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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풍운아’ 정광택(鄭光澤) 탄기국 공동회장

‘엔터테인먼트 황제’에서 애국시위 총대 멘 80대 ‘열혈청년’

⊙ 탄기국의 리더십으로 태극기들 나온 것 아냐… 애국 세력들의 울분 화산처럼 폭발한 것
⊙ 보수대연합 대표로 애국운동 이끌어… “성금함에 꼬깃꼬깃한 1000원 넣는 손길 보면 눈물 나”
⊙ 6·25 때 미군 하우스보이 생활… 해운업, 조선업, 여행사, 예능회사까지 손 안 댄 것 없어
⊙ 1975년 공연기획사 태원예능 설립… 마이클 잭슨 공연 등 세계적 스타 내한공연 성사시켜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정광택(鄭光澤·82) 전 태원예능 회장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 아파트는 현관 문고리부터 거실 내부까지 온통 태극기다. 정 회장은 권영해(權寧海) 전 안기부장과 함께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세력이 지난해 12월 말을 기점으로 촛불 세력을 압도해서인지 정광택 회장은 잔뜩 고무된 표정이었다. 지금도 ‘열혈청년’인 그의 휴대전화에는 집회 지도부들끼리 주고받는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가 하루 600통씩 쌓인다.
 
  “새벽 두세 시까지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가 온다니까요. 긴박한 보고도 들어오니 폰을 꺼놓고 잘 수도 없고, 자는 동안에도 계속 띵똥~ 하는 소리가 들려 숙면을 취하질 못하죠.”
 
  7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포스터가 거실 벽면을 장식한 그의 안방 서재는 전쟁지휘본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집회 준비 자료로 어지럽다. 정광택 회장은 “좌파와 맞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썼던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그들은 촛불 시위를 ‘민심’이라면서 왜곡 보도한 종편채널이고 자신에게 금배지를 달아준 대통령의 등에 비수를 꽂은 게 ‘가롯 유다’ 같은 새누리당 내 족벌 의원들이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정 회장은 “성경 〈창세기〉를 보면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義人) 10명이 없어서 망했다”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의인은커녕 저마다 ‘대통령병’에 걸려 국민을 선동해 개인적 야욕을 채우려는 지도자들만 득실대고 있다”고 했다.
 
 
  집회 시작 인사말에서 눈물 쏟아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보수단체들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헌재) 인근 안국역 앞에서 개최한 ‘지키자 헌법재판소! 가자 청와대!’ 집회에서 정광택 탄기국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천지
  정광택 회장은 불쌍한 사람들만 보면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는 ‘울보’다. 그는 지난 2월 4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1차 탄기국 집회 시작을 알리는 개회사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연설은 이랬다.
 
  “저는 탄기국 공동대표로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면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대한민국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추위에 떨며 화장실 불편까지 겪어가며 집회에 참석한 분들은 대부분 노인들입니다. 이분들의 손을 잡으면 거친 손에서 고단한 삶이 느껴집니다. 그 손으로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지폐를 성금 모금함에 넣는 모습을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자가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며 “jtbc는 태극기 집회에 나오는 이들이 일당을 받는다는 취지의 의혹 제기 보도를 했다”고 하자 정 회장은 “목욕하면 5만원 준다고 하고, 유모차 끌고 나오면 15만원 준다고 보도를 하는데, 언론이 이래도 되는 건가요”라며 목청을 높였다.
 
  — 최근 ‘언론의 난’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애국시민들의 사랑으로 오늘까지 온 신문들입니다. 신문은 편파, 왜곡, 선동, 거짓말을 해선 안 돼요. 세월호 7시간과 대통령이 무슨 인과관계가 있습니까. 9·11테러 때 미국 국민들이 부시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달려들었나요? 아버지가 죽어도 상주리본을 안 다는 사람들이 세월호 리본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구역질이 나. 탄기국은 조중동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강력한 절독운동을 펼칠 겁니다.”
 
 
  좌파 세력의 온상 ‘토론토’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
 
지난 1월 28일 캐나다 토론토 멜 라스트맨 광장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정광택 회장은 지난 1월 28일 캐나다 토론토 멜 라스트맨 광장에서 토론토 교민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탄핵 반대 집회 소식에 무척이나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는 “토론토에서 탄핵 반대를 한다고 국내 탄핵 반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토론토는 반정부·반체제·용공주의·박근혜 퇴진운동의 본고장이어서 그곳에서의 태극기 집회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민석홍(閔碩泓) 전 경인화학 사장에 따르면, 토론토는 박정희 군사독재를 반대하고 망명 또는 이민 온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최홍희(崔泓熙)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최덕신(崔德新) 외무부 장관, 한신대 설립자 김재준(金在俊) 목사, 친북 성향의 신문인 《뉴코리아타임스》를 발행했던 전충림씨 등이 그들이다. 캐나다 정부가 중공과 북한에 온정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들이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민석홍 전 사장은 “토론토에서도 촛불시위는 연합교회와 호남향우회 등이 주축을 이뤘다”면서 “조국의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않던 교민들과 여러 보수 성향 교회들이 이번 태극기 집회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지도층의 부패에 대해선 신랄하게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지만 야만적인 탄핵은 반대한다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형제는 용감했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탄기국 대변인으로 활동한다. 지난 2월 1일 박근혜 대통령 65회 생일을 맞아 회원들의 격려편지 100만 통을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정광택 회장은 2005년부터 3년간 이철승(李哲承) 전 신민당 총재와 함께 자유민주비상국민회의 부대표의장 등을 각각 역임했다. 또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국민행동본부 상임대표, 어버이연합 총재 등을 역임했다.
 
  — 현재 보수대연합 대표도 맡고 계시고,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탄기국 공동회장으로 계십니다.
 
  “보수대연합은 보수 세력들의 견해를 총결집하는 단체고요, 탄기국은 대통령 탄핵사태에 대응해서 조직한, 말하자면 태스크포스 조직이라고 볼 수 있어요. 탄핵 심판이 끝나면 탄기국을 해체하고 보수대연합의 기치 아래 다시 ‘헤쳐모여’를 할 겁니다. 권영해 안기부장은 국방부 장관까지 지내신 분으로 국가관이 뚜렷해 평소 존경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분입니다. 우린 나이도 같아서 친형제처럼 지내요. 집회를 마치면 우리의 구호, ‘형제는 용감했다’를 외치며 손바닥을 마주칩니다.”
 
  — 집회의 실무적인 총괄은 박사모 정광용 회장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지난 2월 1일에는 회장님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65회 생일을 맞아 청와대로 박사모 회원들의 편지 100만 통을 전달하셨지요?
 
  “정광용 회장이 탄기국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실무를 총괄하고 있어요. 정광용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투 하나 받은 적도 없는데, 어려울 때만 되면 나타나는 ‘구원투수’ 같아요. 정광용 회장이 집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깜짝깜짝 놀라요. 집회장소와 앰프 등 준비물들을 즉흥적으로 판단해 지시하는 것 같은데, 가만 들여다보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판단이었던 거죠. 게다가 젊은 사람이 돈을 모르고 국가관이 뚜렷한 친구입니다. 철인이에요. 하루 2시간 수면에 코피까지 흘려가면서도, ‘시간이 아깝다’면서 식사는 오후 4시에 1번으로 때웁니다. 애국 집회를 하라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낸 선지자 같아요.”
 
  — 지금까지 11번의 태극기 집회가 있었습니다만, 초창기와 비교하신다면.
 
  “지난해 11월 서울역광장에서 1차 집회를 할 때 수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때는 보수 진영이 괴멸된 상태라서 아무도 찍소리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초라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분하고 억울해서 밤새 울었습니다. 4차 집회 때 정광용 회장을 만나 탄기국을 결성하기로 합의하고 본격적인 집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규모가 100배 이상 늘었습니다. 연단에서 보면 참가자 대열 끝이 안 보여요. 연단에서 추위도 잊어요. 숨어 있던 애국 보수가 뭉치는 계기가 된 것이죠.”
 
  — 촛불 집회가 100일을 넘어섰는데, 시들한 느낌마저 듭니다.
 
  “촛불을 들 때 보수 측도 합세하며 국민적 저항이 일어났는데 결과적으로 거짓에 현혹된 거였어요. 특히 jtbc 태블릿PC 보도 때문에 그랬어요. 촛불은 냄비 같지만 태극기는 무쇠솥이라고 할까요. 보수 진영에서 무서운 속도로 결집하고 있고, 촛불은 하향곡선을 걷고 있어요. 이건 기적이고,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신호예요.”
 
 
  연단에 올라오려는 사람들
 
  — 촛불 집회를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젊은 분위기가 나고, 태극기는 올드 하다는 느낌을 줍니다만.
 
  “촛불 집회에는 연예인이 있고, 태극기 집회에는 연예인이 없다, 이거죠. 하지만 태극기 집회는 참가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요. 애국심이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좌파 촛불 집회는 민노총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동원된 군중입니다. 촛불 집회는 전투태세로 왔고, 태극기 집회는 울분을 가슴으로 이야기하러 온 분들입니다. 촛불과 집회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요.”
 
  — 연단 위에서 집회 내내 계속 서 계시는데, 그 연세에 힘들지 않습니까.
 
  “연단 위에 올라오려는 분들, 특히 정치인들은 모조리 연단 아래로 쫓으려고 다리가 아파도 서 있어요. 정치인들, 마이크를 붙들면 놓을 줄 몰라요. 누가 자기를 기억한다고. 5시간이 넘도록 함께한 골프장 캐디를 골프장을 떠날 때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했다니까요. 간혹 연단 아래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시민과 함께하는 정치인이 있는데, 그렇게 얼굴이 달라 보일 수가 없어요. 카메라 기자들도 그런 분들을 찾아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야 합니다.”
 
  정광택 회장은 “집회비용은 100퍼센트 후원금으로 운영한다”며 “매주 집회 때마다 성금함에 돈을 넣어주시고, 박사모 온라인 카페에 입출금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후원금은 주로 차량지원비와 현장에 무대 설치하는 비용으로 나간다”며 “인건비는 자원봉사자들의 식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안 들어간다”고 했다.
 
  — 언제까지 집회를 계속할 계획이신가요.
 
  “탄핵안이 기각되는 날까지 할 것입니다. 탄핵 기각이 우리의 유일한 요구사항이고요. 만약 헌법재판소가 졸속 심판을 하면 거대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입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촛불 집회를 선동하는 종북 좌파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것이에요. 대통령을 무조건 옹호하는 게 아니란 뜻이죠.”
 
  정광택 회장은 “지방에서 없는 돈에 차비 들여 밥 사먹어 가면서 온 노인들이 화장실도 못 가면서 추위에 밤늦게까지 집회를 마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적어도 하나님만은 아실 것”이라며 “나도 집회 끝나고 택시를 잡을 수 없어 서울역까지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고 했다. 정 회장은 “탄기국 지도부가 리더십이 좋아 태극기를 든 애국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며 “애국 세력들의 울분이 화산처럼 폭발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정광택 회장은 “3월은 3·1운동이 일어난 달로 모든 종교계와 연합해 대대적으로 회개운동을 전개하며 국회, 언론, 법원과 검찰이 다시 태어나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펼치겠다”며 “태극기 집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와 애국시민들의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혼신의 노익장 발휘
 
  정광택 회장은 1996년 마이클 잭슨 서울 공연 등 한국 초기 공연 사업을 주도해 온 인물로, 태원F&M(태원엔터테인먼트) 전 회장이다. 태원F&M은 200억원을 투입한 2009년 드라마 〈아이리스〉와 2010년 6·25전쟁 60주년 기념영화 〈포화 속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리고 〈아테나: 전쟁의 여신〉 〈CSI〉 〈프리즌 브레이크〉 등을 통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점령한 국내 최정상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정 회장의 차남 정태원(鄭泰元) 대표는 총 30편의 영화 제작, 700여 편이 넘는 외화를 수입했다. 특히 2001~2003년 〈반지의 제왕〉 시리즈, 〈황금나침반〉 등 다수의 흥행영화를 수입했고,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제작해 한국 코미디 영화의 장르를 개척했다.
 
  특히 지난해 상영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정태원 대표가 ‘사고초려(四顧草廬)’ 끝에 배우 리엄 니슨을 맥아더 역으로 출연시켰고, 이정재, 이범수 등 태원 소속 연기파 배우들이 참여해 7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정광택 회장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촬영장을 방문해 ‘한미 동맹에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고 격려해 뿌듯했다”며 “리엄 니슨은 촬영 전에 맥아더와 6·25에 대해 낱낱이 공부했고, 표정과 말투, 습관은 물론 대머리 가발까지 준비해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 역할을 잘 소화했다”고 했다.
 
  정광택 회장의 일생을 가장 시니컬하게 묘사한 인물은 한일외교의 막후 원로인 최서면(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이다. 그는 2016년 5월 18일 정 회장 팔순연에서 ‘정광택은 깡패 중의 깡패이다. 학생깡패에서 시작하여, 사회깡패 되더니, 정치깡패로 변하고, 이제는 신앙깡패에 이르니, 덕화융성(德化隆盛)의 대로(大路)에 발끝을 내밀었다’고 휘호를 적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지상욱 새누리당 의원의 부친이자 배우 심은하의 시아버지인 지성한(池聖漢) 한성실업 회장(육군과학수사연구소장 역임)은 “정광택 회장은 눈물이 많고, 강하고 뜨거운 분”이라며 “정 회장이 탄핵 반대 집회의 대표를 맡은 것은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관동별곡〉 지은 송강 정철의 13세손
 
1957년 10월, 외아들이었던 정광택은 경희대 재학중 현역으로 입대해 1년6개월을 복무했다. 오른쪽은 정 회장의덕수상고 재학 당시 모습. 사진=정광택 회장
  정광택 회장은 1937년 5월 충남 천안 풍세면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부친 정운한(鄭雲漢·1905~1973) 선생과 모친 김계순(金癸順·1913~1992) 여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정광택 회장은 연일(延日) 정씨로 〈관동별곡(關東別曲)〉 가사작품으로 이름을 날린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13세손이다.
 
  보수적인 가정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정광택은 전농국민학교에서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지만, 스승이나 동기들에게 의리 있는 학생으로 통했다. 1950년 6월 5일, 청량리중학교에 입학한 지 불과 20여 일 만에 6·25가 발발했다.
 
  소년 정광택은 전쟁을 보았다. 온산(溫山) 등지로 피란을 다니며 도처에 쓰러져 있는 시쳇더미 속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체득했다. 이후 폐허가 된 서울 집으로 돌아와 미군의 군용철도수송사무소(RTO) 하우스보이로 들어갔다. 월급도 받고 시레이션도 실컷 먹을 수 있는 데다 미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해 마냥 즐거웠다고 한다.
 
  덕수상고 시절, 정광택은 심한 싸움을 벌여 부모님의 골치를 무던히도 썩였으나 의협심은 남달랐다고 한다. 약자가 얻어맞거나 할머니가 봉변당하는 것을 지나치지 못했고, 성남고와 배구시합에서 성남고 응원단이 덕수상고 교장 선생을 에워싸고 야유를 보낼 때는 성남고 응원단 단상에 혼자 올라가 야유를 퍼붓다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은 “너는 체격도 좋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니, 앞으로 외교관이나 정치가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정광택은 정치가, 외교관의 꿈을 안고 경희대 정외과에 입학했다. 성격이 ‘야생마’ 같았던 정광택은 ‘개천절에 죽으나 한글날에 죽으나, 엿새를 더 사는 것일 뿐’이라며 교내 깡패 집단을 보면 언제나 대항했다고 한다. 185cm의 키에 육중한 체구를 자랑했던 그는 유도와 태권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체중이 실린 ‘원펀치’를 날렸다. 명석한 두뇌와 호감 가는 외모로 여학생의 인기도 끌었다.
 
  정광택은 통학버스에서 이화여대 가정학과에 재학 중이던 원인자(元仁子)씨를 만나 첫눈에 반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다. 그는 한국의 주먹계에서 김두한(종로파) 이후 화랑동우회를 만든 이정재(동대문사단), 이화룡(명동사단) 등 1960년대를 풍미했던 ‘낭만파 주먹’들과 교유하며 드라마 〈야인시대〉를 연상케 하는 시절을 보냈다.
 
  “청량리~강릉 열차를 타면 상이용사들이 목발에 갈고리 손으로 젖 먹이는 여자들에게 연필을 쿡 찔러줘. 사라 이거지. 그러곤 선반의 핸드백을 열어 갈고리 손으로 돈을 빼 가. 뭐, 이런 자식이 있느냐, 갈고리 손을 확 잡아 비틀어 빼버렸지. 좁아터진 열차 칸이 홍해의 물 갈라지듯 쫙 갈려. 작대기로 찌르며 서너 명의 상이용사가 쫓아오면 대항하다가 운 좋게 열차가 정차하면 원주역에 뛰어내려 피하곤 했지.”
 
 
  침몰한 목재운반선 ‘승해호’
 
1996년 10월 11일 저녁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첫 서울공연에서 마이클 잭슨이 우주복차림으로 열창하고 있다(왼쪽). 공연을 마친 마이클 잭슨과 함께한 정 회장. 사진=조선일보, 정광택 회장
  1957년 정광택은 외아들이었지만 1년6개월의 군복무를 통해 성숙했다. 복학 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정광택은 택시 2대를 구입해 미군부대 내 PX를 관리하는 ‘극동교역처’에서 운송사업을 시작했다. 4년 정도 운송사업을 하던 정광택은 “주사위가 묘하게 던져졌다”는 그의 표현대로 해운업에 뛰어든다.
 
  당시만 해도 육로(陸路)의 개발이 미비해 화물선이 항구를 돌며 곡물이나 시멘트를 실어나르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정광택의 친구가 찾아와 “배를 사서 해운업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30대 초반의 혈기로 해운업에 필이 꽂히자 무서운 속도로 추진했고, 1968년 3월 그 친구의 소개로 중고 화물선 500톤급 승해호(勝海號) 1척을 당시 돈 160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첫 사업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는 외아들이 해운업을 하겠다고 하자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아들이 돈 될 만한 물건을 다 내다 팔아가며 자금 마련에 열을 올리자, 손을 들고 말았다. 아버지의 자금 지원까지 합해 간신히 배 수리를 끝내고 1968년 9월 제일승해운업을 설립해 첫 출항을 했다.
 
  항로는 묵호에서 포항. 쌍용양회의 시멘트를 실은 정광택은 기대에 부풀었다.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그 무렵 연안항구 개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 등으로 선적 물량도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1969년 봄 정광택의 인생항로는 ‘변침(變針)’하기 시작했다. 정광택은 묵호항을 오가는 석양(夕陽)의 비릿한 냄새가 나는 어선들을 바라보며 조선소 건설을 꿈꿨다. 당시 묵호항은 쌍용양회의 사일로, 수산센터 등이 들어서며 항구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정광택은 난립한 목선(木船) 건조 위주의 영세 조선소들이 모두 폐쇄돼 어선 수리와 건조를 할 조선소가 전무한 상태라는 데 착안해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마음먹었다.
 
  정광택 회장은 “동해안 항만 개발이 활발한 가운데 묵호항의 영세 조선소 5곳이 문을 닫아 포항 이북의 유일한 국제항 묵호항은 심한 조선소 부족 현상을 빚고 있었다”며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다 내가 착상한 제1공장 부지는 항로에 지장이 없었고, 건설 예정인 방파제만 완공하면 태풍과 해일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정광택은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건설부에 신청했고, 동분서주 끝에 1969년 12월 국방부의 허가까지 받아 700평을 매립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개신교 원로이자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원천안디옥교회 목사는 정광택 장로의 영적 아버지다. 정 장로는 세계적 종교지도자 김장환 목사의 정신을 기린 ‘극동BK장학재단’을 투명하게 운영해 세계적 장학재단으로 키울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은 2006년 11월 2일 이라크 아르빌 지역을 김장환 목사와 함께 방문한 정광택 회장(왼쪽)이 C-130 수송기 내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정광택 회장
  1970년 신년 벽두부터 정광택은 40리 떨어진 돌산에서 발파한 돌을 잠수부를 동원해 묵호항 수심 8m의 바닷속에 던져넣었다. 바다는 밑 빠진 독처럼 흔적도 없이 돌을 삼키기만 했다. 정광택이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작업을 지켜보던 1970년 2월, 그는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배가 침몰했습니다”는 보고를 들었다. 목재를 싣고 가던 승해호가 침몰한 것이다. 보험도 만기가 끝나 보험료 한 푼 챙기지 못하고 폭삭 망하고 말았다. 빈털터리가 된 정광택은 마지막 여력을 다해 조선업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1970년 7월 태풍 ‘올가’가 준공을 앞둔 조선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나, 정광택은 굴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인디안 조선소’를 준공했고,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속초에 제2공장을 건립했다. 이어 영세 조선소 3곳을 사들여 3공장을 준공하며 ‘홍대조선’으로 이름을 바꾸는 등 몸집을 키워나갔다. 이후 정광택의 조선소는 해군 경비정과 어선을 건조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정 회장은 “강원도 묵호와 속초의 1~3공장에 30개의 도크(선가대)가 있었다”며 “최대 조선 능력은 500만 톤급, 수리 선박의 경우는 1000톤급까지 가능했다”고 했다. 1975년부터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 8~10대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 참석했고, 중소형 선박건조 사업을 주도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조선업은 불황이 불어닥쳤다. 1981년 2월 정광택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가 우연히 만난 교포의 권유로 교회로 발길을 돌렸다. 정광택은 보다 현대적인 체제와 시설을 갖춘 사업자에게 홍대조선을 넘기고 1982년 직원 30명의 코스모스여행사를 설립한다. 1982년 9월 정부의 등록제 시행 이후 제1호 등록업체인 코스모스여행사는 조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시절 쌓아놓은 인맥으로 순항했다. 정광택 회장은 “생소한 관광업에 뛰어든 것도 사람을 만나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1985년 둘째 아들 태원씨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연예기획사 인터퍼시픽엔터테인먼트(IPEG)를 설립할 것을 권유하자, 정광택 회장은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고 대표로 취임한다. 부자(父子)가 연예기획 사업에 뛰어들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후 정 회장은 태원예능기획을 설립해 공연기획을 전담했고, 아들 태원씨는 태원엔터테인먼트를 차려 영화 수입·제작에 전념했다. 역할 분담을 한 것이다. 컨트리송의 전설 존 덴버, 가수 패티 페이지, 댄스음악의 신적 존재 엠씨 해머, ‘헤이’를 부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캐롤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알려진 팻 분 등 기라성 같은 글로벌 스타들의 방한이 정광택 회장의 작품이었다.
 
  정광택 회장은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마이클 잭슨은 1996년 10월 11일, 13일 ‘히스토리 투어 인 서울’ 공연에 첫 방한해 잠실주경기장에서 2회 공연을 펼쳤다. 정광택 회장은 “마이클 잭슨은 ‘순간이동’ 등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무대를 꾸몄고, ‘빌리 진’ 등 그의 히트곡에 관객은 환호하고 또 환호했다”고 했다.
 
  정광택 회장은 “미국 가수 폴라 압둘을 초청했을 때, 위독하던 어머니와 장모님이 36시간 간격으로 돌아가셨다”면서 “그때, 외동딸인 집사람이 ‘외며느리인데 어떻게 친정어머니 장사에 갈 수 있느냐’며 시댁에 남아 시어머니 상을 치렀는데 집사람에게 그 미안함과 고마움은 평생을 두고 갚을 길이 없다”고 했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 / 글=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등록일 : 2017-02-24 08:41   |  수정일 : 2017-02-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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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 2017-03-17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6
마이클잭슨 공연이랑 다 좋은데 정신챙겨. 무슨 장로씩이나 되서 똥오줌 못가리고 탄기국 타령이냐? 나도 미국인이냐 소리들을만큼 미국 사랑하고 보수주의자 이지만 박근혜 정말 극혐이다. 박사모 니들은 그냥 미친것들이야
      답글보이기  jot shark  ( 2017-03-18 )  찬성 : 10 반대 : 12
뭐?미국인이냔 말을 들을만큼 미국식이고 보수적라고? 정광택을 미워하나? 박근혜를 미워하나? 탄기국이 미운거냐? 그러면 정신오락가락하는 문재인은 좋아하는가? 앞뒤도 모르고 좌우도 구별못하는 주제에 헛소리다. 무엇을 주장할것인지 부터 잘 챙기고 글을 써라. 아니면 이글을 쓴자는 북괴 사이버 부대원이냐?
로즈셰론  ( 2017-03-04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15
조선티비와 조선펍은 다른가 보다.
자유대한을 시골 좌좀으로부터 지키고
자유통일 이루자
전병택  ( 2017-02-28 )  답글보이기 찬성 : 34 반대 : 27
정광택 장로님, 지난 25일 14차 집회에서 연단에서 서신 장로님을 멀리서 뵈었습니다. 14년 전에 서빙고에서 뵙고 지금, 이토록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헌신하시는 장로님 뵙게 되어 무한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회복과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힘을 모으겠습니다
      답글보이기  가짜개독아웃  ( 2017-03-17 )  찬성 : 7 반대 : 9
가짜 개독들아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고 니들이 원하는게 주님뜻이라고 갖다붙이지 마라. 이렇게 상식과 원칙에 벗어난 짓을 하니까 다음세대를 참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못하는거야. 거짓된 맘몬주의자들 박사모
      답글보이기  jot shark  ( 2017-03-18 )  찬성 : 3 반대 : 4
어이∼ 닉네임 가짜개독아웃. 그러면 니눈에는 인명진이가 진짜 개독 같든? 조ㅈ에다가 대짬바르고 지루박이나 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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