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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김사복씨는 누구인가?

“김사복씨는 자기가 문세광을 태워다 줬다고 말했다”

⊙ 문세광, 조선호텔에서 국립극장으로 갈 때 〈택시운전사〉 실제 인물 김사복씨 차 이용
⊙ 김사복씨 아들, “아버지 차 번호는 1091, 1092 그리고 8484”, 문세광이 타고 갔던 차 번호(서울2바1091)와 일치
⊙ “문세광 사건 때 김사복씨 조사…, 함석헌·계훈제 등과의 관계는 몰랐다”(이용택 전 국회의원)
⊙ ‘김사복은 한민통 간첩’ 주장 나와(재미 5·18 연구가 김대령씨)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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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광주사태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씨를 태우고 광주로 내려갔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송강호 분)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런데 김사복씨는 1974년 8・15 저격사건 당시 저격범 문세광을 조선호텔에서 장충동 국립극장까지 태우고 갔던 호텔택시의 실소유주였다. 이 일로 김사복씨는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인기를 끌면서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극 중 택시운전사 ‘김사복’에 관심이 쏠렸다.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실명인지, 과연 실존 인물인지….
 
  8월 5일 트위터에 자신이 김사복씨의 큰아들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저는 김사복씨 큰아들입니다. 어제 저의 아들과 이 영화를 보고 늘 제 안에 계셨던 영웅이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버님을 잊지 않으시고 찾아주신 위르겐 힌츠페터 씨에게 깊은 감사함을 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작진 모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김승필씨가 올린 이 글을 두고 한동안 그가 정말 김사복씨의 아들인지 의심하는 얘기들이 인터넷에 돌았다. 하지만 이런 의심들은 김승필씨가 김사복씨 관련 사진들을 게시하고, 당시 팔레스호텔이나 조선호텔 관계자들이 김사복씨와 관련된 증언들을 하면서 잠잠해졌다.
 
 
  “호텔택시 3대 운행”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는 지난 9월 6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독일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전을 관람했다. 사진=뉴시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사복씨는 1970년대~1984년 호텔택시, 즉 호텔 투숙객들을 상대로 하는 콜택시를 운영했다. 김승필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호텔택시를 하셨다. 당시 1984년, 1988년 올림픽을 겨냥해서 서울시 운수과에서 호텔 규모에 따라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차에 면허를 내줬다. 아버지는 회현동의 ‘파리스 호텔’ 명의 차를 지입식으로 운수업을 한 거다. 차종은 영화에 나온 브리사나 포니 그런 게 아닌 중형급 차였다.
 
  아버지가 운행하던 차가 총 3대였다. 하얀 넘버 두 대와 초록색 넘버 하나. 번호는 1091, 1092 그리고 8484로 기억한다.”
 
  1978년에 도입된 호텔택시는 호텔에 소속된 형태로 예약을 받아 손님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일반 차량과 번호판 색깔은 달랐지만, 차 지붕 위에 택시 표시가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고급 승용차로 인식하기 딱 좋았다.
 
  김승필씨는 “당시 아버지는 외국 언론사, 광화문 일대 공무원 등과 거래했다”면서 “능수능란하지는 않았지만, 영어를 좀 하셨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아버지를 소개했다”고 회고했다. 김승필씨에 의하면, 독일 ARD-NDR 함부르크 지국 소속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씨를 김사복씨에게 소개한 사람은 히로세라는 일본인 기자였다고 한다. 위르겐 힌츠페터의 《광주봉기》에도 “우리를 안내할 차를 운전하기 위해 김사복이라는 한국 사람이 우리가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배우 송강호 씨가 기사식당에서 다른 기사로부터 얘기를 듣고 약속 장소로 먼저 나가 힌츠페터를 붙들고 엉터리 영어로 “광주? 돈 워리, 돈 워리! 아이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말하는 장면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는 김사복씨가 초록색 브리사 택시를 모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것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김승필씨는 검은색 고급 승용차였다고 증언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진도 제시했다.
 
 
  “같은 민족끼리 어떻게 죽일 수 있냐”
 
  김승필씨에 의하면, 광주에 다녀온 후 김사복씨는 “같은 민족끼리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며, 어떻게 총에 칼을 꽂아 찌르고, 총으로 쏘고 그럴 수 있느냐”면서 격분했다고 한다. 김승필씨는 “평소에도 술을 좀 드셨는데 그 일 이후 엄청 술을 드셨다. 광주 일로 쇼크를 받으신 거다. 피터(힌츠페터-기자 주) 아저씨와 광주에 가서 소신이 발동해 진실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어렵게 김포공항까지 모셨는데 마음 편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했다.
 
  김사복씨는 1980년 5월 20일과 5월 23일 두 차례 힌츠페터 씨와 광주에 다녀왔다. 힌츠페터 씨는 광주의 참상을 담은 필름을 과자통에 담아 반출했다. 이 필름이 외신을 탔고, 후일 다시 국내로 반입되어 들어와 대학가에 유포되면서 386세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김승필씨는 김사복씨가 힌츠페터 씨, 함석헌 옹, 계훈제씨 등 재야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도 공개했다. 이 사진을 보고 힌츠페터 씨의 부인이 사진 속 외국인이 힌츠페터 씨임을 확인해 주었다. 김승필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게 입증된 것이다.
 
  김사복씨와 함께 일했던 이들의 증언도 나왔다. 당시 조선호텔 직원이었던 이추열씨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그때 외국 손님이나 바이어가 오면 모시고 가고 그랬던 분이다. 호텔 앞에 가면 차들이 대놓고 영업을 했다. 도어맨들이 손님 불러주고…. 그때 당시 한 세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김사복씨였다. 제일 매너가 좋았고, 굉장히 젠틀한 분이었다. 책임감이 있고….”
 
 
  “김사복은 한민통 간첩” 주장 나와
 
  김승필씨가 말한 김사복씨의 사연은 영화 〈택시운전사〉의 흥행, 문재인 정부가 광주사태 진상 재조사에 나선 분위기 때문인지 큰 화제가 됐다. 김승필씨가 출현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하던 네티즌들은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라며 열광했다.
 
  반면에 광주사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김사복씨의 정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역사로서의 5・18》의 저자인 재미(在美) 5・18 연구가 김대령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사복은 한민통 간첩이 맞다. 첫 번째 증거는 김사복은 힌츠페터가 찍은 영상을 즉시 북한으로 보내어 북한에서 실황 방송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증거는 광주사태 직전 김사복이 함석헌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조총련 산하 조직 한민통의 한국지부 명칭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이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뜻한다. 한민통의 한국지부를 줄여서 국민연합이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전국 규모의 광주사태를 조직하였는데 그 우두머리가 함석헌이었다.
 
  이 사진은 조총련이 한민통 한국지부를 도와 광주사태를 일으킬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김사복이 함석헌을 만나 함께 공작하였음을 보여준다. 평범한 택시운전사가 함석헌을 만날 이유가 달리 있었겠는가? 함석헌도 평범한 택시운전사와 포즈 잡고 사진 찍은 것이 아니라, 산에서 한민통 거물과 같이 음모 꾸미면서 한 장 찍은 모습이다.
 
  힌츠페터의 5월 20일 자 영상에서 힌츠페터 일행이 샛길에서 북한군과 조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샛길은 군경도 모르고 빨치산만 아는 샛길이라고 하였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사복이 광주사태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광주 지리를 광주의 택시운전사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9월 4일 페이스북)
 
  김대령씨의 이런 주장은 인터넷과 SNS를 타고 확산됐다. 하지만 김대령씨의 주장은 엄밀하게 말해 ‘증거’라기보다는 ‘추론’의 성격이 강하다.
 
  힌츠페터씨는 《광주봉기》에서 5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광주사태 소식을 들었다고 썼다. 그런데 김승필씨는 아버지 김사복씨가 힌츠페터, 함석헌 옹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적어도 1980년 5월 18일 이전에 찍은 걸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맞다면, 힌츠페터 씨는 광주사태 이전에 국내에 들어와서 김사복씨 및 재야인사들과 만났다는 얘기다. 정황상으로 보아도 이 사진이 5・18 이전에 찍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5・18 이후 힌츠페터 씨는 광주사태를 찍은 필름을 반출한 후 서둘러 출국했고, 이후 김사복씨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비상계엄하의 엄중한 시기에 북한산(당시 함석헌 옹 이웃집에서 살았다는 네티즌이 인터넷상에서 이 사진을 보고 북한산이라고 주장)에서 함석헌・계훈제씨 등 당대 거물급 재야인사들과 어울린 것을 보면, 김사복씨는 단순한 ‘소시민(小市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유신체제나 신군부 집권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야성(野性)이 강한 인물이었다는 얘기다.
 
 
  문세광, 국립극장 갈 때 김사복씨 차 이용
 
문세광 사건을 보도한 1974년 8월 17일 자 《동아일보》. 기사 아랫부분에 김사복씨의 이름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육영수 여사 살해범 문세광.
  김사복씨가 수상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1974년 8월 17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이 기사에 의하면, 문세광은 8월 15일 아침 8시 조선호텔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급한 볼일이 있으니 리무진 한 대를 불러달라” “중요한 손님을 모시고 장충단 국립극장에 갈 일이 있으니 30분만 전세 내자”고 요청했다. 데스크 김문희씨가 “이 호텔에는 전용차가 없다”고 했지만, 문세광은 계속 졸랐다. ‘김사복’이라는 이름은 그다음 대목에서 등장한다.
 
  〈김씨(조선호텔 안내데스크 김문희씨-기자 주)는 범인 문의 끈질긴 요청으로 도어맨인 엄성욱(36)씨에게 범인을 소개, 마침 다른 손님을 태우고 온 서울2바1091 포드20M에 태워주었다. 이 차는 서울 회현동 1가 92의 6에 있는 팔레스호텔 소속 콜택시로 운전사 김사복(金砂福・41)씨 대신에 스페어운전사였던 황수동(32)씨가 운전하고 있었다.
 
  문은 이 차를 타고 국립극장으로 가면서 운전사 황씨에게 1만원을 주고 식장 정문 앞에 내려 귀빈인 것처럼 운전사 황씨로부터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승필씨는 자기 아버지가 운행하던 차량에 대해 회고하면서 “번호는 1091, 1092 그리고 8484로 기억한다”고 증언한 바 있다. 스페어운전사(보조운전사) 황수동씨가 조선호텔에서 국립극장으로 문세광을 태우고 갔던 콜택시 번호와 일치한다. 호텔택시제도가 도입된 것은 1978년이지만, 김사복씨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그러한 영업을 해오고 있던 셈이다. 문세광이 식장 정문 앞에 내려 귀빈인 것처럼 운전사 황씨로부터 정중한 인사를 받는 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콜택시가 택시 표식이 없는 검은색 대형 포드 승용차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두고 김대령씨는 “1974년에 대형 포드 M-20 승용차 석 대 가지고 있으면 큰 부자였다. 김사복은 그 차를 자기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한민통 자금으로 구입한 것이었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김사복이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했던 이유는 한민통 공작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조총련계 한민통은 미국지부와 한국지부가 있었다. 1970년대에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했으면 좋은 직장이 넘쳐났을 때인데, 누가 택시운전사를 하는가? 운전사는 운전밖에 배운 게 없는 사람이 가지는 직업이었다. 김사복은 한민통의 공작 거점 확보를 위해 운전사로 위장한 공작원이었다.
 
  1975년 8월 15일 오전 8시40분 김대중의 한민통 청년동지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러 출발하기 위해 조선호텔 정문 앞에 나타난 바로 그 순간 절묘하게 김사복의 차가 호텔 정문 앞에 도착했다.〉
 
 
  “함석헌 등과의 관계는 몰랐다”
 
김사복씨를 조사했던 이용택 전 국회의원.
  물론 《동아일보》 1974년 8월 17일 자 기사에 의하면,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이 김사복씨의 콜택시를 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날 ‘서울2바1091 포드20M’ 승용차를 운전한 것도 김사복씨가 아니라 보조운전사 황수동씨였다. 김대령씨는 김사복씨를 ‘한통련 공작원’이라고 단정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8・15 저격사건 후 문세광을 조사한 사람은 김기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전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요원으로 수사에 참여했던 이용택 전 국회의원에게 당시 문세광을 태우고 갔던 보조운전사 황수동씨나 원래 운전사인 김사복씨를 조사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 전 의원은 ‘김사복’이라는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 의원은 “황수동씨는 조사하지 않았고, 김사복씨는 내가 직접 조사했다”고 말했다.
 
  “문세광이 어떤 차를 타고 조선호텔에서 국립극장으로 갔는지를 조사하다 보니, 김사복씨의 차를 타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사복씨가 공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조사했다. 김사복씨는 자기가 문세광을 태워다 줬다고 말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특별한 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아서 풀어줬다.”
 
  이 전 의원에게 “김사복씨가 함석헌・계훈제 등 재야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몰랐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6년 후 김사복씨는 광주사태가 터지자 자기 차에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갔다. 이번에는 1974년이나 영화 〈택시운전사〉와는 달리 ‘우연’이 아니었다. 힌츠페터 씨도, 김승필씨도, 김사복씨 힌츠페터 씨는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으며, 김사복씨는 광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진정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한국 현대사의 물굽이를 바꾼 두 사건에 6년의 시차를 두고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거듭 등장하는 것은 참 공교로운 일이다. 김사복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성실하고 정의감 강한 소시민이었을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재야인사들과 교유했던 민주화운동의 동조자였을까? 아니면…. 분명한 증거 없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쉽게 단정 지을 생각은 없다.
 
  위르겐 힌츠페터 씨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택시운전사〉 마지막에도 나오는 것처럼, 생전의 힌츠페터 씨는 ‘내 친구 김사복’을 무척 만나보고 싶어 했다고 한다.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는 “1984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가능하다면 위르겐 힌츠페터 씨의 추모비가 있는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으로 옮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는 광주사태 관련 재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광주사태에 대한 조사는 1980년 이후 이미 4번이나 했다. 그런데도 굳이 재조사를 하겠다는 주된 이유는 계엄군의 헬기 기총 소사(掃射) 의혹, 발포명령자 등을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 앞에 국가안보가 절체절명의 위기 아래 있는데 37년 전 과거사에 매달려야 하는 국방부를 보면 가긍(可矜)하기 짝이 없다.
 
  이번 재조사가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광주사태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이번 기회에 공론화시켜 보는 것이다. 예컨대 아무리 터무니없는 소리 같아 보인다고 해도, 북한군 특수부대 침투설이나 이른바 ‘시민군’의 무장 및 병기 탈취 경위 등도 함께 살펴보자는 얘기다. 김사복씨나 힌츠페터 씨에 대한 이런저런 의혹들도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 희생된 분들이나 김사복씨, 힌츠페터 씨를 욕보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광주사태를 ‘5・18민주화운동’으로 보는 시각과 대척점에 있는 주장들도 냉정하게 살펴보자는 얘기다. ‘역사의 진실’은 권력을 쥔 쪽이 자기의 주장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형사처벌한다고 해서 그에 대한 이의 제기가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번 기회에 광주사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살펴보아야만, 광주사태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진상규명이 가능할 것이다.⊙
등록일 : 2017-10-06 오전 11:42:00   |  수정일 : 2017-09-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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