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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의 재(嶺) 너머 이야기

지상 최악 독재세력과 맞짱뜨는사람들

자유북한방송을 만드는 '자유의 전사(戰士)'들을 만나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3-29 14:46

북한이 지상 최악의 독재체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가장 큰 동력(動力)이 바로 외부정보의 차단에 있다. 정보의 차단과 군대라는 폭력 수단이 있는 한 북한 정권의 내부 변화나 붕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남북 상호비방 중지를 가장 먼저 요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2000년 6월 이후 대북(對北)방송이던 KBS사회교육방송을 한민족방송으로 바꾸고 북한 체제비판을 중단하였고, 삐라를 비롯한 모든 대북 선전물 발송도 중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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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자유북한방송 사무실의 모습.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북한의 요청으로 우리 정부와 군이 모든 대북 방송을 중단하자 2004년 탈북자들이 모여 자유북한방송을 설립했다.  

2004년 6월에는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때 상호비방방송 중지를 전면 합의함에 따라 그나마 휴전선 일대에 울려 퍼지던 국방부가 운영하던 ‘자유의 소리 방송’까지 중단되었다. 자유의 소리 방송은 휴전선의 확성기와 가청 거리가 50km인 FM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이로써 북한 주민들은 외부정보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대북 방송의 맥을 잇는 자유북한방송
 
당시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반발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북한 체제의 취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탈북자들이었다.
 
정부가 대북 심리전을 중단하자 탈북자들이 스스로 삐라를 만들어 북에 보내는가 하면, 인터넷 매체나 방송을 만들어 자유와 진실의 목소리를 북녘 땅에 전하기 시작했다. 이들 대북 관련 매체나 단체 가운데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자유북한방송’이다.
 
2004년 설립된 자유북한방송은 방송과 인터넷매체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 사상을 전해 그들을 각성시키고, 인터넷을 통해서는 남한 주민들에게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전달하여 올바른 대북 정책을 펴도록 돕는 두 가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1999년 탈북한 자유북한방송의 김성민 대표는 “나 자신이 북한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대북방송을 많이 들었던 것이 탈북을 결심하는 데 큰 계기가 되었다”며 “외부세계와 완전하게 고립된 북한 주민에게 현재로서는 삐라와 대북방송이 유일하게 외부 세계의 소식을 알려주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자유북한방송의 직원은 김성민 대표를 비롯하여 이석영 국장과 아나운서, 영문 번역을 맡고 있는 서강씨, 총무 1명 등 7명의 정직원과 기타 탈북자로 구성된 수명의 기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3월 13일 자유북한방송을 찾아 ‘자유의 전사’(戰士)로 활동하는 이들의 사명감을 들어보았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북한 곳곳에 우리 통신원 활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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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실에서 원고를 녹음하고 있는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
 
먼저 2004년부터 자유북한방송을 이끌고 있는 김성민 대표를 만나보았다.
 
김 대표는 “2004년 6월 6ㆍ15 후속 조치로 열린 남북장성급 회담에서 남북이 상호비방 방송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를 보고 탈북자들이 경악했다”며 “북한에 그나마 전해지는 유일한 외부 소식이 남한 정부와 군(軍)이 보내는 라디오 방송과 삐라였는데 이것을 그만둔다니까 기가 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에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 탈북자들이 방송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며 “탈북자들이 모금한 돈과 남한에서 사업하시는 삼촌이 지원해준 1억5000만원으로 방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김성민 대표와 일문일답(一問一答)이다.
 
-자유북한방송에서 어떤 내용이 전파를 타는지요.
 
“탈북자 대담을 10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북한에 대한 생생하고 방대한 증언이 쌓여 있습니다. 또한 탈북자들이 함께 만드는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탈북대학생의 남조선 이야기’ 등의 코너도 계속 제작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김성욱 리버티헤럴드 대표와 김필재 조갑제닷컴 같은 젊은 대북 전문가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남북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숫자로 보는 남조선’, 주요일간지 사설이나 논설 소개, ‘북한 인권이야기’ 같은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정부의 관계 기관에서 우리 방송을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우리 사무실을 수시로 방문해서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방송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것이 큰 자부심이죠.” 
 
북한의 내부 소식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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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이 <조선pub>에 공개한 북한 내부의 정보원들로부터 입수한 각종 북한 관련 원문자료들. 자유북한방송은 이런 1차 원문 자료를 통해 최대한 정확하고 신속하게 북한 관련 정보를 분석 보도하고 있다.

-최근 자유북한방송은 북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보위사령부에 체포되어 사실상 실각한 것 같다고 보도한 적이 있는데, 그 보도가 나가고 나서 곧바로 북한이 최룡해가 건재한 모습을 TV에 방영했습니다.
 
“최룡해가 잡혀갔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정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노동신문을 분석하면, 올해 2월 16일 이후 노동신문은 최룡해 부친(최현) 띄우기를 더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최룡해가 공석에서 한동안 사라진 것도 확인된 사실입니다. 북한이 최룡해가 건재하다며 방영한 조선중앙TV 동영상은 짜깁기 한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하지만 장성택에 이어 최룡해까지 곧바로 처단하면 김정은이가 자신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망가지고, 국제사회로부터 망신을 당할 게 뻔하니까 일단은 최룡해를 다시 세워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진실은 곧 밝혀질 것입니다.”
 
-장성택 처형 과정에서 자유북한방송이 여러 차례 특종과 단독보도를 했는데, 그러한 정보는 어떻게 수집하는 것인지요.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각 지역에 통신원들이 있습니다. 북한 내에서 직접 전화로 정보를 주는 정보원도 있고, 탈북자 주변의 인맥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장성택 처형 사건 시점에 제가 한국 언론과 북한과 관련해 정확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보원들로부터 받은 최신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실례로 우리는 김정일의 후계자에 대해 세계 언론이 주요 이슈로 다루기 전에 이미 김정은이 후계자라고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정치 외에도 모든 분야에 걸쳐 많은 양의 정보를 북한으로부터 들어오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는 북한에서 올해부터 의무 교과에 편입시킨 한문 교과서를 단독 입수해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자료는 어떤 식으로 전달받습니까.
 
“대부분 북한에서 직접 온 원본 자료를 토대로 보도합니다. 공개처형 동영상이나, 수많은 북한 내부 사진들이 그동안 우리가 입수했던 원본자료들입니다. 요즘은 북한에서도 행정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합니다. 그래서 바로 컴퓨터로 만든 1차 자료가 우리한테 곧바로 파일 형태로 전달됩니다.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의 숙청 사건도 그 세부 상황을 자유북한방송이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어느 날 북한에서 온 자료를 검토하다 보니까 ‘리영호의 사진을 모두 내리라’는 명령이 있었고, 또 다른 자료에는 ‘반역자 리영호’라는 문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수의 정보를 종합해서 남한 언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북한의 내부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겁니다.”
 
"우리를 도와주다 탈북하는 정보원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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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이 확보한 북한의 최신 전자 도서자료. 1500여권의 도서가 DB화 되어 있다. 국내 도서관에 서도 보기 힘든 각종 북한 서적을 간단하게 컴퓨터 하나로 바로 검색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자유북한방송은 수많은 북한 원문 도서와 백과사전류를 확보하고 있다.

김성민 대표는 “동영상 자료의 경우 공개 총살 동영상을 촬영한 내부 정보원이 북한 보위부에 체포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동영상 확보에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2009년 함흥에서 인민재판 후 공개처형이 있었는데, 당시 공개처형이 끝나고 출구를 하나만 남긴 채 현장을 봉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참관한 사람들을 전부 몸수색했는데, 당시 4명이 몰래 현장을 촬영하다가 걸렸습니다. 다행히 우리측 정보원들은 아니지만, 북한 동영상을 구하려다 사람 죽이겠다 싶어서 동영상 촬영 시도는 더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05년 북한 국경 군인 초소의 군인이 잡혀온 탈북자를 구타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당시 좌파 매체에서 그 화면이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했었는데요.
 
“그 동영상은 구타를 하는 소대원을 소대장이 직접 찍어서 보내준 겁니다. 그 후 그 소대장은 목숨의 위협을 느껴 탈북했습니다. 조작 운운하는 것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자유북한방송을 음해하기 위한 세력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도와주다 본의 아니게 탈북하는 정보원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남한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북한 요원이 도리어 저에게 북한의 자료를 넘겨준 경우도 있었고, 방송을 듣고 북의 보위지도원이 직접 엄청난 정보를 주기도 했습니다.
 
북에서 직접 보내온 이런 정보들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거름이 됩니다. 우리가 이런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지난 10년간 북한 주민들을 향해 외친 자유에 대한 의지가 신뢰라는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어서 무척 아쉽지만, 미국 국무부가 탈북자들과 중국에 출장 나온 북한 주민 약 200~300명을 대상으로 매년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응답자의 30% 이상이 KBS, 극동방송, 자유아시아방송, 미국의 소리 방송 등 외부의 방송을 듣는다고 대답했고, 우리처럼 민간 단파방송 중에는 자유북한방송이 항상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국내 탈북자들이 2만5000명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약 4000~5000명이 우리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무엇보다 탈북자들이 만든 방송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고, 또한 북한말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설득력도 강하고,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자금이 없어 방송 시간을 더 늘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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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미국에서 열린 자유북한방송 주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간 김성민 대표는 백악관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국내 대통령이 북한 인권문제로 탈북자들을 만나는 것을 회피하고 있지만, 부시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 신동혁씨를 만나는 등 북한 인권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의 위협과 남한 좌파들로부터 방송 중단 협박도 많이 당하지 않았나요.
 
“북한 정권에서 ‘죽여버리겠다’는 직접적인 위협은 말할 것도 없고…. 2004년 2월 시험방송을 할 때부터 한총련과 통일연대 사람들이 회사로 몰려와 시위를 벌이는 등 물리적인 충돌도 많이 겪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런 시위 때문에 건물 주인이 자꾸 나가라고 해서 4번이나 이사를 했습니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스튜디오 한번 옮기는 데 2000~3000만원이 들어가는데 이사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당시는 정말 여기가 북한이 아닌데 우리가 이런 협박을 받으며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과 정부, 경찰 어디 하나 기댈 곳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많이 서글펐습니다.”
 
-방송국 운영 자금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정말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아준 돈으로 운영합니다. 방송을 하려면 외국의 민간방송 주파수를 사야 하는데 방송 시간에 따라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현재는 그동안 도와주던 미국 국무부의 지원이 끊겨서 재정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가 자유북한방송을 통해 영리를 취하려고 했다면, 북한에서 장교로 재직해서 남보다 훨씬 많은 정착금과 남한의 삼촌께서 주신 돈, 아시아 민주인권 상으로 받았던 10만 달러와 국경 없는 기자회의 상금 등으로 다른 곳에 투자를 했지 뭐 하려고 돈도 안 되는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이 고생을 하고 있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에서 지원하는지요.
 
“하루 한 시간 방송을 하는데 전파임대료가 월 500만원입니다. 현재는 일본과 미국의 민간단체의 후원회에서 주로 지원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와 부산온천교회, 과천교회 북한선교부, 영락교회가 지원을 해주는 데 이 기회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여전도회와 과천제일교회는 방송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후원해준 유일한 곳입니다.
 
그리고 국내 언론사 퇴직자분들과 알게 모르게 지원해주는 개인들도 있습니다. 자금이 좀 더 있으면 방송 시간을 더 늘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하루 평균 두 시간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데, 자금이 빠듯해서 하루 한 시간 정도로 방송을 줄일 때도 많습니다.”
 
"자유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
 
-얼마 전 탈북자들이 의존하는 대북 소식통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객관적인 북한 정세 평가에 장애가 된다는 칼럼을 언론에 기고한 교수도 있었는데요.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중앙일보> 시론을 통해 그런 주장을 했습니다. 소위 북한전문가라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한심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그들은 북한의 특수성을 말하면서 북한독재체제의 반동성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자기들이 북한 정보를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김근식씨는 ‘탈북자들이 북한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정치군사적 고급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가 자기에게 대북 정보를 검증해 달라고 했습니까?
 
그런 궤변으로 고향마을의 오솔길까지 어느 한순간도 잊은 적 없는 탈북자들을 모욕하고, 죽음까지 각오하고 북한의 내부정보를 보내는 북한 주민들의 열정을 농락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탈북자들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북한을 말하고, 북한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성민 대표는 “우리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북에서 목숨을 걸고 보내온 이야기를 남쪽에 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책상머리에 앉아서 추상적인 분석이나 하고 양비론(兩非論0을 펴는 일부 북한 전문가들보다 훨씬 유용하고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은.
 
“북한은 극심한 언론탄압 국가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가 절대 부족합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에게 인권이 무엇인지 알리고, 자유와 민주가 무엇인지 인식시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 민주, 통일에 대한 의식을 각성시켜 그들 스스로 일어서고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북한 군인들을 상대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에게 자유의 바람을 넣어 독재정권에 저항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 방송은 과거 북한군에 복무했던 탈북자들이 진행하는데 방송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된 군인들이 저항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계획인지요.
 
“물론 처음 시작한 것은 대북방송의 맥을 잇기 위한다는 측면이 있었지만, 10년이 지나면서 우리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 정권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남쪽 좌파들이 기를 쓰고 우리를 없애려고 하는 것을 보고 ‘이게 정말 중요하니까 저들이 저렇게 기를 쓰고 막으려 하는구나. 정말 이 일을 목숨을 걸고 해야겠구나’하고 다짐했습니다. 오기와 투지로 이 일을 하다 보니 저도 어느 순간 북한 해방을 위한 투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유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방송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자유북한방송 영문 홈페이지 운영하는 서강씨,
"나의 작은 일이 북한주민에게 자유를 주는 큰 일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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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의 중요 뉴스는 영문(英文)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 북한관련 단체와 주요 언론사에 제공된다. 이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 서강(33)씨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서강씨는 졸업 후 미국 뉴욕주에 있는 시라큐스대에서 국제관계학(석사)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자유북한방송의 영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각종 북한관련 영문을 번역하거나, 해외인사의 방한(訪韓) 시 통역을 해오고 있다.
 
특히 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인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방한할 때마다 서강씨가 단골로 통역을 맡고 있다. 필자도 작년 10월 방한한 슈잰 숄티 여사를 서강씨의 통역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서강씨의 말이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했던 지역이 전 세계 난민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었습니다. 이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까 난민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이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늘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 후  김성민 대표 등 탈북자들을 만나 같이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북한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면 대기업과 같이 안정되고 보수가 높은 직업을 찾지 않나요.
 
“물론 이 일을 해서 돈을 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부터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귀국 후에도 북한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찾아 주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역 일은 제가 영어를 할 수 있으니까 부수적으로 하는 것이고, 주요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을  세계에 알려서 개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학은 어떤 계기로 가게 되었는지.
 
“평소 여성이나 아동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를 공부하러 미국에 갔는데, 우연하게 제가 간 지역이 미국에서 난민이 많이 정착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민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북한의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이런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저에게 공부를 시킨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배워서 남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온 것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부모님의 영향 때문에 저도 그동안 제가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 희생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되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난민들과 만나면서 이 세상의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 내가 평화를 누리고 살았으니까 그들도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되면 돈보다는 남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입니다.”
 
-북한 소식을 번역해서 해외에 알리는 것이 왜 중요한지요.
 
“저는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북한에 관심을 가지도록 가교(架橋)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해외에 알려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이것이 북한 정권에 압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서 북한이 열린 사회가 되는데 일조(一助)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자유북한방송만큼 적당한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북한방송처럼 생생한 북한 정보가 오가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김성민 대표나 슈잰 숄티 같은 훌륭한 분들과 일하게 된 것도 행운이고요.”
 

이석영 국장, "우리가 쓰러지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독재자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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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의 이석영 국장은 원래 북한전문 매체인 <데일리NK>에서 기자활동을 하다가 3년 전부터 자유북한방송에 합류했다. 그는 “북한 이 워낙 통제된 사회이다 보니까 주민들이 외부 소식에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라디오를 통해 바깥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많이 들었는데, 남한의 대북방송에서 김정일 독재의 실상을 알려주고, 김정일을 가차 없이 비판했기 때문에 일종의 대리만족감을 느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며 희망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여기에 더해 남한마저 자기들을 버렸다는 데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통일을 하려면 남한 사람들이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북방송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서 단파 라디오는 구하기 어려워서 많이 듣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북한이 워낙 폐쇄된 사회이다 보니까 많은 사람이 단파 라디오를 통해 바깥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실제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 중에는 자유북한방송을 듣고 왔다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북한이 방해전파를 쏘고 있는데, 우리가 주파수를 바꿔가면서 방송을 내보내니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북한주민들이 단파라디오를 구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요.
 
“첫번째 방법은 시장에서 암거래하는 방법입니다. 공개적으로 사고팔지는 못하지만 수요가 많기 때문에 언제든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습니다. 2002년 전 까지만 해도 이른바 ‘적지 물자’(적의 진지로부터 유입되는 물자)물자로 아리랑 담배나 ‘불티나 라이타’보다 라디오가 더 많이 들어왔다고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탈북자들, 특히 북한민주화운동본부(대표 강철환)와 극동방송, 국내외 북한민주화 단체들에서 비공식루트로 보내는 라디오도 북한주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지요.
 
“정부의 지원이 없다는 겁니다. 예산이 부족하니 방송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하루 2시간씩 두 번 방송을 송출했는데, 지금은 한 시간씩 2번밖에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더 있다면 유능한 기자를 좀 더 많이 쓰고 싶은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우리가 예산이 없어서 자발적으로 쓰러진다면, 가장 좋아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없애 버린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남한 정부와 국민은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통일과정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요.
 
“북한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워낙 세뇌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 사회가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깨닫기가 힘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 탈북자들이 하는 방송을 들으면서 북한 권력층의 비리와 체제의 부조리를 깨달으면서 북한 당국의 거짓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살았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심리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내보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고향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북한이 김성민 자유북한방송에게 보낸 공개협박 보도문이다. 북한 정권이 김성민 대표를 왜 그토록 싫어하는 지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글이라 이곳에 게재한다. 글에는 김성민 대표가 '동까모'(김일성 동상 까부수기 모임) 라는 조직을 만들어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죄악 우(위)에 죄악을 덧쌓는 인간쓰레기들 
 
주체102(2013)년 10월 29일 《통일신보》
 
죽어 묻힐 곳도 없다

예로부터 충신은 되지 못할망정 역적질은 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가장 추악한 짓으로 여기는 역적질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는 물론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는 죄악중의 죄악이다. 하기에 사람들은 일신의 안락과 치부를 위해 부모를 버리는 것과 같은 초보적인 도덕륜리마저 상실한 채 나라와 민족의 리익을 해친 역적을 인간중에서도 가장 수치스러운 인간으로 여기고 있다.
 
더러운 역적질로 민족의 저주와 손가락질을 받는 인간오물들 중에는 남조선에서 그 무슨 《자유북한방송》대표라고 자처하는 김성민(본명 김진)도 있다. 따지고보면 김성민의 가족은 일찌기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공화국의 혜택을 많이 받아왔다.
 
김성민의 아버지 김순석은 나라없던 그 세월 극심한 생활난으로 이역땅에서 정처없이 헤메이며 불우한 인생살이를 하였다. 그는 8ㆍ15해방후 공화국의 품에 안겨 시인으로서의 자기의 재능과 희망을 마음껏 꽃피웠다.
 
공화국에서는 전후복구건설이 한창인 때에 대동강반의 풍치수려한 곳에 새 살림집을 남먼저 안겨주었으며 그의 자식 6남매가 부러운것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온갖 은정을 다 베풀어주었다.
 
그 은정이 너무 고마와 김순석은 생이 지는 마지막순간 자식들에게 나라의 은덕을 한시도 잊지 말고 대를 이어 충정을 다해나가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공화국에서는 김성민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인민군대의 전문예술단체에서 창작적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작가로 내세워주었으며 대학까지 졸업시켜 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다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었다.
 
그런데 김성민은 대를 이어가면서도 다 갚지 못할 크나큰 사랑, 고마운 은덕에 보답하기는커녕 몇 푼의 돈에 환장이 되여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국가재산을 훔쳐내며 저 하나의 향락과 부귀영화만을 추구하였다.
 
지어 남이야 어떻게 되든 극단한 개인 리기주의에 빠져 부패타락한 생활만 일삼으면서 공화국에 썩어빠진 부르죠아 생활풍조를 퍼뜨리는 범죄도 저질렀다.
 
그 죄가 두려워 남조선에 도주한 김성민은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인 《북민전》과 《자유북한방송》이라는 《대북심리전방송》의 대표까지 겸임하고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의 돌격대가 되여 동족대결책동에 분별없이 날뛰고있다. 그가 2004년부터 《민간방송》의 탈을 쓰고 공화국에 대한 삐라살포에 그 누구보다도 극성을 부린 것은 그 실례이다.
 
특히 김성민은 한푼의 가치도 없는 어중이 떠중이들을 긁어모아 《동까모》라는 조직까지 내오고 무엄하게도 공화국의 최고 존엄을 해치려는 특대형 범죄행위까지 서슴없이 저질렀다.
 
말 못하는 짐승도 자기를 키워준 주인의 은혜를 안다고 하였지만 은혜에 보답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배반하고 심지어 물어뜯겠다고 날뛰는 김성민이야말로 짐승보다 못한 너절한 인간쓰레기이다. 아마도 수십년전에 땅속에 묻힌 김성민의 부모도 이 소식을 들었다면 역적을 낳은 자신들을 저주하며 통한에 몸부림칠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김성민의 죄행에 남조선인민들까지 얼마나 분격하였으면 언제인가 그에게 《북의 최고 존엄을 상대로 주둥이를 놀리는자, 그 더러운 목숨을 부지하며 살기를 바라는가.》라며 《민족의 반역자, 시대의 반역자인 김성민은 민족의 이름으로 기어이 처단되고야말것이다.》라는 협박장까지 날아들었겠는가.
 
종개 한마리 온 강물을 흐린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련한 처지에 있는 민족반역자, 인간쓰레기가 감히 공화국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려고 하는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역적은 죽어서도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묻힐 곳이 없다.
 
본사기자 리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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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3-29 14:46   |  수정일 : 2014-04-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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