21.7%), ‘관심이 없고 가격이 비싸서’(19.3%, 18.1%) 등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재미가 없다’는 말은, 결국 문예지 종수는 많아도 구성·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진다는 뜻이다. 문예지마다의 개성이나 차이점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작년 9월 2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문학 토론회에서 “요즘 문예지는 추구하는 가치가 다 똑같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그러다 보니 문예지에 실리는 작가들도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일부 작가를 제외하고 수많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독자에게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다양한 취향을 가진 독자가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결국 독자가 문학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희숙 《문학선》 편집주간은 “문예지들은 자금 문제 외에도 기획·편집의 어려움을 겪는다”며 “개별 편집위원들에게 신선하고 자율적으로 기획할 수 있도록 편집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발행인의 간섭 없이, 젊은 편집위원들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 주간의 말이다.
 
 
  경영권과 편집권의 분리 필요
 
  “편집위원들에게 자율적인 편집권이 주어져야 사회와 문단 상황을 반영해 지면을 풍부하게 기획할 수 있어요. 저희 《문학선》은 발행인의 개입이 많지 않아서 편집위원과 항상 회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기획했습니다. 좋은 문예지가 되기 위해서는 지켜야 되는 정도(正道)가 있어요. 원칙이 틀어지면 문예지가 갑자기 안 좋아질 수도 있죠. 자금 문제로 오늘 내일을 기약할 수 없지만, 이류·삼류로 떨어지면서까지 정통성을 포기할 수는 없죠. 그러면 접는 게 낫죠.”
 
  문예지의 인적 구성은 대개 자금 조달과 발행 전반을 총괄하는 발행인·편집인과 세부 기획에 들어가는 편집장·편집주간·편집위원들로 구성돼 있다. 이때 기획을 담당하는 편집자들이 경영진의 문학적·상업적 요구를 존중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율성을 갖춰 개성 있는 문예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 관계가 적절히 유지되지 않으면 문예지는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고, 출판사의 판로 확장과 권위 형성을 위한 지면이 돼버린다.
 
  앞서 인용한 2012년 《문화정책논총》 관련 논문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편집위원회는 출판 자본의 요구와 지향에 부응하는 인적 구성을 갖게 된다. 이는 문학적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조명하기보다는, 이미 일정한 고정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인기 작가를 중심으로 원고를 청탁하는 경향을 강화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문예지의 원고 청탁이 해당 출판사가 단행본을 발간하고자 하는 작가나, 발간 계획이 있는 작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문예지에 수록되는 비평도 자사에서 단행본을 발간한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주례사 비평’이라는 신조어가 출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홍수 문학평론가의 진단이다. “대형 출판사들이 투자 개념으로 문예지를 만들어 작가도 발굴하고 비평을 통해 지원도 합니다. 그렇게 형성된 문예지의 영향력을 통해서 단행본을 발간하고 판매합니다. 몇 년 전부터 일각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그 (문학권력의) ‘고리’를 끊으라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각 출판사가 자신의 판단으로 상업적 결정을 하는 거니까 중단하라고만 할 수도 없는 일이죠.”
 
  종간한 《세계의 문학》 대신 2016년 8월 민음사에서 새롭게 출범한 문예지 《릿터》의 책임편집자 서효인 시인 또한 작년 5월 22일 자 《북DB》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문예지의) 내부 조율은 편집권과 경영권의 분리인 것 같아요. 일단 편집권은 편집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경영진은 편집을 잘 할 수 있게 물리적 보장을 해주죠. 원고료와 제작비를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그 안에서 편집은 자유롭게 합니다. 다만 이익을 내야 하는 회사의 조직원이라는 데에서 일종의 긴장감은 있어요. 잡지로 눈에 띄게 상업적 이익은 못 보겠지만, 큰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요.”
 
 
  풍족한 재정보다 문제의식이 우선
 
고형렬 《현대시학》 편집주간은 “이제 몇몇 대형 문예지들이 외곬으로 존재하면서 마치 주체·권력인 양 하는 시대는 끝났다. 문예지는 새로운 가능성을 담는 그릇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조선DB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 문예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뭘까. 앞서 인용한 2012년 《문화정책논총》 관련 논문에 따르면 213명 응답자(중복응답) 중 가장 많은 52.1%인 111명이 ‘배타적 엘리트주의’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 뒤로 ‘필자 선정 기준의 모호’가 48.8%, ‘편파적 문학상 운영’이 48.4%, ‘상업주의 추구’에 대한 지적도 39.9%나 됐다.
 
  반면 발전가능성이 높은 문예지의 조건과 관련, 응답자(중복응답) 중 가장 많은 54.9%가 ‘예리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꼽았다. 그 뒤로 ‘참신한 감각’이 49.7%, ‘문단의 호평’이 40%, ‘파벌을 가리지 않는 공정성’이 33.7% 순이었다. ‘풍부한 자금력’을 선택한 비율은 22.9%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결국 ‘엘리트 위주의 편파적인 지면’이 아닌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참신하게 보여주는’ 문예지를 선호한 것이다. 이는 사실 문예지의 원초적인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문예지에서 돈보다 중요한 게 ‘사회·문단을 향한 문제의식’이라는 점을,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고형렬 《현대시학》 주간은 “한국 문학의 전체 토양은 엘리트 구조가 아니다”라며 “이제 몇몇 대형 문예지들이 외곬으로 존재하면서 마치 주체·권력인 양 하는 시대는 끝났다. 문예지는 새로운 가능성을 담는 그릇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년 일본의 제일 오래된 잡지인 《문학》도 종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시대에 적응하고 끝없이 변화할 때만 문예지도 살아남는다. 1만명의 작가가 저마다 목소리를 다양하게 내고, 문예지가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준영 《시와세계》 발행인도 “사회적 환경에 따라 새로워지고 실험적으로 나가는 문예지들은 사실 외롭다”며 “그래도 사명감을 갖고 펴내는 좋은 문예지들도 많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생활밀착형’ ‘소수정예화’
 
젊은 감각의 신생 문예지들. 왼쪽부터 《쓺》 《미스테리아》 《더 멀리》. 사진=조선DB
  오늘날 문예지 시장은 등단 장사의 병폐, 자금력 부족, 편집권 독립 문제 등 여러 고민거리를 안고서 생존을 위해 다시 변모하고 있다. 노쇠한 기존 문예지들이 물러난 빈자리에 이른바 ‘젊은 문예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신생 문예지들은 신경숙 표절 논란, 문단 성추문 사태, 문학의 권력 문제 등 3년 전부터 지금까지 기성 문단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2015년 7월 가격·구성·디자인에 파격을 준 격월간 소설 전문지 《악스트》 창간을 시작으로, 추리소설 장르에 특화된 《미스테리아》, 사회 현안에 대한 문학적 탐색을 시도한 《릿터》 등이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밖에 문학의 공공성과 실험성 탐구를 목표로 한 《문학3》, 문학의 본질을 고민하는 정격 담론지 《쓺》,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소녀문학》, 고양이의 시선으로 도시 문제에 접근하는 《젤리와 만년필》 등 독립 문예지들도 있다.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일과를 끝내고 써내려간 글을 모은 《영향력》, 책이 베개처럼 편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펴낸 《베개》, 독자가 직접 창작자로 나서는 문학 웹진 《비유》도 나왔다.
 
  이와 관련 고영직 《비유》 편집장은 지난 1월 18일 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독자들이 작가가 돼 출간한 독립잡지들은 많이 늘어났다. 이들은 현재 동시대, 이곳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담아내고자 한다”며 “이런 현상은 글 쓰는 게 등단 작가들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확실히 지났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백다흠 《악스트》 편집장은 “전통 문예지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독립성을 강조한 문예지들이 소소하게 나오는, 이 두 가지 갈래로 문예지 시장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사진=조선DB
  반년간 문예 담론지 《쓺》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최하연 시인은 “문예지 시장 자체는 전반적으로 위축됐지만 동아리·소모임 등 취미현상으로 ‘소수정예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독립서점이 많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 듯하다”고 말했다. 최 국장의 말이다.
 
  “문예지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던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문학 전문 출판사 한두 곳을 제외하고 상업 문예지들은 아마 다 폐간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네요. 대신 일종의 문화운동, 생활밀착형 문학으로 변신하는 거죠. 이제는 시장성과 관계없이 문학성을 지켜나갈 보루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게 저희 《쓺》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글을 발표하고, 출판사 압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비평을 실을 수 있는 문예지가 되고자 했습니다. 비록 읽는 사람은 극소수여도 문예지의 역할을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죠. 그래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전위란 무엇인가’ ‘예술성과 대중성의 문제’ ‘문학공동체의 문제’ 등을 특집 기획으로 다루면서 한국문학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격월간 소설 전문지 《악스트》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백다흠씨는 “패션 화보와 문학이 만나는 잡지도 곧 창간이 된다더라”며 “전통 문예지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독립성을 강조한 문예지들이 소소하게 나오는, 이 두 가지 갈래로 문예지 시장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백 편집장의 말이다.
 
  “저희도 계속 새 문예지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더 많은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타 장르와의 합작도 필요하고요. 저희 《악스트》도 사명감을 갖고 문학을 더 많은 대중에게 쉽게 전하는 ‘전초기지’가 되겠습니다. 문학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벗기고, 독자들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게 모든 문예지가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요.”⊙
등록일 : 2018-05-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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