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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한 거대한 세트장? 그들만의 ‘평양공화국’

글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 모습. photo KCNA
“평양 시민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평양 방문 둘째 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아 북한의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후 평양 시민들에게 연설한 내용 중 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연설 내용은 9월 18일 순안공항에 도착한 후 김정은과 함께 여명거리 등을 카퍼레이드 하면서 평양에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즐비한 것을 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여명거리는 평양 내 대표적인 신도시다. 90만㎡ 면적에 들어선 여명거리의 건축 연면적은 172만8000여㎡에 달한다. 70층짜리 건물을 비롯해 44동, 4804가구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북한 정권은 2016년 3월 18일부터 건설을 시작해 김일성 생일 직전인 2017년 4월 14일 완공했다. 북한 정권은 여명거리 준공식 때 외국 언론들을 대거 초대했다. 외국 언론들은 이곳이 미국 뉴욕의 맨해튼을 떠올리게 한다며 ‘평양과 맨해튼’을 합쳐 ‘평해튼(Pyonghattan)’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방북 수행단 및 최근 들어 북한을 방문한 언론인, 체육인, 연예인 등 한국의 각계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양의 ‘화려함’에 놀랐다는 소감을 피력하고 있다. 심지어 박지원 평화민주당 의원 등 일부 인사들은 평양의 모습을 보고 북한 정권과 김정은이 개혁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특히 TV 등 일부 언론들은 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평양의 변화된 모습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비명거리’로 불린 여명거리
   
   물론 평양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카퍼레이드를 했을 때 무채색의 낮은 건물들만 즐비했던 여명거리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그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달라졌다. 다양한 파스텔색으로 단장한 아파트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심지어 평양 출신 탈북자들도 변화된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2012년 탈북한 김지영씨는 “평양이 변했다는 것은 더 말할 여지도 없고, 너무 많이 변해서 깜짝 놀랐다”면서 “너무 밝아지고 화려해진 느낌이 많이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평양 시민들의 모습도 달라졌다. 거리에는 획일적인 옷차림이 아닌 캐릭터 티셔츠를 입은 어린이, 밝고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 손전화(휴대폰)로 통화하는 시민들, 택시를 타고 가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평양의 변화가 과연 북한 정권과 김정은의 개혁 때문일까. 무엇보다 먼저 김정은의 최대 업적이라고 불리는 여명거리가 세워진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1년 만에 여명거리에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한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수소탄을 백 발, 천 발 쏜 것보다도 더 위력한 대승리가 이룩된 여명거리 건설장이야말로 만리마 속도 창조의 고향”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여명거리 건설은 상당한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엔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의도는 여명거리 건설을 통해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것이었다. 북한 정권은 여명거리 건설을 위해 군 병력은 물론 청년돌격대, 대학생 등 하루 3만여명을 휴일 없이 24시간 2교대로 동원했다. 심지어 북한 정권은 ‘하루에 한 층을 건축하라’는 비상식적이고 과도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한국 아파트의 경우 한 층 건설에 7~10일이 소요된다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놀라운 속도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여명거리 건설에 동원된 중장비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사고로 많은 인명들이 희생됐다. 이 때문에 여명거리가 건설일꾼들의 ‘비명거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북한 정권은 시멘트를 비롯해 다른 지역들에 사용할 모든 자재를 투입했다. 북한 정권은 또 건설비가 부족하자 전국의 모든 기관과 공장, 협동농장, 인민반에 여명거리 아파트 한 가구의 건설비용인 1000달러, 무역일꾼에게는 2만달러, 해외파견 노동자에게는 1인당 500달러를 각각 납부하도록 강요했다. 북한 정권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을 제외하고는 여명거리 건설에 총력전을 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에는 은하거리(2013년), 위성거리(2014년), 미래과학자거리(2015년) 등이 줄줄이 완공됐다. 문수물놀이장, 능라인민유원지, 미림승마구락부 등 위락시설도 만들어졌다. 평양 시내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로 알려진 105층의 류경호텔은 착공하고 30년이 넘도록 아직 내부 장식도 마치지 못했지만 외벽에는 움직이는 야경을 형상화하기 위해 무려 10만개의 점광원(LED조명장치)이 부착돼 있다.
   
   
▲ 영국 건축비평가 웨인라이트가 촬영한 파스텔색의 평양 건물들 모습.

   파스텔 색상의 과도한 사용
   
   2015년 평양을 방문해 북한 정권이 자랑하는 건축물들을 둘러본 영국 건축비평가인 올리버 웨인라이트는 저서 ‘북한 내부에서(Inside North Korea)’에서 “평양은 체제 선전을 위한 거대한 세트장 같다”면서 “연극의 무대가 바로 평양”이라고 비판했다. 웨인라이트는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북한 건축의 특징은 파스텔 색상의 과도한 사용”이라면서 “파스텔의 낙천적이고 모더니즘적인 분위기를 통해 김정은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번영하는 북한”이라고 지적했다. 웨인라이트는 “평양은 독재자가 도시 건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면서 “평양은 김정은이 인민을 어린애 취급하는 놀이동산”이라고 혹평했다.
   
   리 소테츠 일본 류코쿠대 교수도 “여명거리 초고층 아파트 단지, 문수물놀이장 등은 김정은 패션이라고 부를 만하다”면서 “생활용 전기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북한 정권이 평양 야경 만들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은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 방송의 여행 프로그램인 ‘80일간의 세계일주’ 진행자로 유명한 마이클 페일린도 최근 평양을 방문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변화를 원한다. 그런데 그 변화가 주민들이 아닌 지도자가 원하는 방향인 듯해서 우려가 된다”고 밝혔다. 페일린은 평양 만수대 앞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 동상을 촬영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북한 안내원에게 혼쭐이 났던 에피소드를 밝히기도 했다.
   
   평양의 진면목은 지금까지 외부인들의 눈을 통해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다. 한국은 물론 외국의 인사들이나 언론들이 북한 안내원이 없이 평양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실상을 샅샅이 살펴보거나 취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 주민들도 평양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 평양은 북한 땅에 있는 일종의 ‘요새(要塞)’라고 볼 수 있다. 평양은 북한군과는 별개 조직인 호위사령부가 통제하고 있다. 호위사령부는 호위총국, 평양경비사령부, 평양방어사령부로 구성돼 있다. 평양경비사령부는 평양의 외곽에 경비초소를 설치하고 지방 주민들과 차량 등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막고 있다. 평양경비사령부 외곽에는 평양방어사령부가 포진해 있다. 이처럼 철통같이 에워싸인 평양에 지방 주민이 들어오려면 특별통행증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 중 대다수는 평양을 갈 수도 없고, 알 수가 없다. 북한 주민들도 모르는 평양을 한국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안다고 해도 ‘장님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체코 주재 북한 무역대표를 지낸 뒤 2003년 한국에 망명한 탈북자 김태산씨는 지난 9월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평양에서 수십 년 살아본 사람으로서, 방북한 한국 사람들이 평양이 매우 달라졌고 주민들이 살 만하다고 놀라는 모습들이 참으로 한심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평양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서 고층 아파트에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면서 “북한에서 개인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달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 “겨울에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온수 부족으로 너무 추워서 잠자리에서 손발이 얼어 잘라야 할 정도”라고 밝혔다. 김씨는 “전기가 부족해서 그 높은 아파트를 걸어서 오르내리고, 물을 못 올려서 아래층에서 양동이로 길어다가 여름철에 샤워도 못 하고 겨우 살아가는 처지”라면서 “그래도 평양이 살 만하다고 말할 한국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반문했다.
   
   
▲ 러시아 블로거 베케크리가 촬영한 북한 국경의 한 마을 모습.

   평양을 조금만 벗어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북한 정권이 가장 애용하는 단어는 ‘공화국’이다. 북한 정권이 발표하는 성명만 봐도 ‘우리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말하는 ‘우리 공화국’은 이미 ‘평양공화국’과 ‘지방공화국’으로 분명하게 갈려 있다.
   
   북한 정권은 1972년 12월 27일 헌법을 개정하면서 수도(首都)를 서울에서 평양으로 바꾸었다.(제11장 149조) 평양은 북한 정권이 수립된 1946년 9월 평안남도에서 분리돼 평양특별시로, 이후 평양직할시라고 명칭이 바뀌면서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평양의 면적은 1100㎢로, 서울(605㎢)보다 두 배 이상 넓다. 인구는 지난해 기준 286만명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수도였고, 고려시대에는 서경(西京)으로 불렸던 평양이 ‘혁명의 수도’가 된 것은 김일성의 교시에 따른 것이다. 김일성은 “평양은 조선 인민의 심장이며, 사회주의 조국의 수도이며, 우리 혁명의 발원지”라면서 평양에 대한 전후 복구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김일성은 또 1975년 3월 아들 김정일에게 15년간 평양을 새롭게 건설해 보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천지개벽을 일으켜 온 세상 사람들이 황홀경에 잠겨 평양을 바라보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정일은 주체사상탑을 비롯해 개선문, 대성산 혁명열사릉, 애국열사릉, 만경대혁명사적지, 조선혁명박물관, 동평양대극장, 만수대예술극장, 만수대의사당, 고려호텔, 창광원, 빙상관, 청류관, 인민대학습당, 국제문화회관, 평양 제1백화점, 김일성경기장, 5·1 경기장, 평양산원, 청년중앙회관, 4·25문화회관 등을 건설했다. 북한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북한에서 1975~1989년은 ‘혁명의 수도’인 평양에 현대적인 거리와 대형 건축물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됐던 시기라고 밝혔다.
   
   김정일이 사망한 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2012년 2월 16일 조부의 미라가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더욱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칭하고 부친의 시신까지 미라로 만들어 안치한 것이었다. 김정은은 또 2012년 4월 13일 평양 만수대 언덕에 있는 조부의 대형 동상 옆에 같은 크기의 부친 동상을 설치했다. 이처럼 세습을 정당화한 김정은은 정권의 합리화와 체제 유지를 위해 조부와 부친처럼 평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나섰다. 김정은은 2013년 신년사에서 “평양을 주체조선의 수도, 선군문화의 중심지답게 더욱 웅장하고 풍치 수려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이 같은 지시로 평양은 각종 전시성 건물을 짓느라 자금과 물자가 집중됐지만 지방은 방치됐다. 평양의 모든 도로에는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많은 승용차들이 달리고 궤도전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지방에선 도로들이 대부분 비포장인 데다 각종 인프라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웨인라이트는 “평양을 조금만 벗어나자 허물어진 집들과 여기저기 구멍 뚫린 고속도로, 누렇게 녹슨 철탑들이 눈에 들어왔다”면서 “이런 곳들이 진짜 북한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건축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밝혔다.
   
   
   그들만의 낙원
   
   특히 주목할 점은 평양 시민들은 ‘선민(選民)’이라는 것이다. 평양 시민과 지방 주민들은 생활방식이나 혜택에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는 공민등록법에 따라 17세 이상은 공민증을 발급받는데, 1997년부터 평양 시민들만은 ‘평양시민증’을 별도로 발급받는다. 지방과 수도를 구별해 따로 수도시민증이라는 걸 발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할 것이다. 평양 시민들은 접경지역과 자강도, 라선, 개성을 제외하고 통행증 없이 시민증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여행이 가능하다. 평양 시민이 되려면 무엇보다 출신성분이 좋아야 하고 당과 수령에 무조건 충성해야 하고 전과 등 결격사유가 전혀 없어야 한다. 김일성은 “평양은 혁명의 수도인 만큼 오직 당의 유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고 당 정책을 받들고 한마음 한뜻으로 살며 일하는 사람들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양 시민들은 ‘평양관리법’에 따라 식량과 연료를 우선적으로 배급받는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절은 물론 북한의 배급 체계가 무너진 지금도 평양 시민에게는 식량배급이 계속되고 있다. 각종 식당, 병원 등 의료 시설과 상하수도 시설도 잘 돼 있다. 이 때문에 지방 주민들은 죽기 전에 ‘평양공화국’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평양 시민들은 특혜를 많이 받다 보니 충성심이 지방 주민들보다 투철하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일부 불순분자(?)를 추방하는 방법 등으로 평양 인구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면서 충성심까지 유도한다. 때문에 평양은 선택받은 자들만의 또 다른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평양은 김정은에 충성하는 당·정·군의 간부들, 돈주들, 열성 당원 등 북한 전체인구의 10%만이 특권을 누리는 ‘낙원’인 셈이다.
   
   아무튼 평양이 변했지만 ‘평양 착시효과’에 현혹돼선 안 된다. 북한 정권의 관리와 투자로 평양의 경제 사정만 나아졌을 뿐 대부분 지역들은 극도로 피폐한 상태이다. 북한 정권을 일방적으로 악마화해서도 안 되지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 발전에 나설 것’이란 ‘동굴의 우상(偶像)’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등록일 : 2018-10-1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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