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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서 막노동꾼으로 한 코메리칸의 46년 투쟁

글 |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두 살, 네 살배기 두 딸에게는 과자 사러 간다고 속이고 기약 없는 이별을 했습니다.”
   
   김태준(83)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972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기자직을 내던지고 아무 연고 없는 미국에 첫발을 디딘 후 46년간의 투쟁 같은 삶을 되돌아보던 중이었다. 자리 잡히면 아이들을 데려오리라 마음먹고 아내와 단둘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3년간 김씨는 기름 넣어주는 주유소 직원으로, 아내는 가발가게 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죽도록 일했다”고 회상했다.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감내하며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돌아왔다. 그렇게 차곡차곡 3년간 모으자 두 딸을 데려올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최근 그는 자서전 ‘코메리칸의 부모님 전상서’를 냈다. 책은 고단한 시대를 뚫고 살아온 세대의 초상을 그대로 투영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를 씨줄로, 칡뿌리를 먹어가며 보릿고개를 넘긴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일제 징용, 그리고 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들 등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날줄로 삼아 직조한 책은 한 개인의 자서전을 넘어 시대의 만화경처럼 읽힌다.
   
   그의 성공기는 이민사회에서 큰 화제였다. LA중앙일보에는 이민 수기가 우수작으로 당선돼 연재도 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미국에서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해 주유소와 숙박업 사장으로 우뚝 서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미국 정착 4개월 만에 허름한 중고차를 샀고, 6개월 만에 주유소를 인수했으며, 몇 년 후엔 디즈니랜드 부근에 30개의 객실이 딸린 모텔을 인수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두 딸은 모두 UC버클리를 나와 의사가 됐다.
   
   경남고, 서울대 사범대, 조선일보 기자. 그가 미국에 가기 전 걸어온 길이다. 사회부 기자로 근무 당시 일명 ‘송추 간첩사건’을 취재하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실패한 간첩 생포 사건을 ‘송추 간첩사건의 문제점-독 안에 든 쥐와 서투른 경찰과…’라는 제목의 해설기사로 지나치게 상세히 쓴 것이 문제가 됐다.
   
   “이틀간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잠을 한숨도 안 재우면서 구타와 심문을 하더군요. ‘너 하나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할 수 있어’ 협박도 당했습니다. 반공법 위반, 이적죄 운운하다가 결국 풀려났습니다.”
   
   김태준씨의 인생은 모험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다. 회사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38세에, 그것도 학력과 이력을 깡그리 내던지고 맨손으로 미국행을 택한 용기와 배짱은 쉽지 않다. 힘든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신문사가 내 평생직장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미국에서 뭔가 험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기자 9년 차 때 출근 전 새벽시간을 활용해 자동차정비기능사 3급 자격증을 취득해둔 것도 도움이 됐다.
   
   김씨의 성공 비결은 “뭘 해도 최선을 다하자”다. 주유소에서 일할 당시엔 주유하는 동안 보닛을 열어 팬벨트, 배터리, 라디에이터 상태를 점검하고 유리까지 닦아주면서 단골 고객을 늘려갔다.
   
   한국서 37년, 미국서 46년.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산 시간이 더 많지만 “나는 미국에서 영원한 이방인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모교인 경남 양산시 동산초등학교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기증하고 있다.
등록일 : 2018-03-12 08:43   |  수정일 : 2018-03-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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