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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주룽지급 ‘경제대통령’ 류허의 등장

글 | 최유식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 류허 중국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과 클라우스 슈와브 다보스포럼 회장(오른쪽). photo 구글
지난 1월 말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일즈맨’의 진가를 발휘했다. 자신의 감세 정책을 내세워 전 세계 기업가들에게 미국에 투자할 것을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포럼 현장에서 청중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중국 대표단장으로 온 류허(劉鶴·66) 중국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연설한 중국 특별 세션이었다. 이번 포럼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이 연설하는 세션은 포럼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와브가 직접 사회를 봤는데, 류허는 정상이 아님에도 슈와브 회장과 함께 무대에 섰다. 30분간 중국어로 진행된 연설에서 류허는 “올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는 중국은 국제사회가 예측하는 것보다 더 강도 높은 개혁·개방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과 다보스포럼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인공은 트럼프가 아닌 중국”이라고 썼다.
   
   중국은 지난 2년간 국가 정상급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작년에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도 높게 공격했고, 2016년에는 리커창 총리가 참석했다. 올해 류허가 나온 것은 그가 시진핑 집권 2기 중국 경제를 이끌 사령탑임을 시사한 것이다. 베이징의 한 중국 학자는 “시 주석이 류허를 다보스포럼에 보내 국제무대 데뷔전을 치르게 한 것”이라고 했다. 류허는 2월 27일 중국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워싱턴을 방문해 양국 무역 갈등 문제에 대한 협상에 나서는 등 경제 사령탑으로서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3월 5일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우리의 국회 격)는 시진핑 집권2기 국무원(정부) 진용을 확정한다. 류허는 이번 전인대에서 경제·금융 담당 부총리로 취임할 전망이다. 이는 작년 10월 19차 당대회 때 그가 25명의 정치국원에 발탁될 당시 이미 확정된 사안이다. 최근에는 그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행장과 작년 11월 새로 출범한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 전 분야를 관할하는 초강력 감독기구인 금융안전발전위원회 주임을 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경제·금융 담당 부총리가 인민은행 행장까지 겸임하는 것은 장쩌민 전 주석 집권 초기인 1993~1995년 주룽지 당시 부총리 이후 23년 만이다. 류허가 인민은행장에 발탁되면 사실상 총리급 부총리로 경제 개혁을 강도 높게 밀어붙였던 주룽지 수준의 위상을 갖게 된다. 직제상으로는 리커창 총리와 한정 상무부총리(예상)가 위에 있지만, 실제로는 류허가 시 주석의 명을 받아 경제사령탑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창 런던대 소아스중국연구소 소장은 “시 주석이 (리커창) 총리를 제치고 류허 팀에 경제 현안 대부분을 맡길 것”이라며 “류허가 시 주석이 승인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정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실제로 주룽지 부총리가 경제사령탑 역할을 할 때에도 리펑(李鵬) 당시 총리는 경제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시진핑의 어린 시절 태자당 친구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 백발이 성성한 류허는 전형적인 학자풍 인물이다. 시진핑 집권 1기 때는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으로 막후에서 이른바 ‘시코노믹스’를 설계하는 책사 역할을 했다.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는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당내 최고 기구로 시 주석이 조장을 맡고 있다. 부총리와 외교·경제 담당 장관급 인사들이 분기에 한 차례 정도 모여 회의를 갖는데, 류허는 판공실 주임(장관급)으로 이 회의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을 해왔다. 시진핑 주석이나 리커창 총리의 경제 관련 연설 원고 작성도 그의 몫이다.
   
   시 주석과 류허는 같은 태자당(太子黨·중국 혁명 원로나 고관 자제) 출신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류허가 1952년생으로, 시 주석보다 나이가 한 살 많지만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집안끼리도 서로 알고 교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베이징에서 태자당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수학했다. 시 주석은 베이징 81중학, 류허는 베이징 101중학을 다녔다.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학교 생활을 마치지 못하고 시 주석은 산시(陝西)성 옌안(延安), 류허는 지린성으로 각각 쫓겨간 것도 공통된 이력이다.
   
   시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 전 부총리는 중국 혁명 원로 중 한 명으로 중국 서북지방의 맹주였다. 국민당군에 쫓긴 마오쩌둥이 장정을 통해 간신히 대피했던 산시성 옌안 일대가 그의 근거지였다. 건국 이후 부총리까지 지냈던 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반당분자로 몰려 모진 박해를 당했다. 마오 사후인 1978년 복권이 돼 광둥성 서기와 성장 등을 지냈다. 류허의 아버지인 류즈옌(劉植巖)은 더 불행했다. 허베이 출신으로 중국공산당 서남국 조직부장을 지낸 그는 문화대혁명 당시인 1967년 박해를 받다 49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코노믹스 설계자로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렸다. 시 주석은 칭화대를 졸업한 이후 군에 입문해 3년 동안 겅뱌오 당시 국방부장의 비서를 지냈다. 이후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로 지방관 생활을 시작하면서 정치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반면 류허는 베이징인민대학 공업경제학과에 진학해 석사 과정까지 마친 후, 국무원(정부) 발전연구센터와 국가계획위원회(SPC) 등지에서 연구자로 일했다. 1992년에는 미국 세톤홀대학 MBA 과정에 등록해 1년간 공부했고, 1994~1995년에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런 미국 유학 덕분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영어를 구사한다.
   
   두 사람은 2013년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다시 한배를 타게 됐다. 시 주석은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으로 있던 류허를 주임으로 승진시키면서 그를 자신의 경제 책사로 삼았다. 중국 경제발전계획 부서인 국가발전개혁위의 부주임 자리도 맡겼다. 모두 장관급 보직이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류허가 중국 경제에 대해 발휘한 영향력은 이런 직책이 가진 파워 이상이었다. 공급 측 구조 개혁, 시장과 기업의 역할 확대, 국영기업 개혁 등 등 시진핑 집권 1기의 주요 경제 정책 아이디어가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현실이 됐다. 시 주석이 그만큼 그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그를 미국 언론은 ‘중국판 서머스’라고 부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았던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버럴 성향 구조개혁 강화할 듯
   
   관료이면서 학자였던 류허는 30여년간 총 4권의 책과 2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중국 고위 당국자로서는 드물게 공개된 논문이나 책이 많다. 1998년에는 중국의 내로라하는 주요 경제학자와 장차관급 경제 관료들이 참여하는 ‘중국경제 50인 논단(Chinese Economists 50 Forum)’을 만들어 학계의 의견을 적극 정책에 반영해오고 있다.
   
   그는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개혁·개방과 시장화, 국영기업 개혁, 반독점, 재산권 보호 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개혁 성향이 강한 인물로 분류된다. 서방이나 홍콩 언론도 그를 ‘리버럴’로 부른다.
   
   류허는 2008년 발간된 ‘중국경제 50인 논단이 본 30년’에 쓴 글에서 “중국이 고도성장을 이뤄낸 것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쇄국노선을 포기하고 국제 분업질서에 합류했기 때문”이라면서 “중국 경제성장의 기적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기술산업 육성을 통해 국제 분업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높은 무역의존도(70%)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내수시장을 키우며, 소득 격차 축소와 정치적 안정을 위해 중산층 육성과 교육 강화에 힘쓸 것 등을 주장했다.
   
   올해 다보스포럼 연설은 류허가 바라보는 현 단계 중국 경제와 그가 5년간 이끌어갈 경제정책 방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중국 경제의 현 단계를 “1인당 국민소득 8000여달러에서 1만달러로 가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그에 맞춰 지금까지 해온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전환을 위한 핵심 노선이 시진핑 집권 1기 때부터 계속해온 공급 측 구조 개혁이다. 국내에서는 중국 정부의 공급 측 구조개혁을 철강·석탄 분야 등의 과잉생산시설 해소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범위가 넓다. 류허는 과잉생산시설 해소와 함께 부동산(주택) 재고의 해소, 기업 생산성 강화와 원가 절감에 도움이 되는 공공서비스 확대, 기업 관련 인프라와 제도 개선 등을 공급 측 구조개혁의 주요 과제로 꼽았다. 한마디로 중국 기업들이 싸구려 소비제품을 생산하던 데서 벗어나 각 산업 분야에 걸쳐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수익성도 크게 끌어올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급 측 구조개혁은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로 ‘산업구조 고도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2년간 철강생산 능력을 1억1500만t 줄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요 철강회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좋아지고 기술력도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다보스 연설에서는 크게 강조하지 않았지만, 중국 소비시장 확대도 류허가 바라보는 주요 경제 개혁 방향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중국 경제 발전의 삼두마차 역할을 해온 투자와 수출, 소비 중에서 투자와 수출 비중을 점점 줄이고 소비를 대폭 늘려 중국 국내 시장의 규모를 더 크게 키우겠다는 것이다. 13억명이 넘는 인구로 구성된 거대 내수시장이 만들어져야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위험 요인으로 인해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소비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금융과 보험, 의료, 교육 등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것과 도시화를 가속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번 다보스 연설에서 시진핑 집권 1기 5년의 성과를 평가하면서 “지난 5년간 소비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58.8%,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 도시화율은 58.2%로 증가했다”고 한 대목은 그의 이런 지론을 잘 반영하고 있다.
   
류허의 다보스포럼 연설 주요 내용
   
   시진핑 집권 2기 경제정책 목표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8000여달러에서 1만달러로 가고 있는 단계… 양적 성장에서 산업구조 고도화로 전환하는 것이 경제발전의 내재적 요구.”
   
   
   기본 노선
   
   “중국 경제발전의 가장 큰 모순은 공급체계가 수요체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으로, 공급 구조개혁이 주 노선이다.… 과잉생산시설 감축, 부동산 재고 해소, 부채 축소(deleveraging), 공공서비스 강화, 기초 인프라와 제도 개선 등에 주력할 것.”
   
   
   향후 3년간의 중점 정책
   
   ① 금융리스크 대비 : 3년 내에 그림자은행, 지방정부 부채 등 금융리스크를 줄여 정상 수준으로 유지
   ② 빈곤 퇴치 : 3000만명에 이르는 농촌 빈곤인구 해소
   ③ 환경오염 방지 : 오염물질 배출량 대폭 감소와 에너지효율 제고 등 환경오염 방지에 주력
   
   
   개혁·개방
   
   “이른 시기에 금융업과 제조업, 서비스업에 걸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게 하고, 지식재산권 보호와 대외 수입 확대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는 개혁·개방 40주년으로 국제사회의 예상을 뛰어넘는 조치가 나올 것이다.”
등록일 : 2018-03-09 08:42   |  수정일 : 2018-03-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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