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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게 따지고 직장에 전화하고 40대 딸 방 청소해 주고…한국판 잔디깎이 부모들

글 |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 일러스트 이철원
# 사례 1
   
   H대학 식품영양학과 1학년 김모양의 부모는 자신의 딸을 의사로 만드는 게 목표다. 딸은 성적이 안 돼 의예과 진학에 실패했다. 부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4년제 대학 졸업생이면 누구나 지원가능한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단계는 대학교 1학년 때 고학점 따놓기, 2단계는 의학전문대학원과 밀접한 화학공학과로 전과시키기, 3단계는 의학전문대학원 시험(MEET) 합격시키기, 4단계는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이다. 일단 1단계는 성공했다.
 
부모의 신통한 정보력에 힘입은 김양은 학점 잘 주는 과목을 골라 이수했고, 그 결과 학과 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2단계에서 어그러졌다. 김양이 화학공학에 흥미와 적성이 없다고 판단한 교수들은 김양을 낙방시켰다. 김양의 부모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부모가 나란히 학부장실로 찾아가 “우리 아이 성적이 좋은데 왜 떨어뜨렸냐?”며 대로했다.
       
   # 사례 2
   
   주간조선 인턴사원으로 근무했던 이모양의 부모는 딸이 조금이라도 상처받는 걸 견디지 못한다. 이양은 마마걸이다. 이양의 엄마는 입버릇처럼 “무슨 일이든 엄마한테 말하렴. 우리 딸 힘든 일 있으면 엄마가 해결해 줄게”라고 했고, 그런 엄마는 이양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이양이 회사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자, 엄마가 팔을 걷어붙이고 해결사로 나섰다. 엄마는 이양의 주간조선 상사에게 전화해 따졌다. “우리 아이 창피하게 왜 혼냈냐, 밥을 같이 안 먹고 왜 왕따를 시키냐?”는 내용이었다.
       
   # 사례 3
   
   지난해 전도유망한 한 30대 CEO 최모씨가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숨졌다. 명문대를 나와 회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던 그의 갑작스러운 극단적 선택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최씨의 성장 환경은 누가 봐도 남부러움을 살 만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학벌 좋은 부모는 교양이 넘쳤다. 이렇다 할 사건과 사고도 없었다. 최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극단적 선택의 배후에는 과잉간섭으로 끝없이 채찍질해대는 부모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최씨는 부모의 자랑거리였다. 자랑스러운 아들의 전형으로 키워내기 위한 부모의 간섭은 도가 지나쳤다. 말투며 옷차림을 하나하나 간섭했고 어울리는 친구들, 심지어 여자친구까지 관리했다. 착하고 공부 잘하는 최씨는 그런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는 끝이 없었다. 하나의 성공을 이루면 더 큰 목표를 제시했다. 필사적으로 달려서 목표를 이루면 더 달리라고 또 채찍질해댔다. 최씨는 공허했다. 최씨는 자기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부모를 만족시키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30대가 돼서야 깨달았지만 때가 늦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기 인생을 살기에는 자신도 없고 용기도 없었다.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릴까 두렵고 불안했다. 결국 그의 극단적 선택은, 뒤틀린 인생에 대한 분노를 부모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표출한 결과였다.
       
   위의 사례들은 한국판 잔디깎이 부모들의 현주소다. ‘잔디깎이맘’이란 자녀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들을 앞서서 다 없애주는 미국의 극성 엄마를 말한다. 자녀의 학교가 끝나자마자 고가의 SUV 차량으로 축구장에 데려다주는 ‘사커맘’, 자녀의 주위를 맴돌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주는 ‘헬리콥터맘’보다 더 심한 극성맘을 뜻하는 신조어다.
   
   얼마 전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의 인터넷판에 등장하면서 이 단어는 화제가 됐다. 신문은 최근 1년 동안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자살자가 속출하는 현실을 꼬집으면서, 완벽주의 풍조와 ‘잔디깎이맘’으로 비유되는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성공에만 집착해 ‘실패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앗아가버린 잔디깎이맘들이 자녀들을 작은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자살 사건은 한국의 카이스트와 닮은꼴이다. 카이스트에서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8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대학에서 발생하는 잇단 자살사건들, 그리고 부랴부랴 대학 차원에서 자살예방대책에 나섰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대학에는 올해 초 자살방지 태스크포스와 상담 핫라인이 신설됐고, 카이스트도 자살방지를 위해 학생 상담 시스템을 24시간 가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카이스트에서 대학원생이 자살했다. 과학고 출신에 카이스트 학부를 졸업한 그는 목을 매 숨지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과잉간섭, 교우 관계에 악영향
   
   한국판 잔디깎이맘들은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잔디깎이맘’이라는 용어는 낯설지만, 자녀의 인생에 과잉간섭하면서 성공에 목매는 극성 부모는 예전부터 존재했다. 위의 사례들 외에도 자잘한 사례를 꼽자면 끝이 없다. 잔디깎이맘의 양상은 연령별로 다르다.
 
 “옷 고르는 시간도 아깝다”며 속옷부터 양말까지 풀 코디를 해주는 초등학생 엄마, “네 방 청소 같은 건 신경쓰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해”라며 자녀 방을 매일 청소해 주는 중학생 엄마,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로드매니저 역할을 하는 고등학생 엄마, 대학생이 된 자녀의 수강신청을 대신해주고 교재까지 구입해주는 엄마가 대표적이다.
   
   잔디깎이 부모의 활약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어진다. 자녀의 회사에 전화를 거는 부모들은 주위에 널렸다. 아파서 회사에 결근한다는 전화도 엄마가 대신 해주고, 회식 관련 코치를 하는 아빠들도 많다. “회식 후 일찍일찍 집으로 보내달라”든지, “우리 아이 주량이 포도주 한 잔이니 더 주면 안 된다”는 식이다.
 
결혼 안 한 40대 딸에게 밥해주고 방 청소까지 해주는 70대 엄마도 있다. “집안일은 신경쓰지 말고 시간 있으면 외국어 공부와 자기계발에 쏟아라”는 격려(?)와 함께. 노모의 눈에 30대 딸은 여전히 더 큰 성공을 위해 달려야 하는 아이로 비치는 것이다.
   
   과잉양육은 병이다. 아이는 물론 부모도 불행하게 만든다. 과잉양육은 ‘과잉보호(Overprotect)’ ‘과보호’로도 통용되는데, 학계에서 정의하는 ‘과잉보호’란 ‘자녀를 필요 이상으로 통제하고 간섭하여 자녀의 자율성을 저해하며, 성장단계에 맞지 않게 부모의 보호가 지나쳐 자녀가 할 일을 대신 해주는 태도’를 말한다.
 
부모의 과잉양육은 부작용이 많다. △자녀의 자아정체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나약하고 의존적으로 만들고 △자기중심적으로 만들며 △대인관계와 사회화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부작용이다.
 
과잉양육은 부모·자녀 간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아이는 의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적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데, 부모는 여전히 자녀를 놔주지 않고 좌지우지하려 하니 부딪치는 것이다.
   
   과잉양육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이 폭력과 범죄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학술지 ‘한국청소년상담연구’(2015, vol 23. No.1)에 따르면 부모의 과보호가 폭력성을 부추긴다. 대구·경북지역 중학교 2~3학년 남학생 45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부모로부터 과보호를 많이 받았다고 여기는 학생일수록 분노와 공격성이 높고,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이 많았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교우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법무부 통계전문가 바버라 A. 우데커크는 ‘아동발달 저널’에 실린 글에서 자율성과 친밀성이 부족한 청소년일수록 부모의 간섭이 많았다고 밝혔다. 학창 시절 부모의 의견을 강요받는 청소년들은 졸업 후에도, 사회에 나가서도 주체적인 생각 없이 타인의 의견만 좇는 줏대 없는 인간형이 되는 것이다.
   
   이나미 서울대 의대 겸임교수(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장)는 극성맘들의 부작용 사례를 숱하게 봐 왔다. 30년 가까이 임상 경험이 있는 그는 주간조선과 만나 “고위 계층 부모일수록 잔디깎이맘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모든 걸 부모가 알아서 다 해준다. 이런 엄마는 경제력이 있어 모든 걸 최고로 잘 해주는 걸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5만원짜리보다 50만원짜리 운동화가, 50만원짜리 과외보다 500만원짜리 과외가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 아이가 해달라는 건 다 지원해 주는 거다. 단 조건이 있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다. 이런 경우 대개 어렸을 때에는 큰 문제가 없다. 대학에 가서 문제가 터진다. 부모·자식 간 원수가 되거나, 대학 가서 공부를 안 하고 비뚤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복잡해진 입시제도가 극성맘 부추긴다
   
▲ 한 학원 앞에서 중년의 부모들이 자녀를 대신해 4시간 동안 번호표 줄을 기다리고 있다. 대학생 자녀가 이 학원 강의를 듣게 하게 하기 위해서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부모도 할 말이 있다. 엄마들은 이 시대를 ‘극성맘을 부추기는 사회’라고 토로한다. 극성맘이 확 늘어난 원인으로 매년 바뀌고 복잡해진 입시제도를 든다. 수시전형이 점차 확대되는 대학 입시가 그렇고, 특목고마다 선발요강이 다른 고교 입시도 그렇다. 대학마다 신입생 선발 기준이 제각각인 수시전형 특성상, 각 대학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알아내는 정보가 대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예일대학 교수였던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자신의 책 ‘공부의 배신’에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비판한다.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는가’가 부제인 이 책에서 저자는 ‘좋은 대학’이 학생들을 ‘바보 같은 착한 양’으로 만들었다고 꼬집는다. 입학사정관제로 대표되는 교육 시스템 자체가 아이들로부터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거세해 버린다는 얘기다.
   
   이런 입시제도에서는 엄마의 정보력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고학력 출신으로 머리 좋고 시간 많은 엄마들은 그들만의 네트워크로 발 빠르게 고급 정보를 알아낸다. ‘OO대학이 요구하는 인재상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OO학원이 유리하다’는 사교육 연계 정보는 필수.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는 “너희 아빠 전문직이시니?”라고 묻고,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는 “너희 엄마 전문직이시니?”라고 묻는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런 뼈아픈 현실을 대변한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학부모 이모씨는 “학교마다 입시 요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엄마의 정보력이 없으면 아이 스스로 도저히 입시 준비를 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아이의 성향에 맞는 학원 선택도 100% 엄마의 몫. 이씨는 “학원은 엄마들의 관심사이지, 아이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며 “가장 친한 친구가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무슨 학원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가 가라는 학원에 가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학원 선택이 다가 아니다. 학원 가는 아이를 차에 태워 데려다 주고 데려오기도 필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 성남 분당에 사는 학부모 정모씨는 30분 거리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까지 1주일에 여덟 번 왕복한다. 한 번 수업이 3시간이라 하루에 두 번씩 4일을 왔다갔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하루 종일 아이한테 붙어다니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스스로도 원한다고. 이런 현상이 옳고 그름은 논외다. “다른 엄마들은 다 데려다주는데 왜 엄마는 안 데려다줘요?”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이런 분위기를 당연하게 만든다.
       
   엄마가 모든 선택의 기준인 아이들
   
   과잉간섭을 하는 부모는 자신이 과잉양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과잉간섭이 문제가 되어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부모의 레퍼토리는 한결같다.
 
“아이 때문에 미치겠다. 나는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거의 안 했고, 아이가 하고 싶다는 걸 다 시켜줬다. 그런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것.
 
하지만 내막은 다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고, 부모 자신이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세계적 음악인 S군이 그 경우다. S군은 20대가 되면서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아버지와 대화를 단절했다. 10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들 부자지간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S군은 왜 아버지와 소통단절까지 이른 것일까. 나는 주간조선에 연재하는 ‘新인재시교’를 위해 이들 부자를 취재했다가 기사화하지 않은 적이 있다.
 
 자녀교육의 키워드는 ‘DNA’로 찾아뒀다. 현악기 연주자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DNA로 세계적 음악가로 우뚝 서게 된 스토리였다. 장시간 취재를 마쳤지만 기사화하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교육으로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공시키긴 했지만 ‘행복한 성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S군의 인생은 부모에 의해 통째로 기획된 인생이었다. 이들 부모는 결혼 전부터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진로를 ‘세계적인 현악기 연주가’로 일찌감치 정해뒀다. 아이가 생기자 부모는 계획대로 착착 밀어붙였다. 클래식 태교를 했고, 너무 어려 아이에게 맞는 악기가 없자, 악기를 주문제작해 일찌감치 레슨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이의 연습량을 매일 체크하는 등 아이의 스케줄을 통째로 관리했다. 음악적 끼가 남달랐던 아이는 부모의 기대대로 성공했다. 하지만 20대가 되면서 이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깊어졌고 급기야는 대화 거부 지경이 됐다. S군은 “아버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지만, 아버지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다.
   
   세계적 피아니스트 L군도 비슷한 경우다. L군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등 뒤에서 매일 연습량을 체크하면서 무섭게 통제했다. L군의 어머니는 L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너는 남다른 음악적 재능이 있으니 음악가로 성공해야 한다’며 다그쳤다. L군 역시 20대가 되면서 엄마와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여전히 아들을 통제하려는 어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독립하려는 L군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L군은 엄마에 대한 엇갈리는 감정이 있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편이라 엄마의 간섭이 아니었으면 피아니스트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엄마 때문에 늘 갑갑했다.”
   
   이무석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장은 “부모의 과잉간섭이 아이를 거짓자아(False-self)로 살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아이가 아이로서 살게 해주고 자유를 포용해주면 진짜자아(True-self)로 살기 쉬운데, 부모가 과잉보호와 지나친 간섭을 하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삶이 아닌, 거짓자아로 살게 된다. 이 경우 인생의 판단기준은 ‘부모’가 된다.
 
 선택에 앞서 무의식중에 ‘엄마가 좋아하실까?’를 먼저 떠올리는 거다. 거짓자아로 살아온 아이는 청소년기에 문제가 터진다. 청소년기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아이덴티티가 생기는 시기다.
 
 진짜자아로 살아온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스스로 알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부모의 과잉간섭으로 기획된 삶을 살아온 아이, 즉 가짜자아로 살아온 아이는 인생의 갈림길마다 극도의 혼란을 겪는다. 대학의 과 선택, 친구, 배우자 선택 등 선택의 기로마다 혼란스럽다. ‘진짜 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거다.”
       
   과잉간섭 부모일수록 효도받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한국 엄마들의 지나친 자녀 사랑은 ‘약이 아닌 독’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녀에 대한 사랑을 조금 거두고 엄마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도 했다. 엄마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엄마라는 타이틀을 걷어낸 한 여자 개인의 삶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가꿔야 행복한 인생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집착이 심한 부모는 노후가 불행한 경우가 많다. 이무석 소장은 “과잉간섭을 한 부모일수록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모의 과잉간섭으로 성공한 아이들은 대개 거짓자아를 가지고 산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구속하고 속박하는 부모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부모의 쇠사슬을 끊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심리가 강해지는 거다. 부모로서는 대단히 억울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부모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하고, 부모는 ‘지금까지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그걸 몰라주냐?’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이나미 교수는 자녀교육의 최종 목적은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이라며 “ ‘오늘이라도 내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를 늘 생각하면서 키우라”고 충고한다. 또한 “아이에게 뭘 해주려 하지 말라”는 색다른 충고도 남겼다. 부모가 한 인간으로서 삶을 잘 살면 아이들은 잘 크게 돼 있다는 것. 그는 “뭐든 ‘너무’가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과잉도 나쁘지만 부족해도 안 된다. 기본적인 것은 해 줘야 한다. 가지치기를 너무 많이 해도 죽고, 거름을 너무 많이 줘도 죽고, 보호한다고 비닐을 덮어줘도 죽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존재다. 이때 중요한 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이웃집 엄마한테 묻지 말고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거다. 아이가 원하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가도록 도와주고, 이 사회에 해가 되지 않도록 도덕적인 가치를 가르쳐 주는 것, 그게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고 아이의 능력만큼만 살도록 해야 부모와 자녀 모두 행복할 수 있다.”
등록일 : 2015-09-04 11:11   |  수정일 : 2015-09-0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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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 2018-08-04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5
한국 이고 전세계적으로도 문제 입니다.
한국만 보면 의존적으로 아이를 만드는게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에서 크나 큰 문제고 잘 못인 것을 깨달것입니다.
사회가 문제고 그 후 가정조차 영향을 받고 있으니 제대로 똑바로 바로 잡고 가야 할 것이고 부모님들도 세상에 동요되어 서로가 인생에 실수 될 반복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도적이고 자립심을 강하게 키워야 하는건 경쟁사화에서더 미래에도 더욱 더 필요하고 부모님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부분이 어느 선까지 라는 점 부모님들도 아이도 이미 미리 알고 잇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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